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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기자의 유쾌한 명상 체험기 쉐우민 이야기, 열한 번째 이야기 단순한 일상의 맛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7년09월02일 16시36분
  • 최종수정 2017년09월02일 16시36분

작성자

  • 김용관
  • 동양대학교 교수(철학박사), 전 KBS 해설위원장

메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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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숙한 것들과의 결별

  2016년 1월 4일 다시 미얀마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나는 왜 미얀마까지 날아와 수행처를 찾는가? 나를 가르쳐 줄 티처가 있기 때문이라는 대답은 진부하다. 나는 내가 싫다. 누구라도 어느 정도는 그렇다. 낯선 곳을 찾는 사람들은 ‘자기혁명’을 꿈꾼다. 하지만 쉐우민 국제명상센터를 향하는 택시 속에서 바라보는 풍경들이 이제는 낯설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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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낯익은 풍경 속에서 작고한 내 친구 구OO을 생각한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은 구OO의 베스트셀러 책 제목이다. (그는 세상을 떠나기 전, 삼성의 임원들이 듣고 싶어 하는 강연 베스트 오브 베스트의 자리에 오르는 유명세를 누렸다.) 그는 ‘자기혁명은 익숙한 것과의 결별을 통해 일어난다’고 썼다. 하지만 나는 미얀마가 익숙하고, 쉐우민 센터가 익숙하다. 택시가 들어서는 입구, 오피스 건너편 주차장, 택시기사와 벌이는 요금 실랑이까지 익숙하다. (만 오천 짯 주기로 하고 탔는데 이만 짯을 달라고 한다. 지난 해 같으면 선선히 줬을 텐데 매정하게 주지 않았다. 익숙함은 갑질도 부른다.)  등록을 하고 방을 배정받는 절차도 일사천리. 역시 익숙하다. 트렁크를 열어 꺼내 입는 론지(미얀마 치마 ; 수행복)도 익숙하다. 짐을 푸는데 복도를 지나던 지난해 룸메이트 히로 씨가 반색하며 무척 반가워한다. 소식을 전해들은 젊은 중국 친구 양쥔이 와서 인사를 건넨다. 히로 씨는 잠깐 집에 갔다 다시와 몇 달째 머물고 있고 양쥔은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계속 머물고 있단다. 잘 생긴 용모는 간 데 없고 피골이 상접하다. (양쥔은 며칠 후 계를 받고 비구가 됐다.) 수행처의 첫날은 이렇게 익숙함으로 시작됐다. 과연 나는 내가 꿈꾸는 ‘자기혁명’을 이룰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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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에서 힘빼기 

  쉐우민의 하루는 새벽 4시 어김없이 시작된다. 한 시간 좌선, 한 시간 경행으로 짜여 밤 10시까지 계속되지만 시간표를 속된말로 FM으로 지키는 수행자는 아무도 없다. 고참 수행자일수록 융통성의 폭은 더 커진다. 컨디션이 나쁘면(혹은 컨디션 핑계를 대고) 새벽, 아침, 오전, 오후, 밤, 각각 한 시간 씩 최소한 5시간 정도만 선방을 지킨다면 잔소리 들을 일이 없다. 마하시, 참메, 빤디딸라마 등 다른 수행처와는 퍽 다른 분위기이다. 

  익숙해지니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마음에서 힘 빼기’가 수행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골프를 배우는 사람들이 몸에서 힘 빼는 데 3년이 걸린다지?! 쉐우민 수행의 시작은 수행하는 마음을 점검하는 데서부터이다. 무언가를 얻겠다고 하는 수행을 ‘탐심으로 하는 수행’이라고 한다. 탐심으로 수행하면 탐심만 커지고 오히려 수행과는 점점 멀어진다. 그것을 수행이라고 할 수 없다. 시작이 잘못된 탓이다. 

  규율을 지키기 위해 하는 수행은 수행자를 질리게 한다. 그런 탓인지 쉐우민은 수행자의 자율을 존중한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다른 수행처에서 수행하다가 몸을 쉬기 위해 쉐우민에 오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사람 중에는 선방에 아예 전혀 오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렇지만 아무도 나무라는 사람은 없다. 그렇지, 수행이란 각자의 살림일 뿐,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잖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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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기장 회수사건

  수행처의 겨울은 쾌적하다. 하지만 사람에게 쾌적한 날씨는 모기에게도 쾌적하다. 모기장은  미얀마에서는 사시사철 필수품이다. 수행자들의 방석 뒤에는 각각 개인용 모기장과 모기장 걸개가 있다. 선방의 일상적 풍경이다. 새벽 4시부터 밤 10시까지 수행자들은 이 풍경 속을 드나든다.

  새벽과 한 밤중에는 수행을 빼먹는 수행자들이 있게 마련이다. 어느 날 센터의 주지스님이 사람을 시켜 새벽시간 방석이 비어있는 수행자들의 모기장을 모조리 걷어갔다. 기강이 해이해졌다는 판단이 들었을 게다. 이런 일이 발생하면 수행자들 사이에 긴장감이 돌고 귓속말이 오간다. 모기장을 회수당한 당사자들은 난감하다.

  특히 말이 잘 통하지 않는 이방인 수행자들은 더욱 당황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수행처에 익숙한 수행자들은 대략 대처방법을 안다. 집에 돌아가는 수행자들이 반납하는 모기장을 입도선매하는 방식이다. 그렇게 저렇게 시간이 가면 모기장 회수사건은 없던 일로 자동수습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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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날 사야도 인터뷰 시간에 한국 비구니 스님 한 분이 사야도에게 이 사건을 이야기했다. ‘몸이 아파 어쩔 수 없이 새벽 좌선에 빠졌는데 모기장이 없어져서 힘들었다’는 내용이었다. 여기에 대한 사야도의 답변은...... “뭐 그리 힘들 게 있느냐? 가져간 사람에게 가서 돌려달라고 하면 될 것 아니냐?” 였다. 단순한 일상에서는 작은 사건도 크게 느껴진다. 그도 단순한 일상의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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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7년09월02일 16시36분
  • 최종수정 2017년09월02일 16시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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