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려있는 정책플랫폼 |
국가미래연구원은 폭 넓은 주제를 깊은 통찰력으로 다룹니다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세종의 정치리더십 - 외천본민(畏天本民) <11> 국정(國政)의 근본 원칙과 목표 IV. 사람 중심의 바른 정치 4. 이런 인재가 필요하다.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2년03월18일 17시10분

작성자

  • 신세돈
  • 숙명여자대학교 경제학부 명예교수

메타정보

  • 0

본문

IV.4 이런 인재가 필요하다.

 

국가정치의 근본이 사람이라는 ‘민유방본(民惟邦本)’의 철학적 원칙과 ‘어짊(仁)’으로 정치를 펴겠다는 ‘시인발정(施仁發政)’의 실천원칙은 인재를 정치의 가장 중요한 핵심요체로 두겠다는 ‘위정인최(爲政人最)’의 행동원칙으로 완성된다고 할 수 있다. 즉, 사람이 국가의 기본이라는 (of the people)이라는 철학이 민유방본의 정신이고, 인(仁)으로 정치를 실현하겠다는 것이 사람을 위한 정치라는 (for the people) 정신과 닿아있다면 '위정인최'의 원칙은 인재에 의한 정치(by the people)와 상통하는 것이다.

 

[인재는 정치의 근본이다 : 위정인최(爲政人最)] 

 

세종은 정치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 인재라고 보고 있다. 제대로 된 사람을 쓰면 모든 일이 다 제대로 잘 풀릴 것이라고 본다.

 

  “바른 정치의 요체로는 사람을 얻는 것이 최고이다. 

   관리가 직무에 적합하면 모든 일이 다 제대로 풀릴 것이다. 

   (爲政之要 得人爲最 官稱其職 則庶事咸治 : 세종 5년 11월 25일)” 

 

그러나 인재의 중요성을 철저히 인정한다 하더라도 어떤 방법으로 인재를 식별하여 선발할 것인가 하는 것은 더 중요한 별개의 문제이다. 세종은 무엇보다도 현재 채택하고 있는 과거제도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 사람의 내적 자질은 아예 도외시하고 오로지 암기식 시험에만 의존하여 선비를 뽑다보니 경쟁이 치열해지고 경박한 사람들만 우글거리는 꼴이 되었다는 생각이었다. 과거제도에 대한 부정적인 세종의 생각은 즉위하는 첫 해 첫 경연(經筵)에서 잘 나타난다. 모든 중신들이 다 모인 가운데 대학연의(大學衍義) 강론을 진행하던 중 세종이 갑자기 신하들에게 이렇게 물은 것이다.

 

    “과거를 설치하여 선비를 뽑는 것은 참다운 인재를 뽑고자 함인데 

     어떻게 하면 천박하게 치레 꾸며대는 선비의 버릇 없앨 수 있는가?  

     (設科取士 慾得實才 何以則令士 去浮華之習 : 세종 즉위년 10월 7일)”

 

과거시험을 준비하는 선비들이 대부분 경솔하고 문장만 번드르르한 버릇에 물들어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던 것이다. 겉치레만 화려한 수사를 즐겨 쓸 뿐 중심을 잡지도 못하는 선비들을 만들어 내는 게 과거제도의 문제점이라는 것을 이미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즉위한지 두 달도 안 되어 모든 국사 하나하나가 어색하고 생소할 상황에, 스물 두 살 밖에 안 된 젊은 청년 군주의 입에서 과거제도가 초래하는 근본적인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선 것은 그만큼 선비의 선출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했고 또 그만큼 과거제도의 문제점이 심각하다는 것을 본인은 뼈저리게 체득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인재등용의 방대한 사례를 정리한 집현전 자료를 꼼꼼히 살펴 본 세종은 많은 국가에서 과거제도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훌륭한 인재를 뽑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주(周)나라 경대부는 덕행과 도예가 깊은 사람을 높이 대우해 주었고 한(漢)나라는 청렴하고 효도하는 지방인재를 과거에 의해 선출된 인재와 함께 등용하였다. 이런 제도가 있었기에 주나라나 한나라는 덕이 고양되고 청렴하며 효도가 중시되는 사회를 만들 수 있었다고 공감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인재를 찾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면 어떤 인재여야 하는가. 첫 번째 방법이 추천에 의한 인재등용이었다.

 

[행적을 모두 조사하여 낱낱이 보고하라(具其行迹 悉皆申報).]

 

세종은 인재가 부족한 것이 인재가 없어서가 아니라 인재를 지극하게 구하고자 하는 정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봤다. 뛰어난 인재를 추천함에 있어서도 모두들 냉담하고 또 부지런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세종은 생각하였다. 경중(서울)은 물론 각도 감사와 지방의 수령관들은 이런 인재들을 찾아 수소문하라고 세종은 명령했다. 적당한 자리가 있든지 없든지 상관 말고 숫자에 구애받지도 말고 상부에 천거하도록 독촉했다.

 

    “서울에서는 한성부가 지방에서는 감사와 수령이 찾아가 조사하여

     현직에 있든지 아니든지, 숫자가 많든지 적든지 상관지 말고

     낱낱이 그 행적을 국가에 보고하라.

     (京中 漢城府 外方監司守令 常加搜訪 不計職之有無  不拘數之多少 

     具其行迹 悉皆申報 : 세종 20년 3월 12일)” 

 

[몸가짐이 방정하고 절개와 염치가 있는 자(持身方正 有節氣廉恥者)]

 

과거제도 아래에서는 덕과 청렴과 효가 중시되지 않고 오로지 언변과 기술만이 강조됨으로서 사회가 점차 가볍고 교활하고 경쟁이 치열해지는 풍토가 되어갔다. 순박하고 겸손한 태도는 점차 사라져 사회가 피폐해져간다고 판단했다. 세종이 판단하는 진실한 인재는 이런 사람이다   

 

   “몸가짐이 방정하고 굳은 절개와 염치가 있는 자와,  

    세운 마음이 강개하여 직언과 극간을 할 수 있는 자와,   

    행실이 우뚝하여 고을에 좋은 소문이 난 선비와 

    재능이 뛰어나서 보는 사람에게 믿음을 주는 자

    (如有持身方正 有節氣廉恥者 立心慷慨 能直言極諫者 

    與夫士卓然素聞於鄕者 才藝特異見信於人者 : 세종 20년 3월 12일)”

 

인재등용에 있어서 재능이나 혹은 기술도 중요시하지만 그 보다는 인재의 내적인 덕목을 훨씬 높이 평가하는 안목을 읽을 수 있다. 어떤 덕목인가. 세종이 지적하는 첫 번째 인재요건은 지신방정(持身方正)이다. 몸가짐(持身)을 똑 바르게(方正)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행실이 바르지 않으면 안 된다. 둘째로는 ‘절개와 염치’가 있어야 한다. 자기의 이익만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나 혹은 높은 덕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절개(節氣)가 있어야 하며 부끄러울 줄 알고 겸손하는 마음(廉恥)이 있어야 한다. 인재의 제2 필요조건인 셈이다. 셋째로, 뚜렷한 의지를 세워(立心) 옳지 않은 일을 당하면 직언과 극간을 할 수 있는 강개함이 있어야 한다. 인재 제 3의 조건이다. 그 외에도 뛰어나다는 소문(卓然素聞)이 동네에 자자하게 퍼진 자와 재능이나 기술이 뛰어난 자(才藝特異)를 인재로 생각하였지만 아무래도 방점은 앞의 세 가지 요건에 찍혀있다고 생각된다.

 

[마음이 바로 서야한다(학문정심위본,學問正心爲本).]

 

세종에게 인재는 결코 학문과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학문을 통해서 바른 마음을 가지게 되고 바른 마음이 있어야 인재가 제대로 되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백관이 바로 되려면 임금부터 제대로 공부를 해야 한다고 믿었다. 이것은 <대학연의(大學衍義)>에 있는 말 그대로다.

 

   “임금의 학문은 바른 마음을 근본으로 해야 한다. 

    임금의 마음이 바로 되어야 백관이 바로 되며

    백관이 바로 되어야 만민이 바로 된다. 

    (人君學問 正心爲本 心正然後 百官正 百官正後 萬民正)”

 

백성을 바로 되게 하려면 모든 관리들이 먼저 바로 되어야 하고 모든 관리들이 바로 되려면 임금이 먼저 바로 되어야 한다. 그리고 바른 마음을 공부하는 요체가 바로 <대학연의,大學衍義>라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이 세종으로 하여금 솔선수범하여 끊임없이 <대학연의,大學衍義>를 공부하도록 한 동력이 된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학문을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다. 경학(經學)을 위주로 공부해야 하는가 아니면 사학(史學)을 중심으로 공부해야 하는가. <오경>과 같은 경서를 위주로 공부하는 것에 대해 세종은 별로 탐탁지 않게 생각한 듯하다. 즉위년 10월 7일에 있었던 첫 번째 경연에서 자꾸 꾸며대기만 하는 나쁜 선비의 버릇을 어떻게 고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변계량과 이지강은 과거시험의 출제경향이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예전에는 과거시험의 초장에는 경전의 뜻(義)과 의심나는 부분의 해석(疑)을 물어서 경전이해의 깊이를 측정한 다음에 종장에서 구체적인 질문에 대한 해법을 묻는 대책(對策)을 출제하였으나 최근에는 경서의 어느 한 문장을 준 다음에 그것을 읽고 해석하는 강경(講經)으로 출제과목을 바꾸는 바람에 그렇게 되었다고 했다. 그 생각에 동의한 세종은 이렇게 물었다.        

 

     “강경(講經)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라서 지금 변계량으로 하여 강론하라        한들 어찌 능통하게 할 수 있겠는가.

     (講經最爲難事 今雖使卞三宰講論 安能盡通乎 : 세종 즉위년 10월 7일)”

 

[경학(經學)보다는 역사(歷史)가 중요하다.]

 

강경만으로는 안 된다는 생각이 깔려있다. 강경은 너무 어렵다는 것이다. 세종은 오히려 사학이 훨씬 쉽고 또 필요한 학문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젊고 유능한 인물 가운데 사학을 깊이 읽고 공부할 것을 지시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신하 중 반대하는 사람이 있었다. 경학은 근본이 되는 학문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예문제학 윤회가 임금이 옳지 않다고 반박했다. 경학이 우선이고 사학은 그 다음이니 오로지 사학만 공부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세종이 이렇게 꼬집는다. 

 

  “내가 경연에서 <좌전(左傳)>, <사기(史記)>, <한서(漢書)>, <강목(綱目)>,

   <송감(宋鑑)> 등에 나오는 고사를 물어보니 아무도 모르더라. 만약 한       사람이 읽게 하면 필시 두루 볼 수 없게 되리라. 경학으로 다스려 궁극      적인 이치를 알고 정심을 가진 선비가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 없다. 

   (吾於經筵 問以 左傳 史記 漢書 綱目 宋鑑 所其古史 皆曰 不知

    若令一人讀之 其不得遍覽必矣 今之儒者 名爲治經學 而窮理正心之士 

    未之聞也 : 세종 7년 11월 29일)”

 

도대체 선비라는 사람들이 고사(古事)도 제대로 모르면서 무슨 궁극적인 이치를 논하며 바른 마음을 이야기 하느냐는 것이다. 세종은 대제학 변계량에게 사학을 전담하여 공부할 선비를 추천해주도록 요구했다. 세종이 왜 변계량에게 인물을 추천해 달라고 했을까. 그것은 변계량이 특히 내외 역사에 밝았기 때문이다. 변계량은 정인지, 설순, 김빈 세 명을 추천했다. 세종은 이 세 사람으로 하여금 역사서를 분담시켜 깊이 읽고 통달하도록 했다. 특히 역대 제왕들이 어떻게 인재를 등용했는지에 대해 연구하여 보고하도록 승지에게 지시하였다.

 

    “어떤 사람이 건의하기를 ‘선비의 선택에 관한 업무(銓選)는 그때그때

     맡을 수 있는 적임자를 택하여 임명하라’고 하는데 이 말은 어떠한가. 

     역대제왕들의 용인지법을 집현전에서 연구하여 보고하도록 하라.

     (獻議者以謂 ‘銓選之任 臨時擇命可掌者’ 此說何如

     令集賢殿 考歷代帝王用人之法 以聞 : 세종 18년 2월 30일)”


[과거시험이 능사가 아니다(浮躁競爭之風漸成).]

 

과거제도에 대한 세종의 불만은 이십년이 지나서도 별로 바뀌지 않았다. 오히려 더 악화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는 선비의 문장이 문제가 아니라 경박하게 경쟁하는 나쁜 풍속이 근본원인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취임 후 20년이 지난 시점에 세종은 다음과 같이 탄식한다.    

 

   “우리나라는 과거시험으로 뽑아 쓸 뿐 덕행으로 선비를 쓰는 법이 없다      보니 경박하게 서로 경쟁하는 풍토만 점점 조장되고 순박하고 양보하는      풍토는 사라져 간다. 이런 세태가 성행하는 것을 그대로 둘 수는 없다.

   (我國家以科擧取士 以無德行選擧之法 浮躁競爭之風漸成 淳朴謙讓之道幾息     以此成風 漸不可長也 : 세종 20년 3월 12일)”

 

과거제도로 인해 경박하고 경쟁이 치열한 사회분위기만 조장될 뿐 순박하고 양보하는 좋은 풍토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생각이었다. (다음에 계속)

 

ead8c0219895c16286fab4fc270d1f66_1647514
ead8c0219895c16286fab4fc270d1f66_1647514
ead8c0219895c16286fab4fc270d1f66_1647514
ead8c0219895c16286fab4fc270d1f66_1647514

 

 

0
  • 기사입력 2022년03월18일 17시10분
  • 검색어 태그 1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