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훈의 나무 사랑 꽃 이야기(99) 봄소식을 듣다 봄을 느끼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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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성큼 다가왔음을 느낍니다. 낮에는 기온이 좀 올라가다가도 아침 저녁으로는 제법 찬 기운을 느끼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갑자기 아침 산책을 나가면서도 가벼운 옷을 찾게 됩니다. 마음도 한결 가벼워지는 것은 물론이지요.
끝날 줄 모르는 코로나19까지 더해지면서 이번 겨울은 더욱 길게 느껴졌습니다. 우리 모두의 마음을 무겁게 만든 것은 물론이지요.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봄이 우리 곁으로 다가왔으니 참으로 기쁜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나무와 꽃을 사랑한다는 필자 같은 사람의 마음이 더욱 들뜨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이렇게 날씨만 봄을 알려주는 것은 아닙니다.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곳곳에서 (특히 각종 SNS를 통해) 꽃 소식을 전해주는 데서부터 우리는 봄을 느끼는지도 모릅니다. 나무 사랑꾼을 자처하는 필자도 그 대열에 서고 싶지만 역시 남쪽에 사는 사람들보다는 불리한(?) 입장에 서게 됩니다. 특히 깊은 산을 찾아 아직도 남아 있는 눈 속에서도 꽃을 피우는 특별한 야생화를 찾아 사진을 올리는 사람들을 옛날에는 부럽게만 생각했지만 올해는 오히려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나무를 사랑하고 꽃을 관찰하기를 좋아한다고 알려졌기에 필자는 야생화를 사진에 담는 거의 전문 야생화꾼(?)들이 서로 소식을 전하는 SNS 그룹에도 초대되어 있지만, 이곳에 소개되는 멋진 야생화 사진들은 (꽃을 사랑한다는) 필자에게조차 조금 멀리 느껴지곤 했습니다. 그와 달리 보통의 소식을 전하는 SNS방에서 평소 마음 속 얘기를 주고받는 사이의 사람들이 올리는 야생화 사진은 봄의 전령꾼 노릇을 톡톡히 합니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필자가 잘 아는 어느 원불교 교무님이 변산 국립공원을 찾아서 찍은 (지난 3월 6일 일요일) 복수초, 노루귀, 산자고 등을 제일 먼저 소개합니다. 언젠가 필자도 이른 봄 이런 산을 올라 사진에 담아야 하겠지요. (필자의 식물 관련 버킷리스트 중 하나입니다.)
필자의 고향인 부산에 사는 친구들, 그 중에서도 고등학교 동기들의 SNS방에도 봄소식이 이미 오래 전부터 전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쯤 만개했을 매화의 첫 개화 소식을 전하려는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김해생명과학고등학교 (옛 김해농업고등학교: 농업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오래 전부터 매화를 잘 가꾸어 온 학교)를 일부러 찾아서 매화 사진을 찍어 올려준 고교동기에게도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마도 이 글을 읽는 많은 분들의 SNS방에서도 이런 정겨운 봄소식이 전해졌으리라 짐작합니다. 그런 봄의 전령사 노릇을 자처하는 모든 분들에게도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이런 봄소식을 가장 빠르고 깊이 가슴에 담아서 세상에다 전하여 무딘 우리들의 감성도 울려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단연 시인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시인이라면 거의 모두 사람들의 감성을 조금이라도 울렁이게 만드는 이른 봄철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 속에는 당연히 꽃과 나무와 풀들이 등장하지요. 모두 아름다운 시어로 변해서 말입니다. 조금 길어지더라도 몇 편만 소개하겠습니다.
봄봄봄 그리고 봄 / 김용택
꽃바람 들었답니다
꽃잎처럼 가벼워져서 걸어요
뒤꿈치를 살짝 들고
꽃잎이 밟힐까 새싹이 밟힐까
사뿐 사뿐 걸어요
봄이 나를 데리고 바람처럼 돌아다녀요
나는, 새가 되어 날아요
꽃잎이 되어, 바람이 되어,
나는 날아요, 당신께 날아가요
나는 꽃바람 들었답니다
당신이 바람 넣었어요
꽃을 보려면 / 정호승
꽃씨 속에 숨어 있는
꽃을 보려면
고요히 눈이 녹기를 기다려라
꽃씨 속에 숨어 있는
잎을 보려면
흙의 가슴이 따뜻해지기를 기다려라
꽃씨 속에 숨어 있는
어머니를 만나려면
들에 나가 먼저 봄이 되어라
꽃씨 속에 숨어 있는
꽃을 보려면
평생 버리지 않았던 칼을 버려라
겨울 너머 봄 / 정연복
겨울 추위 제아무리 매서워도
기어코 봄은 온다
쓸쓸한 나목(裸木)의 빈 가지에도
이윽고 푸른 잎 돋고 꽃 핀다.
나 태어난 그날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은 이 눈물겨운 일 (후략)
봄꽃이 필 때 / 홍수희
너무 기뻐하지도
너무 슬퍼하지도 말 일입니다
자연도 삶도 순환하는 것
이 봄, 마른 가지에 새순이 돋아나듯이
돌아다보면 내 눈물에
이미 봄꽃은 피어나고 있었던 것을 (후략)
어쩌면 시인들의 이런 시어들은 우리 마음을 그리도 잘 표현하는지요. 오랜 기다림 끝에 연인을 맞이하듯이 반기고 싶은 봄에 대한 우리의 감정을 말입니다. 꽃과 나무들에 감정을 이입시키는 것도 한결같습니다. 그런 시인들의 마음을 읽어보면 역시 나무와 꽃이야말로 이런 우리의 감성을 제대로 전하는 매개체임을 저절로 알게 됩니다.
그래서 필자도 비록 국토의 북쪽이라는 조금 불리한 곳에 살지만 다니는 곳에서부터 봄을 느끼기 위해 눈을 활짝 열었습니다. 지난 3월 8일 방문한 익산 원불교 중앙총부에서는 이제 막 꽃망울을 터뜨리기 일보 직전의 봄꽃 나무들을 사진으로 담아 보았습니다. 필자가 봄을 본격적으로 느낀 순간들이지요.
필자가 거니는 탄천 변에도 봄은 성큼 다가왔습니다. 나무들에서도 꽃눈과 잎눈 등이 보이고 산책길 주변에는 초록색 풀들이 새순을 내밀기 시작했습니다. 모두들 함께 봄을 느끼라고 부르듯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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