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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지구에 케이팝은 없다’
이는 작년 3월부터 공식 활동을 시작한 케이팝포플래닛(KPOP4PLANET)의 대표 캠페인이다. 케이팝포플래닛은 케이팝(K-POP) 팬들이 주도하는 기후행동 플랫폼으로 전세계 정부 및 기업 등을 대상으로 기후대응을 촉구하고 있다.
‘죽은 지구에 케이팝은 없다’ 캠페인은 취지에 동참하는 1만 명의 서명을 받아 대표적인 케이팝스타인 방탄소년단과 블랙핑크의 소속사(하이브와 YG) 포함 주요 엔터테인먼트회사에 전달하고, 앨범 및 굿즈의 플라스틱 사용 최소화, 탄소배출이 적은 공연 등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케이팝 팬과 엔터테인먼트회사 관계자 등이 한 자리에 모여 처음으로 문화적 영향력을 통한 기후위기 대응책을 논의하는 간담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케이팝포플래닛의 한 활동가는 케이팝 팬의 상당 수를 차지하는 MZ세대는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를 가장 크고 직접적으로 겪는다는 점에서 기후위기 감수성이 높고 직접 행동하는 경향이 있어서 케이팝포플래닛의 각종 캠페인 서명에 지금까지 참여한 누적 인원만도 83개국 이상 2만 명을 넘는다고 밝혔다.
케이팝포플래닛이 지난 7월 전세계 케이팝 팬 367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에 따르면, 케이팝 시장에서 기후위기를 고려한 친환경문화를 조성하는 것에 동의한 응답자가 무려 88.9%에 달했다. 이는 지속가능한 덕질을 희망하는 팬심을 반영하고 있다.
케이팝 팬들은 이미 좋아하는 케이팝스타 이름으로 숲을 조성하거나 기후위기 피해자들을 돕는 등의 활동을 활발히 해왔다.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의 이름으로 모금해 숲을 조성하는 '스타 숲 프로젝트'의 경우 이미 수십 개의 숲이 생겨났다. 그룹 신화 팬들이 서울 개포동에 만든 '신화 숲'의 경우 1,000그루의 나무가 심어져 있고, 인도네시아 팬덤은 BTS 지민의 생일을 기념해 맹그로브 숲에 나무 8,724그루를 기부 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가 지구를 위한 선한 영향력도 행사하길 바라는 팬심이 담겨 있다. 죄책감도 그 배경으로 작용한다는 분석도 있다. 기후변화에 관심이 큰 MZ세대는 덕질을 하는 과정에서 환경이 파괴되는 느낌을 누구보다 불편해 하는 것이다. 이런 불편함이 스타에게 직접 선물을 주지 않고 스타의 이름을 붙인 선물을 지구에 주는 행태 변화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케이팝 팬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케이팝 생태계 전체를 바꾸기 위해 필요한 엔터테인먼트회사의 참여를 요청하고 있다. 이러한 요구에 맞춰 엔터테인먼트회사도 ESG를 도입한다면 이는 지속가능한 사회와 기업을 만드는 의미 있는 협업이 될 것이라는 공감대로 호응한 것이다.
앨범의 포장지를 최소화하고 친환경 재질을 사용하여 자원을 아끼는 것은 물론 음반판매시 실물은 포토카드와 메시지카드만 주고 나머지는 온라인화 하는 플랫폼 음반을 제공하거나 스트리밍 서비스를 100% 재생에너지로 제공하는 등 회사들이 ESG를 구체적으로 실천한다면 MZ세대들은 엔터테인먼트회사가 팬들의 미래를 소중히 여긴다고 느낀다는 판단이다.
코로나위기에 케이팝이 오히려 성장세를 보였듯이, 기후위기에도 케이팝이 큰 역할을 할 기회다. 엔터테인먼트회사의 의지와 전세계 한류 팬들의 참여가 더해진다면 지구를 살리는 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 같다.
케이팝 팬의 주류인 MZ세대가 기후위기대응을 위해 회사까지 범위를 확대하는 가운데, 케이팝 스타들도 솔선수범 하고 있다. 이미 기후변화로 피해를 입은 지역을 도와 왔는데, 작년부터는 그 행보와 임팩트를 확대하고 있다. 대표적인 걸그룹 케이팝스타인 블랙핑크의 경우 2021년 2월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 홍보대사로 위촉되어 세계적으로 기후변화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해 전 세계 팬들에게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하는 역할을 맡았는데, 기후행동 동참을 호소하는 영상을 유튜브에 올리자 한달 만에 조회수 780만회를 기록했다. 유튜브 공식 계정 구독자가 7천만명이라 가능한 기록이다.
BTS(방탄소년단) 의 경우, 지난 9월 유엔총회 지속가능발전목표 고위급회의 청년대표 연설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저희는 오늘 미래세대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이 자리에 왔습니다.”라며 연설을 시작해 특히 환경에 대해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했다.
“지구에서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안 남은 것 같은 불안감이 들어서인지……..환경문제에 진심으로 관심을 갖고 공부하는 학생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아무도 겪어 보지 않은 미래이고 거기서는 우리들이 체험할 시간이 많기에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 맞을지 스스로 답을 찾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미래에 대해 너무 어둡게만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의 세상을 위해 직접 고민하고 노력하고 길을 찾고 있으니까요. 우리가 주인공인 이야기의 페이지가 한참 남았는데, 벌써부터 엔딩이 정해진 것처럼 말하진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불과 몇 년 전 국제배출권협회(IETA) 이사 자격으로 유엔총회 관련 행사에 참석 및 연설해 현장 분위기를 잘 아는 필자로서는 BTS 연설이 유난히 신선했다. 현 세대 리더들에게 던지는 진정성 있는 미래세대의 이야기가 와 닿았고 미래세대와 현세대를 연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느껴졌다.
온라인으로 1백만명이 시청해 기존 시청률의 20배를 기록한 것이 놀랍지 않았다. 이날 BTS 멤버들은 버려진 제품에 친환경적인 디자인과 가치를 더해 새로운 제품으로 재탄생시키는 업사이클링(Upcycling) 국내 브랜드의 정장을 입고 연설해 전달 내용과의 조화에도 노력했는데, 최근 업사이클링이 국내에서 화두가 되고 있기도 하다.
물론 현 세대 리더들도 유엔총회에서 다양한 기후위기 해결책을 열심히 논의했다. 예년과 달리 100여명의 국가•정부 수반이 현장에 참석해 치열한 외교전 속에 기후변화가 주요 의제로 떠올랐다. 유엔총회 직전에 유엔은 충격적인 보고서를 발표했는데, 각국 현행 탄소배출 목표치를 고려하면 2030년 탄소배출량이 2010년 대비 오히려 16% 늘어나 지구의 온도가 결국 산업화 이전보다 2.7도 오를 것이라는 엄중한 예측이 담겼다.
이러한 배경에서 미국과 중국은 기후변화 대응에 대해서는 협력 필요성을 강조하며 경쟁적으로 약속을 내 놓았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유엔총회에 참석해 개발도상국의 기후위기 대응을 돕는 금융지원 규모를 두 배로 늘리겠다고 말했는데 이는 2024년까지 약 114억달러에 달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이날 화상으로 진행한 연설에서 “중국은 앞으로 해외에 석탄을 사용하는 화력발전소를 새로 건설하지 않겠다”고 밝히며, 2060년까지 중국의 탄소중립 약속을 재확인했다. 녹색일대일로 센터(베이징 소재)에 따르면 전 세계 석탄 화력발전소의 70% 이상이 중국 자금에 의존하고 있는 만큼 전향적이고 의미 있는 선언이었다. 글로벌 환경에너지 연구기관은 이로 인해 50GW의 석탄발전소 추진 계획이 무산되어, 스페인 수준의 배출량이 감축될 것으로 예상했다.
기후변화라는 국제사회의 도전적 과제 앞에서 현 세대 리더들의 탄소중립관련 선언과 전세계 온실가스 배출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미국과 중국의 도전적인 약속들이 반가운 건 사실이지만, BTS의 말대로 주인공인 미래세대와의 공감과 소통은 아쉽다. 예를 들면, 지난 유엔총회의 과정과 결과가 미래세대에 얼마나 공감되고 어떻게 도움이 될지 서로 충분히 논의하고 소통하지 못한 아쉬움이다.
최근 쏟아지는 탄소중립 선언도 얼마나 미래세대와 공감과 소통을 거친 것인지 궁금하다. 2021년 봄 미국 여론조사기관 퓨(Pew)리서치센터는 주로 북반구에 거주하는 전세계 16,000명을 대상으로 기후변화에 대한 걱정을 조사한 결과, 대부분 기후변화가 개인에게 고통을 줄 것을 걱정하는 사람이 지난 2015년 조사 때에 비해 급격히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세대별로도 응답률이 차이를 보였는데, 18∼29세의 경우 71%가 피해를 걱정한 반면 65세 이상은 52%만 우려를 나타냈다.
놀라운 것은 조사 대상자 중 80%가 기후 변화 대응을 위해 생활 방식에 변화를 줄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과거보다 더 걱정하고 생활도 바꿀 의향이 있는데, 세대간 걱정의 정도 차이가 큰 것이다. 위기에 대해 모든 세대가 함께 느끼고 함께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기에 현 세대와 미래세대의 더 긴밀한 공감이 필요한 이유다.
강남스타일에서 시작된 케이팝의 강력한 영향력이 글로벌 기후위기 해결을 위해 현 세대와 미래세대를 연결하는 선한 고리로 활용되길 희망한다. BTS는 유엔본부 연설에서 미래세대를 이렇게 명명했다.
“길 잃은 lost세대가 아닌 새 길을 발견하는 welcome세대라는 이름이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어른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길을 잃은 건 아니니까요”
그리고 현 세대에 이렇게 주문하며 연설을 마쳤다.
“모든 선택은 변화의 시작이고, 새롭게 시작되는 세상에서 서로에게 welcome이라 말해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현 세대도 미래세대가 지구에서 살 수 있는 last 세대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 기본적인 의무라는 사실을 다시 새기며, 주인공인 미래세대의 이야기를 더 welcome해야 한다. 필자는 “죽은 지구에 케이팝은 없다”는 미래세대의 외침이 현 세대의 탄소중립 선언보다 더 가슴에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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