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동의 문화시평 <21> 문화예술과 기후환경, 생태 담론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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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28일 파리의 환경운동단체의 회원들이 루브르 박물관의 유리 피라미드에 올라가 시위를 벌였다. '최후의 혁신'이란 이름의 단체 활동가 12명이 이날 오전 루브르의 피라미드에 주황색 페인트가 담긴 풍선을 투척하는가 하면 한 명은 피라미드에 올라가 페인트를 쏟아부었다. 이들의 시위는 보안 요원들 제지로 중단되었지만, 시위를 통한 그들의 주장은 정부가 건물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기 위해 더 혁신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난여름에는 이탈리아 환경단체 ‘울티마 제네라시온’(Ultima Generazione) 활동가 7명이 로마 트레비 분수에 먹물을 풀고 “우리는 화석연료에 돈을 지불하지 않겠다”라고 선언하며 시위를 벌인 바 있다. 최근 11월 7일에도 기후 운동가들이 영국의 내셔널 갤러리에 전시 중인 벨라스케스의 작품인 ‘로크비 비너스(Rokeby Venus)’의 액자 유리를 망치로 깨뜨려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전에도 유명 예술품과 공공건물을 대상으로 비슷한 시위를 주도했던 영국의 환경운동 단체인 ‘Just Stop Oil’의 주장은 정부가 영국 내 화석연료의 탐사, 개발 및 생산에 대한 모든 면허를 즉시 중단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공교롭게도 이번에 피해를 입은 벨라스케스의 비너스는 1914년에도 여성참정권 운동가인 메리 리처드슨(Mary Richardson)에 의해 다섯 곳이나 찢기는 수난을 겪었었다. 이 작품에 그려진 누드는 에로틱한 이미지로 남성적 시선을 사로잡는 상징성을 가진 것으로, 그녀의 시위는 영국의 여성참정권 운동가의 대모 격인 에멜린 팽크허스트(Emmeline Pankhurst)의 투옥에 항의하기 위한 것이었다.
전 세계적으로 기후환경단체들은 다양한 집단행동 방식을 사용하여 환경 문제에 대한 인식을 고취하며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전략으로 대규모 시위나 퍼포먼스 아트, 거리 시위, 소셜미디어를 활용한 사회적 캠페인, 전시나 음악 페스티벌, 문학작품 등을 통한 문화적 표현 수단의 활용, 지구 온난화, 생태계 보전, 재생 에너지 등에 관한 정보전달 등 환경 교육 및 워크숍, 로비활동이나 서명운동, 정책 제안 등을 통한 정책변화 촉구 등을 들 수 있다. 이중 문화적 표현 수단은 대중들에게 자신들의 주장을 가장 손쉽게 어필할 수 있는 매우 효율적인 방법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들은 환경 주제의 전시회를 개최하거나 음악 페스티벌 콘서트 개최, 퍼포먼스 아트 및 거리 예술 등을 통해 일반 시민들의 공감대를 얻어 나간다. 최근 들어 생태나 환경을 주제로 한 문화예술 행사가 늘어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환경주의 예술가들은 종종 자연, 지구 온난화, 쓰레기 문제 등에 대한 작품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한다. 또한 이러한 행사는 참가자들에게 환경보호와 지속가능성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행동에 동기를 부여한다.
특히나 ‘Just Stop Oil’과 같은 단체는 미술관을 기습하여 유명한 걸작들을 선정하여 토마토 케첩을 바른다거나 오렌지색 페인트를 뿌리는 등 예술작품에 위해를 가하는 시위를 자주 벌이고 있다. 물론, 작품에 치명적 손상을 입히지는 않지만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하며 언론의 시선을 끌기 위한 전략이다. 미술관들은 이들의 빈번한 시위에 벌금을 물린다거나 제소하는 일로 강력히 대응하고 있지만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이들의 오렌지색 사용은 "오렌지 리본 캠페인"이나 "오렌지 페인트 시위"로 알려져 있는데, 오렌지색을 사용하는 이유는 색이 가지는 주목성, 주의를 이끄는 긴급성, 대중적 친밀도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환경운동단체가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한 시위와는 달리, 미술관이나 극장 등 공공 문화예술 기관도 환경운동에 동참하고 있는데, 이들 단체나 시설이 기업의 기부를 받는 과정에서 환경운동에 저촉되는 기업으로부터의 기부를 거절함으로써 환경보호와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몇몇 기관은 이러한 원칙에 따라 특정 기업의 기부를 거부하거나 받지 않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2019년, 미국의 휘트니 미술관은 기후 변화에 대한 투자로 알려진 월가 금융기업인 블랙록(BlackRock)의 후원을 거부했고, 영국의 로열 셰익스피어 극장 역시 환경 문제와 관련된 원칙을 따라 석유 기업인 BP로부터의 후원을 중단하기로 한 바 있다. 또한 타이페이 근대미술관 역시 석유 기업인 타이완 중유 공사(中油)의 후원을 거부하며 이러한 기업과의 협력이 환경에 대한 영향을 강화할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이렇듯 문화 기관들이 기업 후원에 대해 신중한 결정을 내리고 있으며, 특히 기후환경 문제와 관련하여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추세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환경운동가들이나 단체의 행동들은 매우 정치적이거나 기후환경과 생태를 이슈로한 상대적으로 피상적인 활동에 머무는 경향이 있다. 이에 반해 환경 문제를 생각하는 예술가들의 경우 좀 더 근본적으로 문제를 고민하면서 문제를 창작에 연결하고자 하고 있다. 예술가들은 탄소 저감이나 에너지 보호 등과 같은 정치. 사회적 문제보다는 환경이나 생태 문제에 관한 심층적 이해와 담론들을 더 중요한 기반으로 한다.
예술가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대표적인 생태 담론은 대략 네 가지 정도가 논의될 수 있다.
첫째는 재야생(re-wilding)이다. 기초적 담론 중 하나인 이 개념은 생태학적 이론과 환경 보전 전략으로서, 인간의 개입으로 변형된 지역에서 자연경관을 회복하고 생태계의 건강과 다양성을 복원하는 데 중점을 둔다. 이것은 90년대 중반, 미국의 옐로스톤 국립공원에 투입된 최상위 포식자인 14마리의 늑대로 인한 공원 생태계의 복원 사례에서 보듯, 자연생태의 복원력을 향상하고 지구의 생물 다양성을 보존하는데 이바지하는 방법으로 연구되었다.
둘째는 심층 생태학(Deep Ecology 또는 Ecosophy) 이다. 재야생이 가진 생태계의 복원력 향상과 생물의 종 다양성의 보존이라는 기초적 개념보다 좀 더 본질적으로 자연과 생태 친화적 태도를 탐구하는 것이다. 이것은 노르웨이의 생태학자이자 환경철학자인 아르네 네스(Arne Naess)에 의해 주창된 이론이다. 심층 생태학은 환경철학의 한 분야로, 인간과 자연 간의 관계를 탐구하며 환경 윤리학과 관련된 이론과 실천을 개발하는 데 중점을 둔다.
셋째 영적 생태학이다. 심층 생태학이 가진 철학적 사유가 관념적인 경향으로 흐르는 면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데 영적 생태학은 심층 생태학의 정신적 측면을 더욱 강조한 입장이라 할 수 있다. 영적 생태학은 지구와 그 신성한 본질과의 친밀함에서 멀어진 궤적을 지닌 최근 세기의 가치와 사회 정치적 구조에 대한 반응이다. 영적 생태학의 전문가들은 생태를 토착민의 지혜를 핵심으로 하는 역사를 통해 흐르는 독특한 경험의 흐름으로 인식한다. 이는 현재의 생태 위기와 관련하여 이 경험적 영적 차원의 중요성을 유사하게 탐구하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는데 ‘어머니 지구’를 숭상하는 종교적 차원의 신비주의적 경향을 보인다고 비판받기도 한다.
넷째 카오스모제(Chaosmosis)이다. 이 개념은 프랑스의 철학자 펠릭스 가따리(Félix Guattari)가 제안한 개념으로, 코스모스와 카오스의 합성어이다. 자연-인간-사회에 있어 이를 구성하는 요소의 다양성을 강조하며, 여러 다른 세계와 요소들이 상호 작용하고 혼합되는 복잡한 네트워크를 창조하는 과정을 강조한다. 카오스모제는 환경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며, 지구상의 다양한 생명체 및 생태계 간의 연결성을 강조한다. 이것은 환경 문제에 대한 이해와 대응에 이바지할 수 있다. 카오스모제는 윤리적인 측면을 강조하며, 새로운 혼돈의 상황에서도 인간, 사회, 기술, 환경과의 윤리적 관계를 유지하고 보호하기 위한 노력을 표방한다. 또한 카오스모제는 예술과 창조성이 다양성과 혼돈을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와 형태를 창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을 강조한다. 카오스모제는 현대의 복잡하고 다양한 문제와 도전에 대처하고자 하는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될 수 있는 개념으로, 생태학, 철학, 문화 이론, 예술 등에서 다양한 연구와 창작에 영감을 주고 있다. 이는 새로운 관점을 통해 복잡한 상호 의존성과 연결성을 이해하고 다루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문화와 예술은 일견 자연환경이나 생태 위기의 문제와는 무관한 듯 보인다. 하지만 타 분야와 마찬가지로 지구가 직면하고 있는 과제에 대해 문화예술 분야의 방식으로 대안 마련을 위해 고민하고 있다. 많은 대지예술가, 자연 미술가들은 물론이고 환경과 생태 문제를 심층적으로 다루며 실천하는 환경주의 예술가들이 활동과 작품이 이를 방증하고 있다. 환경운동가들의 시위나 뮤지엄의 반환경 기업의 기부를 거부하는 대응처럼 문화예술이 하나의 일차적 수단이 되기도 하지만, 예술가들이 작품의 목적으로 삼는 자연과 생태적 담론에 대한 심층적 사유와 상상력, 예술적 가설과 제안은 지구환경과 생태 이슈에 관한 더 큰 사회적 인식 전환의 추진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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