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IPEF) 가입: 미국의 지역주의(Regionalism) 전략과 한국의 이해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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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언
지난 5월 10일 취임한 윤석열 대통령은 이례적인 외교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취임 11일 만에 바이든 대통령과의 한미정상회담이 서울에서 개최됐다. 정상회담 공동성명에는 지난 정부와는 확연히 다른 내용이 담겨 있었다. 강화된 한미동맹의 토대 위에 양국 기술관계를 단단히 묶는 다양한 방안이 모습을 드러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미국이 최근 주도하고 있는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The Indo-Pacific Economic Framework for Prosperity)에 한국의 가입이 결정됐다는 사실이다. 며칠 전에는 첫 해외 방문국이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라는 것이 공개됐다. 6월 29-30일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 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 정상회담이 개최되는 곳이다. 역사상 처음으로 한국의 국가 원수가 나토 정상들을 직접 대면하게 됐다. 이러한 가시적인 변화들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를 중심으로 최근 변화의 성격과 추이를 살펴본다.
2. 지역주의와 태평양 경제질서의 변화 추이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는 지역주의(regionalism) 경제 모임이다. 지역주의는 역사적으로 다소 엉뚱하게 이슈화되기 시작했다. 전후 소련 중심의 공산주의 동유럽에 대항하기 위해 서유럽의 시장경제 역시 단합할 필요가 있었다. 그 결과 1957년 로마조약에 의해 유럽경제공동체(EEC: European Economic Community)가 발족했다. 프랑스, 서독, 벨기에, 이탈리아,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등 6개국의 서유럽 공동시장(Common Market)을 만들기 위한 국제조직이었다. 10년 후 영국을 비롯한 6개국이 추가 가입하며 EEC는 유럽공동체(EC: European Community)로 확대 개편됐는데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경제지역주의의 원형이다.
미국은 서유럽의 단합을 공산주의에 대한 유효한 대응으로 인식했다. 하지만 유럽경제가 1970년 이후 급성장하고, 미국과 마찰이 가시화되자 유럽의 경제적 단합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특히 1985년 1월 들로르(Jacques Delors)의 EC 집행위원장 취임은 유럽의 완전 통합이 가시화되기 시작한 전환점이었다. 놀랍게도 단합된 부유한 강국들의 집합인 유럽연합이 미국의 경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 미국의 새로운 판단이었다. 특히 프랑스와 독일은 유럽연합을 통해 미국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공공연히 주장했다.
대응으로 1985년 8월 미국은 우선 미국-캐나다 자유무역협정(FTA: Free Trade Agreement)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1985년 12월 유럽단일의정서안이 채택되고 다음 해 2월 조인되자, 미국은 캐나다와의 FTA 협상을 1986년 6월 공식화했다. 1986년 2월 단일유럽의정서(SEA: Single European Act)가 조인되고 1987년 7월 발효되자, 미국은 같은 해 10월 위의 FTA를 가조인했다. 가조인까지 한 것을 보면 미국의 대유럽 대응이 얼마나 신속했는지를 알 수 있다. 급기야 1988년 1월에는 미국-캐나다 자유무역협정이 발효됐다. 미국의 예측대로 1992년 2월에는 유럽연합(EU: European Union) 창설을 위한 마스트리히트 조약이 조인됐고, 1993년 1월 1일 유럽은 드디어 통합 단일시장을 완성하게 된다. 흥미롭게도 바로 직전인 1992년 12월 미국, 캐나다, 그리고 멕시코를 하나로 묶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조인됐다. 북미대륙이 서유럽과 같이 경제적으로 통합된 것이다.
1898년 미국-스페인(미서) 전쟁(Spanish-American War) 이후 늘 그랬던 것처럼 북미대륙을 하나로 묶은 다음 미국의 다음 목표는 당연히 동아시아를 포함한 태평양 지역이었다.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Asia -Pacific Economic Cooperation)가 그것이었는데, 1989년 APEC은 한국과 호주 주도하에 출범했지만, 미국은 당시 미온적이었다. 그러나 유럽이 통합하자 태도를 바꿔 미국은 1993년 말 APEC 첫 정상회담을 시애틀에서 개최했다. 유럽연합 역시 맞대응으로 1996년 아시아-유럽 정상회의(ASEM: Asia -Europe Meeting)를 열었다.
지역주의를 둘러싼 미국과 유럽연합이라는 두 개의 커다란 세력 간 경쟁은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려준다. 지역을 중심으로 특정 세력이 뭉치는 경우 이에 속하지 않은 강대국은 편하지 않다. 비슷한 가치를 공유하고 있는 국가들 사이에서도 힘의 관계 혹은 행사는 존재한다. 그런 힘이 교섭력으로 전환되면서 특정 국가 혹은 집단에게 유리한 국제경제질서가 창출된다. 위와 같은 지역주의 확장은 당연히 다자무역기구인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General Agreement on Tariffs and Trade) 혹은 이를 승계한 세계무역기구(WTO: World Trade Organization)의 위상을 잠식할 수밖에 없었다. WTO와는 다른 국제경제 규칙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특히 WTO의 핵심 운영 원리인 최혜국대우원칙(MFN: Most Favored Nation Principle)을 지역주의가 위반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렇게 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3.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대한 또 다른 경쟁
시간이 지나자 미국의 우려와는 달리 유럽연합의 위력은 대단하지 않았다. 유럽의 경우 미국과는 달리 세계 지배의 경험이 없었다는 점, 외형상으로는 단합된 것처럼 보였지만 미국연방 수준의 질적 통합은 부재했다는 사실, 결과적으로 단일 목소리를 내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는 현실 등이 그렇게 된 이유다. 유로화, 즉 성공적인 화폐통합과는 달리 재정은 지금도 합해지지 않고 있다. 2009년 그리스 경제 위기, 그리고 스페인 및 이탈리아 등의 부채 위기 가능성 등은 불완전한 통합의 취약점을 보여줬다. 결국 유럽에 대한 미국의 경계심은 약해질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APEC 역시 존립 근거가 약해졌다.
2001년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은 세계화의 진전을 보여줬다. 중국이 세계경제질서에 본격적으로 편입되면서, 지역주의에 대한 관심이 희석되는 가운데 미국은 세계화가 가져다주는 이득을 계산하는 데 분주했다. 하지만 여기서 미국은 세계무역기구(WTO)를 뛰어 넘는 또 다른 대안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부시정부가 적극 추진한 쌍무적 자유무역협정(FTA: Free Trade Agreement)의 확대가 그것이다. 한국을 비롯 전략적으로 중요한 이스라엘, 요르단, 칠레, 호주 모로코, 바레인, 파나마 등과 미국은 FTA를 체결했다. 나아가 남미 4개국과 맺은 안데안(Adean) FTA는 미국 FTA 정책의 표상이 됐다.
그런 와중에 중국의 팽창이 가시화되자 미국은 다시 지역주의라는 무기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2015년 10월 타결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A: Trans-Pacific Partnership Agreement)은 미국식 지역주의의 부활이었다. 강성해지기 시작한 중국의 정치경제적 실체가 미국과는 다른 공산주의라는 점이 문제였다. 이에 더해 2008년 미국이 심각한 경제위기에 봉착하자 중국은 미국의 쇠퇴를 기정 사실화하며 미국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특히 중국몽(中國夢)과 신형대국관계(新型大國關係)의 추진을 통해 중국의 도전은 더욱 분명해졌다.
2013년 6월 중국 주석 시진핑(習近平)과 오바마(Barack Obama) 미국 대통령 정상회담에서 시진핑이 제안한 신형대국관계는 여러 가지 미사여구로 포장됐지만, 중국도 미국과 대등한 수준으로 성장했으니 미국은 이를 수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고 있었다. 구체적으로는 동아시아를 중국의 영향권으로 인정해달라는 것이 핵심 내용이었다. 비슷한 시기인 2012년 11월 시진핑은 위대한 중화민족의 부흥을 의미하는 중국몽을 내세우기 시작했다. 미국이 그런 중국의 모든 움직임을 미국의 패권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하면서 미국의 대중 강경 외교 노선이 가시화됐다.
오바마 행정부의 아시아로의 회기 전략(Pivot to Asia)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은 미국의 대응 포석이었다. 아시아로의 회기 전략은 미국 군사력을 아시아 태평양에 증강 배치하는 것을 의미했고, 경제동반자협정은 중국을 배제한 가운데 역내 주요국들을 경제적으로 묶는 조치였다. 뉴질랜드, 브루나이, 싱가포르, 칠레 등의 초기 멤버, 미국, 말레이시아, 호주, 베트남, 페루 등의 추가 가입국, 그리고 멕시코, 캐나다, 일본 등의 또 다른 추가 멤버로 구성된 경제조직이었다. 2015년 10월 협정 타결 모임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중국과 같은 나라가 세계질서를 만드는 것을 용납할 수는 없다”고 공개적으로 언급함으로써 협정이 중국을 겨냥하고 있음을 숨기지 않았다.
4. 아시아태평양 경제지역협정의 부활과 한국의 가입
오바마를 이은 트럼프(Donald Trump) 대통령은 모든 거래는 일단 외형상 등가이어야 한다는 독특한 사고를 지니고 있었다. 미국은 동맹국을 위해 군대 주둔을 포함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지만 상대국은 상응하는 보상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미국과 다른 국가의 경제 관계 역시 외형상 동등해야 한다는 사고가 그를 지배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주도했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역시 다른 국가에게 미국의 시장만 많이 열어주는 협정이라고 여겼다. 트럼프는 결국 협정을 파기했다.
같은 맥락에서 국제경제는 다자가 아닌 양자의 호혜 평등이 판단의 기준이 됐다. 당연히 중국의 과도한 대미 무역흑자가 도마 위에 올랐다. 2017년 기준 3,750억 달러에 달하는 중국의 대미 무역흑자는 용납할 수 없었고, 트럼프는 그 중 2,000억 달러를 감축하라고 중국에 요구했다. 당연히 다자주의의 표상 WTO 역시 존재 의미가 사라졌다. 미국의 과도한 군사비 지출에 유럽이 협조적이지 않다는 비난도 이어졌다. 미국 중심의 단독플레이가 가시화되면서 동맹 혹은 가치 중심의 대외전략은 점차 힘을 잃었다.
2021년 1월 출범한 바이든(Joseph Biden) 정부의 경우 트럼프의 대중 압박정책은 비슷하게 유지했지만, 트럼프와는 달리 기존의 동맹 혹은 가치 공유 관계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즉 적과 동지를 구분하는 가운데 적을 압박하는 데 도움이 되는 국가 모두를 동원한다는 전략이었다. 미국의 전통적 동맹국, 인도와 같은 중국의 라이벌 국가, 중국의 압박을 받고 있는 동남아시아, 그리고 중국의 최대 취약 지역인 대만 등이 동원됐다.
이를 위해 바이든 정부는 자유주의라는 가치와 공급망 중심의 공동 이해를 정교하게 다듬었다. 모든 것이 중국과는 대치되는 것이었다. 과거 오바마 정부의 노선으로 어느 정도는 되돌아갔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트럼프가 무산시킨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A)에 다시 관심을 갖게 된다.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라는 새로운 용어가 등장했고, 규모는 인도양까지 확대됐다.
IPEF는 2021년 11월 바이든 대통령이 처음 언급한 후 2022년 5월 23일 일본에서 발족됐는데, 미국, 브루나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태국, 싱가포르, 베트남, 호주, 인도, 일본, 뉴질랜드, 그리고 한국 등 13개국이 창립 멤버로 참가했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과 비교, 동아시아를 포괄하는 가운데 인도양까지 회원국이 확장된 점이 눈에 들어온다.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의 창립 멤버가 아니었던 한국이 IPEF에서는 핵심 가입국이 됐다는 사실이다. 중국의 눈치를 보느라 한국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에 가입하지 않은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고, 이에 대해서는 당시 많은 전문가들의 비판이 있었다.
5.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의 성격과 중국
중국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을 이미 비판한 적이 있다. 간단히 말해 협정을 중국에 대한 포위 전략으로 간주했다. 협정에는 중국이 받아들일 수 없는 다수의 내용이 있었으므로 중국에 대해도 열려있는 회합이라는 미국의 주장은 중국의 귀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인권, 노동 관련 다양한 조건, 지식재산권, 그리고 정부보조금 제한 등이 반중 조항이라고 중국은 여겼다. 이번에 추진되는 IPEF 역시 엇비슷한 내용을 고수하고 있다. 정부 규제 권한의 제한, 새로운 디지털무역 규칙, 강제노동의 종식 등이 강조되는 가운데, 중국이 가장 싫어하는 보조금에 대한 규제 등도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바이든 정부의 대외경제정책에는 트럼프 정부가 추진했던 책략 중 중요한 것이 내포돼 있다. 트럼프의 전략에는 중국경제를 세계가치사슬(Global Value Chain)에서 약화시키거나 떼어놓는 작업이 숨겨져 있었다. 트럼프 때 유행하던 디커플링(decoupling)은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이다. 바이든 정부 역시 같은 전략을 계승하고 있다. 중국경제가 코로나 때문에 부진해지면서 가시화된 중국 중심 기존 공급망의 취약성을 새로운 공급망 구축을 통해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 IPEF의 최우선 과제가 됐다. 가치사슬에서 중국경제를 배제하는 것과 새로운 공급망을 구축하는 것은 동전의 양면에 해당한다. 결국 IPEF 협정 내용을 중국이 수용하기는 힘들다는 현실, 그리고 새로운 공급망 구축이라는 반중국적 목표 때문에 중국이 IPEF를 반대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6. 결어
바이든 대통령의 방한과 동시에 한국의 IPEF 가입이 확정되자 중국은 반발했다. 중국을 옥죄는 미국의 경제 포위전략에 과거와는 달리 한국이 흔쾌히 동참했다는 점이 눈에 거슬렸을 것이다. 한국은 ‘IPEF에 동남아시아, 인도 등 다양한 국가가 참여하는데 이들 모두의 목표가 중국 포위인가’라고 반론을 제기한다. 중국 역시 IPEF에 가입할 수 있다는 논리가 뒤를 잇는다. 중국은 2020년 이미 자신이 주도한 지역주의인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을 출범시켰다. 한국을 포함 일본, 호주, 뉴질랜드, 호주 그리고 동남아시아 국가들 대부분이 회원국인데, IPEF 주요 회원국과 비교적 다수가 겹치는 사실에 대해서 중국은 어떻게 답변하겠냐고 전문가들은 되묻고 있다.
하지만 이상의 분석은 위의 논리가 중국에 통하기는 힘들다는 점을 암시한다. 이미 1980년대부터 미국은 지역주의의 전략적 의미를 정확히 꿰뚫고 있었고, 이와 관련 자신의 이해를 극대화시키는 정책을 거의 30년 이상 추진했다. 최근 들어 초점이 중국에 맞춰졌다는 것이 과거와는 다른 점이다. 중국 역시 미국이 중국을 경제적으로 포위하고 있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있다. IPEF를 두고 양국의 전략적 계산은 당연히 다시 충돌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한국의 이해가 IPEF 가입이라면 그것을 마다할 이유는 없지 않을까. 2015년 출범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에 대해, 한국이 중국의 눈치를 보느라 미적대다가 뒤늦게 참여를 결정하자 미국은 한국의 창립 멤버 인정을 거부했다. 당시 한국의 한심한 행보에 대한 국내 전문가들의 비판에 답은 이미 나와 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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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기수, “TPPA(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의 타결: 한국은 뭐했나?” 세종연구소 「세종논평」 No. 305 (2015.10.6.).
※ 이 글은 세종연구소가 발간하는 [정세와 정책 2022-7월호 제36호]에 실린 것으로 연구소의 동의를 얻어 게재합니다. <편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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