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S, “암호화폐에 구조적 결함, 통화로 부적절” 엄정한 결론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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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암호화폐(혹은 가상자산; cryptocurrencies) 시장에 심상치 않은 변조가 일어나고 있다. Bitcoin 가격이 2020년 이래 처음으로 2만달러대의 낮은 수준에서 추이하고 있다. 2021년 봄에 대폭 하락한 뒤에 같은 해 말에는 7만달러까지 상승했다가 이후 거의 일관되게 하락세를 멈추지 않고 있다. 전세계 암호화폐 시가 총액도 2021년 11월에 3조달러로 피크를 기록했다가 지금은 1/3 정도로 급감했다. 결정적인 배경은, 금년 들어 미 연준을 비롯한 각국 중앙은행들이 앞다투어 정책금리를 인상하고 나서자 금융시장에는 투자 심리가 급격히 냉각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간 각국이 Covid-19 대응을 위해 시장에 유동성을 담대하게 공급해 온 환경에서 암호화폐 시장은 미증유의 활황을 구가해왔다. 그러나, 이제 각국이 급격한 긴축 모드로 돌아서자 암호화폐 시장은 거꾸로 극심한 혼란에 빠진 것이다.
이런 엄중한 상황에서, 각국 중앙은행들이 참여하는 국제결제은행(BIS; Bank for International Settlements)이 최근 공표한 2022년 연례경제보고서(AER)에서 “암호화폐(crypto)에는 구조적 결함(structural flaws)이 내재해 있어 안정적인 중개 수단으로 적합치 않다”고 지적하고 나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암호화폐 가격이 급변동하고 시장 참가자들에 대한 규제가 불충분한 가운데 투기가 과열되고 있어, 시장 위험성이 커지고 금융 시스템 안정이 손상될 우려가 크다며 경종을 울리는 것이다. 아래에 이 보고서 내용을 중심으로 최근 암호화폐 시장 동향을 정리한다.
■ “지금은 ‘암호화폐의 겨울’, 시장 신뢰 추락, 투자자 급격히 이탈”
요즘 해외 미디어들은 이구동성으로 암호화폐 시장의 참상을 전하고 있다. 영국 The Financial Times는 최근 ‘지금 암호화폐 시장은 ‘유혈(流血)의 참사(慘事)’를 겪고 있고, 비참함은 날로 더해가고 있다’고 묘사하기도 했다. Bitcoin 가격이 연일 연중 최저치를 경신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암호화폐를 보유하고 있는 대다수 투자자들의 손실이 눈덩이처럼 급격히 늘어나는 상황을 전하는 것이다.
실제로 Bitcoin 가격은 지난 15일 거래에서 작년 7월 이후 처음으로 2만달러 선을 하회했고 이후 다소 회복해서 이 글을 쓰는 현 시점에는 2만달러선을 경계로 불안한 등락을 이어가고 있다. 시장이 주시하는 ‘실현(實現)가격(유통되는 암호화폐의 평균 매입가격)’ 보다도 낮은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다. Ethereum에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한 암호화폐인 Ether의 가격도 1,000달러 가까운 수준으로 하락했다.
이에 따라, 전세계 주요 암호화폐 시가 총액도 작년 11월 기록한 피크인 3.2조 달러에서 크게 감소해서 이제는 1조 달러 수준에 머물고 있다. 미 CNBC 방송에 따르면, 지난 2 주일 간 암호화폐 전종목 시가총액 합계는 3,500억 달러가 증발했고, Bitcoin 가격은 금년 들어 반 토막이 된 셈이다. 현재는 20,000달러 수준에 머물러 있으면서 하루에도 몇 %씩 등락하는 극심한 변동 장세를 연출하고 있다.
이러한 가격 급락의 결정적 계기는 최근 전세계 암호화폐 시장에 엄청난 파문을 몰고온 Stable Coin인 Terra/Luna 쌍둥이 코인의 가격 붕락으로 암호화폐 시장 전반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가 추락한 것이다. 원래 Stable Coin은 가치를 법정 화폐에 연동시켜 가격 변동이 심한 다른 암호화폐를 대기(待機)시켜 주는 역할을 해서 암호화폐 시장에서는 안전 자산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이제 그 자체의 안전성에 심각한 문제가 제기되자 시장 전체에 리스크가 높아지고 가격이 폭락하는 타격을 주고 있다. 이에 더해, 암호화폐 전문 은행 격인 Celsius Network가 돌연 고객들의 자금 인출을 차단하는 조치를 발동하자 시장 혼란이 극에 달하게 됐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는 전문가(Genesis Trading社 시장분석팀장 Noelle Acheson)의 분석을 인용해 “이번에 Bitcoin 가격이 ‘실현 가격’(시장분석社 Glassnode 추산은 23,038달러)을 하회한 것은 과거 5년 동안 단 3 차례 일어났었다. 그 중 2018년 11월, 2020년 3월에 일어났던 두 사례에서는 Bitcoin 가격이 바닥에 근접하는 수준이었다고 지적한다. 또한, 20,000달러대는 암호화폐 가격이 급등하기 직전인 2017년 최고점에 근접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고 강조한다.
세계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인 Binance사 Zhao(赵长鹏; 중국 태생 캐나다 국적) CEO가 지난 15일 SNS에 올린 글도 소개하고 있다. 그는 “지금 암호화폐 시장은 ‘피(血)의 바다’ 이고 스스로 몸을 지켜서 살아남아야 할 것” 이라고 위기감을 토로하고 있다. Seychelles에 본거지를 둔 암호화폐 거래소 OKX(창립자 徐明星; 중국인)의 Hao CEO도 “자금을 차입해 암호화폐에 투자하는 데는 신중해야 할 것” 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그는 ‘사태는 더욱 악화할 가능성이 있고,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어 충분한 리스크 관리가 최선의 생존 전략’ 이라며 경고한다.
이에 더해, 일부 Bitcoin 채굴업자들은 최근 암호화폐 가격 하락으로, 수익이 감소하고, 이와 함께 생산(채굴) 비용이 상승하자 견디기 어려워져 기존 보유분을 매각해 적자를 보전하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앞서 소개한 시장 분석 전문 Glassnode社에 따르면, Bitcoin 채굴업자들의 수익은 최고점 대비 약 56%나 감소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Bitcoin 채굴업계는 시장 자체보다 더욱 큰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결국, 암호화폐 시장 및 생산(채굴)자들은 지금 암호화폐 역사상 가장 혹독한 겨울을 겪고 있다는 평가가 대세를 이룬다.
■ “투자 레버리지 역(逆)회전을 시작, 바닥이 보이지 않는 추락 중”
지금 벌어지고 있는 암호화폐의 추락상을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세계적인 금융 완화를 배경으로 암호화폐 시장으로 대거 유입됐던 자금이 시장을 떠나면서 레버리지(leverage)의 역(逆)회전이 시작된 것이다. 이렇게 시장 투자 심리가 얼어붙는 가운데, Celsius Network가 암호화폐 거래를 중단하자 시장에는 결정적 타격이 됐고, 투자 심리가 더욱 냉각된 것이다. 이 회사는 암호화폐 관련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은행 역할을 해왔고, 그 중에는 20% 이자가 붙는 예금 상품도 있었다.
시장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지금은 글로벌 금융시장이 ‘대세 하락’ 국면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이것은 분명히 마이너스 요인이고, 시장에는 리스크 자산에 대한 수요가 자취를 감추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특히, Bitcoin을 포함한 암호화폐 수요가 두드러지게 퇴조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이에 더해, 만일, Bitcoin이 2만달러를 하회하고 Ether가 1,000달러 이하로 하락하는 경우에는 신용거래 담보 혹은 증거금 추가 적립 요구가 늘어나고, 이에 따라 투자자들은 기존 보유분을 매각하지 않을 수 없고, 가격은 걷잡을 수 없이 하락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하는 것이다.
Absolute Strategy Research사 창업자 하네트(Ian Harnett)씨는, 과거 암호화폐의 상승 랠리 사례들을 감안해 보면, 이번 Bitcoin 가격 하락은 최고점에서 80% 정도는 하락할 것으로 전망한다. 그러면 Bitcoin 가격은 현 수준에서 40% 가까이 더 하락해서 핵심 지지 영역인 13,000달러 수준까지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한다. 그는 ‘암호화폐 시장은 지금 투자자들이 급격한 금리 인상 충격 및 주요 시장 참가자들의 ‘유동성’ 이슈들과 분투를 벌이고 있는 형국’ 이라고 표현한다. 그는, 이것은 단순히 ‘유동성’ 게임일 뿐이고, ‘통화’ 혹은 ‘재화’ 문제가 아닐 뿐 아니라, ‘가치 저장(store of value)’ 등의 통화로서의 본질 문제는 더욱 아니라고 강조한다.
요약하면, 암호화폐 가격 하락이 멈추지 않는 배경에는 각국 공통의 긴축 전환으로 투자자들이 빠져나가는 것에 더해, 운용 주체들의 부실 경영으로 신뢰를 상실한 것이 있다. 시장 급락으로 손실이 발생하면 기존 보유 암호화폐를 매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고 가격은 더욱 하락할 것이다. BIS는 작년 12월 “일부 헤지 펀드들이 높은 레버리지로 운용하고 있어, 가격 하락 시에 보유 자산을 매각하지 않을 수 없어 하락을 더욱 부추길 것” 이라고 경고한 바가 있다. 암호화폐란 본질적으로 자본이익(capital gain)은 있으나 소득이익(income gain)은 전무하다 보니 시장 유동성 변동에 지극히 민감할 것은 당연하고, 특히, 금리 상승기에는 채권 등 정통 금융상품에 비해 상대적으로 매력이 떨어지게 마련이라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 BIS “암호화폐는 구조적인 결함을 지녀서 통화로서 부적합” 지적
이런 상황에 국제결제은행(BIS)이 21일, 연례경제보고서(Chapter III ‘The Future Monetary System’, 저자; Shin H S 신현송)에서, 암호화폐에 대한 입장을 포함해서 장래 통화제도에 대한 비전을 피력했다. 이 보고서는 통화제도가 궁극적으로 갖춰야 할 요건을 1. 안전성 및 안정성(safety and stability), 2. 책임성(accountability), 3. 효율성(efficiency), 4. 금융 서비스 포섭(inclusion), 5. 사용자 정보 통제(user control over data), 6. 연계성(integrity), 7. 적응성(adaptability), 8. 개방성(openness), 등 8개 항목으로 나누어, 첫째; 현행 통화제도가 충족하는 사항 및 개선이 요구되는 사항, 둘째; 현행 암호화폐가 가지는 구조적 결함, 개선이 요구되는 사항 및 기술적 특장점, 그리고 마지막으로 장래의 바람직한 통화제도 비전을 서술했다.
이 보고서는 최근 암호화폐 시장이 미증유의 혼란에 휩싸여 있는 가운데 발표된 것이어서 주목을 받는다. 이 보고서의 해당 부분을 집필한 Shin 조사팀장은 Podcast에도 출연해, 가격 변동이 극심한 암호화폐는 ”구조적 결함이 내재되어 있어 통화 시스템 기반으로는 부적합” 하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Crypto’s structural flaws make it unsuitable basis for a monetary system as recent implosions in the cryptocurrency markets show.’) 아울러, 암호화폐 운용 주체들 및 관련 중개소들에 대한 규제가 충분하지 못한 상황에서 투기가 과열되는 것은 리스크를 수반하게 되고, 금융 시스템 안정성을 손상할 수 있다며 현 상황에 엄중한 경종을 울렸다.
이 보고서는 암호화폐가 지니고 있는 가장 중대한 구조적 결함으로, 수많은 암호화폐들이 출현해 경쟁하는 시장에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분열(fragmentation)’ 현상을 지적하고, 이로 인해 통화로서 적합성을 갖추지 못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즉, ‘통화’란 한 사회에서 강력한 네트워크 효과를 통해 조정(coordination) 수단으로 작동하는 것이어서, 특정 통화에 많은 사용자들이 모여들면 더욱 많은 사용자들을 유인하게 되고 결국 ‘승자 독식(winner takes all)’의 속성을 가진다. 네트워크 효과를 통해 전체 경제에서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거래 중개 수단으로는 한 가지 통화만이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달리, 현 암호화폐들은 속성상 이와 반대되는 방향으로 작동하게 되는 것이다. 한 블록체인 시스템 상에 많은 암호화폐들이 몰려들수록 더 많은 참여자들을 불러오게 되고 이에 따라 정체(congestion)는 더욱 악화되고 거래 비용은 더욱 상승하는 악순환에 빠져들게 될 뿐이라는 것이다.
이 보고서는 Stable Coin에 대해서도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즉, “Stable Coin은 중앙은행이 발행한 실제적 통화들의 안정성에 업혀가려고 시도하는 것들” 이라고 평가했다. 최근 Terra/Luna 폭락 사태로 큰 파문을 일으킨 데 대해서는 암호화폐가 가진 가격 변동성이 시장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을 잘 보여준 사례라고 설명했다. 결국, 암호화폐 세계는 그들이 구현할 것이라고 내걸고 있는 ‘명목 상의 중개’ 기능을 결여하고 있고, 불완전하게 시도하고 있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BIS가 경고하는 것은, 많은 암호화폐들이 주장하는 본질적 가치의 근거를 제시하지 않은 채, 투기적으로 거래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하는 것이다. 동 보고서는 이에 대해, 암호화폐 거래가 “규제되지 않은 중개업자들에 의존해서 거래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리스크가 있다” 고 지적하고 있다. 정부의 감독 당국 혹은 중앙은행이 관리하지 않고 있는 비(非)중앙집권적 제도 및 개념을 유지하면서 중개업자들에 결제 리스크가 집중되고 있어 위험성이 지극히 높다는 견해를 밝힌다.
BIS는 결국, 암호화폐에 내재된 보안 문제, 고비용 문제, 사용 범위의 규모 문제 등에 더해, 규제되지 않은 중개기관들의 개입에 따른 높은 금융 리스크 등은 현행 통화 시스템에도 위험을 키우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구조적인 결함에 대해서는 단순히 기계적 수정만을 통해서는 근원적인 부족함을 충족시킬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이에 더해, 사이버 공격에 의한 암호화폐 유출 사례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이와 관련, IMF도 암호화폐가 자본이동 제재를 빠져나가는 구멍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암호화폐 시장에 대한 포괄적인 규제 시스템이 정비되지 않은 상황에 대해 엄중한 경고를 발동하는 것이다.
■ “CBDC는 암호화폐가 내세우는 모든 기능을 더 잘할 수가 있다”
BIS 보고서는 장래의 적합한 통화제도 형태로 지금 각국 중앙은행들이 검토 혹은 시험 도입하고 있는 ‘중앙은행 발행 디지털 통화(CBDC)’를 지목한다. 이 보고서는 ‘CBDC는 이용자들의 개인 정보 보호에 배려하면서도 누구나 금융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금융 포섭(包攝)’을 확대 강화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를 표명하고 있다. 집필자 Shin H S 조사팀장은 금융 이노베이션은 단순한 유행 패션에 그치지 말고, 이용자들의 수요에 즉응할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 보고서는 이러한 CBDC 도입 현황에 대해, 가장 앞서가는 중국에 이어, 미국 연준(FRB), 영국 영란은행(BoE) 및 일본 일본은행(BoJ) 등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자금 결제 업무의 편리성 등, 경제적 효율성을 근간으로 삼아 장래에 CBDC를 도입할 것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거나 도입을 추진 중이라고 전하고 있다. 보고서저자 Shin 조사국장은 암호화폐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본질적으로 내재해 있는 ‘분열(fragmentation)’ 현상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암호화폐는, 보다 널리 수용되고 보다 넓은 영역에서 사용될 수 있게 되어서 선순환 사이클을 생성한다는 통화의 기본 역할을 수행할 수가 없다” 고 강조한다. 그는, 장래의 통화 시스템은 중앙은행이 현재 Bitcoin에 적용되는 장점인 기술들을 자신들이 발행하는 통화의 디지털 버전인 CBDC에 성공적으로 적용해서 도입하는 데 달려있다고 전망한다.
이 보고서는, 현재 대부분 주요 국가들이 아직 초기 단계이기는 하나, 각국 통화 당국의 약 90%가 CBDC 도입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중국 정부는 고유 CBDC인 ‘eCNY’를 이미 시험 통용 중이고, 자메이카(Jamaica) 중앙은행은 세계 처음으로 CBDC를 정식 법정통화로 도입한 바가 있다고 소개했다. 이스라엘 중앙은행은 “CBDC 구상은 금융 서비스 소비자들의 이용에 금융 리스크가 낮고, 보다 풍부한 유동성, 보다 낮은 비용, 보다 많은 경쟁 및 보다 광범한 접근성을 제공하는 등 다양한 장점이 있다” 고 보고 있다. Shin 저자는 ”우리의 대체적인 결론은 다음과 같은 모토에 담겨 있다고 강조한다; “암호화폐가 할 수 있는 어떤 역할도 CBDC가 더 잘 할 수 있다(Anything that crypto can do, CBDCs can do better)”
BIS의 이런 판단의 근거는 최근 암호화폐 시장에서 드러나고 있는 중대한 결함 요인들이라고 본다. 이 보고서는 “암호화폐는 기술적으로 소망스러운 가능성을 엿볼 수 있게 하나, 디지털 통화 시스템의 높은 목표를 충족시키지는 못하는 것” 이라고 판단한다. 이미 드러나고 있는 암호화폐의 결함 요인으로는 보안 상의 위험성, 높은 수수료 비용, 규모의 문제 및 규제가 없는 것, 등을 열거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결함 요인들은 특히 시장이 혼란에 빠진 경우에 커다란 문제로 드러난다고 지적한다. 즉, 암호화폐 가격이 급락하는 경우에는 뒤에 숨겨졌던 높은 레버리지, 암호화폐 생태계의 유동성 결핍 등, 심각한 문제들이 불거져 극심한 시련에 당면한다는 판단이다. Shin 저자는 “가격 폭락 사태 및 암호화폐 그림자 은행의 ‘뱅크 런’ 사태는 금융 안정성에 대한 심대한 타격 및 정통 금융 시스템에 대한 잠재적 전염 가능성 등, 심각한 문제를 표출한다” 고 강력 경고한다.
BIS 보고서가 지적하는 암호화폐의 중대 문제들은 첫째; Stable Coin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기대는 바로 암호화폐들이 ‘명목상 매개’ 역할을 추구하는 것에 기반하나, 최근 Terra 붕괴가 보여준 것처럼 이들은 안정성과 거리가 멀고, 계산 단위로도 적합치 않다. 둘째; 더욱 심각한 문제는 ‘분열(fragmentation)’ 현상이다. 이는, 통화는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수용되고 보다 널리 활용되는 선순환을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관점에서, 단적으로 암호화폐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통화’에 기대되는 네트워크 효과를 온전히 만들지 못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모든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받아들일 것을 상정하고 통화를 받아들이는 것이나, 암호화폐는 소위 분산화(decentralization)로 인해 이와는 정반대 현상인 분열(fragmentation) 양상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것은 암호화폐가 확인자들 간의 합의(consensus among validators)에 의해 결제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예를 들어, Bitcoin 등의 채굴자들은 채굴 활동 대가로 보상을 받는 방식으로 운영되나, 이런 보상을 받는 과정에서 과도한 정체(congestion) 양상을 빚고, 이에 따라 거래 비용 및 보상은 커진다. 이것은 바로 정통 통화들이 많은 사람들이 활용하고 보다 많은 사람들이 수용하는 선순환을 만들어 가는 과정과 정반대되는 현상이다.
■ “장래의 통화제도는 암호화폐 기반 기술을 활용한 CBDC가 근간”
이번 BIS 보고서는 ‘장래 통화 시스템의 비전’ 이라는 마지막 부분에서 장래의 통화 시스템은 ‘중앙은행 통화라는 탁월한 대표성을 핵심 근간으로 해서 새로운 기술적 능력을 갖출 것’ 이라고 전제했다. 통화의 신뢰성에 바탕을 두고 새로운 디지털 기술의 장점을 살려 상호 연계성 및 네트워크 효과를 통해 결실을 얻을 수 있다고 전망한다. 결국, 실물 경제를 위한 서비스를 수행할 새로운 결제 시스템이 형성될 것이고, 이렇게 형성되는 새로운 결제 시스템은 단일 통화를 확립하면서 새로운 혁신 활동에서 생겨나는 새로운 수요에 적응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런 미래형 통화 제도는, 비유하자면 중앙은행을 튼튼한 근간으로 삼고,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통화로 확고하게 지원되는 시스템이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러한 통화 제도의 기본 원리는 지불 거래의 최종 완결이 궁극적으로 중앙은행 대차대조표를 통해 이루어지는 시스템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 기반 위에서 형성된 결제 시스템에 참여하며 경쟁하는 은행 등 지불서비스제공자(PSPs; Payment Service Providers)들은 고유의 독창성을 발휘하면서 다양하고 중첩적인 생태계를 형성하고, 사용자들에게 보다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조장하게 된다.
앞서 설명한 바 대로, 암호화폐 및 이를 근간으로 하는 광범한 분산형 금융 생태계는 심각한 구조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고, 이로 인해 건전한 통화 시스템이 될 수가 없는 것이다. 또한, 소위 ‘분산형 금융(DeFi)’의 목표와 현실 간에도 깊은 괴리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한편, 과거의 역사적 사례에서 보아도 민간이 제공하는 통화 제도 시도는 투자자 및 실물 경제에 손실을 주고 결국 모두 실패로 끝났다. 안정적이라는 Stable Coin도 안정화 메커니즘이 바로 그들이 담보로 하는 자산의 질 및 투명성에 의존하는 것이나, 상당 부분이 이런 요건에 미달한다.
이번 BIS 보고서는, 암호화폐는 교환 중개 수단으로도 신뢰성을 결여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아울러, 가치 저장 수단으로 기능하는 것도 불가능하고, 거래 단위로서 기능할 수도 없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암호화폐에 대해 단지 가격 동향에만 초점을 맞춰서 판단하는 것은 전체 사회에서 기여하는 통화 시스템을 위한 기반으로써 부적합하다는 보다 심각한 구조적 결함(缺陷)으로부터 관점을 따돌리는 것이라고 경고한다. 단지 다른 투자자들이 자신들을 뒤따라 시장에 참여하면서 가격을 끌어올릴 것을 기대하는 단순한 투기적 보유가 횡행하는 것을 지적한다.
그러나, 이 보고서는 각종 디지털 자산을 운영하는 시스템의 기술적 우월성은 장점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예를 들어, 지금 논의되고 있는 ‘Wholesale CBDC’ 구상에서 분산형 원장 기술은 현재와 같은 상업은행들을 훨씬 뛰어넘어 중앙은행 통화 시스템에 참여하는 중개기관들(PSPs)을 대폭 확대하는 방법으로 보다 광범한 경쟁을 촉발할 것을 기대한다. 이에 연계되어, ‘Retail CBDC’ 시스템을 통해 금융 서비스 접근 범위 확대 및 거래 비용 절감으로 ‘금융 포섭(financial inclusion)’을 더욱 확장할 수 있을 것도 기대된다고 전망한다. 아울러, 공적 부분과 민간 부문의 파트너십 형성을 통해 금융 혁신의 기반이 강화될 것으로 기대하기도 한다.
결국, BIS 보고서는 각종 구조적 결함을 가진 암호화폐와 달리, 각국이 지금 추진하고 있는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 통화(CBDC)는 이들이 갖추게 될 기술적 수월성과 중앙은행 통화라는 사실이 주는 높은 핵심적 신인(信認)을 결합한 ‘퓨전’ 형태의 통화가 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 즉,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통화라는 점에서 경제 활동의 계산 단위로 원활하게 수용되고, 중앙은행 대차대조표를 통한 지급이라는 점에서 ‘최종적인 결제(ultimate finality of payment)’가 되는 것이다.
■ 英 FT “암호화폐 폭락 타격은 소수 인종 및 젊은 투자자들 몫”
작년 11월 이후 지금까지 전세계 암호화폐 시장 가치는 무려 2/3가 감소해서 1조 달러 전후로 위축됐다. 이에 따라, 해외 미디어들은 연일 암호화폐 시장의 가격 폭락 사태 및 이런 시장 붕괴 사태가 낳고 있는 사회적 파장을 심각하게 보도하고 있다. 흔히 암호화폐라고 하면 유럽 출신 조상의 후예로 젊고, 고학력의, 장래 고수입이 기대되는 남성들, 이른바 ‘Crypto Brothers’ 층의 사람들이 투자할 것이라고 연상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미국의 암호화폐 투자자들 중에는 아프리카 혹은 히스패닉계 투자자들이 점하는 비율이 불균형 할 정도로 높다.
한 시장 조사(Aerial Investment & Charles Schwab 증권) 결과는 세대 수입이 5만달러 이상인 흑인 25%가 암호화폐를 보유하고 있다고 전한다. 수입이 동일한 백인들은 15%에 그친다. 그리고, 암호화폐 투자자들은 모든 인종을 통해 25~34세 젊은 층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이를 감안하면 암호화폐 가치 폭락으로 ‘소수 인종 출신 젊은’ 투자자들이 큰 타격을 받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서 유색 인종 출신들이 전통적인 투자 상품에 경계심을 가진 것은 대형 은행들의 유색 인종에 대한 차별적 융자 관행 등, 역사적인 관점에서도 근거가 있다. 이들은 과거 서브프라임 금융위기 당시 드러났던 것처럼 주택대출을 통해 소위 약탈적 금융업자들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한편, 다른 조사회사(Insider Intelligence)에 따르면, 유색 소수 인종 출신 젊은 투자자들이 암호화폐 투자층을 형성하고 있는 것은 소득 및 개인 자산이 적은 때문일 수도 있다. 뉴욕 등 물가가 비싼 도시 지역에 사는 저소득층은 초기 투자에 큰 자금이 필요한 주택 투자보다는 상대적으로 투자하기 쉬운 암호화폐를 투기 대상으로 선택하는 것이다.
여기에, 글로벌 금융 환경도 암호화폐 시장 버블 팽창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는 평가에는 이론이 없을 것이다. 특히, Covid-19 대유행 이후 각국이 앞다투어 대규모 재정 및 금융 완화로 대응하는 과정에서 시장에 초저금리 자금이 넘쳐났고 이 가운데 상당 부분이 가격 변동성이 크고, 그래서 일확천금을 노릴 만한 암호화폐로 쏠렸던 것이다. 주택 등 자산 가격이 임금보다 앞서서 상승한 것도 사람들이 암호화폐 등 리스크가 높은 대상으로 몰려들게 한 원인을 제공했을 수도 있다.
이렇게, 암호화폐 투자자들 중에 고수익을 노리고 고위험을 감수하는 젊은 층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확실하나, 이들 가운데 손실을 감내할 능력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을 것임은 물론이다. 그리고, 이들 젊은 투자자들이 암호화폐 투자에 쏠리는 것은 당연히 투자자들의 책임이 큰 것이 당연하나, 이들을 상대로 교묘히 암호화폐 매각에 열중해 온 측도 상응하는 책임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 “Terra 붕락, 리먼 사태 촉발한 ‘서브프라임 구조화 증권’ 떠올려”
지금 항간에는 현 경제 상황을 경기침체(recession)니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이니 하면서 심각한 우려의 목소리들이 흘러나오고 있다. 그리고, 이런 심각한 상황의 한 가운데에서 지금 암호화폐 시장의 붕락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이를 예시하는 듯한 상징적 사건이 바로 정통 통화에 가치가 고정된 Stable Coin인 Terra의 가치가 일거에 1/100로 급락한 것이다. 마치 일국의 고정환율제도가 무너지면 통화 가치가 폭락하고 바로 위기로 연결되는 과정과 흡사하다는 비유도 한다.
이에 연상되어 떠오르는 것이 바로 2008년 최대 악몽이었던 소위 ‘리먼(Lehman)’ 사태라고 불리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발(發) 글로벌 금융 위기다. 이번 Terra 코인을 당시 위기를 촉발했던 Bear Sterns에 비유하면 Lehman Brothers 파탄과 같은 상황은 가까이 다가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높아가는 것이다. 리먼 사태 당시에는 부동산 가격 버블을 업고 구조화 금융 상품 가격이 과도하게 상승한 것이 글로벌 금융시장을 뒤흔든 것이었다면, 지금 암호화폐 시장에서 유행하는 분산형 금융(DeFi) 구조가 투기, 버블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관측이 있다.
암호화폐 시장에 운용되는 소위 ‘분산형 금융(DeFi)’에는 종전에 자산 버블을 상정해서 만들어졌던 거래 제한이나 안전망(safety-net) 등의 장치는 거의 마련되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통상적 금융 거래에서는 쉽게 상상할 수가 없는 20%라는 고율의 수익 상품 거래가 횡행하고 있던 것이다. 종국에는 정통 통화에 가치가 고정되어 있다던 거대 규모의 Stable Coin 가치가 일시에 사라지다시피 하고 있다. 이어서, 이런 규제를 벗어나 부풀려진 레버리지가 역(逆)회전하며 대량 투매 상황을 불러왔고 드디어 암호화폐에 내재돼 있던 문제점들의 본색이 드러난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 각국은 뒤늦게 Stable Coin을 중심으로 암호화폐에 대한 강력한 규제 조치를 마련하느라고 부산하다. 이러한 움직임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시장에는 암호화폐에 대한 투자(투기) 수익 기대가 서서히 퇴조할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러한 격랑에 휩쓸려 암호화폐 자체가 이대로 폐기되는 경우에는 여태까지 기술적 바탕을 제공해 온 우월한 블록체인 기술, 혹은 금융 혁신의 일각을 담당해 온 ‘분산형 금융(DeFi)’의 성장의 싹도 시들어 버릴 수가 있을 것이다. 금융 시스템 안정 및 투자자 보호 관점에서 규제를 강화하는 와중에도 금융 혁신의 건전한 발전을 도모하는 쌍방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 “’CBDC 원화’ 도입 플랜을 제시, 투자자 대피 유도를 서둘러야”
현 상황에서 우리나라 암호화폐 시장의 실상을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금융정보분석원(FIU)이 처음 실시한 ‘2021년 하반기 가상자산(암호화폐) 시장 실태 조사 결과(22.03.02)’에 따르면, 2021년 말 현재 국내에 등록된 29개 암호화폐 사업자들 시가 총액은 55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에 유통되고 있는 종목은 무려 623개에 이른다. 또한, 암호화폐 시장 이용자 수는, 본인 신원 확인을 마친 이용자 기준으로 558만명에 달한다. 우리나라 총인구의 10%에 달하는 큰 규모다. 이들 중에는 ‘30대 남성’이 121만명으로 가장 큰 31%를 차지한다. 40대가 27%, 20대가 23%, 50대가 14%, 60대도 4%를 차지한다. 이들의 하루 평균 거래 금액도 11조원에 달해 코스닥은 물론 코스피 시장의 하루 거래량과 비견하는 큰 규모다.
이들 개인 이용자들의 보유 금액을 보면, 56%에 달하는 313만명이 100만원 이하를 보유하고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1,000만원 이상을 보유한 이용자가 82만명(동 15%에 해당)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가운데, 1억원 미만 보유자는 13%에 해당하는 73만명이고, 1억 ~ 10억원 보유자는, 비율로는 1.6%에 해당하는 낮은 비중이지만, 무려 9만명에 달한다. 10억 이상 보유자도 4천명에 달한다. 이들 94,000명에 달하는 1억원 이상 보유자 수에 보유 금액 구간 중위수(中位數) 5억원을 대입해서 산출하면 이들이 보유한 금액은 대략 5조원에 달한다. 정확한 통계를 산출하기는 어려우나, 현재 금융시장 정황을 미뤄보면 이들 중 상당 수가 다른 영역에 채무를 지고 있는 ‘차입 투자자’ 일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상 소개한 BIS 보고서가 상세하게 서술한 바와 같이 이제 암호화폐 시장에 대한 솔직하고 적확한 판단과 과감하고 민첩한 대응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는 것은 명확해졌다. 아무런 통화 이론에도 합당하지 않은 암호화폐가 단순한 기술적 구상만으로 정통 법정통화 시스템을 대체하겠다는 일종의 무모한 대항적 시도들을 더 이상 방치하거나 동조해서는 안 될 일이다. 지난 대선 기간 중에 암호화폐 문제를 두고 각종 약속들이 난무했다. 암호화폐 거래에 세금을 부과하겠다는 소극적인 시도는 차치하고, 암호화폐 시장을 적극 육성하겠다는 공약까지 나왔다.
그간 암호화폐 지지자들이 주장하는 바는, 민간 주체들이 발행하는 암호화폐들이 무책임하고 중앙 집권적인 공적 주체들이 발행하는 법정통화를 대체하고 글로벌 통화로 자리잡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BIS 보고서의 결론을 포함해서 최근 벌어지고 있는 시장의 실상들은 이제 그런 주장은 근거를 잃게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확신을 갖게 한다. 그리고, 암호화폐 시장은 실제로 하등 내재적 가치가 없는 단순 투기판에 불과한 게 아닌가, 하는 결론에 도달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 한국은행법 47조에는 ‘화폐의 발행권은 한국은행만이 가진다’ 고 명시하고 있어 화폐의 발행 권한을 무자본 특수법인인 한국은행에 독점적으로 위임하고 있다. 혹자는 통화의 발행, 관리, 운용은 국가 주권에 속하는 사항이라는 주장도 한다. 이렇게, 어느 나라나 통화를 발행하고 관리하는 역할은 국가 차원에서 담당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세계 암호화폐 발행자들은 공공연히 국가가 발행하는 법정통화를 대체한다는 것을 궁극의 가치로 표방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허황된 슬로건에 현혹되어 수많은 투기자들이 몰려들고 있는 것이다.
자칫 오해를 낳을 수 있으나, 지금까지 미국 중앙은행 연준이 민간이 발행하는 암호화폐를 엄격히 통제하지 않는 것을 두고, 마치 통화로 용인하는 것처럼 착각할 수 있으나, 연준 파월(Jerome Powell) 의장은 이미 오래 전에 ‘CBDC를 도입하면 암호화폐는 자연히 자취를 감추게 될 것’ 이라고 공언한 바 있다. 최근에는 장래 도입할 가능성이 높은 CBDC 달러화에 대한 대강의 구상을 공표한 적도 있다. 중국은 이미 일찌감치 암호화폐의 생산, 유통 등 거래 일체를 불법화한 바 있다. 지금 미국 등지에서 활약하는 암호화폐 관련 기업들의 운영을 중국 출신 인사들이 주도하고 있는 것도 그러한 중국 정부의 선제적 조치의 결과가 아닌가 한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 경제학자 쉴러(Robert Shiller) 교수는 얼마전 17세기 화란에서 일어났던 튤립 구근(球根) 투기 사태보다 지금의 암호화폐 투기 사태가 더욱 심각하다고 설파한 적이 있다. 튤립 구근 투기는 망해도 예쁜 꽃이라도 남지만 암호화폐 투기는 망하면 모든 것이 깨끗이 사라진다고 비유했다. 우리 정부 당국은, 만시지탄이지만 이제라도 서둘러 암호화폐 시장에 대한 기본 인식을 확립하고 이에 합당한 단호한 시장 규율 조치를 서둘러 마련해야 할 절박한 시점에 당도했다. 지금 한국은행은 상업은행들과 연계하는 투 트랙 방식의 CBDC 시스템을 시험하고 있는 중이라고 알려지고 있으나, 이제라도 지금까지 진행된 결과를 포함하여 ‘CBDC 원화’ 도입 구상의 대강이라도 공표하는 것이 무모하고 무절제한 우리나라 암호화폐 시장 행태에 지남(指南)을 제시하는 유효한 첫걸음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에 앞서, 금융 당국은 아직도 암호화폐 시장에 발이 묶여 있는 젊은 층을 포함한 투자자들의 부당한 투자 손실을 최대한 방지하고 이들의 안전한 퇴장을 유도할 방책을 바로 마련해서 지체없이 시행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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