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에 ‘고통 분담’을 요구하는 것에 대한 몇 가지 충언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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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열린 제13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대통령은 ‘(통신 및) 은행 분야는 정부 허가를 받은 과점 형태의 시장이 형성되어 있는 분야이므로 공공재적 성격이 강하다’고 강조하며, 정부 차원의 대책을 세우라는 지시와 함께 해당 업계도 ‘자발적인’ 대책을 마련할 것을 당부했다. 지금 엄청난 ‘고물가, 고금리’ 상황에서 극심한 고통을 받는 서민 가계들을 감안하면 일견 절박한 측면이 있고 필요할 수도 있어 보인다. 우리가 위기 때마다 겪는 것이지만, 경제가 어려워지면 가장 혹독한 타격을 받는 건, 그렇지 않아도 고단한 삶을 이어가고 있는 서민들이라는 점에서 정부가 이들을 지원할 조치를 취하는 것은 의당 해야 할 책무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 금융 당국이 서둘러 대응책을 논의하기 시작한 각종 개혁 대안들을 살펴보면, 지금까지 누대에 걸쳐 우리 은행들 내부에 축적된 병폐를 바로잡으려다 자칫 자유 시장 경제라는 현 정부가 지향하는 경제 체제의 근본을 훼손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올 만한 상황으로 보인다. 이번에 돌연 사회적 이슈의 표적으로 떠오른 은행들이 엄연히 사(私)기업 형태라는 점에서, 이들이 비록 정부 허가를 받아 과점적 시장을 형성해서 영업을 한다 해도, 정부의 정책 대응에는 지극히 신중을 기해야 할 현실적인 요인들이 내재해 있음을 충분히 숙고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한편, 정부는 불과 얼마 전에 은행들 지배구조의 발본 개혁을 시작으로 은행 산업 전반에 일대 개혁을 선언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서, 지금 벌어지는 논의들을 전해 듣다 보니, 새 정부가 모처럼 우리 사회에 던진 회심의 개혁 화두가 현상 대응적 발상에 집착하다가 혹시 본지가 흔들리거나 보조가 실종(失踪)하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도 생긴다. 아래에, 최근 은행들의 ‘과도한’ 이익 문제로 촉발된 사회적 논의에 조금이나마 참고가 될 만한 몇 가지 특징 사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 “공정을 내세워 자유를 제한하면 모든 사람의 자유가 위태로워져”
우선, 우리 경제의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할 ‘자유 시장’ 체제가 작동되는 기본 원리를 살펴보며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고자 한다. 마침, 이전부터 윤 대통령이 ‘선택의 자유(Free to Choose)’라는 저서를 읽고 감명을 받았다고 알려져 세간의 화제가 됐던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프리드만(Milton Friedman, 1912~2006) 교수는 자신의 저서에서 한 나라의 경제에서 각 주체들의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보장할 것을 일관되게 강조하고 있다. 그는 한 마디로 ‘자발적 거래는 당사자 쌍방에 이익(‘Voluntary Trade is Mutually Beneficial’)’ 이라는 명제를 시장 경제의 으뜸가는 요체로 삼고 있는 것이다. 즉, 경제 주체들이 상호 거래하는 것은 어느 일방이 침략하고 다른 상대방이 방어하는 행위가 아니라, 상호 합의와 존중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어서 당사자들이 자발적으로 합의하지 않는 한 거래가 성립될 수가 없다.
나아가, 정부 등이 이런 시장 경제의 기본 원리를 저해한다면 시장의 효율성을 근본으로부터 허무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또한, 정부는 국민들로부터 다른 주체의 활동에 제한을 가할 수 있는 독점적 권한을 부여받은 주체라고 정의한다. 그러나, 정부가 공정, 정의, 평등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다른 주체들의 활동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제한하거나, 공정을 내세워 자유(freedom)를 대체할 경우, 이는 곧 모든 사람들의 자유(liberties)를 위태롭게 하는 결과가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우리나라는 60년대 초반에 시작된 개발 연대 시기에 중앙집권적 계획경제를 추구했던 시기가 있었으나, 80년대 후반 들어 민주화를 이루어 낸 이후에는 모든 경제 주체들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한다는 사회적 합의를 지켜오고 있다. 따라서, 누구도 개별 주체들이 자유로이 영위하는 경제 활동을 강제하지 않으며, 자유 의사로 계약을 체결하고, 이에 따른 책임과 의무를 이행할 것을 전제하고 있다. 앞에 소개한 ‘자발적으로 합의한 거래는 언제나 공정하다’는 기본 가정을 지켜오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 개인, 기업 등, 어떤 주체도 이런 사회적 합의를 벗어나서 강압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이는 우리 사회가 굴러가는 기본 정칙인 것이다.
■ “은행들의 ‘이윤(利潤)극대화’는 과연 파렴치한 ‘죄악’ 행위인가?”
주지하는 것처럼 은행업은 태생적으로 ‘공공적’ 성격이 강한 업종이다. 국가 경제에서 실물경제와 대칭되는 다른 순환 축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거의 모든 나라들이 은행업을 정부의 엄격한 감시, 감독 하에 두고 있고, 은행이 주축을 이루는 금융 시스템에 대해 시장 진입에서부터 업무 활동, 심지어 시장 퇴출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철저하게 규제, 관리하고 있다. 따라서, 선진국일수록 은행 시스템에 대한 감독 절차는 치밀하게 구축되어 있고 또 엄격하게 작동하고 있다.
마침, 정부는 은행들이 ‘과점(寡占)’ 체제 하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서 ‘과도한’ 이자 장사를 하고 있으니 이를 타파하겠다고 공언했다. 심지어, 금융 정책의 사령탑인 금융위원장은 ‘은행들이 돈을 벌기 위해 무얼 한 게 있느냐’고 힐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우선, 이런 발언이 혹시 은행들이 작년에 실현한 이익이 일시적으로 대규모였던 것을 염두에 두고 일종의 ‘사회악’ 으로 보는 시각이라면 이는 천만 부당한 일이다. 은행도 다른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최대의 이익 실현을 추구할 동기를 가진 사적(私的) 영리 집단이고, 은행 경영책임자들은 주주 등 이해관계자들에게 최대의 수익을 돌려주어야 할 소명을 가진 대리인(agent)일 뿐이다.
흔히,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나, 이는 기부나 자선 행위와는 전혀 다른 차원이다. 앞에 소개한 프리드만 교수는 ‘기업들의 최상의 사회적 책임이란 최대 이익을 실현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기업 경영 책임자는 주주들이 고용한 ‘피고용인(employee)’에 불과하고, 주주들의 목표는 사회적 룰 안에서 최대의 이익을 향유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처럼, 은행도 기본적으로 이익을 추구하는 사기업인 점에서 최대 이익을 실현하고자 노력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은행 경영 책임자들은 주주들에 최대의 배당을 주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투자자들에게는 당초 약정대로 만기일에 원리금을 상환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소중한 재산을 맡긴 예금주들에게는 원리금을 안전하게 지급해야 하고, 정부에도 최대한 많은 세금을 납부하도록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이는 경영권을 수임한 대리인으로서는 기필코 이루어야 할 당위이다. 따라서, 이런 합법적 이익 목표를 추구하는 것을 침해하는 것은 결국 이해관계자들의 이해를 고의로 침탈하는 게 될 뿐이다.
참고로, 우리나라 ‘과점적’ 시장 사례를 들어보면, 이제는 은행 서비스만큼 국민 생활에 필수적인 자동차 산업도 실제로 한 기업이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고, 가전, 반도체 분야도 불과 한 두 기업이 시장을 점유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들 기업들의 영업이익률은, 회계상 구성 항목이 달라 직접 비교는 어려우나, 은행들의 예대금리차에 비해 월등히 높다. 게다가, 제품 판매 후 사후관리 책임이 비교적 약한 이들 기업들과 달리, 은행들의 여신 운용 기간은 통상적으로 짧아야 1년으로 장기 거래가 대종을 이루고, 그 기간에 은행들은 차주들의 신용 리스크 및 제공된 담보물의 가치 변동 리스크도 부담하는 것이다.
■ “금리 상승기에 은행들 ‘예대 마진’이 확대하는 것은 예견된 것”
그러면, 지금 크게 논란이 되고 있는 은행들의 ‘과도한’ 이익 인식은 어디에서 발단한 것인가? 주지하는 바, 이는 코로나 사태 종식을 앞두고 각국이 고(高)인플레이션에 대항하기 위해 앞다투어 정책금리를 인상한 데 따른 예견된 결과임이 분명하다. 美 연준은 작년 3월 FOMC를 기점으로 종전에 Covid-19 위기 대응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취했던 유례없는 금융 완화에서 급전환해서 정책금리 인상 및 긴축으로 돌아선 뒤, 계속해서 이례적인 대폭 금리 인상 페이스를 이어오고 있다. 이에 따라, 각국 중앙은행들도 모두 금리 인상에 나섰고 글로벌 시장 금리도 상승 일변도를 걸어왔다.
이렇게, 금융시장 상황의 반전은 돌발적인 것이 아니라, 이미 2021년 말 전후 Covid-19 팬데믹 사태 종식이 거론될 무렵부터 각국 중앙은행들이 기록적인 고(高)인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해 정책금리를 인상할 것은 예고되어 있었다. 한편, 많은 실증적 연구 결과 공통된 결론이나, 시장 금리가 상승하는 시기에는 은행 예대금리차(NIS)가 확대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참고로, 한국은행의 최근(2022. 10.18) 보고서도, 우리 은행들의 예대금리차가 금리 상승기에 확대되고, 변동금리 대출 혹은 저(低)원가성(性) 예금 비중이 높아질수록 확대 정도가 더욱 커진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은행들은 대출 시장 점유율이 높은 시기에 예대금리차가 확대되고, 대출 관련 신용 및 유동성 리스크가 커지는 시기에도 예대금리차가 확대됐다고 밝혔다.
이런 급격한 정책금리 인상으로 촉발된 시중 금리 상승으로, 은행들이 굳이 이런 비상 상황을 이용해 횡재를 보겠다는 심산으로 금리 산정 절차를 바꾸거나 별다른 조치를 취한 바가 없어도 이익은 대폭 증가한 것이다. 즉, 은행들은 여전히 금융 당국과 협의된 기존 금리 산정 방식에 따라 대(對)고객 예대 금리를 책정해 왔고, 고객들은 이렇게 책정된 금리를 자발적으로 수용하며 거래를 해 온 것이다. 전후 사정이 이렇다면, 감독 당국은 마땅히 이례적인 정책금리 인상으로 이런 상황이 발생할 것을 예견하고 미리 필요한 지침을 세워야 했던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한편, 보다 신중하게 살펴보아야 할 현상으로, 이미 오래 전부터 우리나라 시중은행들의 여/수신 영업 활동에 나타나는 추세적 특징이지만, 기업들의 직접금융 시장에서의 자금 조달 여건이 개선되자 은행을 통한 간접금융 수요가 급격히 위축되는 등, 은행 영업 환경이 급격히 핍박해지고 있다. 이는 곧바로 은행들의 예대금리차(NIS) 축소로 나타나고 있다. 참고로, 은행연합회가 공시한 2022년 12월 기준의 정책적 서민금융을 제외한 ‘가계 예대금리차’는 평균 0.64%로, 전월에 대비해서 0.18% 축소된 것으로 나타났다. 개별적으로는 전북은행(5.71%), 토스은행(5.48%)이 가장 높은 수준이었고, 4대 시중은행들 평균은 0.6~0.7%대에 머물렀다. 이는 결코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약탈적’ 영업 결과로 보기는 어려운 수준이다.
■ “은행이 ‘약탈적’ 영업?’ 금융감독 책임자의 언사로는 대단히 위험”
이런 가운데, 은행들의 ‘과도한’ 이익 논란과 관련해서 크게 이목을 끌 만한 발언은 단연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은행들이 ‘약탈적(掠奪的)’ 영업을 하고 있다’ 고 지탄한 것이 아닐까 한다. 한 마디로, 우리나라 은행들 영업 활동을 감독하는 정부 기구의 최고책임자가 한 발언으로는 대단히 유감스러운 것일 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결코 적지 않은 후과(後果)를 불러올 법한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이 금융감독원장의 발언의 진의가 어디에 있는지 정확한 속내를 알 수는 없으나, 사전적 의미에서도 그렇고 어감 상으로도 ‘약탈적’이라는 표현은 불의, 불법하다는 부정적 의미를 담고 있다. 통상, ‘약탈’ 행위는 전쟁, 자연 재해 발생 시 폭력으로 남의 재물을 빼앗는 행위를 말한다. ‘군 형법’에는 전투 지역 혹은 점령지에서 군의 위력 또는 공포를 이용해서 주민의 재물을 강제로 약취하는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일반 민, 상법 또는 형법에는 아예 ‘약탈’이라는 개념 규정 자체가 없다.
굳이 일반 상(商)거래에서 일어날 수 있을 ‘약탈적’ 거래에 근사한 경우를 유추해 보자면, 자발적이고 대등한 거래 관계를 깨뜨리는 강압적 거래 형식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따라서, 은행들이 ‘약탈적’ 영업을 했다면, 이는 은행들이 위난에 처한 상대방을 강압적 수단으로 억눌러 예금 혹은 대출 거래를 한 것으로 상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문한 탓인지 모르나, 지금까지 어느 은행, 어느 창구에서 고객의 의사에 반해서 강제 수단이나 사술(詐術)을 동원해 고객이 원치 않는 불리한 조건으로 대출 거래를 실행했다는 사례는 들어본 적이 없다.
은행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예금 및 대출 거래에서, 예금자는 나름대로 이해득실을 꼼꼼히 살펴보고 스스로 선택한 은행을 찾아서 소중한 자기 재산을 맡기고, 반대로, 대출자는 나름대로 사업 기회의 타당성을 계산해 보고 자금 용도를 면밀하게 예산한 뒤에 가장 유리한 조건을 제시하는 은행을 찾아 제시하는 조건을 충분히 숙지하고 이에 동의함으로써 최종적으로 대출 계약이 성립되는 것이다. 따라서, 어느 형태의 거래이건 간에 계약 성립 과정에 아무런 강압적 수단이 개입될 여지는 없다.
또한, 이 금융감독원장의 발언 중에는 ‘은행 간에 상품이나 금리에 별로 차이가 없는 데도 은행들이 엄청난 수익을 냈다’고 힐난하는 대목도 있다. 전세계적으로 금융시장은 인간들이 만들어낸 가장 효율적인 시장(efficient market)으로 인식되고 있다. 전세계 구석구석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정보들까지도 순간적으로 시장으로 전파되고 시장 참가자들은 이들 정보를 이용해서 자유로운 경쟁을 벌이고, 이를 통해 가격(금리)은 거의 실시간으로 평가(平價)를 이루게 된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통해 형성되는 금리는 가장 공정하고 합리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여기에 누가 개입해서 가격 형성을 왜곡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고 또한 용납되지도 않는다.
■ “은행업을 ‘완전 경쟁화’ 하겠다는 발상은 과연 타당한 것인가?”
이런 논점의 연장선 상에서, 은행 시장을 ‘완전 경쟁화’ 하겠다는 발언도 나왔다. 이는 일반적인 금융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발언이다. 앞으로 우리나라 은행 및 금융 시장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수 있는 ‘폭탄성’ 발언이라는 생각도 든다. 어느 시장이 ‘완전 경쟁’ 상황이 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시장 ‘진입’ 및 ‘퇴출’이 온전히 잠재적 시장 참가자들의 자유 의사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제일 조건이다. 이와 함께, 이미 시장에 진입한 참가자들의 경쟁 및 가격 관련 의사결정에 정부를 포함한 어느 다른 주체도 규제나 통제를 하지 않을 것이 기본적 조건이다. 결과적으로, '완전 경쟁' 하의 금리 결정은 절대적 영향력이 없는 무수한 참가자들의 자유 경쟁으로 이루어지고, 이런 논리대로라면 현행 은행 관련 모든 규제도 사라져야 할 것이다.
구체적으로, 은행 시장을 ‘완전 경쟁화’ 하는 대안으로, 지방은행들의 영업 범위를 확대 개방하거나, 부분 허가 은행들을 다수 진입시키거나, 빅테크 기업들의 은행 시장 참여를 허가하는 등, 다양한 구상을 내놓고 있다고 들리나, 이는 금융시장 및 은행 산업 고유의 속성을 지나치게 간과한 결과가 아닐까 한다. 우선, 은행 산업이란 대량의 자금을 중개하는 전형적인 거대 ‘장치(裝置)’ 산업이다. 최근 들어 첨단기술 도입으로 영업 행태가 급격히 변천하고 있다고는 하나, 기본적으로 국경을 넘나드는 광범한 영역을 대상으로 자금을 중개하는 거대한 네트워크를 구성할 것 등, 엄청난 인프라 구축이 필수적인 것에는 변함이 없다. 따라서, 정확하게 이해해야 할 것은, 최근 시장에 우후죽순격으로 출현하는 무수한 Fintech 스타트업 기업들도 실은 기존 대형 은행들에 개설된 계좌 및 글로벌 네트워크를 차용한 연결 업무를 수행하는 부분적 지급/결제 기구에 불과한 경우가 태반인 점이다.
혹시, 실제로 벌어지는 시장 사례를 원용해서 참고할 만한 것으로, 최근까지 거의 자유 경쟁이 허용되던 ‘가상화폐’ 시장에서 당국의 규제, 감독이 소홀한 틈을 타서 얼마나 사악한 불법 행위가 자행되고 있는지는 이미 여러 보도를 통해 주지하는 바이다. 이런 사례를 조금이라도 눈 여겨 보면, 시장의 진입, 진출이 '완전 경쟁화'된 은행 시장에서 얼마나 많은 고객들이 얼마나 엄청난 리스크에 노출된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당국은 은행 산업을 ‘완전 경쟁화’ 한 뒤 우후죽순으로 출현할 수많은 미니 은행들, 유사 은행들을 누가, 어떻게 규제하고 감독할 것인지를 신중히 가늠이라도 해 봤는지 지극히 의문이 든다. 그리고, 감독 실패에 따른 회복하기 어려운 잠재적 폐해가 얼마나 클 것인지를 헤아려 보기나 했는지도 의문이다.
흔히, 어항에 메기를 넣어 금붕어들을 강하게 키운다는 비유를 말한다. 다분히 일리가 있는 얘기다. 그러나, 현 상황에서 가령 다양한 전문 분야에 특화된 인터넷 은행들, Fintech 스타트업 기업들을 은행 시장에 대거 진입하도록 조장하거나, 후발 지방은행들에 업역이나 지역 제한을 해제해서 5대 금융 그룹들과 경쟁하도록 허용한다고 해서 이것이 과연 메기를 넣는 것이 될지, 아니면 송사리 몇 마리를 넣는 것에 불과할 지는 현 상황에서 그리 쉽게 예단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 금융감독원장의 발언 중에는 은행들이 점포를 줄이는 것은 금융 서비스 접근이 어려운 취약 계층의 은행 접근성을 떨어뜨리는 것이라는 비판도 있다. 이는 단기적으로 수긍할 만한 지적이다. 그리고, 정부의 책임자로서는 의당 우려할 수 있는 관점이라고 본다. 그러나, 앞서 설명한 대로 은행도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으로서 경제성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고, 현재 글로벌 추세가 온라인 업무 확대 및 ‘현금 없는 사회(Cashless Society)’로 급격히 이행되는 상황임을 감안하면 경제성을 상실한 잉여 점포들을 폐쇄하지 않을 수 없음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우려되는 바와 같이 소외되는 취약 계층을 위해 금융 접근성을 보다 광범하고 촘촘하게 확장하는 문제라면, 영리 기업인 시중은행들보다는 경제성을 뛰어넘는 영업이 가능할 공적 금융 기구들을 활용해서 대응해야 할 문제라고 본다. 지금 우리나라 은행들 가운데 지방 곳곳까지 가장 넓은 점포망을 가진 금융 그룹이 NH농업은행을 주축으로한 농협 네트워크이다. 이익 추구를 기본 사명으로 하는 은행들을 자선심과 정의감으로만 바라본다면 그것이야 말로 본질을 벗어난 것일 수 있다.
■ “지금은 디지털 대변혁(DX) 시대, 창조적 혁신 대세를 따라야”
앞에 소개한 바이나, 공교롭게도 정부는 얼마 전에, 우리 은행들의 낙후된 지배구조를 혁파할 것을 천명한 바가 있다. 이는 그야말로 만시지탄이고 누구나 환영할 만한 일이다. 이전부터 우리 은행들은 끊임없이 후진성 불법 스캔들에 휩싸여 왔고, 최근까지도 일선 창구에서 불완전 판매 등 폐습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어 지탄을 받기도 했다. 오죽하면 어느 먼 오지의 후진국 수준이라는 오명을 받지 않았던가? 일면, 우리 은행들이 산업화 시대를 거치면서 강력한 중앙집중식 경제 운용에 타율적으로 대응하다 보니 그런 영업 관행이 현실 순응적으로 정착됐고, 자기 혁신에 나태하게 지내온 업보이기도 하다. 이에 더해, 어느 은행이라고 할 것도 없이, 누대의 최고경영자들이 오히려 자기 보신을 우선해 이런 전래되는 폐습에 안주하며 정작 창조적 혁신에는 무심하고 게을리한 타성이 쌓여온 탓이다.
한편, 현재 우리 은행들이 처해 있는 내외 경영 환경을 둘러보면 이제 우리 은행들은 그간의 후진성을 탈피하는 것을 넘어서 격심한 첨단기술 혁명 시대에 걸 맞는 총체적인 ‘창조적(파괴적) 혁신’을 펼쳐 나가지 않으면 안 될 절체절명의 시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가장 첨예한 당면 과제가 바로 나날이 발전하는 인공지능(AI), 증강현실(AR) 등 첨단기술을 남들에 앞서 은행 업무에 도입하는 문제이다.
이미 오래 전부터 글로벌 사회에는 ‘비대면(非對面) 활동의 확대’, ‘현금 없는 사회’로의 이행이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어가고 있다. 이에 따라 탈(脫)은행 현상이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지금 은행들이 경제성이 떨어진 유휴 점포를 줄이고 서비스 제공 절차 개선으로 생겨나는 잉여 인력을 감축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도 하다. 얼마 전 열렸던 ‘다보스’ 세계경제포럼(WEF)에서는 IT, AI 기술 발전으로 2030년까지 전세계에서 8,500만명이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는 전망이 제시됐었다. 그리고, 이전부터 전문가들은 새로운 IT 혁명 시대에 ‘가장 먼저, 가장 큰’ 타격을 받을 분야 중 하나로 은행 산업을 꼽고 있다.
이미 오래된 일이나, 컴퓨터 과학기술계에 ‘무어의 법칙(Moore’s Law)’이라는 것이 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매 2년마다 컴퓨터 기술이 배증한다는 원리이다. 이를 감안하면, 우리 은행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과학기술 진보의 결과를 얼마나 신속하게 조직에 도입해서 ‘차세대 은행(Bank 2.0)’ 체제를 확립할 것인가가 장래에 생잔 여부를 결정지을 것임은 틀림없다. 아울러, 이런 차세대 은행 환경에서는 무한한 도전 과제들이 기다리고 있고, 동시에 상응하는 기회도 제공될 것이다. 누가 먼저 경쟁 우위를 점하고 진전을 이루느냐가 최대 승부처가 된다는 것이다.
이런 흐름 속에, 지금 선진 은행들은 그야말로 사활을 건 기술경쟁에 나서고 있다. 이들은 Fintech 스타트업 기업들은 물론, 구글, 아마존 등 이(異)업종 빅테크 기업들과 전방위 경쟁을 벌이는 중이다. 가장 선두에 있다고 알려지는 JP Morgan & Chase 은행은 최근, 첨단기술 도입을 통한 對고객 서비스 채널 및 경영 시스템 혁신 분야에 매년 140억 달러에 달하는 엄청난 투자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이런 추세에 맞춰 한시 바삐 총체적 혁신을 시동해야 할 우리 은행들에 주어진 시급한 과제는 이런 험난한 글로벌 경쟁 시대를 이끌어갈 탁월한 리더십을 갖춘 최고경영층을 포함한 지배구조를 발본 개혁하는 것이라는 점은 재언할 필요도 없다.
■ “금융시장 육성은 유형 시설보다 제도 개선과 규제 혁파가 첩경”
이전에 어느 정권 시절인가, 서울 여의도 일대를 ‘국제금융센터(IFC)’로 육성하겠다는 원대한 구상을 내놓은 적이 있다. 결국, 건물 몇 채 세운 것 외에 별반 실적도 없이 허공으로 사라진지 오래다. 한 마디로, 이런 발상은 적어도 현 시점에서는 금융시장의 본질과 실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본말이 전도된 생각이다. 현 정부는 아직 명확히 공표한 바 없으나, 혹시 내부적으로 라도 그런 구상을 세우고 있다면, 이번에 은행들의 실적과 관련해서 금융 당국이 취하고 있는 대응 자세 및 조치들을 스스로 그런 구도에 대입해서 한번 숙고해 볼 것을 권하고 싶다.
이전에 실행된 많은 실증적 연구에서, 어느 한 지역이 ‘국제금융센터(IFC)’로 형성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필수적 요건이 충족될 것이 필요하다는 공통된 결론이다. 여기에는, 규제, 세율, 부정부패 정도, 기업하기 쉬운 정도 등으로 요약되는 기업 경영 환경 이슈가 첫머리에 꼽힌다. 다음으로, 주거 부동산, 교통 연결성 등 훌륭한 생활 인프라가 구비되어 있을 것을 들고 있다. 또한, 법률 서비스 등 금융 활동을 지원할 업무 인프라가 충분히 제공될 것도 핵심 요건이다. 당연하나, 충분한 금융 전문인력 공급 잠재력도 핵심 고려 사항이다. 이번에, 정부가 은행 등 금융 시스템 및 금융기업 거버넌스를 발본 개혁하고자 나서는 입장에서, 우리 현실이 이런 요건들에 얼마나 부합하는지 한번 평가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요하면, 글로벌 금융시장은 인터넷으로 연결된 ‘무형의 네트워크’ 시장이다. 남대문 시장 저자 거리와는 그런 면에서 판이하게 다르다. 즉, 위에 예를 든 것처럼, 금융시장의 구성 요소들은 그 나라 사회, 문화, 경제, 금융 제도 전반이 망라된다. 따라서, 대부분 ‘국제금융센터’ 지역들은 공통되게 개별 주체들의 활동이 폭넓게 보장된 자유 경쟁 시장이라는 고유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와 함께, 글로벌 스탠다드의 행정, 사법 인프라도 필수적이다. 특히 유념할 것으로, 정부 개입이 최소화되어 있는 것은 물론, 관련 정책에 일관성을 유지할 것도 불가결한 요건이다.
지금 은행 혁신을 고심하는 정부의 금융 정책 책임자들은 이전에 그렇게 많이 진출해 있던 유수의 외국 은행들이 왜 줄지어 우리나라를 떠났고, 다른 한편, 외국에 진출한 우리 은행들이 현지에서 왜 그렇게 맥을 추지 못하고 있는지를 깊이 반추해 보아야 할 것이다. 재차 강조할 일이나, 글로벌 금융 플레이어들이 가장 꺼리는 것이 바로 예견하기 어려운 정부의 개입이라는 것은 익히 알려진 일이다. 다시 한번, ‘은행은 공공재’ 발언에 이어서 금융 정책 관련 고위 인사들이 은행들의 소위 ‘과도한’ 수익에 대한 질타가 쏟아진 뒤, 해외 주주들의 동향을 포함해서 은행들 주가가 하락한 배경을 유심히 관찰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일이다.
■ “정부 감독은 ‘예리한 칼날’, 근신과 정도(正道)와 효율을 존중해야”
정부는 다른 경제 주체들의 자유 활동을 제한할 수 있는 권한을 보유한 유일한 독점적 권력 기구다. 따라서, 정부의 비할 수 없이 막강한 권한은 예리한 칼날과 같아서 권한을 행사하는 주체는 누구나, 언제나 최대한 근신하고 자제해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이번에 감독 책임자가 은행들이 ‘약탈적’ 영업을 하고 있다고 언급한 것은 혹시 그간 감독 과정에서 기존의 룰에 반하는 사례를 적발하기라도 했다는 것인지 분명히 규명해야 할 것이다. 만약, 그런 ‘약탈적’ 사례를 인지하고도 지나쳐 왔다면, 무엇보다 우선해서 그 감독 라인의 책임자들을 일벌백계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기회에 또 한 가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은행을 감독하는 정부 기구가 개별 은행의 여/수신 금리 책정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 처사인가 하는 점이다. 그리고, 어떤 법적 근거에서 그렇게 개별 사기업의 상품 가격(금리) 책정 과정을 일방적으로 강제하는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은행 감독 기구의 기본 책무는 예금자들의 재산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은행들의 자산 운용 건전성을 유지하도록 감시, 감독하는 것이다. 즉, 은행들이 자금 잉여자들로부터 ‘수신(受信)’ 형태로 위탁 받은 자금을 다른 자금 수요자들에게 ‘여신(與信)’ 형태로 운용하는 데 따른 리스크를 대위(代位)하는 과정에서 적정한 건전성을 유지하도록 감시하는 일이다. 흔한 말로, 나쁜 놈들을 잡아내는 일은 이 기구의 기본 사명이 아니다. 이런 업무는 사법기관으로 하여금 처리하게 하면 될 일이다. 금융감독 책임자들은 항시 이런 기본 사명을 명확히 분별해야 할 일이다.
은행들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서 과도한 이익을 챙기고 있다는 지적이나, 사실, 어느 수준이 ‘과도한’ 것인가, 하는 질문에 정확한 답을 내놓기는 지극히 어려운 것이다. 이미 법률로 이자율 상한도 정해 놓았고, 은행들도 관련 규정을 준수하며 금리 산정 공식을 공시해 놓고 있는 처지에, 누구라도 자의적으로 선을 긋고 과도하다고 판정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혹시, ‘정부 마음에 들지 않는 선’이 과도한 것이라면 이는 정도를 벗어난 사적 발상일 뿐이다. 앞에 예를 든 다른 산업 분야의 ‘과점’ 기업들이 막대한 이익을 실현하면 쌍수를 들어 반기고 칭송하면서, 유독 은행들에 대해서는 ‘과도한’ 것이라며 질시하는 자세는 온당치도 않고 사리에도 맞지 않는다. 기업들이 영속할 기반을 유지하기 위해 최대 이익을 추구하고 내부에 축적해야 한다는 점은 은행도 일반 기업들과 하등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혹여, 은행들의 ‘과도한’ 이익이 그다지도 못마땅하고, 처분 용도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면, 사전에 해당 은행들에 지침을 주고, 예를 들면, 장래의 경기 부진 시기에 대비하거나, 향후 막대한 규모의 첨단기술 투자 소요를 상정해서 이익금 일부를 듬뿍 내부에 유보하도록 유도하는 정책을 썼었다면 훨씬 바람직했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이미 결산 회계도 끝나 당기순이익이 확정된 마당에, 게다가 주총을 바로 코 앞에 두고 있는 시점에서 이익이 과다하다는 둥, 처분이 잘못됐다는 둥, 힐난하고 나서는 것은 볼썽 사납기도 하고, 그 자체로 시장에 매우 부정적인 시그널을 보낼 뿐이다.
마지막으로, 정책 당국이 깊이 새겨야 할 사항으로, 은행이란 겉에 보이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정교한 네트워크로 이루어진 구조여서 생각처럼 쉽게 들고 날 수 있는 시장이 아니라는 점이다. 은행 혁신을 논하는 경우에도, 이런 내면적 특성을 잘 헤아려야 할 것이다. 바야흐로, 우리 은행들은 선진 경제를 향해 일취월장하는 국가 경제와 보조를 맞춰서 조화롭게 기여할 수 있을 태세를 갖추라는 준엄한 사회적 요청에 직면해 있다. 이를 몸소 실행해야 할 은행들은 말할 것도 없고, 이를 뒷받침하고 유도해야 할 금융 당국도 일시적인 분위기에 휘둘릴 필요 없이 보다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시각에서 명철한 안목과 비전을 가지고 우리 은행들이 한시 바삐 효율적인 공기(公器)로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 합심 노력할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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