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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氣)와 성정(性情) 가다듬기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4년10월31일 21시33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9일 13시28분

작성자

  • 국중호
  • 요코하마시립대 경제학 교수

메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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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기(氣)와 성정(性情) 가다듬기

정경일침의 예시

일본에서 지내고 있다는 입지를 살려 잠시 일본의 정치, 경제 문제 두어 가지 들어 일침을 가해 봅니다. 최근 들어 일본은 어디서 누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기 어렵게 되었고, 설사 알았더라도 연락을 취하기 어려워졌습니다. 프라이버시 보호란 명목으로 2005년 ‘개인정보보호법’이 실시된 이후 정보가 돌지 않기 때문입니다.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담그는 나라가 되어가고 있다고 하겠지요.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에서 보인 도쿄전력의 안하무인 태도 및 관료∙정치와의 유착, 현 아베(安倍晋三)정권에서의 ‘특정비밀보호법’ 실시, 국무회의 (각의: 閣議)의 ‘집단적 자위권 발동’을 위한 헌법해석 변경 등, 국민의 손발을 묶어 자유스런 비판을 봉쇄하고 있는 것이 이 나라에서 벌어지는 작금의 현실입니다.

아베노믹스라는 경제정책이 잘 나가는 것처럼 포장하고 있지만, 저는 ‘속빈강정’으로 보고 있습니다. 일본은행과 정부의 돈풀기(대담한 금융완화, 기동적인 재정정책), 계획난무의 성장전략이 그 주요 내용입니다만, 겉치장 번드르르한 실패정책으로 자리매김 될 것입니다. 너무도 무거운 나랏빛에 눌려 있기 때문입니다. 국가는 빚더미에 눌려있고 국민은 국가에 짓눌려 있습니다. 2020년 도쿄올림픽 유치를 계기로 일본경제가 잘 나갈 듯 선전하지만, 겁을 무릎쓰고 점쳐보면 어쩌면 도쿄올림픽 이후에 일본경제 추락 신호가 더욱 가시화 될 듯합니다. 지금은 일본국민의 금융자산이 정부의 빚덩이보다 많아 버티고 있지만, 올림픽 이후 빚더미가 자산 규모를 웃돌아 국가재정에 대한 신뢰와 위상이 두드러지게 실추될 것이기 떄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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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는 운칠능삼(운이 칠할이고 능력이 삼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도쿄올림픽 이후는 아베정권이 끝났을 터이고, 그때면 자기탓이 아니라고 돌리면 될 터이니 아베수상 개인으로 보면 운이 좋은 정치인입니다. 일본국민한테는 불행이 되겠지만 말입니다. 이처럼 일본이 정치, 경제를 잘 이끌고 있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그럼 우리는?

일본은 그렇다치고 우리가 자랑스러운가 하면 가슴젖히고 ‘아무렴 그렇지’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1995년), 대구지하철 참사(2003년), 올해의 세월호 침몰, 판교 공연장 추락사고 등, ‘참 사고가 많은 나라’라 일본이 한국을 꼬집습니다. 부끄럽고 안타까운 사고들임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성정이 거칠어지고 기가 흩어진 까닭에 나타난 사고들입니다. 우리가 안고 있으면서 가장 절실하게 풀어야 할 과제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의아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저는 흩어진 기(氣)와 거칠어진 성정(性情)을 되돌리는데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기가 흩어지고 성정이 거칠어진 데는 흙딛는 시간이 극히 줄어들고 부드러운 곡선을 없애고 까칠한 직선으로 생활권을 바꾸어 온데 그 원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태어난 서산(瑞山) 성연(聖淵)면은 상서로운 산과 성스러운 연못의 고장이니 필연 좋은 기운을 받고 자라왔다고 자부합니다. 떡방앗간이던 저의 집과 뛰놀던 마당이 흔적없이 사라져 개발지로 바뀌었으나 저는 고향 땅을 엄청 사랑합니다. 많은 분들이 그러했듯 어린 시절 공부 좀 한다고 하던 사람들은 도회지로 나가 출세하여 금의환향을 꿈꾸었던 때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금의환향은 하지 못하고 일본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또 가끔씩 한국을 왔다갔다 하면서 우리 강산과 사는 모습을 관찰해 왔습니다.

 

창가에서 조망하는 네모 투성이

비행기로 한일 상공을 왕복할 때면 가능한 한 창쪽 좌석을 달라고 합니다. 그러는 이유 하나는 푸른 창공과 자유스런 구름 모양이 갖은 상상을 불러오고 일본의 답답한 사고방식이나 짙은 폐색감 냄새에서 벗어나게 하기 때문입니다. 창가 좌석을 찾는 또 하나의 이유는 한반도 하늘 위로 접어들면서 대한민국의 좁은 땅덩이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산이 많은 한국이기에 비행기 창밖으로 보면 녹색의 수풀이 피곤했던 눈을 싱그럽게 회복시켜 줍니다. 생동감을 선사합니다. 그러다가 빽빽한 도회지 모습이 시야에 들어오면 눈은 다시 뻣뻣해져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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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장 같은 아파트군(群)이 90도 각도로 삶의 터전으로 자리잡고 있고, 활동무대인 사무실이나 장사공간도 네모 건물 투성이 입니다. 둥글둥글이 없습니다. 곡선의 전통가옥이 모두 헐려나갔고 사각의 연립주택이 들어섰습니다. 아카시아꽃이 활짝 폈던 동구밖 과수원 길도 반듯한 콘크리트 길로 포장되었습니다. 모난 사각과 콘크리트가 늘어나며 우리네 성정에 각이 지기 시작했고 땅기운이 막히며 얼굴 표정도 딱딱해 졌습니다. 70년대 유행가였던 돌고 도는 ‘물레방아 인생’의 정취도 사라졌습니다. 

 

어떻게 살라 가르치냐의 고뇌

잘살게 되었지만 가슴팍 여기저기에 허무한 구멍이 숭숭숭 뚫려 있습니다. 그렇다고 가난에 찌들었던 옛시절로 돌아가자는 얘기는 결코 아닙니다. 저 자신이 어른이라는 대열에 들어섰고 가르치는 직업으로 젊은이들 앞에 서 있습니다만, 도대체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 또 어떻게 살라고 해야 하는지 혼란스럽습니다. 전문가가 되라고 역설하자니 몰인간이 되라고 몰아대는 듯하고, 두루두루 섭렵하라고 권하자니 한 가지도 깊이 파기 벅찬 이즈음 직업상의 낙오자로 떠미는 듯합니다.

글로벌 시대일수록 지역특성을 살려야 한다고 하지만 우리의 어떤 특성을 살려야 하는 것일까요? 우리 한민족은 끼도 많고 흥도 넘치기에 한번 불이 붙으면 엄청난 에너지로 가꾸어 가겠지요. 하지만 어디로 가야 하는지 방향타를 잃었고 그렇게 한동안 지내다보니 운기(運氣)와 하심(下心)을 하지 못하고 조급해졌습니다. 우리 문화유산을 끔찍히도 사랑하는 유홍준 교수는 그의 명저 답사기에서 “나는 항상 우리 시대의 문화능력으로는 옛 유적에 손대지 않는 것이 최상의 보존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며 애잔한 심정을 토로합니다. 선조들이 빚어낸 유산을 지금의 우리가 손대면 부정타 오히려 그 정수(精髓)를 흐려놓는다는 애석함이 배어 있습니다.

 

정경일침이라 한 까닭

정치, 경제, 일상사회의 일그러진 문제에 일침을 가하는 모습으로 다가가고 싶다는 뜻에서 블로그 간판을 ‘국중호의 정경일침’으로 잡았습니다. 기회가 되는대로 하나의 주제를 잡아 정경일침 각론의 사랑방 얘기로 이어가고자 합니다. 애증어린 한일성찰이 있을 것입니다. 저 자신에게도 반성의 일침을 잃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속깊은 전문가와 폭넓은 일상인’의 지향에는 모순이 서려있지만, 모순을 헤쳐가는 것이 삶의 묘미이기에 용기를 내어 역설할까 합니다.

데뷰전이라는 핑계로 제 신변 넉두리를 곁들이고, ‘기(氣)와 성정(性情) 가다듬기’라는 뜬금없이 벅찬 제목으로 총론을 선보였다고 보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내공쌓기 노력이 있어야만 우리의 숭숭 뚫린 허술함을 치유해 줄거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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