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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때만 외쳐지는 경제민주화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4년10월26일 21시11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9일 13시34분

작성자

  • 최정표
  • 건국대학교 교수, (전)경실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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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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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때만 외쳐지는 경제민주화

 어느 사회에나 갈등은 있기 마련이다. 계층 간 갈등, 지역 간 갈등, 인종 간 갈등, 종교간 갈등, 이념 간 갈등 등 그 이유는 부지기수이다. 우리나라도 갈등의 역사는 깊다. 해방 이후의 이념 갈등은 결국 참혹한 전쟁으로까지 이어졌다. 이념갈등은 나라를 쪼개면서 진정 되었지만 그 여진은 아직도 지속되고 있다.


그래도 우리나라는 다행으로 생각해야 할 측면도 있다. 가장 고약한 갈등은 세계역사를 바꾸고 잔인한 전쟁까지 일으킨 인종 갈등과 종교 갈등인데 우리나라는 단일민족이니 인종갈등은 원천적으로 발생의 여지가 없다. 종교 갈등은 우려되는 바도 있지만 아직까지는 서로 조심하면서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지역갈등은 한때 심각한 국면으로 치닫기도 했지만 크게 우려할 수준은 아니라고 본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지역 갈등은 인종의 차이와 종교의 차이가 함께 하고 있다. 그래서 지역갈등은 전쟁으로까지 연결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인종이나 종교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지리적인 차이에서 오는 갈등일 뿐이다. 지역갈등은 애향심 차원으로 해소될 여지도 많다.
계층 갈등도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조직화된 갈등은 아니다. 저소득층이 조직을 만들어 활동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한때 빈민운동이 조직화되었지만 경제성장과 더불어 무력화되고 이제는 그 잔재도 거의 찾기 어렵다.

 그런데 이념 갈등은 심각한 수준이다. 해방 이후의 이념 갈등은 나라를 쪼개고 전쟁을 일으켰는데 현재에도 이념 갈등은 북한의 존재 때문에 건전하게 승화되지 못하고 있다. 이념 갈등은 크게 왜곡되고 있다. 반대쪽을 공격하는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

이념 갈등은 좌파 대 우파, 사회주의 대 자본주의, 보수 대 진보 등으로 나눠지는 대립관계인데, 한쪽을 친 북한 내지 종북으로 몰아 버리기 때문에 남한에서는 건전한 이념 논쟁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이념갈등은 건전하게 풀리지 않고 왜곡된 대립으로만 가고 있다. 그리고 상대방을 공격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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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 독재시대에는 독재세력 대 민주화 세력 간의 대립이 심각했다. 이승만 독재, 박정희 독재, 전두환 독재 등에는 강한 저항세력이 있었는데 이들을 민주화세력이라고 불렀다. 민주화 세력은 정치세력이고 정치권력을 두고 투쟁을 벌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도덕적 우위를 가지고 있었다. 물리적 힘은 약했어도 도덕적 우월성이 있었다. 그것이 큰 무기였다. 그렇기 때문에 끈질긴 투쟁이 가능했고 결국 승리하였다.

민주화 세력이 정치권력을 장악하자 과거 독재세력들은 산업화 세력이라고 스스로를 치장하였다. 그들의 집권 시에 산업화를 이루고 고도성장을 이루었다는 논리이다. 독재세력도 결코 죽지 않았다. 이제 민주화 세력과 산업화 세력은 새로운 갈등 관계가 되었다. 산업화 세력은 다시 우리 사회의 주도세력으로 부상했다.

반면에 민주화 세력은 이제 여러 가지로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독재시대는 민주화라는 말 그 자체가 황홀한 무기였다. 그런데 막상 민주화가 되어 버리니 그것은 더 이상 무기일 수 없다. 토끼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가 소용없어지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약발이 빠져버린 것이다. 거기다가 민주화 세력에는 색깔까지 입혀지고 있다.

민주화 세력은 진보이고, 좌파이고, 전라도이고, 더 나아가서는 종북이라고 덮어씌워버린다. 산업화 세력이 사용하는 전가의 보도가 독재시대보다 지금이 더 잘 먹히고 있는 것이다. 독재시대에도 민주화 세력을 빨갱이로 몰았다. 그러나 민주화라는 명분과 도덕성이 워낙 강했기 때문에 이런 덮어씌우기가 먹혀들지 않았다. 그런데 아니러니 하게도 지금은 먹혀든다. 기절초풍 할 일이다. 

그래서인지 경제민주화 조차도 이런 덮어씌우기로 깔아뭉개려고 한다. 진정한 경제민주화 세력은 반대진영의 이념 공격까지 극복해야 할 판이다. 거기다가 경제민주화는 정치민주화만큼 강한 카리스마도 없다. 

선거 때는 여야당 모두가 경제민주화를 내세운다. 이것을 보면 경제민주화에 국민적 공감대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실천의 길은 정치민주화보다 더 어려워 보인다. 정치인들이 진정성이 없기 때문이다.

경제민주화는 정치인들에게 그렇게 절실한 사항이 아니다. 정치민주화는 직접 정치인 자기들의 일이었다. 그래서 목숨 걸고 싸웠다. 그러나 경제민주화는 직접 그들의 일이 아니다. 명분만 있을 뿐이다. 선거 때 그 명분만 적절히 이용하면 그들이 얻을 것은 모두 얻는다. 선거 이후에는 오히려 재벌에게 붙는 것이 유리하다.  

경제민주화 이슈는 여당이나 야당이나 큰 차이가 없다. 어느 쪽에게도 꼭 실천하려는 의지가 없다. 경제민주화는 국가와 국민을 위한다는 레토릭일 뿐이지 정치인들과 직접 연결되어 있는 이해관계는 아니다. 그들이 이용하고 싶어 하고 이용하고 있는 이슈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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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처럼 경제민주화는 이를 추진할 확실한 주체세력이 없다. 언론도 학생도 지식인도 이를 추진할 수 있는 주체세력은 아니다. 대통령만이 이 일을 해낼 수 있다. 대통령이 경제민주화에 대한 확실한 철학과 의지가 없고서는 실현되기 어렵다.

그런데 대통령은 어느덧 임기 중반에 들어섰다. 잊혀져버린 경제민주화를 되살리기에는 이미 때가 너무 늦어버렸다. 그럴 힘도 의지도 없다. 그렇다고 우리는 경제민주화를 영원히 내팽개쳐 버릴 것인가. 그러기에는 너무나 중차대한 과제이다. 한국경제의 명운이 걸린 과제이다. 아쉽지만 다음 선거와 다음 대통령을 기대해 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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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 2016년02월29일 13시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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