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려있는 정책플랫폼 |
국가미래연구원은 폭 넓은 주제를 깊은 통찰력으로 다룹니다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나라를 망하게 하는 확실한 법칙-혼군 #11:3대(代)만에 최강국 전연을 무너뜨린 모용위(M)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0년11월06일 17시00분
  • 최종수정 2020년08월17일 14시20분

작성자

  • 신세돈
  • 숙명여자대학교 경제학부 명예교수

메타정보

  • 1

본문

 

​혼군(昏君)의 사전적 정의는 ‘사리(事理)에 어둡고 어리석은 군주’다. 암주(暗主) 혹은 암군과 같은 말이다. 이렇게 정의하고 보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혼군의 숫자는 너무 많아져 오히려 혼군이라는 용어의 의미 자체를 흐려버릴 가능성이 높다. 역사를 통틀어 사리에 어둡지 않은 군주가 몇이나 될 것이며 어리석지 않은 군주가 몇 이나 되겠는가. 특히 집권세력들에 의해 어린 나이에 정략적으로 세워진 꼭두각시 군주의 경우에는 혼주가 아닌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번의 혼군 시리즈에서는, 첫째로 성년에 가까운 나이(17세) 이상에 군주가 된 사람으로서, 둘째로 상당 기간(5년) 군주의 자리에 있었으면서도 군주의 역할이나 올바른 정치를 펴지 못한 군주, 셋째로 결국 외부 세력에 의해 쫓겨나거나 혹은 제거되거나 혹은 돌연사 한 군주, 끝으로 국가의 존립기반을 크게 망쳐 놓은 군주를 혼군이라고 정의하였다​.​

     

(61) 모용각의 낙양 함락(AD364-AD365)

 

전연의 모용진이 성공적으로 허창가 여남을 잇는 회북지역을 장악하자 동진의 반격위험은 크게 줄어들었다. 전연 태재 모용각은 이제야말로 낙양을 공략할 적절한 시점이라고 판단했다. 먼저 사람을 낙양에 침투시켜서 성 안 사람을 회유하기 시작했다. 조만간 전연의 대군이 들이닥칠 것이니 병란을 미리 피해야 한다고 설득했다. 많은 사람들이 성을 버리고 나간 뒤 열희를 보내 맹진(낙양 북동쪽 황하 나루)에 주둔시키고 낙양공격을 강력하게 주장하던 예주자사 손흥이 성고(하남성 형양 사수진)에 진을 쳤다.  

 

낙양을 지키는 동진 관군장군 진우의 병력은 2천이 되지 못했다. 스스로 역적 왕돈과 함께 변을 일으키다 죽은 아버지의 치욕을 갚기 위해 아들 심경이 직접 낙양 수비에 참여하겠다고 나서자 동진 조정도 관군장군의 장사로 임명하여 허락했다. 심경은 직접 사람들을 설득하여 약 1천 여명의 병력을 만들어 전장 낙양으로 떠났다. 심경의 군대가 적은 병력으로도 훌륭하게 싸워 많은 전과를 내었지만 진우는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허창을 구한다는 명분으로 가지고 심경을 낙양에 남겨두고 빠져 나왔다. 심경은 오히려 잘되었다고 생각했다. 

 

“ 나는 마음 속으로 목숨을 바칠 생각이었는데

  이제야말로 그 때를 얻었구나.“

진우는 이미 허창이 함락되었다는 말을 듣고 한수를 따라 서쪽 신성(섬서성 안강)으로 달아났다. (AD364)

 

c3562ed5c224acfa81a3e0ab7c6ab8dc_1597639
 

낙양태수 진우가 낙양을 포기했다는 소식을 들은 동진 사도 사마욱이 당도현에 있던 환온을 만나 함께 전연을 토벌할 것을 의논했다. 그러나 황제 애제 사마비가 25세 나이로 붕어함에 따라 계획을 수행하지 못했다. 사마비의 후사가 없었으므로 그의 동생 사마혁이 황위에 올랐는데 이 사람이 6년 뒤 환온에게 폐위되는 동진 폐제이다.  

 

AD365년 3월 전연의 태제 모용각과 오왕 모용수가 함께 낙양침공에 참여했다. 모용각이 제장들에게 말했다.

 

“ 경들은 항상 내가 공격에서 미적거린다고 불평했었는데

  지금 낙양성이 높지만 저쪽 군사들이 피폐하므로 쉽게 이길 수 있을 것이다.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하게 나가 싸우라.“

 

성을 힘겹게 지키던 심경이 사로잡히고 낙양성은 함락되었다. 후환을 꺼려 심경을 죽였다. 

모용각은 심경을 죽인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했고 부끄러워했다.

 

 

(62) 사마광의 심경 칭찬

 

사마광은 용맹한 동진 양무장군 심경에 대해 이렇게 칭찬했다.

 

“ 심경은 능력있는 아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의 악함을 부끄럽게 생각하여

  죽음으로써 이를 씻어서 흉악한 반역의 집안이라는 오명을

  충성스럽고 의로운 집안으로 바꾸었습니다.

  <역>에서 말하기를 아버지의 허물을 없애는데 자신의 명예를 사용한다고 했고

  <채중의 명>에 이르기를 네가 앞 사람들의 허물을 덮는 것은 

  오로지 효성뿐이다 라고 했는데 

  그것은 심경과 같은 경우를 말함입니다.“  

   

낙양이 허물어지자 서쪽의 대국 전진의 부견은 군사를 거느리고 섬성(하남성 삼문협 서쪽)에 대기하면서 전연이 넘어오지 못하도록 방어했다. 전연에서는 모용축을 낙주자사, 모용수를 도독형양낙서연예옹익량진십주제군사 및 형주목으로 삼고 1만 군사를 주어 노양(하남성 노산)에 주둔시켰다. 이로써 전연의 서쪽 영토는 태원과 낙양과 남양을 남북으로 잇는 선으로 전진과 대치하게 되었다. 

 

 

(63) 전연의 명신 양무(AD365)

 

AD365년 4월 전연의 태위 봉혁이 고령으로 죽고 대신 사공 양무가 태위로 승진하고 사공 자리에는 황보진이 보임되었다. 양무는 전연의 네 황제를 섬겼는데 모용외로부터 모용준,모황, 모용준 및 모용위였다. 나이가 많아서 황제는 물론 모용각과 그 이하 모든 사람들이 양무에게 존경을 표시했다. 그러나 양무는 항상 겸손하기를 이 전보다 더 했고 자손들에게도 항상 경계할 것과 겸손할 것을 가르쳤으므로 법도를 어기는 일이 없었다.         

 

 

(64) 전연 태재 모용각의 죽음(AD367) 

 

새로운 황제 모용위가 어린 10세에 등극해서 이제 열여섯 살이 되었으니 정치를 관장하던 삼촌 태재 모용각과 종조부 모용평이 정치를 황제에게 돌려 드리고 개인 사저로 돌아가겠다고 간청했으나 모용위가 허락하지 않았다.(AD366) 

 

일 년 쯤 지난 AD367년 어느 날 모용각이 황제에게 이렇게 말했다.

 

“  폐하, 오왕 모용수의 재주는 신보다 열 배나 되지만

   먼저 돌아가신 황제께서 장유의 법칙에 따라 

   저를 오왕보다 먼저 세우셨습니다.   

   신이 죽거든 부디 나라를 들어 오왕을 곁에 두시고 

   그의 의견을 들으십시오.“

 

며칠 지나 모용각 병이 위독해지자 모용위기 친히 그의 집에 가서 후사에 관해 물었다. 모용각이 대답했다.

 

“ 신이 듣기로 은혜에 보답하는 길은

  훌륭한 사람을 천거하는 일보다 중한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현명한 사람이 비록 판축(담장 쌓는 막노동 일)하는 곳에 있다 하더라도

  재상으로 삼을 수 있는 법인데

  하물며 아주 가까운 친척이라면 어떻겠습니까.

  오왕은 문무의 재주를 다 갖추어

  관중이나 소하 다음 가는 사람이오니 

  폐하께서 만약 큰 정치를 맡기신다면

  반드시 국가는 안전할 것이나 

  만약 등용치 않으신다면 동진이나 전진이 틈을 만들어 

  계책을 꾸밀 것입니다.“   

 

그 말을 마치자 곧바로 모용각이 숨을 거두었다. 이 때 그의 정확한 나이는 알 수 없으나 대체로 40대 전반이었을 것이다.(동생 오왕 모용수 나이가 이 때 41세였음)   

 

(65) 전진이 전연의 틈을 엿봄(AD367)

 

전연의 모용각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전진에서는 그 틈을 노렸다. 일단 부견에게 항복했던 흉노 좌현왕 조곡을 시켜서 전연에 조공을 하도록 지시했다. 조공하는 척하면서 전연의사정을 염탐하려는 의도였다. 사신으로는 곽변을 보냈다. 곽변이 전연의 수도에 도착한 뒤 사공 황보진을 만나 이렇게 말했다. 특별히 황보진을 만난 이유는 황보진의 형제들이 모두 전진에서 높은 벼슬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제가 원래 전진 사람입니다만 

  집안이 전진에게 몰살되어

  할 수 없이 조왕(조곡)에게 붙어서 살아왔습니다만 

  전진에서 크게 쓰이시는 그대의 형님과 조카들을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황보진이 크게 노하며 곽변을 꾸짖었다.

 

“ 나는 경계 밖의 사람(형제친척을 의미)들과 

  사귄 일이 없는데 어찌 이런 말을 나에게 하는 것이요?

  그대는 간사한 인물 같으니 

  인연을 가지고 나에게 부탁하려는 생각 아니요!“

 

모용위에게 곽변의 저의를 말하고 끝까지 추궁하여 엄단할 것을 종용했으나 모용평이 반대하여 뜻을 이루지 못했다. 곽변은 서둘러 전연을 빠져나와 장안으로 돌아온 뒤 부견에게 이렇게 말했다. 

 

“ 전연의 조정과 정치를 보니 

  기강이 벗고 형편없이 무너져 있습니다.

  기회를 보고 변화를 아는 사람은 황보진 밖에 없었습니다.“

 

부견이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 여섯 주(유주, 병주사주, 연주, 예주)를 장악한 전연에 

  제대로 된 신하가 어찌 황보진 하나 뿐 이겠는가! “

 

c3562ed5c224acfa81a3e0ab7c6ab8dc_1597639
<ifsPOST>

1
  • 기사입력 2020년11월06일 17시00분
  • 최종수정 2020년08월17일 14시20분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