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정치 어렵다” 한탄 말고 정치 살려라 - 황교안 대표와 단독회담 수용해야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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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마비, 정치 실종 상태가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다. 민주당과 바른미래·민주평화당·정의당이 지난 4월 30일 선거제도 개편 법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신설 법안,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을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태운 이후 한국당이 강력 반발하면서 국회의 기능은 정지됐다. 한국당은 5월 한 달을 장외에서 ‘민생투쟁’을 벌였고, 여당인 민주당은 한국당을 비난하면서 세월을 보냈다.
국회엔 탄력근로제 확대 법안 등 처리가 시급한 법안들이 쌓여 있다. 정부가 4월 말 제출한 6조 7천억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도 계류되어 있다. 민주당에선 선거법안 등을 패스트트랙에 태운 원내대표(홍영표 의원)가 임기 종료로 물러났고 지난 5월 9일 새로운 원내대표(이인영 의원)가 선출됐지만 국회 정상화의 돌파구는 아직 열리지 않고 있다.
이런 ‘먹통 국회’를 보며 국민은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국회의원들에게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적용해서 세비를 반납케 하자”, “국회의원에 대한 국민소환제를 실시하자”는 등의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정치 어렵다”는 건 정치를 못하기 때문- 용렬함 버려야
여야 대립으로 국회가 마비되고 정치 실종을 지탄하는 목소리가 분출하자 문재인 대통령은 “정치라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다”고 했다. 5월 초 사회 원로들을 청와대로 불러 오찬을 함께 한 자리에서다. 대통령의 토로를 접하면서 이런 반문(反問)이 떠올랐다.
"대통령이 정치를 어렵다고 느끼는 건 그가 정치를 못하기 때문 아닐까? 대통령이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으니 정치가 쉽게 안 풀리는 게 아닐까? 대통령은 남 탓보다 자기 탓을 먼저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정치는 하기 나름 아닌가?"
문 대통령은 원로들과의 오찬에서 “대통령이 나서서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럼에도 대통령은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았다. 원로들이 소위 적폐청산과 소득주도성장 정책 등의 부작용을 지적하며 변화를 주라고 했지만 대통령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러니 “무엇 때문에 불렀는지 모르겠다”는 말들이 원로들 사이에서 나왔고, 이런 볼멘소리는 대통령의 경직성과 목석(木石) 이미지만 부각시켰다.
대통령은 국정운영의 최고책임자다. 국회가 정지되면 입법이 마비되고 법에 근거해 이뤄지는 행정도 멍이 든다. 국회 파행은 국정 부실로 이어지고, 국정 부실은 대통령의 책임으로 귀결된다. 미국 대통령들이 통상 의회에 먼저 손을 내밀고 야당 지도부는 물론 야당 의원들과도 자주 만나는 건 대통령이 의회와 야당을 배척하면 할수록 손해를 보는 건 대통령 자신이라는 점을 잘 알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과 민주당은 지난 2년 간 ‘청산의 정치’, ‘배제의 정치’에 치중했다. 이에 야당은 ‘저항의 정치’, ‘투쟁의 정치’로 맞섰다. 그로 인해 문제를 하나씩 둘씩 풀어가는 정치의 순기능은 마비됐고,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영향을 미치는 현안들은 ‘대결과 갈등의 정치’ 소용돌이에서 속절없이 표류하고 있다.
‘성과’ 내고 싶다면 대통령이 제1야당 대표에게 손 내밀어야
문 대통령은 요즘 관료 등에게 “성과를 내야 한다”는 말을 자주 한다. 성과가 나지 않고 있으니 조바심을 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성과를 못 내는 가장 큰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여전히 깨닫지 못하는 것 같다. 성과는 '아래 사람들'을 채근한다고 해서 이뤄지는 게 아니다. 대통령이 성과를 원한다면 성과를 낼 수 있는 길을 스스로 찾아 나서야 한다. 정치가 어렵다고 한탄만 할 게 아니라 정치의 기능을 살리는 노력을 대통령이 먼저 해야 하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취임 2주년을 맞은 5월 9일 KBS와의 대담에서 북한에 식량을 지원하는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여야 대표들과의 만남을 제의했다. 하지만 황교안 한국당 대표는 의제를 한정하지 말고 1 대 1로 만나 국정 전반에 대해 논의하자고 했다. 청와대는 단독회담 형식은 안 된다고 못을 박았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생각을 달리해서 황 대표의 제안을 수용해도 손해 볼 게 없다고 본다. 대통령이 통 크게 판단해서 꽉 막힌 정국을 먼저 풀려고 한다는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1 대 1 만남'이 말싸움으로 시작해서 말싸움으로 끝난다고 해도 대통령은 제1 야당 대표의 주장을 들으려고 노력했다는 평가는 받을 터이니 문 대통령이 황 대표를 단독으로 못 만날 이유가 없다. 문 대통령이 황 대표와 따로 만나면 다른 당 대표들도 같은 대접을 해야 하는 부담이 있을 테지만 대통령이 불편과 피곤을 감수하고서라도 야당 대표들과 1 대 1 연쇄 회동을 한다면 국민의 점수는 대통령이 더 많이 받지 않겠는가. 게다가 연쇄 회담에서 정국의 경색을 풀 수 있는 어떤 해법이나 단서를 도출한다면 그 공(功) 가운데 가장 큰 몫은 대통령에게 돌아가지 않겠는가.
청와대나 민주당이 ‘문재인-황교안’의 1 대 1 회담을 기피하는 근저에는 용렬함이 깔려 있다고 본다. ‘단독회담을 하면 제1야당 대표이자 보수의 차기 대권 유력주자인 황 대표를 키워주는 결과를 낳을 테고 황 대표가 문 대통령에게 공세적으로 나올 테니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게 여권의 판단일 것이다.
청와대와 여당이 대통령과 5당 대표가 한 자리에서 만나는 회담을 고집하는 속내엔 회담장에서 황 대표를 고립시키고 그의 목소리를 5분의 1로 축소시키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을 듯싶다. 선거제도 변경, 공수처 설치, 검경 수사권 조정, 대북 지원 등과 관련해 적어도 정의당·민주평화당 대표들은 문 대통령을 거들게 확실한 만큼 청와대와 여당은 이들의 도움을 받는 단체회담 형식을 고집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는 정치를 살릴 수 없다. 여권이 이처럼 좁쌀식 사고를 하기 때문에 정치가 어렵고 성과가 나지 않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 때 노무현 대통령이 꽉 막힌 정치를 풀기 위해 한나라당에 연정을 하자고 파격적인 제의를 했듯 문 대통령도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한다.
민주당, 패스트트랙 사과하고 선거법안 합의처리 약속해야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내년 총선 결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선거제도 개편과 관련한 법안을 제1야당의 의견을 묵살한 채 패스트트랙에 올린 독선과 독주에 대해 한국당에 사과의 뜻을 담아 유감을 표명하고 선거법안은 일정 시한 내에 반드시 합의 처리를 하겠다는 약속을 한다면 국회는 정상화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당이 패스트트랙 철회를 요구하지만 민주당이 사과하면서 선거법안 합의처리를 약속한다면 한국당은 수용할 수 있을 것이다. 대통령이 사정의 칼을 하나 더 쥘 수 있는 공수처 신설이나 비대해질 경찰권력에 대한 견제장치가 부족한 검경수사권 조정 문제와 관련해서도 한국당과 협의해서 처리하겠다는 입장을 민주당이 천명한다면 한국당은 원내로 복귀할 수 있을 것이다.
문 대통령과 민주당은 4월 25일 국회에 제출된 정부 추경안의 조속 처리를 희망하고 있다. 경제와 민생이 계속 나빠지는 만큼 정부 재정을 가능한 한 빨리 풀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회가 열리지 않는다면 추경 처리도 무한정 지연될 터, 급한 쪽은 대통령과 민주당이다. 한국당과 치고받고 싸우면서 시간을 허비할수록 손해를 보는 쪽은 대통령과 정부·여당이다.
대통령이 국정운영에서 성과를 내고 싶다면 효과가 없는 방식은 버려야 한다. 제1 야당을 배척하고 따돌리는 방식, 그래서 모든 걸 싸움과 투쟁의 도가니에 빠트리는 방식은 결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이젠 새로운 정치적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대통령과 민주당이 통 크게 양보하면서 대승적으로 나온다면 정치 복원의 물꼬는 트일 수 있을 것이다. 정치는 하기 나름이다. 마음먹기에 달렸다. 정치가 어렵다는 건 마음이 용렬하고 상상력이 부족하다는 고백에 지나지 않는다. <ifs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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