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 일기장, 자서전의 차이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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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 일기장, 자서전은 모두 미디어다. 무엇인가 전달자가 담고 싶은 콘텐츠가 담기고, 이것이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어 의미 공유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물론, 자기가 정리해 놓은 것을 나중에 자기가 다시 보면서 그 내용을 작성할 당시의 의미를 되짚어 볼 수도 있다.
문제는 선거의 계절이 돌아올 때 특히 더 많이 쏟아져 나오는 자서전 유형의 홍보 저서다. 흔히 홍보를 담당하는 누군가가 대신 써 주기도 한다고 알려져 있는 이 자서전은 진짜 자서전의 의미를 퇴색시키며 사람들을 현혹시킨다.
□ 앨범과 일기장
앨범에는 주로 사진들이 담긴다. 사진들 중에서도 특히 잘 나온 사진들이 담긴다. 더욱이 사진을 찍을 때는 ‘가장 좋은 표정’을 지으려 노력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찍을 때는 ‘가장 사이가 좋은 상태’를 담으려 노력하는 경향도 있다. 그래서 화내던 사람도 사진 찍을 때는 웃고, 싸우던 사람들도 사진 찍을 때는 다정한 포즈를 취하곤 한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앨범’이라는 미디어의 형식이 그 안에 담기는 ‘사진’이라는 콘텐츠의 구성을 어느정도 규정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앨범 안에는 ‘선별된’ 사진들이 담기고, 이러한 선별 과정에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다양한 삶의 장면들 중에서 베스트를 골라 담게 된다. 그리고는 나중에 이 앨범을 다시 들춰보며 좋았던 시절을 회상하거나 지인들에게 보여주곤 한다.
인터넷 시대에 SNS(사회관계망 서비스, Social Networking Service/Site)를 이용하는 과정도 이와 유사하다. 일단 사진이든 글이든 SNS에 올리면 수많은 사람들과 공유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여행을 가서 찍은 사진들 중 ‘가장 잘 나온’ 사진들만 골라 올리는 경향이 있다. 물론 코믹하게 웃음을 유발하는 ‘이상한’ 사진을 의도적으로 올리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자기가 경험한 다양한 측면들 중에서 일부를 선택’해야 하는 속성이 있고,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 주는’ 상황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최대한 ‘좋은’ 부분을 택하는 경향이 있다.
한편, 일기장과 앨범의 공통점은 ‘나에 관한 콘텐츠’가 담긴다는 데 있다. 그런데 일기장의 목적은 다른 사람에게 보여 주기 위한 것이 아니고, 따라서 굳이 좋은 일만 골라서 적을 필요가 없기 때문에 일기를 쓸 당시의 생각과 감정이 대개 그대로 담긴다. 순간 흘러가는 감정일지라도 그 순간의 감정은 상당부분 그대로 담기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사람들이 언제 일기를 쓰게 되는가 살펴보면, 대체로 ‘마음속에 쌓인 것은 많은데 터놓을 곳은 없을 때’ 쓰는 경향이 있다. 즉, 일기는 행복할 때보다 슬플 때, 모든 일이 잘 되고 있을 때보다 잘 되지 않을 때 쏟아놓듯이 쓰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앨범과는 달리 한 사람이 겪고 있는 다양한 삶의 편린들 중 부정적인 내용이 담길 확률이 높다.
안네의 일기나 난중일기 등도 모두 상황이 좋지 않을 때 기록된 것들이다. 물론 일기를 작성할 때 ‘누군가 언젠가 내 일기장을 다른 사람이 볼 것이다’라는 가정을 하고 일기를 작성한다면 ‘남에게 보이는’ 측면을 의식해 덜 솔직해질 것이고, 최대한 미화시키려 노력할 것이다. 이렇게 된 상태라면 이미 그 일기는 일기로서의 속성을 어느정도 상실하고 ‘자서전’의 영역으로 넘어간다.
□ 일기장과 자서전
순간 순간의 비교적 솔직한 감정을 담는 일기장에 비해 자서전의 내용은 다분히 선택적이다. 또한 일기장은 ‘누가 볼 것인지’를 크게 의식하지 않거나 자기 자신과의 대화인 데 비해, 자서전은 ‘나에 관한 이야기’를 ‘다른 사람이 보도록’ 쓰여지는 것이다. 따라서 자서전에는 ‘나의 경험들’ 중에서 ‘다른 사람이 보았을 때 나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가질 수 있도록’ 쓰여지는 경향이 있으며, 최소한 다른 사람이 보아도 괜찮을 내용이 주로 담긴다. 즉, 일기장에 비해 자서전이 훨씬 더 ‘내용 선택적’이며 ‘긍정 편향적’이다.
일기장과 자서전은 모두 ‘언어적으로’ 표현되기 때문에 유사해 보이지만, 인간이 이용하는 미디어적 속성상 일기장에는 주로 살아가면서 답답함을 느끼는 부정적 상황이 많이 묘사되는 경향이 있으며, 자서전에는 주로 성공담이 많다. 실패한 사람이 ‘나는 이렇게 해서 실패했다’고 자서전을 쓰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자서전에도 물론 본인이 겪었던 어려운 상황이 담기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그런 어려운 상황도 나는 잘 이겨냈다’는 사실을 부각시킴으로써 자신의 장점을 내세우려는 의도가 보인다.
요즘에는 ‘○○○ 자서전’이라는 제목의 자서전보다 아주 매혹적인 타이틀을 담고 있는 자서전이 더 많다. 대체로 자기계발 저서와 유사한 제목을 달고 나오는 이러한 자서전들은 ‘나는 이렇게 해서 성공했으니 당신도 한번 따라 해 보시오’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자화자찬식 내용이 주류를 이룬다. 자서전은 그런 의미에서 ‘자신이 살아 온 삶에 대한 긍정적 해석과 홍보’의 성격을 다분히 지니고 있다.
자서전에 자신에 관한 긍정적 내용을 선택적으로 담더라도 스스로 작성한다면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자서전이란 원래 그런 것이려니’ 하며 독자들이 감안하며 읽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대신 써 준 자서전은 그야말로 자서전이라 할 수도 없는 홍보 책자에 불과하다. 대필 자서전을 출판하느니 차라리 정직하게 ‘나를 홍보합니다’라는 홍보 서적을 출간하는 것이 나아 보인다.
□ 앨범과 자서전
자서전은 ‘내용 선택적’이며 ‘긍정 편향적’이라는 점에서 일기장보다 앨범에 더 가깝다. 다만 자서전은 언어로, 앨범은 비언어적 내용(예: 사진)으로 주로 작성된다는 점이 다르다.
최근에 유행하고 있는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는 어쩌면 내용상 앨범과 자서전을 합한 성격의 미디어이면서, 빠른 시간 안에 대규모로 유통되어 많은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다는 특성이 합쳐진 상태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SNS의 작성자는 그 계정의 자기 자신이다. 여기에는 글과 사진, 언어와 비언어를 함께 올릴 수 있다. 그러나 자기가 경험한 삶의 ‘모든’ 것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내용을 올린다. 또한 다른 사람들과의 공유를 항상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에 ‘최대한 긍정적인’ 언어적, 비언어적 메시지를 담는다. 즉, 요즘의 SNS는 내용 선택적이며 (자기 이야기에 관한 한) 긍정 편향적이라는 점에서 앨범과 자서전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다만 SNS에서는 ‘자신의 삶 이외의 내용’도 올릴 수 있다는 점, 그리고 그 내용이 순식간에 다수와 공유되며 반응을 서로 교환할 수 있다는 점이 앨범이나 자서전과 다르다.
범람하는 미디어, 범람하는 책들 속에서 참된 사람의 모습 그대로를 담고 있는 책을 찾는 것은 오롯이 독자의 몫이 되었다. 마찬가지로, 수많은 정치인들 중에서 참된 정치인을 찾아 투표하는 것은 오롯이 유권자의 몫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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