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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의 정치리더십 - 외천본민(畏天本民) <41> 국토를 제대로 지켜라 (Ⅳ)제1차 파저강 전투 ④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2년10월14일 17시10분

작성자

  • 신세돈
  • 숙명여자대학교 경제학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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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세종의 사전 여론 수렴]

 

세종은 파저강 전투를 시행하기에 앞서 의정부, 육조, 삼군도진무 등 핵심 신하들에게 토벌여부 및 전쟁에 관한 의견을 물었다(세종 15년 2월 15일). 세종이 던진 질문은 세 가지였다.:

 

  i) 파저강 올량합 야인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各陳接待之方), 

  ii) 그들의 죄를 어떤 말로 성토할 것인가(聲罪之辭),  

  iii) 토벌의 책략(攻伐之策)이 무엇인가.   

 

첫 번째 질문은 야만행위를 저지른 올량합 무리들을 어떻게 대해야 이쪽에서 토벌할 것이라는 것을 알아채지 않겠냐는 것을 묻는 질문이고, 두 번째 질문은 토벌전쟁의 명분을 무엇으로 하느냐는 물음이다. 만행을 저지른 야인 집단이 올량합이라고 보는 점에서는 대신들 의견이 거의 일치했다. 다만 한 사람 조계생은 아직 정황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것 아니냐고 했지만 그도 올량합의 단독범행이거나 아니면 올량합이 주변 잡종 야인을 규합하여 공모한 범행으로 보았다.

 

그러나 토벌전쟁의 여부에 관해서는 의견이 갈렸다. 삼의정은 모두 토벌전쟁에 소극적이었다. 영의정 황희와 좌의정 맹사성은 수비에 치중하고 있다가 그들이 다시 쳐들어오면 그 때 가서 반격하자고 했다. 우의정 권진은 사실관계가 드러날 때까지 수비만 치중하자고 했다. 삼 의정 말고도 상당수 대신들이 토벌전쟁에 소극적이었다. 토벌이 불가능 한 이유에 있어서는, 

 

    i) 올량합의 괴수 이만주가 명나라의 건주위 지휘직을 가지고 있는 

      관리이므로 공격이 불가하다는 것,

 

    ii) 그 지역 형세가 험조하고 또 잘 알지 못하는데다가 야인들이

       숲속으로 숨고 흩어지면 토벌하기 매우 어렵다는 것 들이었다.

 

그 외에도 토벌 시 다른 야인의 협공이 우려되므로 토벌이 곤란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호조판서 안순은 야인들이 반격해 올 가능성이 있고 그동안 못 잡은 양목답올을 명나라가 잡아오라 할 것이 분명하므로 토벌하게 되면 일이 매우 복잡해지므로 불가능하다고 했다. 토벌에 찬성하는 대신들도 당장 시행하기보다는 오량합 침략의 물증을 확보하고 나서 현지 지형을 파악한 뒤에 혹은 수비체계가 공고히 한 뒤에 공격하자는 의견들이 많았다. 세종은 토벌전쟁에 관한 대신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했다. 대신들이 이번 올량합 토벌에서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파악하였다. 그것은 다음으로 요약된다.:

 

   (i) 지형이 매우 험조하므로 철저한 현장 조사 및 전략대비가 필요하다,

 

   (ii) 토벌에 앞서 확실한 명분을 세워야 한다,

 

   (iii) 공격 시 적의 반격에 대비한 수비강화가 절실하다.   

 

즉각적인 토벌에 찬성하는 대신은 판원사 하경복과 호조참판 심도원 밖에 없었다. 세종은 토벌에 찬성하는 대신숫자가 적어 섭섭했지만 그렇다고 흔들리지는 않았다. 신하들에게 묻기도 전에 이미 토벌전쟁의 확신은 세워 두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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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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