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의 주요 정책 과제 <2> 통상정책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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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변하는 국제통상환경
지난 2021년 하반기부터 치열하게 진행되었던 대통령 선거 일정이 끝나고, 오는 5월 10일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게 된다. 사실 그동안 대통령 선거와 관련된 국내 정치 일정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관심을 가지고 점검하고 정책적 결정을 내려야 하는 국제통상 관련 이슈가 급박하게 진행되어왔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 이후 가속화되고 있는 미-중 무역분쟁은 단순한 통상 분쟁을 넘어 패권 경쟁의 양상을 나타내고 있는데,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반도체 등 핵심 전략산업의 안정적인 공급망 구축과 더불어 노동, 인권, 환경 등과의 이슈 연계로 중국 견제의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전략에도 불구하고 바이든 행정부는 구체적인 협의체 없이 선언적인 정책 제안에 머물렀으나, 2021년 하반기부터 중국 견제 구상을 구체화하기 시작하였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27일 온라인으로 개최된 동아시아 정상회의에서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economic framework, IPEF)’를 만들겠다고 선언하였다. 이러한 선언 이후 지난 11월 중순 지나 레이몬도(Gina Raimondo) 상무부 장관과 캐서린 타이(Katherine Tai)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일본,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한국을 차례로 순방하면서 본격적인 논의가 정부 차원에서 시작되었다. 그 이후 IPEF에서 논의될 의제 역시 보다 구체화되고 있으며, 이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는 국가 역시 점차 늘어나고 있다.
IPEF와 더불어 통상 분야의 또 다른 핵심 이슈는 ‘포괄적 점진적 환태평양 경제동반자 협정(CPTPP)’가입 여부이다. 2018년 12월 발효된 CPTPP가 급격히 국제통상 분야의 핵심 의제로 떠오른 것은 영국의 가입신청 이후 지난해 9월 중국이 가입하겠다고 전격 발표 이후이다. 그리고 일주일 뒤 대만 역시 가입신청서를 제출하면서 CPTPP가 동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국가뿐만 아니라 전 세계 통상전문가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다. 이와 같이 IPEF와 CPTPP 가입 여부 및 협상은 윤석열 정부가 집권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해결하여야 하는 국제통상 분야의 핵심 정책과제이다.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 (IPEF)
아직 한미 양측 정부로부터 구체적인 내용이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IPEF는 공정하고 회복력 있는 무역, 공급망 회복력, 인프라·청정에너지·탈탄소, 조세·반부패 등의 4가지 분야에 초점을 두고 올 상반기에 협상을 시작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동안 한국의 정치 일정을 면밀히 주시해온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오는 5월 윤석열 행정부의 출범 직후 IPEF 협상을 개시할 가능성이 크다.
무역, 공급망, 인프라·청정에너지·탈탄소, 조세·반부패 등 부문별 접근방법(sectoral approach)을 통해 복수의 협정을 구성할 것으로 전망되는 IPEF에는 한미 양국 외에도 일본, 호주, 뉴질랜드, 싱가포르 등 전통적인 미국의 우방 국가가 포함되었으며, 인도, 말레이시아, 베트남, 필리핀, 대만 등의 국가도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IPEF의 협상 형태는 미국 상무부와 무역대표부가 공동의장을 맡고 4개 분야별로 참여하는 국가와 협상의 속도가 다른 유연한 구조가 될 것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이는 참여국별 경제발전 수준이 달라 의제별로 부담을 가질 국가를 배려한 결과로 파악된다.
무역 분야에서는 디지털 무역, 경쟁, 무역원활화, 노동 및 환경 등이 포함될 예정이다. 4차 산업과 디지털 전환이 대세인 최근의 경제 상황과 경쟁, 노동 및 환경 분야 역시 최근 경영 분야의 화두인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논의 등을 고려한다면 이러한 분야에서 새로운 통상규범의 설립을 의미하기 때문에 한국 역시 협상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우리의 입장을 규범 설정 과정에서 반영시켜야 할 것이다.
공급망 분야에서도 조기경보 시스템, 핵심 품목 공급망 보안 강화 등이 협의될 예정이어서, 최근 수년 동안 경험한 공급망의 중요성을 고려할 때 이 역시 한국 정부가 논의에 참여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인도-태평양 지역의 역내 인프라, 오염물질 배출 저감, 파리협정 약속 진전 등이 논의될 인프라·청정에너지·탈탄소 분야 역시 인프라의 중요성, 기회이자 위협인 환경 분야의 규범 역시 한국이 관심을 가지고 대응해야 할 분야이다.
조세·반부패 분야에서는 글로벌 최저한세(global minimum tax) 노력 지속, 자금세탁 방지 표준 이행 등이 논의될 예정이다. 특히, 글로벌 최저한세로 현재 15%가 제시되는 등 관련 논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제기구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데, 이러한 논의가 구체화 되는 과정에서 한국 역시 IPEF를 통해 우리의 입장이 반영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참여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IPEF는 다양한 측면에서 평가될 수 있다. 먼저,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 이후 거론한 이슈(예를 들면, 노동, 환경, 디지털 전환, 공급망, 인프라, 반부패 등)가 모두 IPEF에 망라된 것이며 국제사회에서 최근 논의되고 있는 이슈(탈탄소, 글로벌 최저한세 등) 역시 포함하고 있어 ‘경제협력’ 분야의 협정에 새로운 이정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둘째, 미국은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트럼프 행정부의 일방주의적 대중 견제에서 벗어나 ‘동맹국과의 협력을 통한 중국 견제’라는 정책 방향을 구체화하고 있는데, ‘미국-유럽연합(EU)의 무역기술위원회(TTC)’를 통한 유럽과의 협력과 IPEF를 통한 아시아-태평양 지역과의 협력 등 투-트랙 접근방법(Two-Track Approach)을 통해 리더십을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접근방법은 ‘미국이 돌아왔다(America is back)’는 바이든 대통령 취임 당시의 일성(一聲)을 현실화한 산물이며 이를 통해 리더십 복원을 지향하고 있다고 평가된다.
셋째, 미국 민주당 정권인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행정부 이전 오바마 행정부의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IPEF는 오바마 행정부의 ‘아시아 중심 전략(Pivot to Asia)’의 시즌 2로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디지털 무역, 노동, 환경, 경쟁, 공급망, 인프라, 글로벌 최저한세 등 최근 화두가 되는 분야에 새로운 규범 설립의 장(場)이 될 IPEF에 윤석열 정부는 우리의 입장이 반영될 수 있도록 초기 단계부터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관련 국제규범 설립 과정에 선제적으로 대응하여야 할 것이다.
포괄적 점진적 환태평양 경제동반자 협정 (CPTPP)
앞서 논의한 바와 같이 지난 2018년 12월 발효된 CPTPP에 영국이 가입신청을 제출하고 지난해 6월 협상 개시가 선언된 이후, 9월부터 기존 11개 CPTPP 회원국과 본격적으로 협상을 개시하였다. 그러다 지난 9월 중순 중국 상무부가 기존 회원국과 아무런 사전 협의 없이 CPTPP 가입신청서를 제출했고, 이에 대만 역시 사전 협의 없이 가입신청서를 제출하면서 CPTPP 판이 점차 커지고 있다. 더불어, 12월 중순 남미의 에콰도르 역시 가입신청서를 제출하면서, 올 4월 현재 공식적으로 CPTPP 가입신청을 제출한 국가는 4개국에 이른다. 한국 정부는 지난 3월 25일 공청회를 개최하였고, 4월 15일 대외경제장관회의를 개최하여 CPTPP 가입추진을 의결하였다.
CPTPP의 역사는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브루나이, 칠레, 싱가포르, 뉴질랜드 등 4개국은 ‘환태평양 전략적 경제동반자(Trans-Pacific Strategic Economic Partnership)’, 소위 ‘P4’라는 통상협정을 발효시켰다. 이러한 소규모 통상협정의 판을 크게 만든 것이 미국 오바마 행정부이다. 중국의 급격한 부상이 미국의 패권 국가 지위를 위협하고 있다고 인식한 오바마 행정부는 ‘아시아 중심 전략(Pivot to Asia)’을 수립하고, 중국을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경제적으로 봉쇄하기 위해 호주, 베트남, 페루 등을 초청하여 ‘P8’을 구성하였다. 그 이후 참여 범위를 더욱 넓혀 말레이시아, 캐나다, 멕시코, 일본이 포함된 총 12개국의 ‘환태평양 경제동반자 협정(TPP: Trans-Pacific Partnership)’을 협상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나,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출범과 더불어 미국의 TPP 가입철회가 선언되었고, 미국을 제외한 11개국이 지난 2018년 12월에 출범시킨 것이 CPTPP이다.
이후 미국에선 민주당의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미국이 언젠가는 CPTPP로 돌아올 것이라는 기대가 국제통상 전문가와 정책담당자 사이에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바이든 행정부로서는 인플레이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미국 국내외 상황을 볼 때 미국이 CPTPP로 돌아오기는 쉽지 않고 바이든 행정부 역시 의회로부터 무역 증진 권한(TPA)을 받지 못한 상황에서 그럴 계획이 없다고 선을 긋고 있다.
그러나, 중국이 CPTPP 가입신청을 통해 의도하는 바는 동아시아 및 태평양 지역에 무역 규범 설립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미국과 동맹국의 중국 견제 의도를 사전에 무력화하는 것이다. 사실 중국의 CPTPP 가입신청서 제출 의도에 대해 전문가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중국 시진핑 주석이 CPTPP 가입을 준비하라는 명이 이미 2년 전에 내려져 중국 정부는 CPTPP 가입 이후 중국의 경제체제를 개혁하기 위한 준비작업을 어느 정도 진행했기에, 가입 의도에 진정성을 높이 평가하는 시각도 존재한다. 그러나, 대부분 전문가는 중국이 정말 CPTPP에 가입하기 위해서 가입 신청했다고 보기보다는 미국과 동맹국을 곤궁에 빠뜨리기 위한 전략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심지어, 일부 중국 학자들 역시 중국의 CPTPP 가입신청이 고도의 전략적 선택이었음을 강조한다.
한국 측면에서 CPTPP는 경제적 효과 외에도 국제관계 측면에서의 전략적 가치가 매우 높다고 볼 수 있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CPTPP의 역사를 볼 때, CPTPP는 중국을 경제적으로 견제하기 위해 출범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CPTPP에 중국이 가입을 신청한 상황이기 때문에 한국으로서는 중국 눈치 보지 않고 가입을 신청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주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는 기존 회원국과의 긴밀한 협조 아래 판이 커지는 CPTPP에 가입하여 동아시아의 통상질서 설립에 참여하여야 한다.
그러나, 한국이 가입신청 후 협상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CPTPP의 기존 회원국으로부터 동의를 받아야 한다. 한국 정부는 사전적인 공식, 비공식 협의에서 일본을 제외한 모든 기존 회원국으로부터 동의를 받았다고 한다. 심지어 현재 가입 협상 중인 영국까지 한국의 CPTPP 가입을 환영하는 상황이다. 일본은 한국의 가입신청 문제를 한일관계, 특히 후쿠시마 수산물 검역 조치 등과 연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윤석열 정부는 한일 관계를 과거 보다는 미래 지향적 관계로 재설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향후 정책 방향
국제통상 분야에서 윤석열 정부가 집권 초기부터 집중하여야 하는 분야는 IPEF와 CPTPP이다. ‘한미 동맹 복원’이라는 정책 지향점을 제시한 윤석열 정부로서는 동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핵심적인 통상 및 경제협력 협의체로 부상할 IPEF와 CPTPP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야 한다. 디지털 무역, 노동, 환경, 경쟁, 공급망, 인프라, 글로벌 최저한세 등 최근 화두가 되는 분야에 새로운 규범 설립의 장(場)이 될 양 협의체에 우리의 입장이 반영될 수 있도록 윤석열 정부는 관련 국제규범 설립 과정에 선제적으로 대응하여야 할 것이다.<끝>
※이 글은 세종연구소가 발간하는 [정세와 정책 2022-5월호 제24호] (2022.4.29)에 실린 것으로 연구소의 동의를 얻어 게재합니다.<편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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