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동의 문화 시평 <11> 미술관 컬렉션, 미래 문화 유산을 위한 담대함으로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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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장들의 치적처럼 치부되는 공립미술관의 건립계획을 보노라면 모두가 국제적 수준의 미술관을 조성하겠다는 꿈을 가지고 출발한다. 하지만 그 행정적 수사에 불과한 의지마저도 제대로 유지되는 곳은 그리 많지 않은 실정이다. 대개는 용두사미의 형국이고 미술관 조성을 그럴듯한 건물을 짓는 것쯤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모든 전문기관이나 시설이 그렇듯, 건축보다는 그것을 운영할 전문인력의 확보나 경쟁력 있는 콘텐츠의 지속적 생산이 본질임을 간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새삼스런 일은 아니지만 필자가 몇 년 동안 건립에 참여하고 있는 수도권의 공립미술관의 소장품 구매 심사에 참여하며 실소를 금할 수 없는 경험을 하였다. 소장품 구입예산으로 고작 2억 원이 배정되어 있어 개관 초기에 의미 있는 소장품을 야심차게 구입하자는 계획을 무색하게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미술관의 위상은 소장품의 질적 수준과 그 양에 의해 결정된다. 세계적으로 유수한 미술관들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국제적 수준의 미술관을 만들겠다면, 당연히 그에 걸맞은 우수한 소장품 확보를 위해 고민해야 한다. 국제적 명성의 작가들은 차지하고라도 적어도 국내 원로급 작가들의 작품 정도는 확보해야 하지 않을까? 필수적으로 소장해야할 작품들을 사전에 조사하고 수집계획을 수립한 후 소요 예산을 확보하는 것은 기본인데, 이를 생략하고 다른 지자체의 수준에 맞추어 대략적인 예산을 반영함으로써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우고 있다. 웬만한 원로작가들의 작품들이 10억을 호가하는 상황에서 도대체 이 예산으로 무슨 작품을 수집할 수 있다는 말인가? 예산에 맞추어 소품들이나 질이 떨어지는 작품들을 구입하고 끝낼 수밖에 없는 상황은 불 보듯 뻔하다. 그마저도 소장 작가로서의 영예를 들먹이며 지역작가들의 작품을 헐값에 구입하거나 기증을 통해 채워갈 것으로 추정된다.
일반적으로 국내 국공립미술관의 연간 소장품 구입예산 규모는 각각 국립현대미술관이 약 50억 원 정도, 공립미술관이 평균 2억~3억 정도에 불과한 실정이다. 국립도 매우 부족하지만, 공립의 경우는 처참한 수준이라 아니할 수 없다. 2020년 국립현대미술관 등에 1,400점에 달하는 작품들을 기증한 ‘이건희 컬렉션’의 총 가액은 약 3조 원으로 추산된다. 이를 현재의 미술관 소장품 구입예산 규모와 비교할 경우, 국립현대미술관은 600년, 일반적인 공립미술관은 무려 1만 년 이상 재정을 투입해도 될까 말까 한 거대한 규모이다. 국가나 지자체의 문화를 위한 투자를 생각할 때 참 부끄럽기 짝이 없다. 유럽 선진국이나 일본의 국공립미술관 소장품의 규모와 질은 우리와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들 역시 국고나 공적 예산으로 그 비싼 작품들을 구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유수한 미술관 소장품의 80% 정도는 모두 기증으로 확보된 것이다. 우리도 미술품을 미술관에 기증할 수 있는 제도를 두고 있지만, 신분 노출을 꺼리거나 기증조건이 까다롭고 기증 시 해외처럼 세제 혜택이 그리 크지 않은 실정이어서 소장자들은 미술품 기증에 다소 소극적인 실정이다.
올해 1월 1일부터 오랫동안 미술계의 숙원 중 하나였던 ‘미술품 물납제도’를 실시하게 되어 상속세를 작품으로 납부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제도를 통해 소장자들의 작품을 공공이 향유할 수 있는 기회가 확대되며, 값진 미술품의 해외 유출도 막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현금 대신 미술품을 상속세로 납부할 수 있는 제도일 뿐, 이 제도로 인해 미술관의 소장품을 기증할 수 있는 동기유발은 크게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 제도는 세무당국이 물납품을 현금화하여 세수의 손실을 보충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지만, 해외 사례처럼 물납 미술품을 미술관의 소장품으로 전환해서 활용토록 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도 있긴 하다. 그러나 이에 대한 세부적인 논의가 필요한 실정이다. 소장품 확충을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물납제와는 별도로 개인이나 법인, 또는 기업이 미술관에 작품을 직접 기증하는 기존의 기증제도를 활성화하여 양질의 미술품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는 적극적인 방안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기증과 관련된 세제 혜택을 획기적으로 높여야 그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세제 혜택을 확대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부자들을 위한 감세’라는 매우 부정적이며 인색한 수준의 사회적 인식이 발목을 잡는 부분도 없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뿐만 아니라 심하게는 작품 컬렉션을 부정 축재나 탈세를 위한 방편으로 인식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엄정한 법과 제도를 통해 투명하게 관리됨을 전제로 할 때, 선진국에서처럼 부자들이 재산의 사회적 환원을 통해 자부심을 키울 수 있도록 하는 성숙한 문화적 인식이 필요하다. 미술품의 기부나 기증을 문화적 자산의 사회 환원, 또는 중요한 미래문화 유산의 국내 보존이라는 공익적 차원에서 인식하는 기반이 형성되지 않는 한 선진 문화국가로서의 위상은 여전히 요원하다. 일본의 공립미술관에는 우리와 달리 국제적으로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을 다량 소장하고 있다. 이것들은 모두 정부나 지자체의 예산보다는 부호들이나 기업들의 기증으로 이루어진 것들이다. 1970-80년대 일본의 거품 경제 시기에 부호들과 기업들은 앞다투어 인상파 미술작품들을 구매해 미술관에 기증했다. 일본의 우키요에(다색목판화)가 인상파에 끼친 미술사적 영향은 그들에게 인상파 미술에 대한 애착을 두도록 했고, 미술관들은 당연히 인상파 거장들의 미술작품을 소장해야 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일본의 부호나 기업들의 기증은 단순히 높은 애국심의 발로였을까? 합리적인 세제를 통해 유도해낸 것이다. 일찍부터 기증예술품에 대한 세제 혜택을 부여했던 영국이나 프랑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영국은 미술품을 기부하면 개인에게는 소득공제가 한도 없이 적용되고 법인은 손금산입 적용에 한도가 없으며, 프랑스는 미술품 기부에 대해 개인은 66% 세액 공제, 법인은 60% 세액 공제를 해주고 있다.
우리가 루브르나 현대미술관(MOMA)을 즐겨 찾는 이유는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레오나르도의 <모나리자>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과 같은 유명 작품을 향유하기 위해서이다. 이렇듯 미술관의 킬러 컬렉션은 미술관 경쟁력을 위한 필수 조건이다. 우리의 국공립미술관이 국제적 수준으로 발돋움하려면 실제 글로벌 수준에 부합되는 국내외의 탁월한 작가들의 작품들을 소장해야 하고 소장을 위한 예산과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공립미술관의 소장품 구입예산의 규모는 적어도 현재의 수준의 10배 이상은 확보해야 하며, 세제 혜택을 확대해 선한 의지를 가진 기업이나 개인의 기증을 적극적으로 유도하는 획기적 정책이 필요하다. 이는 문화에 대한 기부문화의 확대를 통한 기부자들의 자긍심을 높이며, 국민에게 최고의 작품을 누리게 하는 국가의 문화적 책무이다. 의지로만 국제적 수준의 미술관을 만들겠다는 것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사실 미술관 컬렉션에 대한 투자는 우리 시대 작가들에 대한 투자이지만 궁극적으로는 미래의 문화유산에 투자하는 일이다. 우리의 공공미술관들에도 세잔이나 고흐 등 세계적인 작가들의 명작을 소장하여 국민들의 자긍심과 문화적 향유 수준을 높이며 지역의 문화산업을 활성화할 기회를 만들어 볼 수 있지 않을까? 정부의 담대한 시각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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