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시대착오적인 시장 개입이 문제야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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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보기에도 우리 경제가 불쌍한 모양이다. 애써 마련한 정부의 경제 살리기 정책과 법안이 퉁퉁 불어터지고, 텁텁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물론 비효율적인 국회의 문제도 심각하고, 정부 부처와 이해 집단의 이기주의도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뿐이 아니다. 특히 정부의 시대착오적인 시장 개입의 문제도 외면하기 어렵다. 그 부작용이 단순히 혈세의 낭비 정도로 끝나면 오히려 다행이다. 시장이 완전히 쑥대밭이 되버린 경우도 있다. 대통령이 두 차례나 공개적으로 지적했던 액티브 X가 그렇고, 최근에 논란이 됐던 단통법도 그렇다. 정부의 무리한 간섭으로 엉망이 돼버린 에너지·연료 정책의 문제도 심각하다. 이런 상황에서는 국민의 창조적 역량을 극대화시키고, 골든타임을 놓치지 말고, 비정상을 정상화시켜서 경제를 살리자는 대통령의 절박한 요구도 겉돌 수밖에 없다.
시장의 다양성·창의성을 부정하는 전자서명법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또다시 액티브 X 철폐를 요구했다. 작년 규제개혁회의에서 가장 시급하게 도려내야 할 악성 암 덩어리로 지목했던 바로 그 액티브 X다. 미래부는 당장 액티브 X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호언장담을 했었다. 그런 액티브 X가 여전히 우리 곁에서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금융기관이나 인터넷 쇼핑몰은 물론 정부의 연말정산 사이트에서도 액티브 X의 사용을 강요하고 있다. 물론 중국 소비자들이 우리 인터넷 쇼핑몰에 몰려들고 있다는 소식도 없는 모양이다.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액티브 X는 마이크로소프트(MS)사가 개발한 자사 웹브라우저 인터넷익스플로러(IE)의 평범한 기능 중 하나일 뿐이다. IT 시장의 다양성·창의성을 최대한 수용하려는 목적으로 개발한 것이다. 홈페이지에 필요한 다양한 멀티미디어·게임·보안 등의 기능을 구현하기 위해 개발된 플러그인을 자동으로 내려 받아 설치해주는 역할을 한다. 그런 액티브 X가 보안에 취약하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일국의 대통령이 나서서 퇴출을 요구할 정도로 엉터리는 아니다. 취약점을 잘 알고 사용하면 아무 문제가 없는 멀쩡한 기능이다. 더욱이 MS가 우리에게 억지로 액티브 X를 사용하라고 강요한 적도 없고, 마약처럼 중독성 있는 꼼수를 숨겨놓은 것도 아니다. 원한다면 액티브 X를 사용하지 않는 대안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다른 나라의 금융기관과 인터넷 쇼핑몰들이 모두 그렇게 하고 있다.
천송이 코트의 문제는 일부 관료와 IT 전문가들이 액티브 X를 이용할 수밖에 없도록 시장을 규제했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1999년에 제정된 ‘전자서명법’이 그 시작이었다. 전자서명의 공공성을 앞세워 정부가 전자상거래용 공인인증서를 엄격하게 규제해하기 시작했다. 액티브 X는 그런 정부가 자신들이 기획한 공인인증서를 위해 선택한 수단이었다. 그런 규제의 명분은 분명했다. 기업들에게 보안을 위한 투자를 절약하도록 해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흔히 그렇듯이 획일적 규제의 단점도 심각했다. 획일적인 규제가 IT 기술의 빠른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것이다.
결국 퇴출시켜야 할 대상은 액티브 X가 아니다. 전자인증 시장을 틀어쥐겠다는 정부의 과도한 욕심이 반영된 전자서명법이 문제다. 시장에 참여하는 기업이 자신들에게 필요한 전자인증 기술을 책임지고 개발하도록 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보안 기술의 지속적인 진화가 가능하고,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게 된다. 최근에 불거졌던 단통법 논란도 시장의 가장 기본적인 속성조차 이해하지 못한 엉터리 IT 전문가들이 만들어낸 황당한 사건이었다.
정부가 쑥밭으로 만들어버린 연료 시장
2011년 기름값이 ‘묘하다’는 대통령의 뜬금없는 발언으로 등장한 알뜰주유소와 석유제품 전자상거래 시장도 정부의 시대착오적인 시장 개입의 또 다른 사례다. 사실 자동차와 산업용 연료에 대한 정부의 시장 개입은 어제오늘에 시작된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가 소비할 수 있는 휘발유·경유 등의 연료가 턱없이 부족하고, 정유공장에서 부산물로 생산되는 액화석유가스(LPG)를 활용할 뾰족한 대안이 필요했던 때도 있었다. 대규모 국제 스포츠 대회를 앞두고 대도시의 대기 환경을 서둘러 개선할 수밖에 없었던 때도 있었다.
이제는 세상이 달라졌다. 우리가 생산한 휘발유·경유가 남아도는 정도를 넘어서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수출하고 있다. LPG 소비량도 지나치게 늘어나서 이제는 소비량의 절반 이상을 외국에서 수입하고 있다. 정부가 더 이상 소비자의 연료 선택권을 제한할 명분도 없고, 이유도 없다. 환경이 문제라면 정부가 연비기준이나 배출기준을 강화하면 된다. 환경을 핑계로 택시나 시내버스가 반드시 정해진 연료만 써야만 한다고 규제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더욱이 소비자의 연료를 제한하는 대가로 엄청난 규모의 보조금·지원금을 낭비해야 할 이유도 없다. 거둬들인 세금을 다시 되돌려주는 환급금 제도도 어처구니없는 것이다.
연료 시장에서 경쟁을 유발시켜 기름값 인하를 유도하겠다고 도입한 알뜰주유소와 전자상거래의 부작용도 심각하다. 알뜰주유소가 크게 늘어났지만 정부가 강조했던 연료 시장에서의 치열한 경쟁은 찾아보기 어렵다. 정부의 반공개적인 압력을 받은 정유사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들러리를 서야하는 황당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억지 경쟁을 유발시킨다는 핑계로 관세와 바이오경유 혼합 의무를 면제해주고 일본산 경유를 수입하는 매국적인 정책도 있었다. 우리 경제를 살리기는커녕 일본을 위해 우리 정유산업을 죽여 버리겠다는 정말 기가 막힌 정책이었다.
합법적으로 정당하게 생산한 제품에 상표를 붙이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것도 명백한 ‘상표법’ 위반이다. 외국산 명품의 상표권 보호를 위해 두 발 벗고 나서는 공정위·검찰·국세청·관세청이 국내 정유사의 상표권을 지켜주지 않는 것은 절대 용납될 수 없다. 석유공사와 농협이 본연의 사회적 책임을 제쳐두고 엉뚱하게 휘발유·경유 시장에 뛰어들게 만든 것도 제도적·도덕적으로 심각한 문제다.
현재 우리의 에너지·연료 시장은 정부의 무분별하고 과도한 시장 개입으로 쑥대밭이 된 상태다. 연료 소비를 현대화한다는 어설픈 핑계을 앞세워 만들어낸 불합리하고 과도한 유류세가 우리의 에너지 소비 패턴을 극단적으로 왜곡시켜버렸다. 한편으로는 원전에 대한 불안에 떨면서, 돌아서서는 남아도는 경유 대신 비싸고 위험하게 생산한 전기에 매달리고 있는 것이 우리 에너지 소비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신재생 에너지를 개발하기 위해서 시장을 키워야 한다는 황당한 핑계로 도입한 ‘발전차액제도’는 중국 태양광 패널 제조사의 배만 불려주고 말았다. 우후죽순처럼 세워지던 풍력 발전기도 대부분 수입품이다. 적지 않은 예산을 동원해서 외국 기업을 도와주고 있다는 뜻이다. 국산 경유에만 강제로 첨가하는 바이오디젤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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