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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동의 문화시평 <41> 한국의 아트페어는 단순한 미술 축제인가?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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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4년09월23일 17시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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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찬동
  • 전시기획자,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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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월 첫 주 한국미술계는 유례없는 축제 분위기에 빠졌었다. 정부는 국제적인 아트페어인 《프리즈(FRIEZE) 서울》과 《KIAF(한국국제아트페어) 서울》 개최 시기에 맞추어 이 기간(9.2-9.8)을 ‘서울미술주간’으로 설정했다. 정부와 지자체, 공공 기관들은 많은 예산과 자원을 투입했다. 부산비엔날레, 광주비엔날레도 이 시기에 맞추어 개막했으며, 국공립미술관과 도심의 권역별 화랑가에는 밤늦게까지 전시와 미술 관련 행사로 붐볐다. 국립현대미술관의 ‘미술인의 밤’ 행사를 필두로 크고 작은 전시 공간마다 작가들의 개인전은 물론, 스튜디오를 개방하여 외국미술관이나 화랑 관계자들의 방문을 맞았다. 국제교류재단에서는 해외미술관 큐레이터들을 초청한 워크숍 행사를 운영하기도 했고, 외국 관객들을 대상으로 한옥이나 색다른 장소를 선정하여 특별한 전시를 기획하기도 했다. 미술인들은 물론이고 일반 관객들 역시 그 분위기에 편승하여 전시와 행사에 참여하여 다채로운 미술 문화를 즐겼다. 그야말로 축제의 한마당이었다. 

 

   ‘미술 주간’의 메인 행사 중 하나로 코엑스에서 열린 아트페어 ‘프리즈 서울’은 올해로 3년째를 맞고 있는데, 국내 미술 시장 활성화를 위해 5년을 계약기간으로 하여 정부와 미술계가 행사를 유치하였다. 5일간의 행사에 8만 명가량의 관람객이 다녀갔다 한다. 물론, 페어에서 판매된 작품의 매출 규모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국내 경제 여건상 큰 실적을 거두지는 못한 것 같다. 하지만 페어에 참여한 외국 화랑들은 한국 시장의 잠재력과 향후 발전 가능성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하는 모양이다.

 

   세계적인 아트페어를 유치하는 목적은 한국미술계를 국제 시장에 알리고 국내 작가들의 작품이 해외 컬렉터들에 의해 구매가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임을 생각할 때, 여전히 갈 길은 먼 느낌이다. 해외시장에 나가 작품을 구입했던 국내 컬렉터들이 안방에서 쉽게 작품을 구매할 수 있는 편의는 제공했으나 국내 작가들의 작품 판매라는 내실은 상대적으로 빈약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미술계 일각에서는 정부나 공공 기관, 화랑협회가 실속 없이 해외 화랑만 좋은 일을 시키고 있는 것 아니냐는 날 선 비판이 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안방에 멋진 플랫폼을 깔아놓고 해외시장으로 국내 자본을 유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단기간에 시장의 성공을 바랄 수는 없다. 처음 유치할 때부터 예견된 일이었지만, 국내의 시장이 세계 시장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여건들을 튼실히 갖추지 못하고 출발한 요인이 크기 때문이다. 물론 아시아권의 선두 주자를 자처하던 홍콩의 미술 시장의 변화된 여건을 기회로 삼아 한국에 글로벌 플랫폼을 조성한 일은 매우 중요한 결정이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우리의 여건을 보면, 유수 해외 화랑의 지점들이 국내에 상당수 진출해 있고, 지역마다 아트페어를 가지고 있어 연중무휴로 페어가 열리고 있다. 한 달에도 몇 차례씩 옥션을 통해 작품 경매가 이루어지고, 미술은행 등을 통해 정부나 지자체가 작가들의 작품을 꾸준히 구매해 주기도 한다. 화랑의 증가는 물론, 미술품 투자회사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등 피상적으로 보면 미술 시장의 경기가 꽤 좋은 것처럼 보인다. 미술 시장 규모가 최근 1조에 육박한다는 통계도 있고 보면 꽤 그럴듯해 보인다. 

 

  하지만 국제적 기준으로 볼 때 국내 화랑의 영세성과 비전문성이 가장 큰 문제일 것이다. 페어에서 거래된 작품들의 가격 수준을 보면, 해외 화랑이 다루는 작품들이 수십억 원대라면 국내 화랑의 국내 작가 작품들은 기껏해야 수억 원대 미만으로 차이가 현격하다. 또한 작품 판매를 위해서는 굴지의 국제적 수준의 컬렉터들을 확보하고 있어야 하는데 국내 화랑들은 해외 화랑보다 역사나 경험이 짧아 화랑 간의 네트워크나 컬렉터와의 네트워크도 약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뿐만 아니라 국내 작가들의 국제경쟁력이라 할 수 있는 지명도나 가격정보 등도 매우 열악한 상황이다. 약한 이런 여건 속에서 정부나 지자체가 무조건 예산만을 투입한다고 해서 시장이 활성화되는 것이 아님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여기에는 시장 여건을 시장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문화 산업적 차원의 정교한 문화정책이 필요하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미술 시장의 메커니즘을 형성하는 미술 생태계 각 주체들 사이의 기능과 역학에 대한 세밀한 조사와 연구를 바탕으로 해야 함은 말할 나위도 없다. 이것은 지금까지의 정부 정책의 프레임을 획기적으로 업그레이드 내지 전환해야 하는 과제일 수 있다.

 

  과거 국가의 문화정책은 비영리 섹터에 비중을 두었다. 대표적인 이론적 근거는 1960년대 보몰과 보웬(Baumol & Bowen)의 ‘시장실패’와 ‘비용 질병’에 근거한 정책적 지원이었다. 시장의 자유경쟁 여건에 맡길 때 예술은 경쟁력을 상실할 수밖에 없으므로 공적 지원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점점 예술과 문화의 영역의 변화가 다원화되면서 문화예술 정책에서 시장 영역을 배제할 수 없게 되었다. 심도있는 예술 경제학적 차원의 정책이 필수적으로 된 것이다. 단기간에 세계적인 위상으로 성장한 프리즈(FRIEZE)도 기실은 영국의 치밀한 문화산업정책의 성공적 사례임을 생각할 때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정부도 순수예술을 지원하는 기능의 문화예술위원회보다 문화콘텐츠진흥원의 기구를 크게 설정하고 있고, 순수예술의 영역에서도 시장기능이 중요해짐에 따라 예술경영지원센터의 기능이 점등되고 있다. 최근에는 급기야 시장에 비중을 강화한 ‘미술진흥법’이 제정되기까지 하는 실정이다. 하지만 외형적 제도보다는 제도 운용의 내실을 기하는 일이 급선무일 것이다. 특히 국제무대에서 문화산업의 영역이 중요해지면서 정책 운용 역시 매우 세밀하고 복잡한 양태를 가질 수밖에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굳이 영국의 사례를 들지 않더라도, 미술 시장의 활성화는 문화경제학을 기반으로 한 문화산업의 영역이다. 물론 미술 작품의 창작 과정이나 작가를 산업적 메커니즘과 같이 치부할 수없지만, 정책의 핵심과제는 기본적으로 창작자들이 안전하게 창작할 수 있고 창작된 작품을 수요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쉽게 구매, 유통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미술 시장이 국내와 국제적 영역에서 바람직하게 확장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일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의 지원시스템을 보강하고 제도 운용의 내실을 기하는 방법을 먼저 강구하는 일이 필요하다. 우선 창작자들을 위해서는 창작 기금 지원 이외에 작업실이나 작업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지원이 필요하다. 창의 산업의 맥락에서 작업실을 저렴하게 제공하거나 임대료를 획기적으로 낮추는 방안, 작업 설비나 재료 구매에 대한 세제 혜택도 고려해 볼 수 있다.

아울러 작가들의 해외 전시 활동 기회 확대를 위해 해외 전시를 지원하거나 해외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대한 지원을 강화함으로써 다각적인 국제 교류 활동 확대 전략이 필요하다. 향수자들을 위해서는 좀 더 자유롭게 작품을 향유,거래할 수 있도록 구입과 유지, 판매, 상속 등에 따른 과감한 세제 혜택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영국에서 특별한 작품에 한해 시행하고 있는 ‘미술품의 자본이득세 면제 제도(Capital Gains Tax Exemption on Artworks)’는 좋은 사례가 될 것이다. 

 

아울러 미술 작품 향유에 필요한 기본적인 교육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미술관이나 화랑 등을 통해 관람객이나 향유자들을 위한 국가적 차원의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여기에는 작가나 미술사가, 미술평론가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그들의 연구과제를 부여하고 일자리 창출을 병행하는 방안이 있을 수 있다. 또한 매개자인 화랑을 위해서는 기존의 전속작가제도 지원을 강화하고 특별한 작품을 사들일 때, 필요한 자금을 지원함으로써 영세성의 한계를 해결하는 방안의 연구가 필요하다. 영국의 경우 ‘미술관·갤러리 개선 기금(Museum and Galleries Improvement Fund)’과 같은 기구를 두어 정부나 기업이 함께 화랑의 전시시설이나 컬렉션 확충을 지원하고 있다. 또한 평론가나 기획자의 도움을 받아 경쟁력 있는 작가의 발굴과 담론 생산 등 성장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영국의 창의 산업 정책에서 미술 시장과 관련한 중요한 정책 중 하나는 디지털 플랫폼을 활용하여 자국의 미술 역량을 전 세계로 확장한 것인데, 정부는 이러한 디지털화 과정을 지원하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온라인 아트 플랫폼 지원과 디지털화와 아카이브 구축이 그것이다. 전자는 온라인에서 미술품을 거래하거나 전시하는 플랫폼을 지원하며, 이를 통해 더 많은 작가와 작품들을 시장에 노출할 수 있다. 후자는 미술 작품의 디지털화와 보존을 지원해 예술 작품의 가치를 보존하고, 새로운 디지털 미술 시장을 창출하는 것이다.

 

  위에서 예거한 내용들은 우리와는 미술의 역사나 시장 환경이 다른 영국의 사례이기 때문에 이를 국내에 직접적으로 적용하기엔 한계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많은 경우, 참조가 가능한 전략들이다. 그러나 각론에 치우진 다양한 전략보다도 우리의 문화예술 정책과 문화산업정책이 문화경제학적 연구를 바탕으로 재정립되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여 좀 더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정책적 고민이 필요하다. 아트페어와 관객의 숫자, 작품 판매액을 놓고 정책의 공과를 논할 때가 아니다. 한국미술의 수준 제고와 글로벌 수준의 미술 시장 성장을 위해 정부의 역량을 집중해야 할 때이다.  

<ifs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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