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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 세종대왕이여 응답하라.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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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6년02월22일 23시50분

작성자

  • 김광두
  • 국가미래연구원 원장, GFIN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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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에는 일본이 미국을 앞지를 수 있다는 전망이 팽배했다. 그러나 일본은 90년대에 꺾였다. 근래에는 중국이 2030년 이전에 미국을 능가하는 경제대국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 크게 들렸다. 그러나 오늘 현재, 그것은 중국인들의 희망사항에 그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미국은 현재에도 가까운 미래에도 세계 최강을 유지할 것이다. 왜? 그것은 4차 산업혁명을 미국이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Google, Air BnB, Uber등이 모두 미국기업이다. Google의 축적된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기술은 무한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Air BnB와 Uber의 시가 총액은 Hyatt Hotel Chain과 G.M의 시장가치를 능가하고 있다.
 세계 산업질서를 창조적으로 파괴하고 있는(Constructive Destruction)  사이버 물리학 시스템(Cyber Physics System) 기반의 모바일, 인공지능, 빅데이터, 뉴미디어 등의 성공적인 상업화는 모두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다.
  왜 미국에서 인가? 1차 산업혁명이 영국에서 일어난 것은 “자유로운 시민정신”이 런던을 중심으로 충만했기 때문이다. 프랑스, 스페인 등이 더 풍부한 자원과 인력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왕조와 귀족들의 특권으로 시민들의 자유는 억압되고 있었다. 자유가 짓눌리는 상태에서 창의성이 발휘되긴 어려운 것이다.
  미국의 정치·경제 제도와 질서 속에 선구자의 도전정신(Frontiership)이 살아 움직이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구글 등의 성공, 샌더스, 트럼프와 같은 정치 아웃사이더들의 신선한 돌풍이 미국의 정치·경제를 창조적으로 파괴할 수 있는 것은 이러한 도전정신을 수용하는 국가적 분위기 때문인 것이다.
 
  일본과 중국은 “일사불란”, “상명하복”, “일당·계파 정치”의 문화가 강한 나라이기 때문에 꺾였고, 꺾일 것이다.
 
  이런 문화에서 자율성을 바탕으로 하는 창조적 도전은 쉽지 않다. 4차 산업혁명의 여건이 성숙되어 있지 못한 것이다. 이런 면에서 이스라엘의 교육 철학인 “후추파” 정신에 주목할 만하다. “후추파”란 지위고하, 연령의 노소에 구애받지 않고 자기주장을 내세울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일본, 중국과 대조적이다. 이스라엘이 신규창업에 능하고 활발히 미국의 4차 산업혁명에 동승하고 있음은 “후추파” 정신에 뿌리를 두고 있다.
 
  세계 산업 지도와 국가 간 산업 특화는 4차 산업혁명의 진전에 따라 급변할 것이다. 이러한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는 국가가 후진국으로 바뀌는 것은 1,2,3차 산업혁명의 역사적 경험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 상황에 있는가?
 
  “자유로운 시민정신”, “선구자의 도전정신”이 살아 있는 사회인가?
 
  경제의 큰 축인 재벌기업들은 2세, 3세로 세습되면서 창업자들의 도전정신은 사라지고 보신과 안전을 지향하는 기업 관료주의에 빠져들고 있다. 오히려 이들은 기득권 지키기에 급급하여 중소·벤처기업들의 신규창업을 저지하기까지 한다. 국가를 관리하는 행정관료들은 “받아쓰기”에 몰두하면서, 실적 과시용 “보고서 작성”에 열심이다.
  정치권은 어떤가? 어떤 정당도 4차 산업혁명에 걸맞는 구체적 정책과 비전제시를 못하고 있다. 추상적인 흘러간 옛 노래(경제 민주화, 공정경제, 일자리 중심 경제)의 레코드만 돌리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주제들은 4차 산업혁명, ICT기술의 급변, 경제의 세계화 이전에 제기된 것들로 새롭게 조정되어야 현실성이 있다. “아담 스미스”, “칼 마르크스”, “케인즈” 등의 경제이론이 급격한 기술변화를 적절히 수용하지 못해 현실문제 해결의 한계에 부딪혀 있음을 상기해야 한다.
  현 시점에서 우리의 미래를 밝게 할 수 있는 돌파구는 4차 산업혁명의 물결에 동참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힘은 자율성, 창의성이 넘쳐흐르는 정치·경제·사회의 문화에서 나온다. “후추파” 정신이 필요한 것이다.
 
  세종대왕이 그립다.
 
  조선왕조의 세종대왕은 스스로 한글을 창제하였고, 장영실, 박연 등을 격려하여 과학기술과 문화예술을 융성하게 했다. 세종의 무엇이 이런 업적을 가능하게 했을까? 세종은 신하들의 “자유로운 도전정신”을 장려하였다. 왕조시대의 군왕에게 “감히”, “무엄하게” 도전하는 신하들을 “포용함”을 넘어 “중용”했다. 왕의 절대적 권위가 인정되는 정치제제였지만 중요 정책에 대해서는 전국에 방을 붙여 백성들과 소통했다.
  이런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창의”가 발휘되는 것이고 바로 “창의”가 1,2,3,4차 산업혁명의 요체이다. 젊은이들이 절망하고, 기업인들이 움츠리고, 관료들이 눈치보고, 정치인들이 “상명하복” 문화에 빠져들고... 이런 현상들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21세기지만 이렇게 외치고 싶다.
 “세종대왕이시여, 응답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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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6년02월22일 23시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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