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잘날 없는 국민연금 본문듣기
작성시간
관련링크
본문
국민연금공단이 소란스럽다. 벌써 넉 달째다. 작년 10월 전임 이사장이 물러나면서 한바탕 홍역을 치르더니 새로 부임한 이사장 또한 자격시비에 휘말려있다. 시민단체 노조 너나할 것 없이 모두 물러나라고 아우성이다. 야당도 조만간 해임건의안을 낸다고 한다. 이래저래 앞날이 순탄치 않아 보인다. 애꿎은 가입자들에게 피해나 가지 않을지 걱정이다. 전임 이사장이 물러난 이유는 뚜렷치 않다. 본부장 연임불가 결정과 기금운용공사 설립반대 때문이라는 추측 일색이었지만 둘 다 말이 안 된다. 연임불가 결정이야 이사장 고유권한이라는 것이 상식이고, 공사설립이야 반대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한 사람 반대한다고 공사설립을 못하나? 찬반의견을 모두 반영해 마지막 국회에서 정하는 것이 절차다. 그전에야 누구나 자기 의견을 피력할 수 있어야 하고 이사장은 더구나 관련당사자다. 자신의 견해를 뚜렷이 밝히는 것이 마땅한 것 아닌가? 막무가내 입을 틀어막을 일이 아니다. 더구나 연임불가결정은 이사장 고유권한인데도 불구하고 이사장 단독으로 결정했으니 잘못한 것이라고 몰아붙이지 않았나. 갈등의 원인은 잘못 설계된 지배구조에 있다. 기금운용의 최종책임은 복지부장관에게 있는데도 이사장에게 책임을 묻는 현실에서 이사장에게 권한을 주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상의할 필요도 없는 일인데도 예의를 갖추려고 그랬을까? 오랫동안 복지부와 상의했다는 것이 밝혀진 것을 보고 자신들은 영혼이 없노라고 스스로 한탄했던 오래전 어느 공무원 말이 떠올랐다.
작년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메르스라는 전염병으로 온 나라가 공포에 떨었던 일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사람들이 날마다 죽어나가는데 뚜렷한 대책도 세우지 못하고 모두들 허둥지둥 갑론을박뿐이었다. 천재지변이었으나 미숙한 초동대처가 사태를 키웠다. 다행히 크게 번지지는 않았지만 두려움이 시시각각 우리를 옥죈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등골이 서늘하다. 외출할 때면 평소 쓰지도 않던 마스크를 너도나도 쓰고 다니지 않았나. 얼마나 두려움이 컸던지 심지어 마스크가 동나기도 하였다. 우리만 떤 것도 아니었다. 가까운 나라 먼 나라 할 것 없이 혹여 메르스가 침입하지나 않을지 모두 전전긍긍했다. 중국은 한국에서 입국한 의심환자를 격리하지 않았나. 문형표이사장은 당시 보건복지부장관이었고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그것이 벌이라고 생각했을까? 몇 달 지나지도 않았는데 그는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에 지원했고 대통령은 임명장을 주었다. 직전 장관으로서 껄끄럽기도 하련만 국민연금에 대한 넘치는 열정 때문이었을까? 후안무치하다는 것은 나만의 생각은 아닌 모양이다. 세간의 비판도 다르지 않다. 아직도 우리 뇌리에 메르스공포가 뚜렷하고 더구나 감사원 감사결과 많은 복지부 부하직원들이 줄줄이 벌 받았는데 최고책임자였던 그만 홀로 중책을 맡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하기야 역대 이사장 중에서 전문성만 본다면 그만한 분도 없는 것 같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다른 분은 없었을까? 인사권자의 무한신뢰가 아니라면 달리 설명할 길이 없어 보인다.
작금의 국민연금사태를 지켜보며 우리 사회가 맞닥뜨린 근본문제가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우리 모두는 입만 열면 기본과 원칙을 말한다. 정작 자신은 제대로 지키지도 못하면서. 그래서일까, 기본과 원칙이 바로서지 못한 것은 오늘날 우리 사회 도처에서 확인할 수 있다. 생각이 없는 탓이다. 철학이 없고 세계관이 올바로 정립되어있지 못한 때문이다. 말 따로 행동 따로 언행이 일치하지 못하고 삐끗하면 서로 네 탓하며 다툰다. 자신을 탓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나부터 달라져야 한다. 한 사람이 역사를 바꾼다. 한 생각에 인생이 달라지고 역사의 흐름이 바뀐다. 우리는 오늘은 오늘 내일은 내일 그저 닥치는 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리는 오늘도 어제와 똑같이 주변 환경을 받아들이고, 어제와 똑같이 느끼며, 어제와 똑같이 말하고, 어제와 똑같이 희망하며, 어제와 똑같이 믿고 있다. 오늘이 어제와 똑 같은데 내일이 오늘과 어떻게 달라질 수 있겠는가. 우리 수준이 그대로 머물러 있는 한 달라질 것은 없다. 역사는 반복될 뿐이다. 저쪽 숲에 불이 붙어 타고 있는데도 우리는 알아채지 못하고 있다. 인간성이 상실되고 자연이 파괴되는 것을 목도하면서도 여전히 남 탓만 하고 있다. 근본적인 성찰이 절실하다. 나부터 달라지지 않으면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남 탓만 하며 멀고 큰 것만을 붙잡고 공허한 말만 되뇌어서는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갈 수 없다. 남에게 이기려고 싸울 일이 아니다. 누구를 탓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돌아볼 일이다.
어려움으로 넘어진 후 일어나자마자 우리는 묻는다. 무엇을 할 것인가? 마치 자신의 목적이 뚜렷하고 역량을 갖추고 있으며 올바른 인간으로 제대로 서있기라도 한 것처럼. 존재 역량 소망 행위. 행위는 맨 끝이다. 충분한 역량과 뜨거운 소망도 없이 난관을 돌파해나갈 수는 없지만 그에 앞서 흔들리지 않는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이 먼저다. 갈팡질팡 매순간 천변만화하는 우리로서는 제대로 된 역량도 불타는 소망도 가질 수 없다. 자신의 언행이 일치하지 못하여 늘 후회하지만 상황이 바뀌자마자 직전의 자신을 또다시 망각하고 마는 우리는 역량도 소망도 가질 수 없으며 따라서 행위도 할 수 없는 딱한 처지에 처해있다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 우리는 착각 속에 살고 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중요한 착각은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나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확고부동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모두 자신이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고 있고, 맨 처음 생각하는 것은 항상 무엇을 할 것인가이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인 채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자신의 모습을 가지런히 정돈하는 것이 먼저다. 올바로 존재하지도 않고서 무엇을 하려는 것은 허망한 일이다. 모래위에 집을 지으려는 꼴이다. 흐트러져있는 수많은 나를 ‘하나’로 통일하여 ‘전체’로 존재하는 것이 먼저다. 존재하게 되면 역량 소망 행위는 뒤따른다. 불가능한 일은 없고 산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은 결코 빈 말이 아니다.
세상만사 어느 것도 쉬운 일은 없다. 무슨 일이든지 목적달성을 위해서는 불가능에 도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국민연금의 목적은 지속가능성 확보를 통한 가입자보호라고 할 수 있다. 현재의 국민연금이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로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연금전문가 문형표이사장은 국민연금이 처한 엄중한 현실을 타개할만한 구체적이고도 유효한 정책을 제시하여 항간의 비난과 조롱과 우려를 단칼에 날려버리기 바란다. 그 길만이 국민연금가입자의 걱정과 불안을 잠재우고 인사권자에게 보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아닐까? 국민연금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인구구조문제, 제도 자체의 문제와 더불어 기금운용 문제라는 삼면을 함께 살펴야 한다. 모두가 하나같이 지난한 과제들이다. 우선 작년이래로 논란이 거듭되고 있는 공사설립문제가 뜨거운 과제다. 그가 공사설립 찬성론자라는 것은 익히 알려져 있는 사실이지만 이 문제는 시급한 것도 본질적인 것도 아니라는 것을 유념했으면 좋겠다. 기금운용의 형이상학이라고나 할까, 기금을 수익성위주로 운용할 것인가 안정성위주로 운용할 것인가 그런 문제들이 말끔히 정리되는 것이 먼저다. 공사설립문제는 그 다음이다. 어차피 모든 제도란 우리의 지식과 무지, 희망과 두려움이 결합해 태어나기 마련이다. 무지와 두려움을 힘껏 걷어내고 가입자보호라는 국민연금 목적에 포커스를 맞추면 무엇이 정답인지 스스로 드러날 것이다. 투자환경도 녹록치 않아 보인다. 이제 그만 바람이 그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