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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타개편! 우리를 고민하게 하는 것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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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9년04월23일 17시50분

작성자

  • 옥동석
  • 인천대학교 무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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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외환위기 직후, 재정당국은 이전의 예산구조로 감당하기 어려운 새로운 재정요구에 직면하였다. 경제상황이 급격하게 악화되며 세입에서는 대규모 결손이 예상되었고 세출에서는 구조조정 자금과 함께 사회안전망 확충의 필요성이 생겼다. 이 때 재정당국은 각 부처가 요구한 SOC시설의 타당성 평가를 재점검하였다. 그 결과는 놀랄만한 것이었다. 이미 수행한 32건의 타당성조사에서 ‘타당성 없음’의 결과는 단 1건에 불과하였다. 재정당국은 사업부처에 대한 신뢰를 접고 자신들이 직접 타당성조사를 하겠다고 나섰다. 재정당국이 사업부처의 반발에 부딪히자 자신이 소관하는 ‘예산회계법 시행령’을 개정하며 예산 비목으로서 예비타당성(이하, 예타) 조사비를 신설하는 묘안을 짜냈다.

 

동시에 재정당국은 관련 연구용역을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발주하였다. 경제학자로 구성된 연구팀은 예타에서 비용편익분석(Cost-Benefit Analysis)의 경제학적 방법론을 제시하였다. 비용편익분석은 후생경제학(또는 재정학)의 이론으로 ‘잠재적 파레토 개선’을 사회 변화에 대한 궁극적 가치기준으로 채택한다. 이 기준은 편익과 비용으로 불리는 사회적 가치들을 개인의 ‘지불용의(Willingness To Pay)’에 따라 단 하나의 계량지표로 평가한다. 이 ‘지불용의’는 시장가격으로 평가하거나, 또는 해당하는 시장가격이 없다면 여타 재화와 서비스의 시장가격들을 참조하여 과학적인 방법으로 ‘잠재적인 시장가격(잠재자격)’을 도출한다.

 

당시 연구팀이 사회적 가치의 판단기준으로 ‘잠재적 파레토 개선’을 제시한 것은 심오한 고민의 결론이 아니었다. 서구 대부분의 국가들, 그리고 경제학의 보편적 이론들이 한결같이 비용편익분석을 공공사업의 판단기준으로 인정하기 때문이었다. 당시에는 그 누구도 이러한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지만, 예타는 ‘잠재적 파레토 개선’을 공공정책의 가치판단 기준으로 널리 수용하도록 만들었다. 이는 어쩌면 우리나라의 공공정책 역사에서 가히 획기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사회적 가치판단 기준을 경제학자들은 ‘사회후생함수’라고 부르지만 정치철학자들은 ‘사회정의’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예타 제도는 우리 사회에 정의의 중요한 기준을 제시한 것이었다.

 

사회적 편익(B)과 사회적 비용(C)의 계량적 BC비율이 널리 수용되며 예타의 영향력은 크게 확대되었다. 물론 공정성에 대한 의심으로 몇 차례 수사가 이루어지기도 하였으나 과학적 방법론의 분석 결과는 학문적 판단의 영역으로 인정되었다. 그렇지만 우리 국민들이 이 명쾌한 기준을 심정적으로 완벽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재정당국은 이를 반영하여 경제성 평가(BC비율)를 50%에 한정하고, 정책적 평가(25%)와 지역균형발전 효과(25%)를 추가로 감안하였다. 정책적 평가는 경제성 평가에 반영하기 어려운 비계량적 효과들을, 지역균형발전 효과는 소득재분배 효과를 반영한다는 명분으로 채택되었다. 

 

BC평가의 역사가 1844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서구에서는 다양한 가치의 계량적 표현에 많은 노력이 이루어졌기에 정책적 평가의 비중은 크지 않다. 또 이들 나라에서는 소득재분배가 조세정책과 복지지출로 수행된다는 이유로 공공사업에서 소득재분배 효과를 반영해야 한다는 주장이 크지 않다. 어쩌면 우리나라에서도 과학적 분석을 위한 학자들의 분발이 이어지고 또 다양한 복지정책의 경계(境界)가 널리 수용된다면 BC비율은 지금보다 더 압도적으로 중요해질 것이다. 때문에 우리가 예타에서 부족한 점을 발견한다면, 그것들을 과학적 분석의 틀 내에서 해결해야 할 것이다. 

 

예타로 인해 50% 내외의 사업들이 탈락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예타에 대한 국민적 신뢰는 증가하기 시작하였다. 드디어 2007년에는 예타제도가 시행령 한 켠의 초라함에서 벗어나 당당하게 법조문으로 자리를 잡았다. ‘예산회계법’과 ‘기금관리기본법’을 통합하여 ‘국가재정법’을 제정할 때, 그 누구의 반대도 없이 예타제도는 법 제38조로서 규정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국가재정법 시행령’에서 BC분석의 실익이 사실상 없는 5가지 사업 유형에(①공공청사, ②문화재 복원, ③국가안보·국방, ④남북교류, ⑤재해복구 및 법령상 의무) 예타면제를 허용하는 규정이 마련되었다. 

 

법령 제정의 축복이 채 끝나기도 전에 예타제도는 큰 위기를 맞이하였다. 포퓰리즘에 대한 정확한 처방은 정치인들에게 눈의 가시가 된다. 2007년 말 대선이 끝나며 정부 여당은 개별 사업의 BC에 대한 치열한 과학적 논쟁보다 예타를 벗어나는 편법을 강구하였다. 이번에는 재정당국이 예타를 훼손하는 묘안을 짜내기 시작하였다. 예타면제의 대상사업을 10가지로 확대하며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두 가지 유형을 추가하였다. 하나는 타당성 평가가 반드시 필요한 ‘재해예방’을 여기에 포함시켜 4대강 사업을 예타면제의 대상으로 확정하였다. 또 다른 하나는 ‘지역균형발전’을 면제대상에 포함시켜 지역 민원사업에 대한 고삐를 풀어버린 것이다. 

 

지역 민원사업들은 전국적 타당성이 부족하기에 BC비율이 높게 나올 리 없다. 정치적 논란을 피하면서 민원사업들을 매끄럽게 채택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재정당국은 정치권의 요청을 받아들여 또다른 묘안을 짜냈다. 전국의 모든 민원사업들을 패키지로 묶어 발표한다면 국민들이 각자의 민원해결에 취하여 전문가들의 비판을 쓰레기통에 던질 것이다. ‘국토균형발전’이라는 이 전략적 가면은 가히 성공적이었다. 예타의 중요성을 지적하는 학자들의 항변은 쓸데없는 명분에 집착하는 백면서생의 부질없는 잔소리로 간주되었다. 

 

그로부터 10년 뒤 2019년 1월, 또다른 정부 여당은 이 묘안을 또다시 사용하고 있다. 총사업비 24.1조원 규모의 23개 민원사업을 한꺼번에 예타에서 면제하기로 하였다. 2020년 총선을 앞 둔 우리 국민들은 이 묘안에 또다시 취할 것인가? 아니면 10년 전과 달리 한 단계 진화하였을까? 우리 국민들은 4대강 사업의 예타면제가 우리 사회에 가져온 소모적 갈등이 얼마나 비극적이었는지 잘 알고 있다. 많은 언론과 전문가들은 패키지 형태의 예타면제가 얼마나 나쁜 적폐인지 앞다퉈 지적하였고, 적폐청산을 앞세운 현 정부는 또 한 번 ‘내로남불’의 비아냥 거리가 되었다. 

 

2019년 4월 정부는 놀란 가슴으로 ‘예비타당성조사 제도 개편방안’을 발표하였다. 그 핵심은 현행 예타 제도에서 ‘사회적 가치’와 ‘지역균형발전’에 대한 평가를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지금까지의 예타가 ‘사회적 가치’와 ‘지역균형발전’을 소홀히 하였다는 점을 질타하는 것과 같다. 그런데 정부가 이들만 의도적으로 강화하겠다는 것은 비용편익분석의 기본 전제인 개인의 ‘지불용의’를 무시하겠다는 발상과 같다. 물론 ‘사회적 가치’와 ‘지역균형발전’에 대한 과학적 분석은 더욱 발전해야하고, 또 이들은 ‘재해예방’과 함께 예타면제의 요건에서 제외되어야 한다. 과학적 분석이 충분하지 않은 것은 예타의 다른 내용들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왜 하필이면 정부는 이들에 대해서만 관심을 쏟는가? 과학적 분석이 충분하지 않아 지금의 예타가 너무 느슨하다는 비판도 많이 제기되고 있다. 

 

이제 예타면제를 비판하던 여론의 예봉은 꺾이고 정치권의 시름은 사라졌다. 그와 함께 전문가들의 고민이 시작된다. 어쩌면 예타가 그 본질을 잃어버리고 언젠가는 정치 포퓰리즘의 앞잡이로 전락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전문가와 학자들이 보다 중립적이고도 견제적인 시각에서 분발하도록 촉구할 수밖에 없다. 재정건전성과 경제사회 발전을 위해 과연 예타는 추상(秋霜)과 같은 엄격함을 잘 발휘할 수 있을 것인가? 모호하여 구체적이지 않은 정책목표들을 예타가 얼마나 잘 걸러낼 수 있을 것인가? 예타의 과학적 분석이 더욱 발전할 때 우리는 정치권의 무분별하고도 즉흥적인 포퓰리즘을 극복할 수 있다. 예타개편! 정말 우리를 고민하게 하고 있다. <ifs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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