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세(增稅),정의(正義)와 정직(正直)사이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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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 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출범 석달째를 넘어서는 문재인 정부가 적폐청산과 제도개혁을 숨가쁘게 진행 중이다. 그 핵심가치는 정의와 정직이다. 정의로운 대한민국, 정직한 대통령이 나라다운 나라를 만드는 요체다. 탄핵으로 무너진 전 정권과의 대칭점에, 그리고 촛불민심의 중심에 현 정권이 자리매김하고 있다. 정의의 이름으로 나라를 바꾸는 속도전은 전광석화처럼 빠르고 파격적이다. 비정규직 철폐, 원전 폐쇄를 약속하고 앞으로 3년 안에 최저임금 1만원시대를 열겠다고 선포했다. 그리고 사람중심 경제, 소득주도 성장이라는 가보지 않은길을 가겠다고 선언했다.
그 청사진은 5대 국정운영계획 100대 과제다. 일자리 창출, 소득재분배를 중심으로 한 복지국가의 밑그림이다. 이름하여 <국민의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이다.이 국가비전과 국정과제를 실현하는데 5년간 178조가 추가로 소요된다는 재정계획을 내놨다. 지출부문의 씀씀이는 되도록 줄이고, 세입은 지금보다 크게 늘려서 감당할 수 있다는 설명도 보탰다. 실질성장률보다 앞서는 확대재정을 추진한다는 과감한 복지의 방향도 분명히 했다. 결국 복지확대를 위해 세금을 크게 쓰겠다는 것인데 증세 얘기는 당초 일체 없었다. 눈 하나 깜짝 안하고 증세 없는 복지를 외친 박근혜 정부의 복사판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젠 좀 더 솔직해 집시다”
정부계획 발표 하루 만에 김부겸 행자부장관 입에서 증세를 말해야 할 때란 작심발언이 나왔다. 정치인 출신 장관이 아무도 말하지 않는 금기를 깨자 기다렸다는 듯 같은 당 추미애 대표는 구체적 증세안까지 내놓으며 한 발짝 더 나갔다. 초고소득의 대기업과 부자들에 대한 법인세와 소득세 인상안이다. 최고부자만 꼭 집은 이른바 ‘수퍼리치 핀셋 증세안’이다. 당정청 간 약속된 주고받기였을까? 이젠 그 방향으로 갈때가 됐다고 대통령이 호응했고, 정부는 2일 세제개편안을 발표했다. 내년부터 연간소득 3억 원이 넘는 초고소득자에 대해 소득세율이 최고 42%로 2%포인트 오르고, 기업소득 2천억 원이 넘는 초 대기업은 법인세 최고세율을 25%로 3%포인트 인상한다는 내용이다. 부자증세의 성격을 분명히 하면서 중산층과 서민복지를 늘렸다.
세금전쟁의 시작이다. 세금은 호랑이 보다 무섭다는데 문재인 정권이 호랑이 등에 올라탔다. 출범초기 70-80%대를 유지하고 있는 높은 지지율이 아니었다면 증세는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저항이 가장 적은 수퍼리치 증세로 한정한 것도 국민정서의 경계선를 탄 고뇌를 드러낸다.
묘수였을까? 여론은 예상보다 더 크게 호응했다. 저항대신 85%에 이르는 지지로 박수를 보내고 있다. 사실 0.08%에 불과한 진짜부자들에게 세금 좀 더 걷겠다는데 나머지가 반대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세금은 정책이 아니라 정치라는 것을 또 확인해 주는 여론의 흐름이다.
부자증세 시대가 열렸다. 문재인 정부의 이 정치적 승부수는 정말 성공적인 것일까? 당장은 박수를 받는데 시간이 지나면 손익계산서는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국민들은 지금부터 세금에 대한 열공 모드에 들어갈 것이다. 법인세 인상으로 대기업이 힘들어지고 투자처와 공장을 해외로 옮기고, 결국 국내 일자리가 줄어들고 서민의 지갑은 얇아질 것이라는 비판론자들의 전망에 결국 고개를 끄덕일 수도 있다. 그런 예상이 빗나간다 해도 부자증세로 얻어지는 추가 재원이 많아야 연간 5조를 갓 넘는 선이라는데 이게 178조 재정에 얼마나 현실적인 도움을 주느냐를 따지면 정녕 부자증세가 일자리와 소득재분배용인지,‘명예세’‘사랑세’의 모양내기 차원에 그치는 것인지 의문이다. 나머지 세수확대에 큰 기대를 건다는데 그것도 내수와 수출 등이 최적의 상황이 될 때라야 가능한 일일 것이다. 세금은 정치라는데 정치는 늘 정의를 표방한다. 그러나 이 정의가 얼마나 정직한가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일 것이다.
이번 부자증세의 경우도 노블리스 오블리쥬, 즉 사회지도층의 그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와 사회 정의를 구현하는 것이라는 적극적 해석이 여권발로 나왔지만 수퍼리치들은 정말로 여기에 공감하는 것일까?
호랑이 등에 올라탄 문재인 정부를 흔드는 야권의 공세도 당장 맞아야할 난관이다. 세제개편안의 국회입법 과정에서 야권이 얼마나 동참하느냐가 관건이다. 그 내용과 방향에 어떤 변화가 올지 예상하기 어렵다. 정치인들의 표와 직결된 문제이고 내년 6월 지방선거가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107석을 가진 제1야당 자유한국당은 서민감세로 맞불까지 놓고 있다. 담뱃값과 유류세를 낮춰서 서민경제를 돕겠다는 것인데 국민건강증진을 명분으로 담뱃값을 올리는데 총대를 멨던 새누리당의 후신이 이젠 180도로 돌아서 원상회복을 하겠다니 이런 자가당착, 자기모순이 없다.
그러나 예의 세금폭탄을 앞세워 여권을 궁지로 모는 나름의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실현된다면 10조원 안팎의 세수가 날아갈 판이니 그나마 부자증세의 효과도 완전 상쇄될 것이다. 아직도 갈길 몰라 방황하던 보수정당은 정부여당이 열어준 증세라는 판도라 상자 속에서 재기의 희망을 엿보는 역설적인 상황을 맞은 것이다. 부자증세냐 서민감세냐 ,내년 지방선거를 앞둔 프레임의 전쟁은 이렇듯 휘발성이 가장 높은 세금문제를 놓고 조기에 불이 붙은 형국이다. 여권과 제1야당간의 이슈싸움에 낀 바른정당과 국민의당은 다시 좌우의 포퓰리즘 정치가 도져 국민들을 현기증나게 한다며 싸잡아 비난하지만 자칫 돌아올 선거정국에 소외자의 신세가 될까 걱정하고 있다.
가장 민감하고 중대한 국가적 아젠다인 세금문제를 놓고 벌어지는 이 같은 흐름은 정치본색을 여지없이 드러내면서 심히 우려를 자아낸다. 세금은 정치공학을 떠나 이제 정책과 정의의 진지한 자리로 들어와야 한다. 증세 논의가 공식화된 이 시점을 조세개혁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그러려면 논의의 주도권을 쥔 정부여당은 더 정직해져야 한다. 정말 부자증세로만 가능한 것인가? 중산층과 서민증세로 가기 위한 징검다리를 놓고 있는 것인가? 대통령의 약속대로 초고소득 증세 말고는 더 이상 없다한다면 많은 전문가들이 공감하는 ‘중부담 중복지’의 방향도 포기한다는 것인지? OECD국가 중 최하위라는 18~19%대의 조세부담율을 그대로 두고 ,근로소득자의 46%가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는 이 불평등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고 간다는 것인지? 그 길이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비전과 부합되는 것인지? 국민들에게 솔직히 설명하고 설득해야 한다. 편을 나누는 증세만으론 정치적 의도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증세는 이제 활시위를 떠났다. 문재인 정권은 중대한 시험대에 올라섰다. 증세란 말을 정부차원에서 처음 꺼내고 세법개정의 시동을 건 자체가 엄청난 변화를 불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 후폭풍은 누구도 예단하기 어렵다. 역대정권은 예외 없이 오늘에 교훈을 주는 반면교사다. 박정희 정권의 부가세는 시대의 종말을 예고한 1979년 부마항쟁을 가열시켰고, 박근혜 정부에서의 담뱃세 인상과 연말정산 파동은 꼼수증세 논란으로 정부의 신뢰를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문재인 대통령은 누구보다 2005년 노무현 정부가 강남집값을 잡겠다고 추진한 종합부동산세의 역풍이 얼마나 파국적이었나를 기억할 것이다. 지방선거 총선거 대선패배로 이어지면서 결국 진보정권10년을 끝내게 한 기폭제로 작용했다. 조세 저항은 그렇게 무섭고 그만큼 국민들을 설득하지 못하면 갈 수없는 길이다.
그러나 이미 시작된 걸음이라면, 이제 가야만 할 길이라면 우회로를 택하면 안될 것이다. 정직하게 가는 것이 승부수고 정직한 정부가 이긴다는 신념으로 가야한다. 나라다운 나라는 부자는 세금도 좀 더 내고 중산층과 소득 있는 서민도 참여해 ‘낮은 세율 , 넓은세원’을 확보해서 모두가 수긍하는 보편의 정의를 만들어내는 나라일 것이다. 정의로운 정부, 정직한 지도자를 외친 촛불민심을 안고 가는 문재인 정부이기에 누구도 하지 못했고, 모든 정권이 두려워한 조세개혁의 그 중심으로 당당하게 들어가기를 촉구한다. 그것이 문재인 정부의 핵심가치를 실현하는 길이고 설득과 소통 협치의 총체적 리더십을 보여주는 길이다.
모든 정권은 정의를 제1의 구호로 외치며 출발한다. 그러나 최종적 평가기준은 정직이다. 정의는 표상이요 메시지다. 정직은 그것을 실천하고 구현하는 행동이다. 정의를 외쳤으되 정직하지 못해 탄핵당한 전 정권을 되돌아 봐야한다. 문재인 정부 석달 째 이제 정의가 시나브로 정직으로 발걸음을 옮겨가는 단계로 갈지를 주목한다. 증세와 원전과 사드와 대북문제 등 동시적으로 대응해야 할 이 전선들이 그 시험대다. <ifs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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