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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훈의 나무 사랑 꽃 이야기(45) 누가 먼저 필까? 매화와 영춘화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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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1년02월26일 17시00분

작성자

  • 김도훈
  • 서강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전 산업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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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록수는 늘 푸른 나무들입니다. 늘 푸르기 때문에 겨울에도 우리에게 삶의 희망을 주는 고마운 나무들이지요. 그런데 ‘늘’ 푸르다는 것은 변화가 적다는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그만큼 극적이지 않다는 뜻이지요. 그래서 그런지 필자가 지금까지 9회에 걸쳐 (실은 낙엽수와 상록수에 대한 비교 (32회), 나무의 의미 (37회) 등을 포함한다면 11회) 상록수를 다루다 보니 소나무, 향나무와 같이 모두에게 익숙한 나무를 다룰 때를 제외하고는 독자들의 호응이 점점 약해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그에 비한다면 겨우내 숨죽이고 있다가 생명도 없던 것 같던 가지로부터 툭 하고 꽃을 피워내고 잎을 벋어내는 낙엽수들의 삶이 어쩌면 더 극적인 면을 안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그래서 언제 봄꽃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하고 기다려 왔는데, 지난 수요일 (2월 25일) 아침 산책길에 우연히 매화가 개화한 것을 발견하고 이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물론 매화나무를 다루겠지만, 또 다른 봄맞이 꽃인 영춘화도 언급하고자 합니다. ​ 

 

3월이 되면 거의 모든 신문, 잡지, 방송들이 특집으로 봄꽃 소식을 다루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언급되는 봄꽃들은 대부분 이름도 생소한 야생화들이라서 우리 눈과 (직접 보지 못 하니까) 가슴에는 잘 와닿지 않습니다. 이름들이라도 나열해 볼까요. 복수초, 광대나물꽃, 산자고, 노루귀, 얼레지, 처녀치마, 변산바람꽃, 히어리, 깽깽이풀 등등. 제비꽃, 수선화와 유채가 그래도 가깝게 느껴질 정도이지요. 그렇습니다. 실은 봄의 첫 전령은 대부분 야생화입니다. 그렇다면 나무에 피는 꽃은 없을까요? 동백꽃이 상록수로서 한겨울에 피니까 봄꽃이라 하기에는 좀 그렇다 치면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꽃나무는 역시 매화나무인 것 같습니다. 

 

필자가 나무를 좋아하니까 필자의 각종 SNS방에는 이미 매화 소식이 올라온 지 오래 되었습니다. 심지어는 일본에 사는 지인들도 그곳의 매화꽃 사진을 2월초부터 올리기 시작했고, 제주, 통영, 여수 등지의 지인들도 매화꽃 사진을 올려 왔지요. 이 글을 읽을 때 즈음이면 이런 곳에서는 이미 매화가 절정을 이루고 있을 것입니다. 

매화꽃은 아직 날씨가 추위를 느낄만 할 때 어느 꽃보다 일찍 피기에 주목받기도 하지만, 그 모습이 몇 주 뒤에 피는 벚꽃처럼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매우 기품이 있게 보여 선비의 집, 산사 등에 즐겨 심어졌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우리 도시인들의 삶에서는 다소 멀리 있는 꽃 같이도 느껴집니다. (요즈음은 아파트단지 주변에도 흔히 심는 경향이 있습니다만.)​ 

 

여하튼 매화라고 하면 어딘지 모르게 ‘기품 있는’, ‘그윽한’, ‘정갈한’ 등의 형용사가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이미지 때문인지 매화는 전통적으로 매우 ‘고귀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동양에서 높이 평가한 네 가지 식물들을 일컫는 四君子(사군자)의 맨 처음에 매화나무가 나와서 梅蘭菊竹(매란국죽)이 되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요.

한편 매화의 원래 고향인 중국에서도 예로부터 봄날 꽃 피는 순서를 가리켜 ‘櫻杏桃李次第開(앵행도리차제개)’라고 했는데, 필자가 즐겨 읽는 ‘나무백과’ 3권을 쓰신 원로 수목학자 임경빈 선생은 이때의 櫻(앵두 앵)을 매화나무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 벚나무를 가리키는 한자로 둔갑시켜 버렸습니다만.) 이렇게 매화는 추위가 아직 끝나기도 전에 가장 먼저 꽃을 피워서 봄소식을 맨 먼저 알리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셈이지요. 그런 매화의 모습을 잘 그려낸 寒中梅(한중매), 雪中梅(설중매) 등의 표현들이 아직까지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을 보면 역시 그 의미가 퇴색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임경빈 선생은 매화나무 이야기를 쓰면서 다음과 같은 전해오는 옛 말을 인용하고 있는데, 매화의 고고한 기품을 옛 선비들이 높게 평가한 것을 담은 내용 같습니다. 

‘모란은 꽃 중의 왕이요 해바라기는 충효로다. 매화는 隱逸士(은일사)요, 살구꽃은 小人(소인)이며 연꽃은 부녀이고 국화는 군자다. 동백꽃은 寒士(한사)요, 박꽃은 노인이며 패랭이꽃은 소년이요 해당화는 계집아이로다. 이 중에 배꽃은 詩客(시객)이요, 복숭아꽃은 풍류랑인가 하노라.’ 

 

​매화꽃은 보통 흰색 바탕에 약간의 분홍색을 머금은 것이 보통인데 온통 짙은 분홍색을 띈 홍매화도 있습니다. 필자는 자주 방문하는 원불교 중앙총부를 가면 건물들에서 큰 잔디광장으로 나가는 입구에 서 있는 홍매화를 사진에 담곤 합니다. 좋은 환경에서 자라서 그런지 이 나무는 키도 크고 꽃도 많이 피워 그곳을 찾는 순례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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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월16일 익산 원불교 중앙총부의 홍매화와 백매화의 아름다운 모습

 

매화가 이렇게 선비들이나 수양하는 사람들에게서 사랑을 받아온 덕분에, 옛 양반 댁의 정원이나 깊은 산사에서 오래된 매화나무를 만날 수 있습니다. 필자가 본 가장 오래 된 멋진 매화나무는 강릉 오죽헌에서 만난 600살이 넘은 율곡매입니다. 나이는 들었지만 2016년 5월말 들렀을 때도 여전히 열매를 주렁주렁 달고 있는 힘찬 나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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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29일 들른 강릉 오죽헌의 600살 율곡매 모습: 
줄기는 오래되어 굽어졌지만 여전히 열매가 주렁주렁 달리는 싱싱함을 유지하고 있다. 

 

국립수목원장을 역임한 이유미 선생은 매화의 열매인 매실의 쓰임새에 더 주목하고 있습니다. 모두에게 잘 알려진 대로 매실로 담근 술이 가장 유명하지만, 매실이 가진 건위, 강장, 해열 등의 효과 때문에 여러 가지 건강식품으로 활용되고 있는 점도 언급하고 있네요. 일본 사람들이 즐겨 먹는 고급 장아찌 역할을 하는 ‘우메보시’도 제법 알려진 식품입니다. 매실 중에서 익어도 오랫동안 푸른 빛을 유지하는 것을 가장 상품으로 쳐서 특별히 靑梅(청매)라고 부르는데 이 매실이 술과 건강식품으로 인기가 높은 것은 물론입니다. 

 

매화꽃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면서 봄의 전령으로서 굳게 자리매김을 하고 있습니다만 잘 알려지지 않은 가운데 비슷한 시기에 봄을 열어주는 역할을 하는 꽃이 있습니다. 이름마저도 봄을 맞이하는 꽃이라는 의미의 迎春花(영춘화)입니다.

이 영춘화는 조금 뒤에 피는 개나리와 꽃 모습도 그렇고 전체 수형도 비슷해서 혼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필자도 예외가 아니었지요. 그런데 이 꽃을 확실하게 알고 난 뒤에는 이 꽃에 매료되어 반드시 이른 봄에는 이 꽃이 있는 곳을 찾곤 합니다. 필자가 이번에 마음먹고 매화와 영춘화 중 어느 꽃이 먼저 피는가를 알아보려 나섰는데, 올해 분당 중앙공원 기준으로는 역시 매화가 먼저 개화하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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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25일 분당 중앙공원의 매화 꽃봉오리와 첫 개화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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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25일 분당 중앙공원의 영춘화 꽃봉오리: 노란색이 나올 듯하다.

 

비슷하다고 언급한 개나리와의 차이는 영춘화 꽃이 조금 더 가녀린 모습을 하고 있다는 점도 있지만, 꽃잎이 갈라지는 모습을 보아도 개나리가 네 개인 데 비해 영춘화는 여섯 개로 갈라지고 있습니다. 잎 모양도 차이가 납니다. 영춘화는 한 곳에서 나온 잎이 세 가닥으로 갈라지는데, 개나리 잎은 하나씩 독립되어 가지를 중심으로 마주 나는 특성이 있지요. 나무 전체의 수형을 보면 개나리가 1-2m 정도 위로 자라다가 점점 가지를 아래로 드리우는 경향을 보이는 데 비해, 영춘화는 가지가 올라오자마자 아래로 축축 처진다는 점이 특별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나무는 담장 가까이 심어서 처지며 피는 꽃이 담장을 장식하도록 하는 목적으로 쓰이는 것 같습니다. 필자가 이 꽃을 찾는 분당 중앙공원은 물론 익산 원불교 중앙총부, 남산공원, 그리고 서울 삼성병원 등 어느 곳에서나 이런 특징을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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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월17일 익산 원불교 중앙총부에서 핀 영춘화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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