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개도국 경제 현장 체험…가나공화국 정책 자문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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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 정부에 대한 자문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지난해 11월부터 최근까지 3번에 걸쳐 서아프리카에 위치한 가나를 방문하였다. 아프리카 대륙을 방문하는 것은 여러 면에서 뜻깊은 일이다. 자주 가지 못하기 때문에 방문 그 자체가 일종의 희소성을 가진다. 특이한 자연환경을 체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에서 설레기도 하였다. 그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아프리카 경제의 실상을 직접 경험하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아프리카 나라들이 발전이 지체되고 있는 데다 최근에는 많은 나라들이 외환부족으로 소위 외환위기를 경험하고 있는데 그 상황을 직접을 확인해볼 수 있다는 데 더욱 큰 의미가 있었다.
<가나의 역사>
가나는 사하라 사막 이남의 국가들 중에서는 모범국가에 속한다. 가나는 아프리카 국가 중에서 국민소득이 상대적으로 높은 데다 평화적 정권교체가 이루어지는 등 정치 안정을 달성한 몇 안 되는 나라 중의 하나이다. 그리고 부족 간 갈등도 나타나지 않는 등 사회적으로도 안정을 유지하고 있다. 양호한 경제 여건, 정치적 안정 등을 배경으로 아프리카 비동맹 운동, 서아프리카 경제공동체 등 국제적으로 선도국가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가나는 과거에는 황금해안(Gold Coast)으로 불렸다. 대항행기에 이곳에 도착한 유럽인들이 금을 생산하던 당시 부족국가들과 접촉하면서 이 지역을 황금해안으로 불렀다고 한다. 19세기 초부터 영국이 지배하기 시작하고 여러 부족국가를 식민지 행정 구역으로 편입하면서 지금의 가나와 같은 지역을 형성하였다. 식민지 당시에는 영국령 황금해안으로 불렸지만 1957년 독립하면서 나라 이름을 지금의 가나로 정하였다.
사실 황금해안은 엄청난 역사적 상처를 상징하는 어휘이다. 처음에는 금을 비롯한 값진 자원을 수집하고 유럽으로 반출하는 지역이라는 의미였지만 나중에는 노예 공급의 원산지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 지역에 살았던 선조들은 우리의 선조가 일제 강점기에 강제노역을 경험한 것보다 훨씬 더 가혹한 비인간적 처우를 받았고 자원을 수탈당하였던 것이다. 이 지역은 유럽과 신대륙을 연결하는 소위 삼각무역의 한 축이었다. 황금해안과 별도로 상아해안(Ivory Coast) 노예해안(Slave Coast)이라는 말도 사용되었는데 이는 지금의 코트디부아르 토고 배냉 나이지리아 해안을 지칭하는데 이는 전부 가나와 인접한 지역으로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 한마디로 제국주의 국가에게 가혹한 수탈을 당한 식민지 역사가 황금해안이라는 말에 담겨 있다. 따라서 지금은 이 용어가 거의 사용되지 않고 있다.
다만 은행의 이름에서 그 흔적이 일부 남아 있다. 1940년대 말 식민국가들의 독립이 가시화되는 단계에 이르러 가나에서도 독립을 열망하는 기운이 높아졌다. 신생 독립국의 자립을 위해, 그리고 한 나라의 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해 은행 설립이 추진되었다. 그 일환으로 1953년 식민지 가나의 상인, 사업가, 농부 등을 대상으로 한 소위 민족은행을 설립하였는데 그 이름이 ‘the Bank of Gold Coast’였다. 당시는 가나라는 국가명이 나오기 이전이므로 해당 지역의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1957년 독립과 함께 중앙은행으로서 가나은행(Bank of Ghana)이 설립되면서 ‘the Bank of Gold Coast’는 ‘Ghana Commercial Bank’로 이름을 바꾸었는데 그 영문 이니셜이 GCB로서 ‘황금해안은행’이라는 어감을 여전히 담고 있다. 이 은행은 현재 정부가 지분의 20% 정도를 소유하고 있고 가나 최대 상업은행으로써 전국에 150여개의 지점을 운영 중이다.
<국가 개황>
가나는 사하라 사막 남쪽 서부 아프리카에 위치하고 대서양에 인접한 국가이다. 국토 면적은 한반도보다 다소 넓은 23만 평방km이고 토고(동), 부르키나 파소(북), 코트디부아르(서) 등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지구의 지리적 위치를 정하는 기준인 경도 0도선(본초자오선)이 지나고 있다. 수도는 대서양에 인접한 Accra인데 그 인구는 약 3백만 명 정도이다. 한편 이보다 큰 도시인 Kumashi는 인구가 4백만 명에 달하는데 내륙에 위치한 이 도시는 식민지 이전에 가장 강력한 부족국가인 Asante 제국의 수도로써 식민 지배를 완성하려던 영국에 대항하여 투쟁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인구는 3천3백만 명을 넘는데 다민족 국가이기는 하지만 도시 지역에서의 실생활에서는 부족을 굳이 인식하지는 않는 듯하다. 다만 11개 언어가 국어로 지정되어 있는데 이를 기준으로 보면 적어도 11개 이상의 부족이 존재하는 것으로 추론이 가능하다. 다양한 언어가 존재하기 때문에 현재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다양한 인종에도 불구하고 종교적으로는 기독교가 대종을 이루고 있다. 기독교 신자가 인구의 70%에 달한다. 이외에 이슬람교도도 약 20%이고 민간신앙도 일부 신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종교적 배경으로 서구 주요국들이 교회를 기반으로 학교 등을 설립하고 교육을 전수하는 등의 지원을 이어가고 있다.
건국 초기에는 사회주의를 표방 내지는 지향하기도 하였으나 군사 구테타가 수차례 발생하는 등의 우여곡절을 거친 후 최근에는 친서방 및 자유시장경제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가나는 북한과 1964년에 수교하였고 대한민국과는 그보다 훨씬 늦은 1977년에야 수교하였다. 현재에는 당연히 한국과의 교류가 활발한데 주요 인프라 시설 건설에 한국 기업들 다수가 참여하였던 데다 가나는 자본부족 등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하여 한국 기업들의 진출을 지속적으로 요청하고 있는 상황이다. 자유시장경제체제의 확립, 역내에서의 주도적 역할, 기독교를 기반 사회, 그리고 공용어 영어 등을 배경으로 가나인들의 국제기구 등으로의 진출도 활발하다. 예를 들면 반기문 사무총장 직전에 유엔사무총장을 역임하였던 Kofi Anan이 가나 출신이었다.
<경제 발전 단계>
2021년 현재 가나는 1인당 국민소득이 약 2,600달러(세계은행 통계)이다. 2010년대 들어 저소득국가에서 탈출하여 중간소득 개도국(lower-middle income country)으로 진입하였다. 아프리카 국가 중에서 도서국가, 지중해 연안국가, 그리고 남아프리카 공화국 등을 제외한 아프리카 대륙 국가 중에서는 비교적 높은 수준이다. 참고로 우리나라는 1980년대 중반에 이 수준을 넘어섰다.
산업구조는 농업이나 광업 등 제1차 산업이 주를 이루고 있다. 목재 제재 등 제1차 산품 가공업을 제외하면 제조업은 극히 빈약하다. 주택이나 상업용 건물을 짓는 건설업은 비교적 활발하다. 그 나머지는 주로 서비스업으로 이루어지지만 그 수준은 상당히 낮은 것으로 보인다. 선진국에서 볼 수 있는 근대화된 상가 형태가 아닌 길거리에서 호객을 하는 형태의 전근대적인 상거래가 대부분이다. 식민 시대에 지어진 현대식 건물들이 즐비하지만 실내보다는 실외에서의 거래가 성행하고 있다. 그 이유를 명확하게 알지는 못하지만 전기료가 비교적 비싸기 때문에 실내 활동이 제한되고 있는 것으로 유추 해석된다.
한편 기후 면에서 남부와 북부로 나뉘는데 북부 지역은 사하라 사막 기후의 영향을 받아 가뭄이 주기적으로 발생하고 그에 따라 농작물 작황이 부진해지는 문제가 빈발하고 있다. 이에 따라 농촌 인구가 도시지역으로 유입되고 있는데 현재에는 인구의 60% 정도가 도시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농촌 이탈 인구를 제조업에서 흡수하지 못함으로써 도시지역에서는 서비스업 등에서 과당 경쟁이 이루어지는 악순환 구조가 형성되어 있다. 수요는 한정적인 데 비해 신규 유입인구가 도소매 판매업에 종사함으로써 개별 상인 기준으로는 매출이 줄어드는 소위 zero-sum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고 하겠다.
주요 산물은 금을 비롯하여 다이아몬드와 보크사이트 망간 등 지하자원이 풍부하다. 이에 더하여 2007년 석유 매장이 발견되고 2011년부터 실제 체굴을 시작함으로써 소득 증대에 결정적으로 기여하였다. 지하자원과 더불어 농산물로서 코코아도 유명하다. 금, 석유, 코코아가 3대 수출 품목을 이루고 있다.
코코아는 초콜릿의 원재료로서 현재 가나의 주요 산물로 외화 획득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코트디부아르와 함께 가나는 주요 코코아 산지이다. 우리나라의 한 제과회사가 초콜렛 상표를 이 나라 이름으로 정한 것으로 보아도 이 나라가 코코아의 주요 산지라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가 가나로부터 수입하는 물품 중에서는 코코아가 금액 면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한편 가나산 코코아를 가공 판매하는 회사(Cocoa Processing Co. Ltd)가 운영되고 있는데 이 회사야말로 말 그대로 가나 초콜릿을 생산하고 있다. 가나 초콜릿은 통상적으로 익숙한 유럽식 초콜릿과는 달리 맛이 강하면서도 원시적 향을 가지고 있어 그 품질이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때 자연 자원 채취를 위해 주변국으로부터 많은 노동력이 유입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가뭄 등으로 작황이 좋지 않게 되고 경제성장이 악화되면서 외국인들을 추방하기도 하였고 도리어 가나인들이 주변국으로 이주하여 노동을 제공하는 상황이 전개되었다. 최근에는 전문인력들이 유럽이나 미국 등지로 활발히 진출하고 있다.
지출구조 면에서는 가계소비가 GDP의 8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수출도 GDP의 40%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데 국내 제조업 기반이 빈약하여 대부분의 공산품을 수입해야 하기 때문에 수입 비중도 상당히 높아 수출을 능가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가나는 대외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만성적인 국제수지 적자를 보이고 있다. 한편 고정자본투자는 GDP의 10% 내외로 주로 자동차 구입이나 건설투자 등에 국한되고 제조업이 빈약한 사정을 반영하여 설비투자는 극히 미약하다.
만성적인 경상수지 적자를 반영하여 대외채무 규모가 상당하다. 2021년 현재 대외 채무가 360억 달러에 달하는데 석유 채굴이 시작된 2010년대 이후 대폭적으로 증가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2000년대까지는 많아야 80억 달러 수준이었고 2006년에는 40억 달러까지 감축하는 데까지 성공하였으나 그 이후 빠르게 누적되었다. 이는 미숙한 경제정책과 재정운용의 결과에 기인하는데 이에 관해서는 나중에 설명하겠다.
한마디로 가나는 석유와 금 등의 천연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데다 농산물 재배 여건도 양호한 자연적 조건에도 불구하고 제조업 기반이 약하여 경제도약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도시화가 진전되면서 자영업 형식의 도소매에 의존한 서비스업이 대종을 이룸으로써 경제성장에 제약이 따르고 외부 충격에 노출되는 취약성이 누적되어 왔다.
<최근의 경제상황>
한 나라의 경제상황을 한마디로 표현하기는 상당히 어렵다. 그러나 가나의 경우 중앙은행 웹페이지를 보면 경제상황의 상당 부분을 짐작할 수 있다. 2023년 7월 20일 접속한 바로는 중앙은행 정책금리 29.50%, 물가목표 8.0±2%, 실제 인플레이션율 42.5%, 91일물 국고증권 수익률 23.2515% 등의 정보가 게시되어 있다.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의 발발 등의 급변하는 국제 경제 상황에 따라 가나 경제는 크게 흔들렸다고 할 수 있다.
가나 경제의 취약성은 대외거래 구조에서부터 살펴볼 수 있다. 사실 상품수출은 상품수입을 능가하여 무역수지가 얼마정도의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예를 들면 2018년부터 2020년 중 재화수출 150억 달러 내외이고 수입은 140억 달러 수준이다. 그러나 이 기간 중 경상수지는 연평균 21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상품 수지의 흑자에도 불구하고 서비스 부문에서 적자와 함께 소득수지가 막대한 규모의 적자를 기록하기 때문이다. 특히 2018년부터 2020년 기간 중 소득수지 유출이 연평균 40억 달러를 상회하였다.
취약한 대외거래 구조로 인하여 최근의 달러화 강세 현상의 여파가 직접적으로 미치게 되었다. 코로나 발생 이전에는 환율이 달러당 6 세디(cedi, 가나 통화 단위) 수준에서 안정을 보이다가 코로나 발생 이후 서서히 오르기 시작하여 2022년 2월 이후에는 더욱 빠르게 상승하였다. 2023년 6월 현재 환율이 달러당 12 세디로 2년 전에 비해 두 배나 높은 수준이다.
대외거래 구조가 허약한 가운데 대외지급 부담이 증가하면서 환율이 급등하고 결과적으로 외환위기 상황에 도달하였다. 실제로 2022년 12월 가나 정부는 IMF에 확장신용장치(Extended Credit Facility Arrangement)에 의거한 유동성 공급을 요청하였다. 그리고 IMF는 2023년 5월 최종적으로 30억 달러 한도의 자금 공급계획을 승인하였다. 외채규모가 과다한 데다 무역수지 적자가 지속되는 가운데 소득수지지급 등 대외지급 부담이 여전하기 때문에 IMF 자금공여 계획에도 불구하고 환율이 크게 하락하지 않고 있다.
환율이 급등하면서 주요 수입 물품의 가격이 폭등함에 따라 국내 물가가 급등하였고 이에 상응하여 금리를 인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금리를 인상하였음에도 그 수준이 충분치 못하여 명목금리가 물가상승률에 미치지 못하는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경제위기의 반복>
사실 가나에서는 경제위기가 반복되고 있다. 2013년에는 재정위기를 경험하였고, 2018년에는 상당수 금융기관들이 폐쇄되는 금융위기를 겪었다.
2013년 재정위기의 배경은 다음과 같다. 석유가 발견되고 본격적으로 원유를 채굴하기 시작한 2011년 경에는 경제 전망이 호전됨에 따라 해외자본 유입이 급증하였다. 양호한 차입 여건에서 석유 부문 등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기 위하여 정부가 대규모 외채를 발행하였다. 하 지만 실제로는 차입금의 상당 부문을 정부가 소비하고 말았는데 정확히 얘기하면 공무원 임금 인상에 활용하였다. 공무원 임금체계를 개편하는 과정에서 임금 인상률을 높인 것이 결정적인 과오였다. 2012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공무원들의 요구에 굴복하고 말았던 것이다. 반면 2013년 들어 금값 폭락 등으로 수출 관세가 줄어들면서 재정 수입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그와 함께 경상수지가 적자를 보이고 미국 금리 인상 가능성 등과 더불어 환율이 급등하였다. 한편 공무원 임금 인상 등을 배경으로 국내 소비가 크게 늘어나면서 수입은 확대되었다. 그리고 환율 급등은 또다시 외채 부담을 증대시키고 외환위기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2018년에는 금융위기가 발생하였다. 연고주의, 지배구조 상의 허점 등으로 인하여 대규모 부실이 발생함으로써 5개 은행은 면허가 취소되어 하나의 은행으로 통폐합되었다. 그리고 비은행금융기관 400여개가 폐쇄되었다.
2022년에 또다시 외환위기를 맞았는데 결과적으로 최근에는 5년마다 경제위기가 반복되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하고 있다.
<새로운 형태의 식민 경제 체제 형성>
가나 경제가 위기를 반복하는 원인으로 여러 요인을 생각해볼 수 있겠으나 근본적으로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아직도 식민지 경제 체제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이다. 다음으로는 경제운용능력이 취약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 두 가지 요소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기 때문에 엄격한 기준으로 서로 구분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먼저 식민 경제 체제의 관점을 살펴보기로 하자. 가나는 70여 년 전인 1957년에 독립하였지만 아직까지 경제적으로 자립하지는 못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현재의 경제구조가 대내외 충격을 흡수하거나 일시적으로 발생한 불균형을 신속히 시정하는 내부 기제가 전혀 마련되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조그만 충격이 오더라도 경제가 요동치고 외부로부터 지원이 있어야 겨우 안정을 되찾는 과정을 되풀이하고 있다. 한마디로 나라 경제가 독자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지 못한 상태이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식민지 시대의 경제 수탈구조와 비슷한 메커니즘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고 할 수도 있다.
과거 식민지시대에는 식민지를 지배하던 제국은 식민지로부터 주로 자연자원을 수탈하는 데 집중하였다. 당시 세계경제는 지금에 비해 비교적 단순하여 간단한 기계기술에 주로 의존하고 자연자원을 널리 활용하는 식으로 운용되었다. 당시 식민제국은 자국이 필요로 하는 자연자원이나 희귀자원, 그리고 인력 등을 식민지로부터 약탈하거나 불평등한 거래방식을통해 본국으로 이전시키는 방식을 동원하였다.
요즘 경제는 각종 기계와 기기에 더하여 사회간접자본 및 여러 형태의 지적재산권, 경영 지식 등 다양한 생산요소들이 결합하는 식으로 경제가 운용되고 있다. 게다가 금융부문도 그 역할이 중요해지면서 자본의 보유 여부도 경제 운용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일반적으로 한 나라가 경제적으로 자립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요소들을 구비하고 있어야 한다. 완벽하게 모든 요소를 갖출 필요는 없겠지만 상당한 부분은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가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개도국은 이러한 요소들이 턱없이 부족한 것을 알 수 있다. 외양적으로 보더라도 도로 통신 방송 등 일반적인 기반시설이 충분히 구비되어 있지 못하다. 특히 통신 부분에서는 외국계 통신사들이 대부분의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금이나 석유의 채굴도 자체적으로 수행하지 못하고 주로 외국계 기업들이 담당하고 있다. 금융부문에서도 국내 자금을 동원할 수 있는 능력이 극히 미약하다. 상당수의 국민들이 아직도 은행 계좌를 보유하지 못한 상태이고 사회 전체적으로 자본 축적이 미약하여 대규모 투자 등을 자체적으로 추진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1950년대 저개발국가의 문제로 지적된 “빈곤의 악순환” 현상이 아직도 지속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만 당시와 다른 것은 지금 개도국들이 겪는 문제가 단순한 빈곤의 악순환 현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과거 식민지 시대에 작동하였던 경제적 약탈 메커니즘이 다양한 부문에서 여러 형태로 이루어짐으로써 개도국의 경제도약이 제약을 받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경제문제를 악화시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개도국들도 경제발전을 위하여 대규모 투자 등이 필요하다. 문제는 국내 자본이 부족한 상황에서 결국 해외자본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그 결과 해외자본에 대한 수익금 배분 등의 형태로 자본이 유출되기 마련이다. 이러한 국부 유출이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기 때문에 국내외 경제사정이 악화될 때마다 충격을 받게 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정보통신기술의 확산을 배경으로 디지털 부문에서 선진국 기업에 의한 개도국 착취 현상이 교묘하게 진행되고 있다. 최근 제4차 산업혁명 열풍과 더불어 개도국에서도 여러 부문에서 디지털 전환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스마트폰의 보급과 그와 관련한 각종 서비스를 생각해볼 수 있다. 심지어는 스마트폰을 활용하여 개도국의 금융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하는 새로운 조류와 믿음까지 형성되기도 하였다. 스마트폰이 단순한 전화기의 기능을 넘어서 각종 어플리케이션을 활용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괄목할 만한 것은 금융 서비스 기능이다. 그동안 은행 이용에 제한을 받았던 개도국 일반 서민들에게는 스마트폰을 활용하여 금융 서비스를 제공한 것은 과히 혁명적이라 할 수 있다. 소위 말하는 mobile money가 개도국에서 널리 활용되고 있는데 그 사례로는 케냐의 M-Pesa, 중국의 Alipay 등이 대표적이다. 처음에는 단순 송금에 주로 이용되었지만 지금은 대출 기능까지도 수행할 정도로 그 용도가 확장되었다. 그동안 제공되지 않던 금융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된 것은 결코 나쁘다고 할 수 없으나 그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그중에서도 문제가 되는 것은 mobile money 수수료를 통해 얻은 통신사 수익이 해외로 유출된다는 사실이다. 통상적으로 mobile money 수수료는 거래 금액의 1% 정도이다. 개별 거래만 놓고 보면 이 수수료가 별것 아닐 수 있지만 나라 전체의 총거래 규모를 생각하면 그 금액은 엄청난 수준에 달한다. 이 수수료를 통상적으로 통신사가 수취하는데 그 통신사는 해당국가의 소유가 아닌 선진국 회사라는 점이 핵심이다. 대규모 mobile money 수수료가 통신사 수익으로 계상되고 결국에는 투지수익의 본국 송환 형태로 해외로 유출된다는 것이다. 화폐발행으로 인한 암묵적인 수익인 monetary seigniorage가 자국 중앙은행이 아닌 해외 기업이 수취하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어떤 면에서 개도국 경제에 대한 새로운 형태의 경제적 착취라 할 수 있다.
일부 학자들은 이와 같이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여 개도국으로부터 선진국 기업들이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행태를 “digital mining”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과거 식민지시대에는 자연자원을 통해 수탈이 이루어진 데 비해 지금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여 개도국 경제를 수탈한다는 의미이다. 사실 digital mining은 mobile money 이외에도 fintech와 관련하여 이루어지기도 하고 각종 어플리케이션 등을 통해서도 일어나고 있다. 이 개념을 좀 더 확대하면 개도국에서 선진국이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방식이 단순한 무역의 차원을 넘어서 각종 투자와 지적재산권, 그리고 금융 등으로 널리 확산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약탈적 세계경제 질서에 맞서는 방법으로는 독자적인 수익창출 부문을 보유하거나 자본을 축적하고 자체적인 기술 확보(디지털 소프트웨어 개발 포함)에 나서는 등의 방안들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러나 개도국은 이러한 과제를 스스로 풀 능력이 없다는 데 근본적인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경제운용 능력 미약 >
가나에서는 각종 사회간접자본이나 주요 기업들의 운용성과가 경제를 다음 단계로 발전시키는 데 활용되기보다는 비효율을 누적시킴으로써 오히려 경제발전을 제약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사례들은 쉽게 찾을 수 있다.
지금 가나는 산유국임에도 해외에 비하여 높은 가격의 휘발유를 써야 한다. 그 이유는 정유소가 있음에도 정유 처리 능력이 점차 감소하기 때문이다. 가나는 석유가 발견되기 훨씬 이전인 1963년에 정유소(Tema Oil Refinary)를 설립하였다. 그러나 이 정유소의 운용이 갈수록 어려워짐으로써 해외 수입이 국내 생산을 능가하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최근에는 정유 처리 실적이 2000년대의 절반 수준으로 격감되었는데 예를 들면 휘발유 생산량이 2000년 1,028 킬로톤에서 2020년 580 킬로톤으로 감소하였다. 반대로 석유정제품(LPG 휘발유 등) 수입은 2000년 816 킬로톤에서 2020년 3,965 킬로톤으로 크게 늘어났다. 그것을 금액으로 환산하면 19억 달러에 달한다. 한편 국내 생산 원유의 대부분은 수출하는데 그 규모는 2020년 6천7백만 배럴로 29억 달러어치이다. 정유소의 시설 등의 유지 보수가 이루어지지 않음에 따라 효율이 저하되고 결국 제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지 못하는 결과가 초래되었다.
또 다른 사례가 국적항공사 운영 실패이다. 국적 항공사로서 Ghana Airways가 1958년에 가나 정부와 영국항공 합작으로 설립되었다. 이 항공사는 2000년대 들어 채무가 누적되기 시작하였다. 채무 불이행이 길어지면서 운항 중인 비행기가 런던 히드로공항에 억류되기도 하였다. 게다가 미교통부의 훈령을 위반하는 등의 문제로 미국 취항이 중단되는 일도 발생하였다. 이 항공사의 정상화를 위한 매각 협상이 다양하게 진행되기도 하였지만 결국 정부는 2005년 가나항공을 청산하기로 결정하였다.
결론적으로 가나는 현대적 차원의 제조 및 서비스 기업을 스스로 운영하지 못하면서 서비스 수수료 및 투자 수익이 대규모로 유출되고 결과적으로 국내 자본 축적이 이루어지지 않고 경제성장이 제약되는 과정이 악순환적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가나에서 정유사나 항공사 등의 운영이 부실하게 된 배경이나 원인은 또 다른 차원에서 살펴봐야 할 것이다. 사회문화적 풍토 등의 요인이 새롭게 부각될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부패, 연고주의, 단견적 사고방식, 관료주의 등의 비합리적 행태들을 예상할 수 있다. 여기에서는 그에 관한 논의는 생략하기로 한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여느 개도국들과 비슷하게 가나 역시 문제해결 능력이 과히 뛰어나다고는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통상적으로 social capability라고 지칭한다. 어느 나라든, 어떤 단계이든 새롭게 직면하는 문제들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면 그 경제는 정체되거나 쇠락할 수밖에 없다. 지금 가나는 부존 자연자원 덕에 경제가 어느 정도의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으나 여러 차원에서 문제 해결 능력이 미진하여 본격적인 경제도약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가나가 앞으로 이 문제를 극복하고 경제적 도약을 이룩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마지막으로 우리와 관련한 시사점을 생각하면서 얘기를 끝내고자 한다. 사실 우리도 비슷한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가나가 직면하고 있는 “빈곤의 악순환” 문제는 극복하였다. 그러나 선진국으로 진입하고, 나아가 세계 선도국가가 되는 단계에서 새롭게 직면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난항을 겪고 있다. 저성장의 장기화, 출산율 저하, 인구 고령화, 소득 및 자산 양극화 등 좀처럼 고치기 어려운 과제들을 맞닥뜨리고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이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social capability가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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