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변 경제학자’의 정책 체험기 <6> 대우조선을 살릴 것인가? 죽일 것인가? >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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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에 대우조선이 부실화되었다. 부채가 과도하게 늘어나서 자력으로 정상화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던 것이다. 정부에서는 대우조선정상화방안을 연구검토하는 작업반을 구성하였는데 나도 참여하게 되었다. 당시 나는 산업연구원소속이었는데 상공부장관 자문관으로 파견나가 있다가 작업반에 참여하라는 요청을 받았다.

 

1989년 '대우조선 정상화방안' 연구검토 작업반에 참여

 

작업반에는 나 이외에 공무원, 은행직원, 회계사등이 있었다. 작업반의 업무처리방향에 대해서 상부로부터 구체적인 지침이나 언질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당시 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이 경제학 교수출신이었는데 그는 대기업의 구제, 즉 대마불사에 대해서 부정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작업반설치이전에 공무원들이 개조식으로 대우조선처리에 대한 보고서를 올렸는데 개조식 형식의 보고서를 읽다 보면 부지불식간에 공무원들의 숨은 의도의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이 싫어서 완전한 문장으로 풀어쓴 서술형으로 보고서를 다시 올리라는 지시를 했다는 말이 돌았다. 이런 저런 이유 때문에 작업반 구성원들사이에서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결론을 내어야 한다는 분위기가 강했다.

 

그때까지 여러차례의 부실기업정리가 있었지만 대기업을 파산시킨 전례는 없었다. 부실기업정리에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공식같은 것이 있었는데 우선 자구노력을 선행하고 정부지원을 병행하면서 때로는 다른 기업에 인수합병시키는 방식이었다. 자구노력에는 인원감축, 자산매각, 계열기업매각, 대주주의 출연, 유상증자등이 포함되었고 정부지원속에는 부채탕감, 출자전환, 산업은행의 추가출자와 대출, 시중은행의 추가대출등이 들어있었다. 때로는 부실경영의 책임을 물어서 다른 재벌에게 인수시키기도 했는데 이 경우에는 정부지원이 당근으로 같이 제공되는 것이 상례였다.

 

작업반에서는 대우조선부실화의 원인규명부터 착수했는데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세계해운시황의 불황에 따른 선박수주의 부진때문이라는 외부요인설과 회사경영상의 난맥때문이라는 내부요인설이 맞섰다. 외부요인설은 객관적 사실에 근거한 것이므로 부정하기 어려웠으나 내부요인설에 대해서는 회사측 입장과 정부측 입장이 대립하였다. 

 

정부 "경영부실 탓", 회사 "정부가 자금지원 약속 지키지않았다"

 

정부측은 유독 대우조선의 경영난이 여타 조선소에 비해서 심각하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삼성조선이나 현대조선은 세계해운시장의 불황에도 불구하고 경영상태가 대우조선보다는 양호하다는 사실은 대우조선의 경영진에 문제가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했다. 나중에는 대우그룹회장이 거제도에 있는 대우옥포조선소에 직접 가서 현장을 확인하는 일수가 일년에 며칠에 그쳤다는 점까지 들추어 내기도 했다.

회사측에서는 정부책임론을 들고 나왔다. 대우그룹이 조선공사로부터 옥포조선소를 인수한 것도 정부의 강요에 의한 것이었고 인수조건의 핵심이었던 자금지원약속을 정부가 지키지 않은 것이 부실의 근본원인이라고 주장하였다.

 

정부와 재벌이 정면충돌하는 양상으로 전개되면서 공무원들의 고심이 깊어지는 것으로 보였다. 저녁자리에서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자칫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어려움을 겪게 될 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재벌회장은 장관목도 붙였다 뗐다 하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데 자기들 같은 실무급은 무슨 불똥이 튈지도 모른다면서 신세 한탄을 하곤 했다.

 

자구노력의 일환으로 대우 계열회사중에서 팔아서 돈이 될 만한 업체를 파악하는 작업이 이루어졌다. 은행과 회계법인에서 나온 전문가들이 그 일을 했는데 결과가 충격적이었다. 매각대금으로 대우조선의 재무구조개선에 도움이 될 만한 가치를 지닌 기업이 대우전자를 필두로 해서 몇 개에 불과한 것으로 밝혀졌던 것이다. 수십개의 계열회사 대부분은 재무구조가 열악하였던 것이었다.

 

 대마불사 관행 반복하면 재벌 도덕적 해이…"이번엔 과감히 정리"의견도

 

내가 맡은 일은 조선산업의 전망이었다. 세계해운시장이 회복되면 선박수주가 늘어날 것이고 수주가격도 올라가서 대우조선의 경영이 호전될 수 있었기 때문에 대단히 중요한 작업이었다. 나는 산업연구원의 조선산업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서 일을 진척시켜 나갔다. 

 

세계해운산업은 뚜렸한 경기사이클을 보여주고 있었다. 세계경기의 움직임과 일정한 시차를 두고 후행적으로 움직였다. 석유파동과 같은 커다란 충격이 오면 그 영향을 오랫동안 받곤 했다. 해운산업은 다시 일정한 시차를 가지고 조선산업에 영향을 미쳤다. 해운경기가 나빠지면 선박발주가 줄어들고 가격도 하락했다. 조선소들은 이미 수주한 선박을 건조하면서 어려운 시기가 지나가고 회복의 시기가 도래하기를 고대하곤 했다.

 

정확한 기억은 나지 않는데 4-5년이 지나면 해운물동량이 회복되고 선박수주도 따라서 회복될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했다. 그 전망이 맞다면 대우조선의 경영도 호전될 가능성이 높았다. 

 

전망이 중요했던 이유중의 하나는 대우조선의 도크를 묻어 버리자는 극단적인 의견도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에 조선산업의 전망이 계속해서 불투명하다면 도크 한두개를 묻어 버리는 방안도 고려될 수 있었다. 이러한 주장은 시장규율을 확립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강조하였다. 부실기업을 구제하지 말고 망하게 해야 재벌이 정신을 차린다는 것이었다. 대마불사의 관행을 반복하다보면 재벌역시 반복적으로 부실기업을 만들어 내는 도덕적 해이에서 결코 빠져 나올 수 없다는 정의감의 발로이었다. 속된 말로 이번에 본때를 보여야 한다는 결기의 표현이었다. 

 

치열한 토의 거쳐 대우조선 살리되 자구노력 최대화, 정부지원 최소화

 

그러나 조선경기의 회복이 확실하다면 도크를 보존하고 회사를 살려서 호황을 기다릴 필요가 있었다. 호황이 몇 년 계속되면 부실을 털어내고 막대한 수익을 창출해 낼 수 있었다. 고용을 유지하고 지역경제를 살리는 효과도 있을 것이었다.

치열한 내부토의 끝에 대우조선을 살리는 방향으로 가닥이 잡혀졌다. 그러면서 자구노력을 최대화하고 정부지원을 최소화한다는 원칙도 세워졌다. 작업반은 보고서를 서술형 문체로 써서 상부에 보고했고 최종결정의 골격은 작업반의 보고서를 반영해서 만들어 졌다. 반원들은 뿌듯한 성취감을 안고 회식에서 소주잔을 기울였다. 대우조선은 그후에 조선산업의 호황기에 편승해서 부실을 털어내고 수익을 창출하였다. 그 때 도크를 묻어 버리지 않은 것은 잘한 결정이었고 천만다행이었다.

 

1997년에 외환위기가 터졌다. 국내외의 복합적인 악재가 한꺼번에 밀려오는 퍼팩트스톰(perfect storm)이었다. 그런데 직접적인 근인(近因)중의 하나는 부실대기업을 부도나게 방치하겠다는 정책당국의 천명이었다고 생각한다. 대마불사의 믿음을 깨고 시장규율을 확립하겠다는 원칙이 고위공무원의 입에서 나왔던 것이다. 심지어는 은행도 망하게 할 수 있다는 말까지 나왔다. 대기업을 부도내면 당연히 은행도 부실화될 수 밖에 없는데 은행도 대마불사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미 몇몇 대기업이 부도위기에 몰려서 외국투자자들의 불안심리가 고조되고 있는 형국에서 나온 극단적인 발언은 불에 기름을 붓듯이 사태를 악화시켜서 외화유출이 가속화되었다고 생각한다.

 

 외환위기의 近因 중 하나, 정부가 '부실대기업 부도 처리 방침' 천명

 

정부주도경제운용을 시장주도로 전환시킨다는 원칙은 옳고 방향은 그렇게 가야 했다. 그러나 옳은 목표에 도달하는 과정은 연착륙일 수도 있고 경착륙일 수도 있다. 연착륙은 시간이 걸리고 때로는 돌아가기도 해야 하고 현실과 타협하기도 해야 하지만 치러야 할 비용을 줄일 수 있다. 경착륙은 적폐를 속시원하게 부수고 이왕 치러야 할 비용이라면 빨리 치르는 한이 있더라도 과감하게 목표를 향해서 나아갈려고 하는데 의도와는 다르게 엄청난 비용과 혼란을 야기하게 된다.

 

역사에 나타난 경착륙의 전례를 몇가지 살펴 보자. 프랑스대혁명이 왕정을 타도하고 공화정으로 정착하는데 근 100년의 세월이 걸렸고 그동안 숱한 희생이 뒤따랐다. 모택동의 영구혁명아집은 문화혁명이라는 재앙을 낳았다. 쏘련붕괴이후에 급진적으로 시장경제를 구축하겠다는 시도는 혼란을 야기시켜서 오히려 시장경제의 도래를 지연시킨 반면에 점진적 노선을 채택한 중국에서 기업가정신이 융성하고 있다.   

1997년의 외환위기는 시장주도경제로 가는 길목에서 경착륙한 것이었다. 부실기업을 감지,판별,평가하여 질서있는 구조조정이 이루어 지게 하는 제도적인 시장인프라가 결핍되어 있는 현실을 무시하고 대마불사는 안된다는 무모한 결단이 불러온 재앙이었다.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수많은 국민들이 실업의 고통과 삶의 기반이 파괴되는 아픔을 겪었다. 그 이후에 생긴 비정규직이라는 괴물은 지금도 노동시장을 왜곡하고 젊은이들에게 좌절을 안겨주고 있다. 물론 위장된 축복이라는 말이 상징하듯이 위기를 맞지 않았으면 불가능했을 개혁을 밀어 붙일수 있는 동력을 제공했다는 평가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지만 개혁의 추동력을 얻기 위해서 일부러 위기를 불러 온 것은 아니기 때문에 위장된 축복은 어디까지나 결과론일 뿐이다. 

 

지금 다시 경영난에 빠진 대우해양조선, 해법은 무엇인가? 

 

대우해양조선은 지금 다시 경영난에 빠져들고 있다. 이번에는 세계해운시장의 불황에 따른 선박수주격감이외에 중국의 추격이라는 새로운 원인까지 겹쳤다. 거기에다가 호황기에 고부가가치기술개발을 소홀히 한 경영실패까지 가세한 복합위기라는 점에서 30년전의 위기와는 차별화된다. 위기의 원인이 다르기 때문에 대응도 달라져야 한다. 조선호황기가 다시 도래할 때까지 정부지원으로 연명하는 것은 중국의 추격이라는 새로운 변수를 간과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도크를 파묻는 극단적인 처방이 합당한 것도 아니다. 비록 중국의 도전을 받고 있다고 하더라도 세계조선경기가 회복기에 들어가면 상당한 수준의 수주증가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두 극단적 방안의 중간 어디쯤에서 해결점을 찾아야 할 것이다. 자구노력과 정부지원으로 시간을 벌면서 건조능력의 감축을 단행하고 중국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고부가가치선박과 해양구조물에 핵심역량을 집중하는 것이 30년전의 대우조선부실해결에서 찾을 수 있는 교훈이 될 것이다. 

<ifs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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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11-21 18:05:00 최종수정 2018-11-23 11:4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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