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변 경제학자’의 정책 체험기 <4> 반도체산업은 민간주도로 꽃피웠다 >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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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변 경제학자의 정책체험기’는 공직생활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해외유학과 산업연구원 부원장,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원장, 국제무역연구원 원장, 그리고 주OECD대사를 역임한 이경태 박사가 겪은 주요 경제정책 결정과 집행과정의 뒷얘기들을 담은 연재물이다. 주로 정부 경제정책의 수단과 방법을 연구해 제공한 탓에 본인 스스로 ‘관변 경제학자’라는 수식어를 사용했지만, 그만큼 정책 이면사(裏面史)를 꿰뚫고 있다는 점에서 지금의 정책당국자들에게도 많은 참고가 되리라 믿는다. 앞으로 20여회에 걸쳐 우리 경제발전의 주요 분수령이 된 정책과 사건의 자초지종은 물론 시사하는 바를 엮어나가고자 한다.<편집자> ​

 

반도체가 뭔지도 모르는데 ‘전자정보산업 연구부서’인 産業硏 3실장 맡아

 

산업연구원에 들어간 후에 처음에는 동향분석실에서 금융산업을 연구하였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산업3실장으로 전보되었다. 

산업3실은 전자정보산업을 연구하는 부서이었다. 거시금융을 공부한 나의 전공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전자산업의 기술적 성격에 대한 지식도 전무하였다. 반도체가 어디에 쓰이는지도 모르는 깜깜이 무식쟁이였고, 반도체가 어떻게 생겼는지 본적도 없는 사람을 전자실장으로 임명하였던 것이다. 다른 산업실의 실장으로 임명된 박사들도 각자의 전공과는 동떨어진 보직을 맡았다. 미국에서 전자산업, 경공업, 중공업 등으로 경제학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을 구하기란 하늘의 별따기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일단 책임이 주어진 이상 최선을 다 할 수밖에 없었다. 오랜 동안 전자산업을 연구해온 연구원들로부터 배우고 전자기술을 전공한 연구원으로 부터는 반도체의 기초원리부터 학습을 받았다.

 

그 당시 한국 전자산업이 당면한 구조적인 문제는 가정용전자제품의 비중이 너무 크고 ,산업용전자의 비중이 왜소하다는 점이었다. 라디오와 텔레비전이 주종이었고 그 무렵에 태동하기 시작한 정보화사회의 핵심인 컴퓨터는 개인용 컴퓨터를 중심으로 이제 막 단순조립형태의 국내생산이 시작되고 있었다.

 

전자기술개발 촉진위해 1976년 한국전자기술연구소 설립, 민간기술개발을 지원

정보화 사회의 꽃이라고 불리우는 반도체는 1960년대에 선진국기업의 하청공장으로 단순조립생산을 해서 수출하는 저임금활용형 산업으로서 어느 정도 생산기반을 확보하고 있었다. 

1970년대 들어와서는 단순조립을 탈피하고 웨이퍼 가공단계로 진입하여 반도체기술의 업그레이드가 이루어 졌다. 정부도 반도체를 비롯한 전자기술개발의 시급성을 깨닫고 1976년에 한국전자기술연구소를 설립하여 민간의 기술개발을 지원하기 시작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84년에 국내에서 생산된 반도체의 94.3%는 단순조립제품이고 부가가치가 높은 웨이퍼가공 제품은 5.7%에 불과하였으니 문자 그대로 반도체후진국이었다.

그로부터 불과 30여년이 지난 지금 한국은 반도체산업의 세계최강자로 부상하였고, 특히 메모리반도체 분야에서는 다른 나라의 추종을 불허하고 있는 실정이다. 

 

삼성이 신청한 공장 건설용 외자 도입 심의, 정부는 ‘부정적’

 

그렇다면 이 같은 비약적인 반도체산업의 발전은 중화학육성의 경우처럼 정부주도이었는가?, 아니면 민간주도이었는가?

나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주저 없이 민간주도라고 단정하고 싶다. 

정확한 연도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도 1985년 무렵이었다. 경제기획원에서 반도체관련회의를 하는데 오라고 해서 갔더니 차관보가 주재하는데 삼성전자에서 반도체공장 건설에 소요되는 외자를 도입하는 안건이었다. 당시는 거액의 해외차관을 들여오기 위해서는 정부의 승인이 필요하던 때이었다. 회의분위기를 보니 정부 쪽에서는 결코 호의적이지 않았다.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는 정부 측의 의견은 대체로 다음과 같았다. 

“반도체산업은 미국, 일본이 세계시장을 이미 독과점하고 있는데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한국기업이 뚫고 들어 갈 수 있겠는가?

 반도체산업은 첨단기술산업이고 막대한 연구개발투자를 계속해야 하는데 축적된 기술도 없고 인력도 없는 한국기업이 감당할 수 있겠는가?

 반도체산업은 제품주기가 3-4년마다 바뀌고 그때마다 막대한 설비투자를 쏟아 부어야 하는데 한국기업이 그럴 돈이 있는가?”

 

정부 “기업이 차관 상환 못하면, 국민세금으로 갚아야 하는데 그 리스크가 너무 크다”

 

결론적으로 리스크가 너무 크고, 차입기업이 차관을 상환하지 못하면 결국 국민세금으로 갚아야 하는데 정부가 민간기업을 위해서 그런 리스크를 짊어 질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기업 측에서는 사업타당성을 열심히 설명하면서 정부를 설득하려고 노력하였다. 이미 1983년에 해당그룹의 회장이 반도체 진출을 천명하고, 공장건설에 착수하였기 때문에 무슨 일이 있어도 외자도입 승인을 얻어내어야만 하는 입장이었을 것이다.

 

그날 회의에서는 결론이 나지 않았다. 나는 가부(可否)의견을 개진할 입장은 아니었고, 다만 ‘세계반도체 경기 사이클이 저점을 지나서 회복단계에 들어갈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에 반도체가격이 올라갈 것이고, 또 기술은 모든 것을 자체개발할 필요도 없고, 선진기업과의 기술제휴 등의 길이 열려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정부가 지급보증을 하는 것이 아니고, 승인사항이기 때문에 투자실패의 경우에 정부가 직접적으로 채무변제부담을 짊어지지 않으니까 기업의 도덕적 해이는 경감될 것이라는 일반론적인 얘기를 하였다.

 

중화학 육성 때는 ‘기업이 위험 회피’, 반도체 사업은 ‘정부가 위험회피’

 

내가 듣기에는 정부입장이 상식적으로 타당한 것으로 생각됐다. 다윗이 골리앗과 싸워보겠다고 나서는데 누가 보아도 무모해 보였던 것이다. 그 후에 어떻게 진행이 되었는지는 직접 목격하지 못했다. 여하튼 해당기업이 계획대로 투자를 실행한 것을 보면 정부를 설득해 낸 것으로 보인다.

 

해당기업은 64KD RAM 이라는 메모리부터 시작해서 빠른 속도로 선발기업들을 추격하더니 경쟁자들을 앞서기 시작해서 지금은 메모리반도체의 세계 선두를 달리고 있다. 

정부는 위험회피형이었고 기업은 위험감수형이었다. 중화학육성 때와는 정부와 기업의 입장이 뒤바뀐 셈이다. 중화학 때는 기업이 위험회피형이었고 정부는 위험감수형이었다. 이 뒤바뀐 입장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중화학은 국가최고지도자의 결정으로 시작되었고 최고의 국정아젠다로 추진되었다. 70년대 초의 민간기업의 역량은 중화학을 주도적으로 떠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민간은 정부의 전방위적인 지원이 보장되고 실패할 경우의 리스크도 정부가 떠안을 것이라는 묵시적 믿음을 가지고 참여하였다. 물론 일단 참여한 다음에는 그 성공을 위해서 전력투구하는 기업가정신을 발휘하였다.

 

기업들, 국제경제 흐름 알고 기업가 정신 발휘

 

반도체의 경우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재벌대기업들의 역량이 상당한 수준에 올라있었다. 그들은 국제경제의 흐름을 알고 있었고 자신의 핵심역량의 강점과 약점을 파악하고 있었다. 이러한 일반적인 환경 하에서 반도체의 핵심적 가치를 인지하는 기업가가 정부의 입김 없이 스스로 그 사업에 뛰어 드는 결단을 내린 것이다. 

  

반면에 그 당시 정부는 자유시장경제 체제를 뿌리 내리기 위해서 이전 정부와는 확연히 구별되는 경제정책을 시행하고 있었다. 경제안정을 위해서 예산을 동결하고 금리자유화와 수입자유화를 실천에 옮겼다. 반면에 특정산업을 육성하는 산업정책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었다.

반도체산업의 유망한 미래를 내다 본 기업은 삼성전자만이 아니었다. 현대전자와 금성반도체도 비슷한 시기에 뛰어 들었다. 30여년이 흘러간 현재 이들의 성과는 명암이 엇갈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민간주도로 꽃을 피운 반도체산업이지만 개별기업의 성과가 엇갈리는 것은 경쟁시장의 자연스럽고 당연한 특성임에 틀림없다.

 

삼성전자가 64KD RAM에 이어서 256KD RAM 도 성공적으로 개발하였을 즈음에 나는 어느 신문칼럼을 통해서 한국의 반도체산업이 비약적 발전을 하였지만 메모리반도체에 집중되어 있고 비메모리 반도체는 거의 손도 못 대고 있는 현실을 꼬집었다. 메모리는 후발주자의 추격이 용이하지만 비메모리는 추격이 어렵고 부가가치가 높기 때문에 비메모리로 진출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던 것이다.

 

신문칼럼에 ‘비메모리 진출’ 주장…“30년 전 선무당의 주제 넘는 비판”  반성

 

지금 생각해 보니 기업현실을 알지도 못하면서 주제넘은 얘기를 한 것이다. 그런 일은 기업가에게 맡기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물론 한국의 반도체산업이 아직도 메모리에 편중되어 있는 구조는 문제점으로 지적될 수 있고 이제는 비메모리 분야에로의 진출이 바람직하다는 의견개진은 지금쯤은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거의 30년 전 그 당시에 반도체산업에 대한 선무당이었던 내가 그런 주제넘은 비판을 한 것은 지적 오만의 산물이었다고 반성한다. 

지금도 우리 사회가 ‘현실에서 고생하는 링 안의 사람들’보다도 장외에서 책임 없이 떠드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더욱 크게 울려 퍼지는 선비사회에 머물러 있다는 생각이 든다. 

1970년도에 학군(ROTC)으로 육군 소위 계급장을 달고 전방사단사령부 작전과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당시 부대장은 지휘소훈련(CPX)을 하는데 나한테 지하벙커에서 작전계획을 사단장 앞에서 브리핑하라고 했다. 내가 브리핑을 시작하기도 전에 사단장은 “전투경험도 없고, 지휘경험도 없는 새파란 소위에게 어떻게 작전계획 브리핑을 시키느냐”고 야단을 쳤다. 경제현상을 놓고 현장을 모르는 관료들과 경제전문가들이 정책을 수립하고 시시비비를 가리려고 덤비는 것을 보면서 48년 전의 내 모습이 떠오른다. 

 

규제정책 입안할 때 기업입장 고려하는 역지사지(易地思之) 태도 견지해야

 

관료들과 경제전문가중에도 부단히 경제현장의 동향에 관심을 갖고 현장사람들과 소통하면서 공부하는 사람들도 있다. 기업을 규제하는 정책을 입안할 때에도 역지사지(易地思之)의 태도를 견지하면서 시행착오를 최소화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그런 부류의 하나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더 많은 것 또한 사실이다. 경제현실에 대해서 당위성만 강조하면서 현장과 동떨어진 비판을 하는 것을 보면서 젊은 시절의 나의 모습을 떠 올리면서 씁쓸해 하곤 한다.

 

오랫동안 일했던 국책연구원으로 눈을 돌려 보자. 정책연구 보고서는 대부분 약관의 박사들이 집필한다. 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어서 한국경제의 걸어온 길과 현재의 실상을 익히 알지 못한다. 그래서 그런지 분석은 훌륭하지만 정책건의는 설익거나 이상적이다. 미국의 유수한 연구소들에서 50대, 60대의 경험 많은 전문가들이 포진해서 정책 입안자들이 실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처방을 내어 놓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정치가들이 ‘이념적 가치관으로 경제를 재단(裁斷)하려 할 때’ 가장 큰 폐해 가져와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수립 중에서 가장 폐해가 큰 것은 이념적 가치를 굳게 믿는 정치가들이 집권하여 경제를 재단(裁斷)하려고 하는 경우이다. 극우가 집권하여 자유방임주의를 실천하다가 경제위기, 금융위기를 불러온 역사적 사례는 허다하다. 1929년의 대공황과 2008년의 대불황이 가장 눈에 띄는 예이다. 극좌가 집권하여 평등사회를 표방하고 분배를 우선시하다가 경제를 위기에 빠뜨리고 선한 의도와는 반대로 서민층들의 고통을 가중시킨다. 구소련과 등소평(鄧小平, 덩샤오핑) 이전의 중국, 1979년 마거릿 대처 집권 이전의 영국, 최근의 베네수엘라와 브라질 등 그 예는 차고 넘친다. 한국에서는 그런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ifs POST> 

  

 <시리즈 순서>

 

1. 관치금융과 금융자율화

2. 중화학공업의 돈줄, 국민투자기금

3. 급진적 대외개방이냐?, 점진적 대외개방이냐?

4. 반도체산업은 민간주도로 꽃피웠다

5. 개혁-개방초기의 중국을 가다 

6. 대우조선을 파산시킬 것인가? 구제할 것인가?

7. 재벌의 업종전문화: 호랑이를 그리려다 고양이가 되었다 

8. 삼성에게 상용차생산을 허용할 것인가?

9. 첨단산업발전법 제정의 무산

10. 연구원노조는 과연 필요한가?

11. 한국의 에너지과소비의 원인을 규명하다

12. IMF 금융위기징후를 무시한 오만 

13. IMF 금융위기와 고금리정책

14. IMF 금융위기와 노동유연성

15. IMF 금융위기와 수출금융문제

16. IMF 금융위기와 구조조정 시시비비

17. 한국은 개발도상국인가? OECD 논의

18. 미국과 유럽에 대한 OECD 경험

19. 한국을 둘로 쪼갠 한미 FTA 협상

20. 동아시아 경제통합은 공염불인가?

21. 서울 G-20 정상회의

22. 한국의 개발경험 전수: 에티오피아

23. 좋은 일자리 만들기:  

 

※이 시리즈의 목차는 사정에 따라 가감될 수 있음을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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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11-07 17: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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