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돈의 역사해석] 통합이냐 분열이냐, 국가 흥망의 교훈 #12 : 정통의 길을 걸어간 전량 (H) >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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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망의 역사는 결국 반복하는 것이지만 흥융과 멸망이 이유나 원인이 없이 돌발적으로 일어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한 나라가 일어서기 위해서는 탁월한 조력자의 도움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진시황제의 이사, 전한 유방의 소하와 장량, 후한 광무제 유수의 등우가 그렇다. 조조에게는 사마의가 있었고 유비에게는 제갈량이 있었으며 손권에게는 육손이 있었다. 그러나 탁월한 조력자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창업자의 통합능력이다. 조력자들 간의 대립을 조정할 뿐 만 아니라 새로이 정복되어 확장된 영역의 구 지배세력을 통합하는 능력이야 말로 국가 흥융의 결정적인 능력이라 할 수가 있다. 창업자의 통합능력이 부족하게 되면 나라는 분열하고 결국 망하게 된다. 중국 고대사에서 국가통치자의 통합능력의 여부에 따라 국가가 흥망하게 된 적나라한 사례를 찾아본다.

 

(40) 전진 복속국이 된 전량(AD356) 

 

전진 주군 부생의 동생 정동대장군 부류가 사신 염부와 양수를 전량에 보내왔다. 말하자면 후조를 계승한 전진에게 복종하라는 뜻을 전하기 위해 온 것이다. 장관이 말했다.

 

   “ 나는 동진의 신하입니다. 

     신하는 경계 바깥과 교제할 수 없습니다.

     두 분께서 먼 길 오시느라 고생이 많은데 무슨 일이십니까? “

 

염부와 양수가 조용히 말했다.

 

   “ 우리 주군 부류는 그대와 이웃하는 번국입니다.

     비록 산과 강이 가로막혀 있으나 

     바람과 길과 사람이 통하는 곳 아닙니까?

     서로 수호하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

 

장관이 반박하며 대꾸했다.

 

  “ 우리 가문은 아시다시피 동진을 섬긴지 6대째입니다.

    부 정동장군과 사신교환하는 것은 

    이는 위로 돌아가신 주군을 배반하는 것이고

    아래로는 백성과 군사의 절개와 뜻을 어기는 일인데   

    어찌 그것이 가능하겠소? “

 

염부와 양수가 다시 말했다.

 

 

   “ 진나라 조정은 이미 쇠잔해진지 오래고 

     천명을 잃은 지 실로 오래이요.

     또 두 전량 왕이 두 조를 섬긴 것(장무는 전조, 장준은 후조)은 

     기회를 포착할 줄 아는 지혜의 소산 아닙니까?  

     지금 우리 전진은 위엄과 덕망이 하늘 찌르듯 왕성합니다. 

     만약 전량왕이 황하의 오른쪽에서 스스로 황제가 되더라도

     전진에게 적이 되지 못합니다. 

     어차피 작은 나라가 되어서 큰 나라를 섬긴다면 

     어떻게 동진을 버리고 전진을 섬기는 것만큼 현명한 일이 있겠소?“ 

 

 

장관이 다시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 중주(전진)사람들은 식언을 잘 하지 않소.

    전에 (장중화 때)에 석씨 사자가 돌아가기도 

    전에 무장기병이 도착한 것을 잊을 수가 없소. “

       

염부와 양수가 말했다.

 

  “ 후조는 원래 간사한 나라가 맞습니다만

    전진은 신의를 두텁게 하는 나라입니다. 

    어찌 후조와 전진을 같이 생각하시는게요? “

              

장관이 다시 물었다.

 

  “ 그렇다면 왜 먼저 동진을 공격하지 않소? ”

 

염부와 양수가 대답했다.

 

  “ 동진이 멸망하려면

    먼저 부패하여 도가 무너진 다음에

    반란이 일어나고 그 다음에야 

    새 나라가 정복하여 교화가 따르는 순서가 있는 법입니다.

    주상께서는 반드시 동진을 군사적으로 복종시킬 생각이십니다.

    그러나 황하의 오른쪽(전량)은 반드시 

    의와 덕으로 품을 수있다고 생각하십니다.

    그래서 먼저 저희같은 행인을 보내 수호한 

    다음 평화적으로 관계를 맺자고 하는 것입니다.

    그대가 만약 천명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얼마 있지 않아서 이 땅은 그대의 것이 아닐 것입니다. “

 

장관이 불쾌한 듯 대답했다.

 

  “ 우리에게는 세 개의 주(양,하,사)에 10만 군사가 있소.

    게다가 서쪽으로는 총령이 감싸고 동쪽은 대하가 막혀있지 않소. 

    다른 사람을 정벌하더라도 여유가 있는데

    스스로 지키는 것이 무엇이 어렵겠소.

    그러니 진을 두려워 할 이유가 없소. “

 

염부와 양수는 가볍게 반박했다.

 

  “ 귀국이 견고하다고 하나

    효산(하남성의 산)과 함곡관과 비교하면 어떻소?               

    백성과 물자가 풍부하다고 하나 

    진주와 옹주와 비교하면 어떻소

    두홍과 장거가 조를 밑천으로 삼고 재물을 바탕으로 

    관중과 사해를 석권하려 했지만  

    먼저 돌아가신 황제 부건의 군사가 서쪽으로 군사를 돌리자(AD350)

    얼음이 녹고 구름이 흩어지듯 

    순식간에 주인이 바뀌는 것(AD351후조멸망)을 느낄 사이도 없었소.

    우리 주상(부생)께서는 그대가 복종하지 않을 경우

    사수 100만이 북을 치면서 서쪽으로 진격하실텐데

    잘 모르긴 하겠지만 어떻게 그것을 막아낼지 모르겠소. “ 

   

장관이 웃으면서 말했다.

 

   “ 허허 이 일은 내가 아니라 왕이 결정하실 일이요”

 

염부와 양수가 다그쳤다.

 

  “ 주군은 연세가 아직 어리시니 

    그대가 이윤과 곽광 같은 책임을 지고 있지 않소?

    국가 안위는 그대의 손아귀에 달려있는 것이오. “

 

마침내 장관은 장현령의 명령을 받는 형식으로 전진의 복속국이 되기로 약속했다. 전진은 장현령의 직위를 그대로 인정해 주었다.

 

 

 

(41) 전량 조정의 내분과 장천석 쿠테타(AD361)

 

 

비록 전량이 전진의 복속국이 되었지만 전량 조정이 순탄한 것은 아니었다. 전량 우사마 장옹은 송징이 정치를 독단하는 것을 싫어하여 군사를 일으켜 송징과 그 가족을 몰살시켰다. 장현정은 정적을 제거하고 실권을 잡은 장옹을 중호군으로 삼아 군권을 맡겼다. 그리고 숙부 장천석을 중령군으로 임명하여 정치를 서로 보필하게 했다. 그러나 권력은 절대로 둘이 나누는 것이 아니었다. 장천석이 장옹을 제거해 버린 것이다. 장옹은 평소 거만하고 방종하면서 사사로이 패거리를 만들어 백성들에게 행패로 폐를 많이 끼쳤다. 여러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다.

 

장천석의 친한 친구 유석이 이렇게 한탄했다.

 

   “국가의 일이 앞으로 평탄하지 않을 걸세. ”

 

장천석이 어리둥절해서 유석에게 물었다.

 

   “무슨 말이요?”

 

유숙이 대답했다.

 

   “ 호군(장옹)의행 동이 흡사 장녕(장조)같습니다. ”

 

장천석이 깜짝 놀랐다.

 

  “ 나도 의심이 가기는 했지만 

    감히 입 밖으로 내지 못했소.

    장차 어떻게 해야하오?“

 

유숙이 서슴없이 잘라 말했다.

 

  “ 바로 제거해야 합니다. “

 

장천석이 물었다.

 

   “ 어디서 그럴 사람을 구할까요? ”

 

유숙이 나섰다.

 

  “제가 하겠습니다”

 

장천석이 이렇게 말했다. 

 

  “ 자네는 나이가 어리니 도울 사람이 필요하오. ”

 

유숙이 잘라 말했다.

 

  “ 조백구와 저 둘이면 충분합니다. ”

 

AD361년 11월 장천석과 장옹이 같이 궁궐에 입조했다. 유숙과 조백구는 장천석의 뒤를 따라오다가 도끼로 장옹을 내려 쳤지만 실패했다. 장천석과 유숙 조백구는 재빨리 궁궐 안으로 들어갔고 장옹은 빠져나와 갑병 300을 데리고 궁궐을 공격했다. 장천석이 지붕위로 올라가 외쳤다.

 

   “ 장옹이 흉악무도하여 이미 송씨를 없앤 뒤 장씨 가문을 해치려 한다.

    너희장사들은 대대로 전량 조정의 충신들 아닌가.

    어찌 무기를 들고 우리에게 쳐들어오는가?

    지금 잡아야 할 사람은 반란역도 장옹이다.“

 

장옹의 군사들이 모두 다 도망쳤다. 장옹도 궁지에 몰리게 되자 자살을 택했다. 주군 장현정이 장천석을 사지절, 관군대장군, 도독중외제군사로 임명하고 정치를 보필하게 하였다. 동진조정에서는 장현정을 대도독 양주자사 호강교위 서평공으로 임명했다.

 

AD363년 장현정의 조모 마씨(장준의 부인)가 죽었다. 장현정은 서모 곽씨를 태비로 삼았는데 곽씨는 정치를 오로지하는 장천석을 제거할 것을 장흠과 함께 상의했다. 이 거사계획이 누설되어 장흠과 곽씨는 피살되었다. 장현정이 겁이 나서 자리를 삼촌 장천석에게 양위하겠다고 했지만 장천석은 거절했다. 장씨의 전통에서 본다면 조카를 내려앉히고 자리를 차지하는 것 상상할 수 없는 죄악이었다. 그러나 우장군 유숙은 장천석에게 자립을 종용했다. 점점 장현령의나이가 들어가게 되면 자신의위치가 위태로워질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장천석이 유숙을 시켜 밤중에 장현정을 시해하게 하고서는 갑자기 죽었다고 발표했다. 시호는 서평충공으로 정했다. 그리고는 장천석 스스로 사지절, 대장군, 대도독, 양주목 자리에 올랐다. 이때 장천석의나이가 18세였다. 그리고 사마 윤건을 건강에 보내 동진 조정의 황명을 받아오도록 했다. 다음 해 전진 부견은 전량 장천석에게 사신 대홍려를 파견하여 대장군, 양주목의자리를 내려 주었다.(AD364년6월) 그러나 2년 뒤 AD366년 10월 장천석은 전진에 사자를 파견하여 전진과의 국교단절을 알린다.

 

 

(42) 이엄의 독립과 전진, 전량의 대치갈등(AD367-AD368)

 

이엄은 AD355년부터 농서(감숙성 농서)지역을 장악하고서 장천석과 교통하면서 반자립 상태에 있었다. 10여 년 지난 AD366년 12월 강족 염기는 악양(감숙성 진안)의 4천 가구를 가지고 전진에 반기들면서 이엄에게 칭신했다. 이제 이엄은 농서와 진안지역 일대(지금의 천수시 부근 지역)을 장악하는 적지 않은 세력으로 성장한 셈이다. 이엄은 평소 역적 오랑캐라고 생각해오던 전진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또 내분으로 어지러운 전량과도 관계를 끊었다.(AD367)

 

전진 보국장군 왕맹은 농서태수 강형, 남안태수 소강과 양무장군 요장 등 1만 7천군사로 염기 토벌에 나섰다.(2월) 이 기회를 틈타 장천석도 이엄을 협공했다. 전량의 전장군 양휼은 금성(감숙성 난주)방면, 정동장군 상거는 좌남(청해성 민화)방면, 유격장군 장통은 백토(청해성 화륭자치족구)방면으로 나아가고 장천석 스스로는 3만 기병으로 창송(감숙성 무위동쪽)에 주둔했다. 강족 염기부락은 원래 요익중의 소속이었으므로 요장이 진격해오자 전쟁을 하지도 않고 순식간에 귀부하고 항복했다. 왕맹은 약양에서 염기를 대파시켰다. 왕맹은 요장을 농동(섬서성 농)태수로 임명하여 그 지역을 관장하게 했다.

 

장천석은 이엄이 장악하고 있던 대하(감숙성 관하)와 무시(감숙성 임조)를 함락시켰다. 그리고 상거는 규곡(감숙성 영정)에서 이엄군을 대파했다. 이엄은 부한(감숙성 임하)으로 물러났다. 그리고 조카 이순을 전진에 보내 사죄하고 구원을 요청했다. 부견은 전장군 양안과 건위장군 왕무에게 기병 2만 보내  왕맹과 함께 이엄을 구원했다.

 

장천석도 양휼을 보내 부한 동쪽에서 왕맹과 이엄의 연합군과 전투를 벌였다. 결과는 왕맹의 대승이었다. 전량 군사 7천의 목이 참수되었다. 장천석과 왕맹의 대군은 부한 성을 사이에 두고 대치상태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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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맹이 장천석에게 편지를 보냈다.

 

  “ 나는 조서를 받들어 이엄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양주와 싸울 생각은 없습니다.

    지금 조정에서 내려 올 조서를 기다리고 있으니

    계속 대치한다면 양쪽 모두 득이 될 것 없습니다.

    만약 장군께서 부한에서 물러나신다면

    나도 이엄을 사로잡고 군사를 물릴 것을 약속합니다.   

    장군께서도 군사와 백성을 이끌고 고향으로 돌아가신다면 

    서로 좋을 것 아니겠습니까? “

 

장천석이 제장에게 물었다.

 

   “ 왕맹 편지가 이와 같고 

     나 또한 본래 반란세력을 정벌하려는 것이었지 

     전진과 싸우려는 것이 아니었다. ”

 

드디어 전량이 군사를 물리고 돌아갔다. 그러나 전진에 구원을 요청했던 이엄은 전진 군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왕맹이 흰옷을 입고 종자 몇 명과 함께 이엄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딸린 병사가 얼마 되지 않아 안심한 이엄이 요청을 수락하고 면담에 응했지만 왕맹은 별안간 이엄을 체포해 버렸다. 그리고 입충장군 팽월을 양주자사로 부한에 진수시켰다.

 

장천석이 군사를 물릴 때 이엄의 장수 하순이 말했다.

 

  “ 명공께서는 어찌 귀신같은 무력과 장사들의 용맹을 가지고서 

    남에게 묶이려고 하십니까?

    왕맹 군사는 외로이 먼 길을 와서 피폐합니다.

    또 우리가 구언을 요청하였으므로 

    우리를 경계하거나 방비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이 태만한 틈을 타시면 뜻을 얻지 않겠습니까? “

 

이엄이 말했다.

 

   “ 구원해주기를 요청했다가 어려움을 면하였다고 

     이를 친다면 천하 사람들이 나를 무엇이라고 하겠는가?

     굳게 지키다가 저들이 돌아가게 하는 것 만 못하오. ”

 

왕맹이 이엄을 사로잡고는 바로 나와 영접하지 않음을 꾸짖었다. 이엄은 하순의 모의를 알려주었고 왕맹은 하순의 목을 잘라버렸다. 왕맹은 이엄을 호송하여 장안으로 돌아갔는데 전진 주군 부견은 이엄에게 광록훈 및 귀안후라는 작위를 내렸다. (AD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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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11-01 17:56:00 최종수정 2018-11-01 16: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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