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변 경제학자’의 정책 체험기 <2> 중화학공업의 돈줄, 국민투자기금 >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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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재원 마련 위해 74년 법 제정 통해 기금 형태의 강제저축 동원

 

재무무 금융제도심의관실에서 이재1과로 옮긴 것은 1975년이다. 이때부터 근 2년간 근무했다. 담당업무는 국민투자기금운용. 국민투자기금(이하 기금)은 당시 박정희대통령의 꿈이었던 중화학공장을 짓는데 소요되는 설비자금을 원활하게 공급하기 위해서 1974년에 시행된 국민투자기금법에 의해서 조성된 기금이었다. 박대통령은 부족한 내자를  동원하는 방법을 마련할 것을 재무부에 지시하였고 관료들은 고민 끝에 국민저축을 중화학공업 투자용도로 강제 동원하는 방법을 기금조성에서 찾아냈던 것이다.

 

<국민투자기금의 설치>

기금의 재원은 은행저축성예금, 생명 및 손해보험, 우편저축, 공무원연금, 불특정금전신탁 등이었는데 이 저축자금의 일정비율을 강제로 떼어 내어서 기금에 예탁시키고 해당 금융기관에게는 정부가 지급 보증하는 국민투자채권을 지급하였다. 국민투자채권의 금리는 금융기관의 자금조달금리보다도 낮았기 때문에 그 차이를 정부가 재정으로 이차보전을 해 주었다.

이렇게 해서 조성된 기금은 철강, 조선, 석유화학, 기계, 비철금속 등에 시중금리보다도 매우 낮은 저금리로 장기대출되었다. 

 

기금업무를 맡고 나서 동법률의 제정과정을 엿볼 수 있는 자료들을 공부하다 보니 그동안 기금설치에 대한 찬반논쟁이 매우 치열했음을 알 수 있었다.

우선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반대 입장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관치금융의 폐해가 심각한데 기금은 ‘업친데 덥친’격으로 금융자율성을 근본부터 훼손한다고 비판했다. 

 

“한국은행은 재무부 남대문 출장소, 시중은행은 재무부 금고지기” 학자들 비판

 

내가 이전에 재무부 금융제도심의관실에서 금융제도심의위원회업무를 담당할 때 들었던 금융학자들의 주장이 그대로 옮겨져 있었다. 회의에 참석한 내로라하는 금융학자들은 ‘한국은행은 재무부 남대문 출장소이고, 시중은행은 재무부의 금고지기로 전락했다’고 개탄하면서 금융자율화를 하루 빨리 추진해야 금융산업이 발전해서 경제의 혈액순환이 원활해진다고 열변을 토하곤 했다.

 

그런 판국인데 정부는 한 술 더 떠서 은행예금의 20%를 강제로 떼어 내어서 정부가 키우고자 하는 특정 중화학기업에 장기저리융자를 해 준다고 하니 이는 관치를 넘어선 ‘특혜금융’이면서 시장원리를 무시하는 처사라는 것이 주장이 설득력을 가진 형국이었다. 

 

이에 대응하는 정부의 설명은 길었지만 요약하면 다음과 같았다.

“의류 등의 노동집약제품의 수출이 한계에 부딪히고 있기 때문에 기술집약적-자본집약적 중화학공업을 미래 먹거리 산업으로 육성해야 한다. 엄청난 내자와 외자가 필요한데 외자는 차관 등으로 조달한다고 하더라도 국내저축 자체가 턱없이 부족한데다가 그것마저 위험이 크고 회임기간이 긴 중화학공업 설비투자는 기피한다. 그러니 저축의 일정부분을 강제로 중화학부문에 할당할 수밖에 없다.”

사실 당시의 국내 금융시장은 후진적이었다. 시중은행의 문턱은 너무 높아서 일반국민들이 돈을 빌린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였기 때문에 계(契)에 가입해서 목돈을 장만하여 집과 가구를 구입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기업 역시 담보를 잡히고 대출을 받아서 운영자금으로 썼는데 은행대출자금이 부족하다보니 고금리로 사채자금을 끌어다 쓰는 경우가 허다하였다. 주식시장과 회사채시장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정도였다. 

이런 상황에서 중화학공업을 일으키기 위한 투자자금을 금융시장에서 순리로 조달한다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나 마찬가지였다.

 

아무튼 당시는 유신체제(維新體制)였다. 국회가 유명무실해졌으니 정부가 원하는 대로 입법을 성사시키는 것이 용이했다. 정상적 상황이라면 사유재산 침해로 위헌소송이 제기될 수도 있는 사안이지만 그때는 누구도 작은 목소리라도 반론은 있을 수 없었다.

 

세부 대출집행계획은 상공부가 만들어 재부부에 제출, “당시는 이해 못해”

 

<국민투자기금의 운용>

나는 매년 반복되는 기금운용계획 작성의 실무자이었다. 운용계획은 당시 상공부에서 안을 만들어서 내게로 보냈는데 그 내용을 보면 주요 기업별로 기금대출규모가 적시되어 있었다. 현대 미포조선, 대우 옥포조선, 포항제철, 고려아연, 한국중공업 등 중화학산업의 대표기업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었다. 

 

나는 처음에 매우 의아했다. 기업에 대한 대출업무는 은행이 담당하는 것이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그 일을 상공부가 하고 있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시중은행의 심사기능이 취약하다면 산업금융을 전담하는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에 맡겨서 기업에 대한 대출심사를 맡기는 것이 답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이는 순진한 책상머리 생각에 불과하다는 것이 곧 드러났다.

 

 청와대,“재무부는 나라곳간지기여서 자금지원에 부정적일 것” 인식

 

중화학공업육성의 권한은 청와대 제2경제수석비서관과 상공부의 수중에 집중되어 있었고 재무부는 지원 부서에 불과했다. 좀 심하게 말하면 재무부는 돈이나 마련해서 가져오면 된다는 인식이었다. 재무부가 원래 나라곳간지기이기 때문에 매사에 보수적이고 소극적이어서 산업에 대한 지금지원에 대해서 ‘된다’는 의견보다는 ‘안 된다’는 의견을 더 많이 낸다는 것이 대통령을 비롯한 청와대의 부정적 인식이 깔려 있었던 것이다. 산업은행도 재무부소관기관이기 때문에 소외된 것으로 보였다. 

 

중화학육성을 위해서는 정부개입이 불가피하다는 인식은 중화학공업육성정책과정에서 경제기획원과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철저히 소외되는 결과를 낳았다. 미국에서 자유시장경제 질서를 옹호하는 신고전주의 경제학을 공부한 박사들이 지배하는 한국개발연구원과 역시 자유주의적 경제체제를 선호하는 경제기획원 관료들이 볼 때에는 정부가 산업을 정하고 기업도 선정해서 금융을 비롯한 지원을 몰아주는 중화학육성시책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그들이 볼 때에는 자원배분을 왜곡시키고 시장효율을 떨어뜨려서 국민부담을 가중시키는 시장역행적 행위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경제기획원과 KDI, “자원배분 왜곡, 국민부담 가중, 시장역행적 행위” 비판

 

이러한 상황에서 재무부는 상공부의 안에 거의 손도 대지 않고 기금운용계획을 국무회의에 상정시키는 심부름역할을 할 뿐이었으니 실무자인 나는 서류준비를 하는 역할정도에 그쳤음은 물론이다..

기금의 지원대상사업 중에 국산기계구입이 있었다. 일본을 비롯한 선진국으로부터의 과도한 기계류수입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국산기계의 수요를 창출해 주어야 한다는 목적에 따라서 국산기계를 구입하는 기업들에게 기금을 지원해주는 것이었다. 

 이 사업은 특히 중소기업들에게 인기가 높아서 매년 수백 건에 달하는 신청이 쇄도하였다. 처음에는 이 역시 상공부에서 융자대상자를 선정해서 재무부로 보내왔는데 나는 ‘이것은 아니다’ 싶어서 은행에 맡기자고 했다. 

그런데 당시 시중은행은 융자적격기업을 가려 낼만한 심사능력이 없었다. 산업은행이면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기금의 운용은 한국은행에 위탁하도록 기금법시행령에 명시되어 있었다.

그래서 한국은행에서 융자적격기업을 선정하라고 했지만 한국은행 역시 심사능력이 없기는 시중은행과 다름없었다. 나중에 보니 융자신청 서류를 제출하는 선착순으로 우선순위를 정해서 심사를 하는 웃지 못 할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한 가지 더 특이한 사항은 기금이 중화학공업 이외에 식량증산 사업도 지원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농어촌 출신 국회의원들이 압력을 넣고, 정부도 농업을 푸대접한다는 비판이 부담이 되어서 받아들인 것이라는 설명을 들은바 있다. 국무회의에서는 농림부장관이 항상 식량증산자금을 증액해 달라고 요청했고 상공부는 중화학공업 지원을 한 푼도 깎을 수 없다고 버티니까 결국 기금의 지원규모를 늘려야 한다는 압박이 재무부로 돌아왔던 것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국가전체의 금융저축이 늘어나야 기금규모도 따라서 늘어나는 것이인데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재무부로서도 별다른 뾰족한 수가 없었다.

 

실제 대출은 차입기업 거래은행 통해 지원, 감독도 맡겨

 

기금운용계획이 결정되면 실제 대출은 차입기업의 거래은행을 통해서 이루어 졌다. 거래 은행은 공장건설의 진척도(기성고라고 불리었다)에 따라서 대출금을 인출해 주고 자금이 원래 용도에 적합하게 사용되는지 확인, 감독하며 대출금 상환에 대한 책임도 졌다.

한 번은 모 기업이 기금을 원래 대출용도를 벗어나서 다른 용도에 유용한다는 보고가 거래은행을 통해서 나에게로 올라왔다. 한국은행의 기금담당자와 나는 현지 확인을 나가서 일부 유용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대출금을 회수 조치하는 한편 과징금을 부과하기도 했다. 

기금의 특혜적 성격이 강하다 보니 가능한 한 최대의 대출금을 확보해 놓고 목적 외로 유용하려는 유혹이 강한 것이 사실이었다. 예방차원에서 공장건설 현장의 사진을 진척단계별로 촬영해서 보관하고 거래은행은 반드시 현장 확인 후에 대출금을 인출해 주도록 하는 조치를 취하였다.

 

문제는 기금으로 소요내자를 충당하더라도 소요외자가 확보되지 않으면 공장건설은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기금의 주요 지원기업 중에 현대양행(한국중공업을 거쳐서 현재의 두산중공업)이 있었다. 종합기계공장이었는데 발전설비, 선박엔진, 플랜트설비 등을 국내 생산하여 중화학산업에 공급함으로서 동 산업의 전체적인 부가가치율을 높이자는 취지이었다. 

 

‘흰 코끼리’라던 현대양행의 종합기계공장 국제차관 세계은행이 승인

 

그런데 세계은행에서는 한국의 기술수준에 비추어 볼 때에 투자타당성이 낮다고 평가하면서 ‘white elephant’(흰 코끼리: 돈만 많이 들고 더 이상 쓸모는 없는 것이라는 비유어)라고 비판하였다. 즉 공장을 지어 보았자 덩치만 컸지 채산성이 맞지 않는 무용지물이 될 것이라는 혹평에 가까운 비난이었다. 

세계은행은 한국에 대한 국제차관을 조달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현대양행에 대해서는 직접 차관을 제공하는 교섭이 진행 중이었는데 이러한 부정적 평가는 해외차관을 어렵게 만들고 종합기계공장 건설을 무산시킬 수도 있었다. 상공부는 세계은행의 우려를 해소시키는 자료를 만들어서 세계은행 담당자의 설득에 나섰다.

 

해명의 요지는 대충 이런 것이었다.

“중화학공업육성이 국가최고지도자의 강력한 의지의 산물이고 계획의 차질 없는 실천을 위해서 청와대에 중화학 전담 경제수석비서관을 따로 두었으며, 이미 10여 년 전부터 공업고등학교와 이공계대학을 확장하고, 과학기술연구소를 설치하는 등 기술발전을 위한 준비를 해 왔다. 발전설비의 수요확보를 위해서는 한국전력의 원자력발전소와 화력발전소에 필요한 설비를 현대양행이 독점공급할 것이고 미국의 GE(General Electric Company)와도 납품계약이 추진 중에 있다.”

 이러한 설득 노력들이 주효하여서 마침내 세계은행은 차관을 승인하게 되었다.

 

舊 소련·인도 등 중화학육성 정책 대부분 실패, 유일한 성공사례 ‘일본’

 

<중화학공업화의 평가와 교훈>

중화학공업육성정책은 정통 경제학이 찬성하지 않는, 또는 거의 금기시하는 이단적인 경제정책이었다. 1973년에 중화학선언이 나왔을 때 한국은 자본도 기술도 부족하였다. 한국은 중화학제품의 대부분을 수입하고 있었고 세계시장은 선진국들이 이미 선점하고 있었다. 중화학은 누가 보아도 비교열위산업이었다.

비교열위산업에 희소한 자원을 투입하는 것은 비효율적인 자원배분의 전형적인 예이었고 역사적으로도 대부분 실패하였다. 

 

2차대전이후의 구(舊)소련과 인도가 실패의 대표적인 경우이었다. 비슷한 시기의 남미 또한 비교우위가 없는 산업을 수입 대체하려고 시도하다가 경제가 총체적 난국에 빠지는 실패를 경험하였다. 

거의 유일한 성공사례는 일본이었다. 2차대전 전부터 중화학을 시작하여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무기들을 대부분 자체 생산할 수 있었고 패전 후에는 중화학제품을 수출하여 고도성장을 이루었다. 그러나 일본은 명치유신(明治維新)이후인 1870년대부터 공업화를 시작했으니까 중화학산업의 기초가 훨씬 더 탄탄히 준비되어 있었음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또한 유능한 관료들이 민간과의 협력 체제를 구축하여 실패의 소지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한국은 차관과 국내저축의 강제동원으로 자본부족을 메꾸고 기술은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습득하였다. 기계를 수입할 때 기술이 같이 들어오고, 외국기계를 분해하여 기술을 모방하고, 심지어는 기업의 직원들이 산업스파이노릇을 할 때도 있었다. 동시에 국내에서 기술인력을 양성하고 정부주도로 연구개발투자를 늘려서 모방기술을 우리의 것으로 소화하고 개량하면서 점차 수준을 높여 갔다.

 

중화학육성 ‘동태적 비교우위 가설’ 믿고 밀어붙여…대표적 간판기업으로 성장

 

무역이론의 부존요소가설에 의하면 노동력이 풍부한 국가는 노동집약제품을 수출하고 자본이 풍부한 국가는 자본집약적인 제품을 수출한다. 한국도 1960년대와 70년대 초기에 걸쳐서 노동집약적인 봉제 의류 등을 수출하였다. 즉 정태적 비교우위(static comparative advantage)산업에 특화하였다.

그러나 중화학공업육성은 동태적 비교우위(dynamic comparative advantage)가설을 믿고 추진되었다. 즉 자본과 기술이 부족한 현실을 정부의 정책으로 극복하려고 한 것이다. 인위적으로 자본을 축적하고 기술을 획득해서 시장에 존재하지 않는 비교우위를 창출해 나갔던 것이다. 

 

국민투자기금은 장기설비금융제도가 거의 전무하던 1974년 무렵에 궁여지책으로 도입한 것이다. 은행예금 등은 대부분 기업의 운영자금으로 대출되고 있었고 중화학업체의 설비자금으로 대출되기를 기대할 수는 없었다. 담보잡고 단기로 운용하면 고금리를 받을 수 있는데 성공여부가 불확실한 중화학업체에 5~10년씩 빌려줄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정부가 법으로 기금에 강제예탁하게 해서 중화학업체에 대출해 준 것이다. 

 

1970년대와 80년대에 건설된 중화학업체 중에서 기금의 지원을 받지 않은 기업은 거의 없었다. 그 기업들이 한국의 대표기업으로 성장해서 수출의 역군이 되고 일자리를 만들어 왔으니 국민세금으로 이차보전해준 보람이 있었다고 나는 평가한다.

 

한국 중화학육성, 2차대전 이후 세계경제발전사에서 눈에 띄는 성공사례

 

국민투자기금으로 상징되는 한국의 중화학공업육성은 2차대전이후의 세계의 경제발전사에서 눈에 띄는 성공사례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내가 OECD에 있을 때 당시 죤스톤 사무총장이 말하기를 “신흥공업국 중에서 한국처럼 중화학공업을 육성하여 산업구조를 고도화한 예를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고 했다. 나는 OECD의 개발센터회의에 가서 한국이 중화학공업을 육성하는 과정에서 정부가 시장의 부족한 부분을 메꾸어 주고 기업가들은 혁신가로서 실제 주역을 담당하는 협업관계에 대해서 발표하였다. 

 

회의에 참석한 여러 나라의 전문가들이 나의 발표에 대해서 관심을 나타내었고 질문도 하였다. 내가 보기에 다른 나라의 성공사례를 배워서 자기 나라의 실정에 맞게 변형시켜 또 다른 성공사례를 만들어 내기는 말은 쉽지만 실천은 어렵다. 많은 개도국들이 한국의 개발경험을 배우고 싶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잘 배우고 소화해서 성공을 거둔 나라는 흔하지 않다. 한국 또한 선진국들의 최선의 관행(best practice)을 공부하고 배워야한다고 하면서도 실제로 제대로 실천에 옮긴 경우는 드물다. 

 

중화학 육성 비판론, “재벌독점체제 구축과 산업의 비정상적 불균형구조 초래”

 

중화학공업육성에 대한 비판 역시 거세다. 국제분업 원리를 무시한 자원배분을 억지로 밀어붙인 결과 국제수지악화, 물가상승, 과잉중복투자, 은행부실을 야기했다는 것이다. 박정희대통령 사후에 중화학투자조정을 하지 않았더라면 한국경제는 심각한 위기를 피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비판의견 중에는 한국경제가 재벌이 독점하는 비정상적이고 불균형적인 구조를 갖게 된 단초가 중화학육성이라는 견해가 있다. 그들은 중화학에 투입한 막대한 자원을 중소기업과 농어업에 투입하였더라면 지금 한국경제가 안고 있는 재벌대기업 편중적 문제점은 없을 것이고 균형 잡힌 경제구조가 정착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중화학공업육성을 위해서 단기적으로 상당한 비용을 치른 것은 사실이다. 수출산업화단계에 도달할 때 까지 생산설비와 중간재의 수입으로 국제수지적자가 확대되었고 일부 산업에서는 과잉중복투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그러나 기술의 축적과 학습효과의 누적으로 점차 국제경쟁력을 확보해 나갔고 결국 한국의 수출주도성장을 견인하는 효자산업으로 탈바꿈할 수 있었다. 1980년대 초의 중화학투자조정은 정책의 근본을 바꾸었다기 보다는 부분적으로 발생한 문제의 해결책이었다고 본다.

 

만약에 한정된 자원을 중소기업 육성에 집중 투자하였더라면 한국에 수많은 글로벌 강소기업이 생겨나서 오늘날의 독일과 같은 제조업강국이 될 수도 있었고 재벌의 경제력집중이 야기하는 사회경제적 갈등을 예방할 수도 있었다는 비판은 귀담아 들을 만하다. 비판자의 바람대로 이루어 졌으면 좋았겠지만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가정해서 확실히 일어난 일을 뒤엎으려고 하는 모양새가 되고 만다. 역사에는 가정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기업이 핵심 산업 정해 집중투자…정부는 기술과 금융의 융합생태계 조성 지원 바람직

 

노무현정부 이후 역대정부들은 미래먹거리산업을 키워야 한다고 하면서 유망산업리스트를 제시하곤 했다. 그러나 그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국민들은 실감하지 못한다. 

지금 한국경제의 실상은 반도체 착시 속에 가려져 있다. 기획재정부자료에 의하면 금년 상반기에 총수출은 6.6% 증가하였으나 반도체를 제외하면 0.0% 증가에 그쳤고 설비투자역시 전체적으로는 4.8% 증가하였으나 반도체를 제외하면 1.4% 감소하였다. 이는 미래유망산업을 발견하고 적절한 선행투자를 하지 못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며 정부와 기업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중화학 육성 때처럼 정부가 유망산업을 콕 집어내는 ‘picking the winner’ 는 오늘 날처럼 산업지형의 변화속도가 빠르고 융·복합으로 말미암아 산업간 경계가 허물어지는 때에는 성공하기 어렵다. 비유하자면 움직이는 골대임에도 불구하고 고정된 골대를 상정해서 같은 방향으로만 공을 차는 셈이 되는 것이다.

 

목표산업의 선정은 이제는 민간의 몫이다. 한국의 민간기업, 특히 글로벌 대기업들은 산업현장과 시장에서 시시각각 일어나는 변화에 대한 정보수집과 분석능력이 정부와 국책연구소를 능가한다. 정부가 산업을 특정해서 자원을 몰아주는 방식으로는 상황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할 수 없다. 

기업별로 핵심역량과 부합하는 미래먹거리를 정해서 경영자원을 투입하는 것이 상책이다. 최근 S재벌이 앞으로 반도체, 자동차전장부품, 인공지능, 바이오등에 집중 투자하겠다고 발표한 것이 좋은 예이다. 

 

국민투자기금 같은 정책금융 역시 그 필요성이 거의 없어졌다. 대기업은 국내외 금융시장에서 자체적으로 소요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중소기업금융과 창업금융의 경우에는 리스크가 높고 담보여력이 부족한 현실을 고려할 때 정책금융을 일거에 폐지하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나아갈 방향은 은행과 벤처금융, 자본시장에서 기술이라는 무형자산을 평가하는 역량을 키우는 것이다. 실리콘벨리의 성공요인은 유망기술을 가진 벤처기업을 평가해서 창업초기부터 단계별로 다양한 유형의 벤처투자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기술과 금융의 융합생태계를 조성하는 마중물 역할이다.

 

과감한 규제혁신 통해 기업가정신 발휘할 여건조성이 정부 할 일 

 

미래먹거리 준비에 있어서 규제혁신의 중요성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다. 문제는 실천이다. 중화학육성당시에도 진입규제, 영업규제가 무성하였다. 그러나 그 규제는 신규진입을 제한하여 경쟁을 저해하는 부작용은 있었지만 기존기업의 시장지배를 허용하여 국내시장에서의 규모의 경제효과를 거두고 대신 수출시장에서 마음껏 경쟁하도록 유도하는 순기능이 있었다. 또한 기업의 경영에 대한 간섭은 최소화해서 기업가정신이 꽃피도록 여건을 조성해 주기도 했다. 

오늘날처럼 변화의 속도가 빠르고 세계화된 시장에서는 진입규제는 득보다도 실이 훨씬 크다. 단순히 기득권을 보호해 주고 지대추구행위를 조장할 뿐이다.

 

지금 한국에서 규제혁신이 어려운 이유는 기득권의 반발과 이념편향이다. 기득권의 반발은 정치지도자의 결단으로 제압해야 한다. 이념편향은 집권세력이 특정이념의 포로가 되어 있는 경우에는 그 해결이 참으로 어렵다고 할 수 밖에 없다. 반기업정서, 반경쟁정서, 복지우선정서 등이 이념의 탈을 쓰고 정댱화 되는 상황에서 이를 극복하는 길은 국민후생을 앞세우는 실용의 정신으로 전환하든가 또는 반시장적 이념의 폐해가 극에 달해서 국민적 저항을 불러일으키는 사태까지 가는 것이다.

 

중화학공업 육성이 오늘에 주는 유효한 교훈, “인재양성과 범정부적 추진력”

 

중화학육성이 오늘날에도 유효한 교훈을 주는 분야는 인재양성과 범정부적추진력이다.

내가 중학교를 졸업하던 1963년 무렵에 공업전문학교가 신설되었다. 학우들 중에서 공부 잘하고 가정이 어려운 몇몇이 공업전문학교로 진학하여 나중에 중화학업체에 취직하고 신(新)중산층의 생활을 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고등학교졸업반 때에는 이과(理科)와 문과(文科)로 나누는데 이과지망생(대부분이 공대 지망생)이 너무 많아서 선생님들이 “야 이놈들아, 출세하려면 법대, 상대를 가야 해”하시면서 문과지망을 독려하셨다. 공대를 나오면 취직이 잘 된다는 실용적인 계산도 물론 있었지만 산업입국의 밑거름이 되겠다는 사명감과 애국심도 있었다. 지금 4차산업혁명이 필요로 하는 인재를 길러내고 있는가? 10년 앞을 내다보고 미리 길러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10년 전의 교육을 답습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미래먹거리산업 키우려면 일관성 있는 노동·금융·기술·교육·규제 정책패키지를  만들어 초지일관하는 강력한 리더십으로 이끌어 나가야 한다.”

 

미래먹거리산업을 키우려면  노동·금융·기술·교육·규제 정책이 수미일관하는 정책패키지를 이루어서 강력한 리더십이 이끌어 나가야 한다. 40여 년 전의 중화학공업육성이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결국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일사불란한 추진체계를 갖추고 정책수립-실천-평가-정책개선의 과정이 연속적으로 이루어 졌기 때문이다.

노무현정부이후의 역대정부가 미래먹거리산업육성계획을 수립하였으면서도 거의 효과가 없는 것은 바로 이러한 추진체계가 결여되었기 때문이다. 계획을 수립한 부처에서만 관심이 있을 뿐이고 노동, 교육, 기술, 금융 등 산업정책의 수단들이 저마다의 목표를 가지고 따로 놀고 있다. 성과가 없는 것이 당연하다.

 

지금 소득주도성장의 한계가 터져 나오고 성장담론이 없다는 비판이 무성하다. 설령 성장담론이 등장하고 미래먹거리산업이 조명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그 성공을 위한 범정부적 추진체계를 구축해서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정책들이 상호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실천되지 않으면 이 역시 공염불에 그칠 공산이 크다.

<ifs POS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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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10-24 17: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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