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로마 읽기-천년제국 로마에서 배우는 지혜와 리더십 <10> 한니발을 패장으로 만든 젊은 스키피오 장군(기원전 202) >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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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니발과의 정면 승부를 피하라.” 

한니발은 병법의 천재이기에 정공법으로 싸워서는 이길 수 없었다. 그러면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 로마가 택한 전법은 지구전으로, 한니발은 피하고 한니발이 없는 다른 부대는 공격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한니발을 뒤따라가되 제 풀에 꺾일 때까지 기다리는 방식이다. 

 

지구전을 성공시키기 위해 로마는 두 가지 전략을 구사했다. 첫째는 카르타고 본국으로부터의 지원을 차단하는 일이다. 둘째는 다른 동맹국들이 한니발에 동조하는 것을 막기 위해 로마연합의 결속을 강화해나갔다. 로마의 전략이 주효했기 때문에 한니발은 17년간 외로운 전쟁을 수행할 수밖에 없었다. 

 

한니발은 때로는 조용히 활동을 중단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다시 전열을 가다듬어 움직였다. 한니발이 움직이면 로마군도 따라서 움직이지만, 정면으로 싸우지는 않으니 한니발도 기운이 빠지는 경우가 많았다. 한니발이 없는 것처럼 보이면 로마군은 카르타고군을 공격하여 승리를 거두었다. 남부 지역에 틀어박혀 있던 한니발이 기원전 211년 로마로 이동했다. 로마 시내를 바라보며 싸움을 걸었지만 로마군은 방어만 할 뿐이라서 한니발은 단념하고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이때 로마인들 사이에 “한니발이 문밖에 와 있다”는 말이 생겼다. 우리나라에서도 일제시대 때 “순사가 온다”고 말하면 어린아이가 울음을 그쳤듯이, 한니발이 로마인들에게 얼마나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었는지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한니발의 뒤꽁무니만 쫓아다니는 지구전에 종지부를 찍은 사람이 젊은 스키피오 장군이다. 스키피오는 24세 때 에스파냐에서 한니발에게 아버지를 잃었다. 그는 지루한 공방전을 끝내려면 한니발이 로마를 침략한 방식인 ‘한니발의 전략’을 채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야말로 역발상이었다. 스키피오는 발상을 전환하여 로마군을 이끌고 한니발의 터전인 에스파냐와 고국인 카르타고를 공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그는 한니발이 로마에 있는 틈을 이용해 에스파냐를 공략했고, 카르타고인을 그곳에서 몰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 여세를 몰아 한니발의 고국인 카르타고를 공략하자고 제안했다. 

 

로마 원로원은 선뜻 스키피오의 주장을 수용하지는 않았으나, 스키피오를 집정관으로 삼아 제한적으로 권한을 주어 카르타고를 공격하도록 했다. 로마군이 카르타고를 공격하자, 스키피오의 예상대로 카르타고 본국에서 한니발에게 소환 명령을 내렸다. 기원전 202년, 한니발은 고국으로 건너와 스키피오의 군대를 맞아 싸운다. 운명의 결전이 그 유명한 자마전투다. 전투에 앞서 한니발의 요청에 의해 스키피오와의 평화회담이 이루어졌다. 이때 한니발은 더 이상 알프스 산맥을 넘어 이탈리아반도를 휘저으며 다니던 당당한 모습이 아니었다. 두 사람이 나눈 대화를 리비우스는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나는 경험에 의해 운명의 여신이 얼마나 변덕스러운지 배웠소. 그대는 아직 젊고, 에스파냐와 아프리카에서 항상 승리가 그대와 함께해왔기에 운명의 저편을 아직 모르고, 나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을까 염려하오. 그러나 그것들은 기억해둘 가치가 있을 것이오.”

한니발이 말을 마치자 스키피오가 입을 열었다.

“장군은 일전에 깨어진 조약에서 이미 카르타고가 수락했던 것보다 더 약한 조건들을 제시하고 있소. 그런 알맹이 없는 양보를 로마에 내놓는 것은 무의미하오. 그러나 만약 장군이 원래의 조약을 인정하고 휴전 동안에 발생한 수송 선단의 약탈과 특사들에게 가해진 폭력 행위를 배상한다면, 원로원에 제안할 명분이 될 것이요. 그렇지 않다면 전쟁을 준비하라고 권할 수밖에 없소.”

 

참으로 인생무상이 아닐 수 없다. 얼마 전까지 천하를 호령하던 한니발의 기개와 용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회담은 성과 없이 끝이 났고, 이제 양측의 전투만이 남았다. 다음 날 자마전투에서 로마군의 전사자는 1,500명에 불과했으나 한니발 쪽 전사자는 2만 명이 넘었고, 한니발 역시 초라한 모습으로 간신히 도망쳤다. 카르타고는 기원전 201년 로마의 승인 없이는 어디서든 전쟁을 할 수 없다는 강화조약을 맺어야 했다. 2차 포에니 전쟁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로마는 두 차례의 포에니전쟁을 통해 기원전 201년 지중해 서부의 강대국 카르타고를 무너뜨렸다. 이어서 지중해 동부의 강대국들을 차례로 굴복시켰다. 기원전 197년에 마케도니아, 기원전 190년에 시리아를 정복했다. 아프리카의 이집트는 포에니전쟁 때부터 로마의 충실한 우방이었다. 이제 지중해는 로마의 안마당이 되었고, 로마인들은 ‘우리 바다’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지중해의 지배자가 된 로마는 50년 동안 속주 국가에 관용 정책을 유지했다. 그러나 로마의 지도층들은 관용주의의 한계를 지적하며 ‘온건한 제국주의’와 ‘엄격한 제국주의’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대표적인 사례가 카르타고를 멸망시켜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특히 당시 정치계의 거물인 카토가 앞장서서 주장했다.

“카르타고에 제2의 한니발이 태어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카르타고를 완전히 궤멸시켜 지구상에서 사라지게 해야 한다.” 

 

결국 로마는 카르타고가 용병을 모집하여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는 빌미를 잡아 강화조약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기원전 149년 3차 포에니전쟁을 일으켰다. 그리고 기원전 146년에 카르타고를 함락시켰다. 로마군은 카르타고 땅을 가래로 고른 다음 소금을 뿌려 ‘신들에게 저주받은 땅’으로 낙인찍어 역사에서 사라지게 만들었다. 

한편 그리스와 마케도니아는 카르타고가 멸망하던 기원전 146년 로마의 속주가 된다. 기원전 146년은 로마의 역사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는 해다. 카르타고가 멸망하여 로마에 무릎을 꿇고 그리스와 마케도니아가 로마의 속주가 되었으니, 로마가 사실상 지중해의 주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로마는 지중해 주변 국가들을 완전히 장악함으로써 명실상부 로마제국을 건설했다. 한니발전쟁에서 승리한 로마가 세계를 지배하는 데 걸린 시간은 50여 년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이는 한니발전쟁이 로마를 강대국으로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니발은 평생 로마에 원한을 품고 로마의 멸망을 바라고 살았으나, 결과적으로 로마의 제국 건설에 일등공신이 되고 말았다.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 이야기』 1권 서문에서 그리스의 역사가 폴리비오스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폴리비오스는 기원전 167년 그리스에서 1,000명의 인질과 함께 로마로 끌려왔다. 그는 로마의 스키피오 장군의 조카인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에게 맡겨져 피보호인이 되었다. 기원전 150년, 그리스 인질들은 조국으로 귀환을 허락받고 폴리비오스도 돌아갔다. 그는 귀국 후에도 자주 로마를 방문했고, 3차 포에니전쟁 때는 총사령관에 선출된 스키피오를 따라 카르타고 종말의 현장을 목격하기도 했다. 그는 로마에 관한 최초의 신뢰할 만한 역사서인 『역사』를 저술했다. “왜 그리스는 스스로 무너져갔는데 로마는 계속해서 융성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역사서를 집필하게 된 배경을 서문에서 밝혔다. 

 

“어지간히 어리석은 게으름뱅이가 아닌 한, 불과 53년 만에 로마인이 이룩한 이 위업이 어떻게 가능했으며, 또한 어떤 정치체제 아래서 가능했는지 알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폴리비오스의 책은 기원전 1세기 말의 역사가인 리비우스가 『로마사』를 저술할 때 참고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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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12-14 17: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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