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시대의 규제개혁 <3> 10가지 제언 ⑥ 사전 규제는 풀되, 사후 감독과 규율은 제대로 해야 한다 >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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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성문법 체계는 원칙적으로 모든 것을 금지하고 예외적인 사항을 나열하는 열거주의(Positive System)의 특성을 지녔다. 기술규제의 경우 이러한 특성이 더욱 강하게 나타나는데, 법률은 물론, 시행령, 시행규칙에 폭넓게 규율되고 있으며, 심지어 각종 지침 및 관리규정 등에도 명시되어 있다. 이에 비해 미국의 경우 성문법의 체계와 더불어 판례법을 중시하는 이원적 체계로 운용되고 있으며, 규제 대상으로 명시된 것 이외에는 거의 모든 것을 허용하는 이른바 포괄주의(Negative System)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우리도 이제 법과 제도를 운영함에 있어서 열거된 행위만을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방식에서 가능하면 꼭 필요한 것만을 규제하고 나머지는 시장의 자율에 맡기는 방식으로 바꾸자는 의미다.

 

단일 기술과 단일 산업이 주종을 이루던 시대에는 포지티브 시스템도 유효하게 작동될 수 있으나, 융합이 본격화되는 시대에는 포지티브 시스템은 오히려 장애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법과 제도가 포지티브 시스템으로 못을 박아 놓고 산업과 사업, 관련 시장을 규정하면 창의적 아이디어와 융합 기술에 입각한 사업을 다양하게 정의하여 발전시키는 데 장애요인으로 작용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최근 몇 년 사이에 정부가 규제개혁의 대안으로 네거티브 시스템으로의 전환을 강조하고 나선 것은 시의적절한 접근방식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다만, 포지티브 시스템에 익숙한 규제 당국이 네거티브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일을 생각만큼 쉽게 이룰 수 없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익숙했던 법체계를 전면적으로 바꾸는 일도 어렵거니와, 바뀐 법체계를 운영하는 데 따른 인식의 전환 또한 무척 어렵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법체계를 운영함에 있어 우리 정부가 아주 익숙하지 않다는 점이 가장 큰 난관이다. 오랫동안 규제당국은 인・허가를 해 줄 것인가 말 것인가에는 관심이 많았어도, 정작 그 다음 일엔 무관심한 경우가 비일비재하였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요즘 성행하는 P2P(Peer to Peer, 개인 간 대출) 금융 거래다. 개인 간 거래가 이루어지는 P2P 시장에서는 금융기관이 아닌 별도의 중개업자가 투자금을 모으고 대출을 제공하는 온라인 금융거래 서비스가 이루어진다. 중앙으로 집중되는 금융 감독 기능이 존재하지 않고 분권형, 자율형으로 금융거래가 이루어진다는 특징이 있다. 그렇게 되면 은행 없는 뱅킹이 가능해져 이제껏 익숙해져 있던 금융시장의 신뢰 질서가 깨질 수도 있다. 자칫 금융 감독의 사각지대가 형성된다는 우려가 제기되기도 하는 이유다. 금융감독원이 급성장하는 P2P 금융시장을 점검하기 위해 2017년 2월 P2P 대출업체 130여 곳을 대상으로 뒤늦게 전수 조사에 나섰지만, 그 중 약 1/3만 자료를 제출하였다. P2P 대출업체에 자료 제출을 요구할 수 있는 법적 수단이 없어 의무사항이 아니었던 것인데, 확보된 자료만으로는 유의성 있는 통계의 작성이 어렵게 되었다. 당연히 P2P 금융시장에 대해 연체율, 부실율, 투자위험 등과 같은 구체적이고 신뢰성 있는 통계가 없다 보니 금융 당국의 관리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P2P 금융을 허가할 당시부터 관련 통계의 집계를 법적으로 의무화하는 것은 시장 감시와 감독을 위한 최소한의 조치였지만, 그마저도 소홀했던 것이다. 시장진입의 허용 여부가 아니라 시장진입 이후 사후 감독을 철저히 하고 구제제도를 구축하는 일이 네거티브 시스템 성공의 관건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예사로운 일이라 볼 수가 없다.

 

기술과 산업의 융・복합 현상이 활발해질수록 포지티브 시스템으로 규율되던 각종 규제를 네거티브 시스템으로 전환해 나가야 한다는 요구는 높아질 전망이다. 4차 산업혁명이 본격화되는 시대에 포지티브 시스템만을 고집하는 것은 결국 ‘규제쇄국’을 의미할 뿐이다. 우리나라의 규제쇄국 현상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조사 결과가 이를 입증한다. 아산나눔재단이 기술과 법률의 관계를 전문적으로 파고드는 로펌인 테크앤로(TEK&LAW)에 의뢰하여 조사한 바에 따르면, 최근 한 해 동안 새롭게 투자를 받은 글로벌 Top 100에 속하는 스타트업(창업기업)의 비즈니스 활동 가운데 누적 투자액(1,160억 달러) 기준으로 70% 이상의 혁신이 한국에서 제대로 꽃 피울 수 없거나 시작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법이 규정한 것 이외의 새로운 제품이나 비즈니스 모델은 불법으로 간주되는 시스템 하에서는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스타트업의 혁신 활동 대부분이 기존 규제와 충돌하기 마련이고, 심지어 바로 그런 창업가는 잠재적인 불법자로 간주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그림 3-1>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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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신산업과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하며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기업들의 혁신 활동을 독려하기 위해서는 포지티브 규제시스템이 네거티브 규제시스템으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네거티브 규제시스템을 채택할 때에 두 가지의 접근 방식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그 하나는 법령에서 금지하는 행위를 적시하고 나머지는 모두 가능하도록 허용하는 제도다. 이른바 ‘원칙 허용, 예외 금지’가 적용되는 규제시스템이다. 또 다른 하나는 새로운 신제품이나 서비스, 비즈니스 모델 등의 시장 출시를 일단 허용하되, 필요할 경우에는 사후 감시나 감독을 취하는 제도다. 이른바 ‘사전 허용, 사후 규제’의 원칙이 적용되는 규제시스템이다. 네거티브 규제시스템을 말할 때 통상 이 두 개의 접근 방식을 모두 포괄하는데, 전자보다는 후자가 더 폭넓은 개념의 접근 방식이라 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 시기에 더 긴요하게 요구되는 것은 후자의 방식, 즉 사전 허용, 사후 규제의 시스템이다.  

 

법령에 포지티브 리스트로 규정된 탓으로 시장 출시가 어려운 경우도 많지만, 그보다는 법령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못해 시장진입이 불가능한 경우가 태반이다(<그림 3-2> 참조). 우리 법체계는 가능하다고 명시적으로 규정되어 있지 않으면 어떠한 일도 가능하지 않다는 게 일반적인 해석이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사업 모델이 시장에 진출하여 합법적으로 사업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하는 데, 우선 해당 사업 모델이 법으로 규정된 업종에 포함되어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해당 업종에 요구되는 사업 요건을 충족시키고, 인・허가를 받는 절차를 거치게 된다. 만일 신규 사업 모델이 법령이 정한 기존의 사업 분류에 포함되지 않았거나 사업 요건이 기존의 시장진입자 위주로 정해진 경우에는 시장진입의 장벽에 가로막힐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그러므로 원칙 허용, 예외 금지 방식의 네거티브 규제시스템에만 의존해서는 무궁무진하게 변화 발전하는 융합 신산업에 효과적으로 대비할 수 없는 것이다. 수많은 혁신기업이나 스타트업들이 구체적으로 한정되지 않은 포괄적이고도 느슨한 개념의 정의, 포용적인 제품 및 서비스의 분류체계 등과 같은 규제의 포괄주의를 요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신산업 관련 사업을 장애 없이 시장에 출시할 수 있도록 먼저 허용하고, 문제가 생기면 사후에 규제를 적용하는 탄력적인 방안을 선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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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복합 기술에 기반을 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적극적으로 네거티브 규제시스템을 도입하여 성공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또한 다음 세 가지의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첫째, 네거티브 규제시스템을 채택하면서도 실질적인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보다 실용적인 접근이 요구된다는 점이다. 단순히 규제의 근거가 되는 법령에서 특정한 사항을 열거하여 제한적으로 금지시키는 방식의 도입만으로는 불충분하다는 의미이다. 규제의 입법기술적인 표현 여부와 관계없이, 실질적으로 네거티브 시스템의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는 규제의 도입이 필요하다. 즉, 피규제자 또는 규제 대상의 하용 요건을 완화시켜 진입 자유를 충분하게 확보해 주는 게 바람직하다. 이를 테면, 등록이나 신고의 경우에도 이에 필요한 요건을 포지티브로 규정하느냐, 등록이나 신고를 거부하는 요건을 네거티브로 규정하느냐에 따라 규제의 성격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둘째, 새로운 개념의 제품 및 서비스, 비즈니스 모델을 위해 사전 허용, 사후 규제의 원칙이 적용되는 규제시스템을 채택한다 하여도 시범운행 단계와 상용화 단계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시범운행 단계에서는 테스트 베드를 구축하는 데에 주안점을 두고 우리의 법체계가 이를 근본적으로 차단하는지의 여부를 가려야 한다. 기존 제도와 새로운 흐름이 충돌할 경우에는 예외 규정을 설정할 수도 있고, 기존 규제에 명시적으로 허용되지 않았을 경우에는 적극적인 법 해석을 통해 장애를 제거해 나가는 것이 규제 지체 현상을 극복한다는 측면에서 볼 때 바람직하다. 그리고 시범단계의 성과를 바탕으로 상용화 단계에 이르러서는 시장 창출에 걸림돌이 되는 진입장벽을 제거해 나가는 일에 주력해야 하는 것이다. 

 

셋째, 네거티브 시스템의 도입으로 사전 규제를 푸는 것 못지않게 시장에서의 사후 감독과 규율은 제대로 정비해야 한다는 점이다. 포지티브 시스템을 채택하는 국가들은 대부분 엄격한 기준에 따라 시장진입을 허용하는 등 사전규제의 형태를 취한다. 그러나 일단 진입을 허용하면 시장에서의 사후감독은 상대적으로 소홀한 편이다. 반면에 네거티브 시스템을 채택하는 국가들은 시장진입을 자유롭게 허용하되, 시장에서의 사후감독이 철저하고 구제제도가 잘 구축되어 있다. 만일 시장에서 규율을 어기고 시장 질서를 교란시키거나 불량제품을 출시하면 천문학적인 피해배상이 부과되는 사례가 다반사이고, 심지어 시장퇴출이 일어나기도 한다. 대륙법 체계를 따라가는 우리의 법제도는 대체로 사전규제가 강하게 작동하고, 열거식 규제가 일반적이다. 이러한 체계에 익숙한 가운데 네거티브 시스템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시장진입은 자유롭게 허용하지만, 시장 감시와 감독에 철저해야 한다. 지금까지 소홀했던 시장 감시 기능을 확충하기 위한 상당한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철저한 사후규제를 위해 상당한 수준의 행정력을 추가로 확보해야 하고, 이에 따른 추가비용도 당연히 지출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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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12-04 16: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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