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로마 읽기-천년제국 로마에서 배우는 지혜와 리더십- <4> 벤처기업으로 시작한 주식회사 로마(기원전 753~715) >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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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민족이든 전승(傳承)이나 전설이 있다.” 

우리 민족에게 단군 신화가 있듯이 로마에도 건국 신화가 있다. 이는 자신의 뿌리를 찾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이며 자연스러운 소망이다. 로마의 탄생도 전설과 함께 시작된다. 프리츠 하이켈하임은 『로마사』에서 “초기 로마에 관한 고대 역사 전승에는 진실과 허구, 전설과 애국적 발상이 뒤섞여 있다”며 그 한계를 지적한다. 

 

이는 초기 로마에 관한 자료를 보면 자명해진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자료로는 리비우스의 『로마사(Ab Urbe Condita Liber)』, 그리스 역사가 디오니소스의 『고대 로마사』, 그리스인 디오도루스 시쿨루스의 『세계사』의 일부가 남아 있을 뿐이다. 이들은 기원전 1세기 말에 황제 아우구스투스 치하에서 글을 썼다. 고대 로마에서 왕정시대와 공화정시대에 관한 자료는 리비우스의 『로마사』가 가장 중요하다. 리비우스는 로마인들의 뿌리를 기원전 13세기에 있었던 ‘트로이전쟁’에서 찾는다. 

 

“트로이의 패장 아이네이아스는 한 무리의 사람들과 함께 탈출에 성공하여 시칠리아를 거쳐 이탈리아로 달아나 로마 근처의 해안에 정착한다. 이곳에서 트로이의 영웅으로 추앙받는 아이네이아스의 아들 아스카니우스는 알바롱가 왕조를 창건한다. 그러나 12대 누미토르 왕 때 동생 아물리우스에게 왕위를 빼앗기는 비극이 일어난다. 누미토르에게는 레아 실비아라는 딸이 있었다. 아물리우스는 형의 핏줄인 레아 실비아가 후손을 갖지 못하도록 신전의 제사장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런데 실비아는 전쟁의 신 마르스에 의해 임신하여 로물루스와 레무스 형제를 낳았다.”

아물리우스는 시종에게 쌍둥이를 죽이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불쌍히 여겨서 테베레 강에 놓아주었다. 그리고 신화는 계속된다. 

“이들은 떠내려가다가 암늑대에게 발견되어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랐다. 그러던 어느 날 양치기에게 발견되어 인간 세계에서 양육되었다. 이들은 성장하여 아물리우스 왕을 몰아내고 할아버지에게 왕위를 되찾아준 후 새롭게 나라를 건설했다.” 

 

그 나라가 바로 기원전 753년 로물루스에 의해 세워진 로마 왕국이다. 로물루스에게는 쌍둥이 동생 레무스가 있었다. 이들은 쌍둥이여서 누구를 왕으로 삼을지 결정하기가 어려웠다. 형제는 분할 통치를 하기로 약속하고, 로물루스는 팔라티노 언덕에, 레무스는 아벤티노 언덕에 세력 기반을 두었다. 로물루스는 언덕 주변에 고랑을 파고 성벽을 쌓은 후 “이 경계를 넘어오는 자는 모두 죽이겠다”고 공포했다. 그런데 레무스가 이를 무시하고 경계선을 넘었고, 레물루스는 동생을 살해하여 골육상쟁의 비극을 낳았다. 

 

로물루스는 우선 정치체제를 확립했다. 국정을 왕, 원로원, 민회로 구분하여 3권분립을 이룬 것이다. 왕은 민회에서 투표로 선출되어 종교 제의와 군사 및 정치의 최고 책임자 역할을 담당했다. 투표로 결정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세습제가 아니라 종신제가 되었다. 또한 100명의 가부장들을 모아서 원로원을 창설했고, 민회는 로마 시민 전원으로 구성되었다. 원로원은 왕에게 자문을 해주었고, 민회에서는 왕과 정부 관리를 선출할 뿐 아니라 왕이 원로원의 조언을 받아 입안한 정책, 타 부족과의 전쟁, 외국과의 강화조약 등을 승인했다. 

 

정치체제를 구축한 후에 왕이 실천에 옮긴 또 하나의 과제는 이민족 여인을 강제로 데리고 오는 일이었다. 새 도시에는 인구가 부족했고, 로물루스는 노예든 방랑자든 원하는 사람 모두 로마 시민으로 받아들이는 개방 정책을 펼쳤다. 하지만 새로운 로마 시민은 여자보다 남자가 많았다. 결혼을 하지 못한 총각들의 불만이 높아지자, 로물루스는 이웃 부족을 습격해 여자를 강탈해 오는 방법을 생각해냈다. 강탈한 여자들을 돌려달라는 사비니족의 요구에 로물루스는 여인들과 정식으로 결혼하여 아내로 삼게 하겠다고 제안한다. 사비니족은 대규모 공격을 감행했고, 그 전투에서 로마 남자와 사비니 남자가 죽거나 부상을 당했다. 이때 사비니족 출신의 여인들이 싸움하는 두 무리 사이에 뛰어들어 평화조약을 호소했다. 

“평화조약을 맺지 않으려면 로마인들의 아내이자 사비니인들의 딸이며 누이인 우리를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죽여주세요.” 

여자들의 눈물 어린 호소에 부끄러움을 느낀 남자들은 평화조약을 맺었고, 두 민족은 합병하여 더 큰 로마를 만들었다. 이렇게 해서 사비니족의 왕 타티우스는 로물루스와 공동으로 나라를 다스리게 된다. 사비니족에게는 로마인과 똑같은 시민권을 부여하고 원로원 의석도 제공했다. 로물루스가 취한 개방적인 자세는 미약하게 출발한 로마가 훗날 거대한 제국을 건설하는 초석이 된다. 

 

『로마처럼 경영하라』의 저자인 스탠리 빙은 로마의 건국을 벤처기업의 창업에 비유했다. 또 사비니족과 통합한 것을 로마 역사상 최초의 기업 인수 합병으로 보았으며, 로물루스가 동생 레무스를 죽인 것은 경영권 다툼으로 해석했다. 사비니족과의 인수 합병은 우호적인 자세로 접근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 벤처기업이 성공하는 이유는 구성원들과 비전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일방적으로 권력을 독점하지 않고 참여와 협력을 관계의 기반으로 삼기에 출발은 미약해도 결과적으로 창대할 수 있다. 로마라는 벤처기업은 점점 규모를 넓혀 ‘주식회사 로마’가 되어 이탈리아반도를 통일하고 로마제국을 건설하면서 인류 최초의 다국적 기업으로 발전해나가게 된다. 

 

로마의 역사는 구멍가게에서 시작하여 세계적인 대규모 기업 집단으로 발전한 글로벌 대기업에 비유할 수 있다. 국가나 기업이 성장하고 생존하는 원리는 동일하다. 하지만 어느 기업이나 국가도 로마처럼 강대하면서도 장기간 존속한 경우는 역사적으로 그 예를 찾아보기 어렵다. 이토록 장기간 동안 지속된 원리를 찾는다면 개인이든 기업이든 국가든 유익한 성장 전략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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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11-02 16: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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