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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의 ‘IMF 재협상론’과 캉드쉬의 ‘IMF 지원중단론’

  

 12월 3일 한국과 협상을 마무리한 IMF는 4일 긴급 이사회 열고 합의안을 승인하고 5일 긴급자금을 지원했다. 한국은 가까스로 가용 외환보유고를 100억 달러 이상으로 늘리면서 한숨 돌리게 되었다. 그러나 금융 외환시장이 안정될 것이란 일반적 기대와 다른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당시 외국인 투자자들, 특히 그 가운데 다수를 점하는 일본과 미국 등 외국 투자자들, 은 IMF와 협상 타결로 자금 지원이 이루어지자 ‘돈 들어왔을 때 찾자’며 오히려 막혀있던 자금 회수를 서둘렀다. 그들은 한국 정부를 불신했고 한국이 부도가 날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당시 우리는 대선 전쟁을 치르고 있었고 선거는 종반으로 치닫고 있었다. 모두가 누가 당선될지에 관심이 쏠려 있었다. 나라는 기강이 해이해졌고 외국 투자자들은 한국 정부와 정치인들이 과연 산불을 끌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자체를 의심했다. 만일 당시가 대선정국이 아니었었다면, 그리고 대통령이 임기 3개월밖에 남지 않아 레임덕에 빠지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정책 결정이 더 신속하게 이루어지고, 경제원칙을 지킬 수 있었지 않았을까? 그러나 현실은 한보 부도가 기아 부도로 이어지면서 경제 정책이 선거를 위해 오직 표만 쫓는 정치인들의 포퓰리즘에 휘둘리고 원칙과 일관성, 타이밍을 잃고 흔들렸다. 무엇보다도 강경식 부총리의 캉드쉬 총재와의 IMF행 합의와 이를 뒤집은 임창렬 신임 부총리의 IMF행 거부 발언으로 빚어진 3일간의 국정 혼란, 그리고 협상 과정에 드러난 외채 규모와 기업회계의 불투명성 등을 지켜본 외국 투자자들은 한국 정부에 대한 ‘깊은 불신’에 빠졌고 이는 국가신인도 추락으로 이어졌다. 그들은 무엇보다도 대선 이후 IMF와의 합의가 약속대로 과연 지켜질 수 있을지를 의심했다. 

 

 이런 상황에서 대선의 유력후보인 김대중의 ‘IMF 재협상론’은 한마디로 치명적이었다. 이는 IMF의 자금 지원을 불투명하게 만들고, 대한민국을 정말로 국가 부도의 위기로 내모는 시한폭탄의 버튼을 누른 것과 같은 발언이었다. 당시 한국과 협상을 이끌었던 미 재무부 로렌스 서머스 부장관은 2007년 5월 국내 한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투자자들과 채권자들은 한국의 대통령 선거 후 자본시장개방 등 일련의 약속이 지켜질 것인지 전전긍긍하고 있는 상황이었다”고 당시 상황을 증언했다. 그리고 “당시 대통령 후보 중 선두를 달리던 김대중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IMF와 재협상하고 싶다고 말했고, 이에 따라 외국 투자자들은 IMF 프로그램이 제대로 작동될지 매우 의심스럽게 한국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김 후보가 실제로 당선되자, 외환시장에서 원화 가치는 더욱 하락했다”라고 부연 설명했다. 

 

  12월 4일 캉드쉬 총재는 일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의 3당 대통령 후보로부터 당선된 후 IMF와의 합의를 지키겠다는 약속 서한을 받은 사실을 공개하고 한국이 이를 지키지 않으면 지원을 즉각 중단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캉드쉬가 지원중단을 거론하며 경고하던 바로 그 날 아침 서울에서는 김대중 후보가 ‘IMF 재협상론’을 주장하는 커다란 신문광고를 냈다. 김 후보는 IMF와의 협약을 이행하겠다는 자신의 약속을 뒤집고 재협상론을 제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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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 후보의 발언은 즉각 외환 금융시장을 흔들었다. 이제 IMF 자금 지원은 언제 추가지원이 이루어질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 혼란 속에 고려증권(12.5), 한라그룹(12.6) 이 부도가 났고 종금사들의 영업 중단으로 유동성이 막히면서 시중금리는 20%대가 현실이 되었다. 환율은 달러당 2000원 선에 육박했고 주식은 종합주가지수 400선이 무너지고 300선을 위협하며 ,금융시장은 마비 상태가 되었다. 요동친 그때의 경제지표들은 당시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회창 후보가 김대중 후보를 비판하면서 IMF 재협상론은 오히려 선거전의 뜨거운 쟁점으로 비화되었다. 모두 불 구경꾼이 되었고 불을 끄는 것은 제쳐놓고 불이 왜 났는지, 누가 불을 냈는지를 놓고 공방을 펼쳤다. 12월 7일 열린 대선후보 초청 TV 토론회에서 두 후보는 IMF 재협상에 대해 논쟁을 했다. 김 후보는 ‘자신만이 IMF의 굴욕적인 각서 서명을 거절했다’라고 주장했다. 김대중 후보는 자신의 발언으로 외교적 파문이 일자 ‘재협상이 아니라 추가 협상’이라고 말을 바꾸기도 했다. 그들은 나라가 불타고 있는 상황을 오히려 자신들의 선거전에 이용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12월 9일 무디스와 S&P는 한국 국가신용 등급을 ‘준 쓰레기(Junk)’ 수준으로 하향 조정했다. 경남모직, 동양어패럴이 부도가 낮고 엘칸토가 화의신청을 했다. 10일에는 삼성제약이 부도를 냈고 5개 종금사(대한, 나라, 신한, 중앙, 한화종금)에 대한 업무정지가 이루어졌다. 한국은행은 혼란을 막기 위해 종금사와 은행, 증권사 등 거래기업이나 개인 예금자 보호를 위해 금융지원에 나섰다. 외국 투자자 유치를 위해 고육지책으로 자본 시장을 개방하고 외국인 주식투자 한도도 확대했다. 그러나 백약이 무효였다. 

  

김영삼 대통령의 마지막 호소, ‘IMF 지원자금 조기 집행을 도와달라’ 

 

  김영삼 대통령은 12월 10일 IMF 재협상론으로 국가 부도로 치닫고 있는 위중한 사태 진화를 위해 특별담화를 발표하고 IMF 합의 내용은 차질 없이 추진할 것을 다시 다짐했다. 이회창, 김대중, 이인제 후보도 12일 각각 기자회견을 하고 합의 사항 준수를 다시 다짐했으며 특히 김대중 후보는 캉드쉬 총재에게 별도의 서한을 보내 협약이행을 약속했다. 

 

그러나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여전히 “IMF와의 합의를 존중하겠다. IMF와의 협정은 기본적으로 수용을 한다. 그러나 필요한 세부사항은 추가로 논의할 필요가 있다”라고 하면서 그의 조건부 수용론을 굽히지 않았다. 그리고 엉뚱하게도 조지 소로스, 마이클 잭슨과 화상회의를 하고 한국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를 요청하며 자신이 환란극복을 위한 외교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홍보했다. 이는 IMF와 미국의 불신을 더욱 키우는 ‘정치쇼’에 불과했다. 더군다나 1997년 태국, 말레이시아, 홍콩 등의 외환위기 당시 환란의 주범으로 비판을 받은 소로스 같은 사악한 투자가를 우리의 외환위기에 끌어들인 것은 한편의 코미디였다. 이처럼 김 후보는 국가 부도 위기상황 그 자체를 철저하게 자신의 선거전에 활용하고 있었다. IMF와 미국은 김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커질수록 그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고 불신은 더욱 깊어만 갔다. 주가지수는 360선으로 폭락하고, 환율은 1,710선으로 폭등하고 가용 외환보유고는 72억 달러 수준으로 떨어졌다. 국가 부도가 코앞으로까지 다가왔다. 

 

  김영삼 대통령은 12월 13일 3당 대통령 후보를 다시 청와대로 초청하여 다시 한 번 IMF와의 합의 사항을 준수한다는 공동발표문을 작성 서명하고 이를 발표했다. 김 대통령은 곧바로 클린턴 대통령에게 한국이 부도 위기로 내몰리고 있는 절박한 위기 상황을 설명하고 ‘IMF 지원자금의 조기 집행을 도와 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했다. 그것은 김영삼 대통령이 대통령으로서 클린턴 대통령에게 한 마지막 호소였다. 클린턴 대통령은 한국의 부도만큼은 막아야 한다는 데 공감하고 IMF의 조기 집행보다는 민간 금융기관들의 만기연장을 통해 돈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며 적극적으로 돕겠다고 약속했다. 김영삼 대통령의 통화 이후 정부는 단기외채 만기연장 협상 추진 의사를 미국에 전달했고 미국도 외국 채권단과의 만기연장을 위한 협상에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미국의 관심은 이미 5일 후로 다가온 대선에서 누가 당선될지에 쏠려 있었다. 김영삼 대통령의 권위는 이미 힘을 잃고 있었고 미국은 대통령 당선자의 확약을 다시 받아야 하는 상황을 준비하고 있었다. 특히 김대중 후보의 당선에 촉각을 세우고 있었다. IMF 재협상론 이후 더욱 거세진 산불은 한국 경제를 통째로 집어삼킬 듯 계속 타오르고 있었다. 12월 18일 당시 가용 외환보유고는 36억 4천만 달러까지 떨어져 국가 부도는 정말 초읽기가 되었다. 

 

김대중 당선자 IMF 합의 사항 무조건 이행 약속 

 

  12월 19일 김대중 후보가 이회창 후보를 50만여 표차로 차기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김대중 당선자는 국회의원회관 회의실에서 당선 후 첫 기자회견을 했다. 그는 “국가 부도라는 치욕의 벼랑 끝에서 IMF 긴급 구제금융을 요청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새 정부는 철저한 경제개혁으로 IMF 구제금융이 하루빨리 필요 없게 되는 희망찬 앞날을 열겠다”라고 당선 소감을 발표했다. 취임 기자회견에는 IMF와의 합의사항 이행에 대한 약속은 없었다. 이를 의식한 김 당선자는 20일 일산 자택 발코니에서 긴급기자회견을 다시 하고 지금까지의 태도를 180도 바꾸어 ‘IMF 합의 사항의 무조건 수용과 이행’을 약속했다. 이날 김영삼 대통령은 김대중 당선자를 청와대로 초청 오찬을 같이하고 ‘두 사람이 IMF 협정을 차질 없이 성실하게 이행할 것을 다짐하고 양측 동수로 6명씩 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김 당선자 측은 김용환 국회의원을 위원장으로 김원길, 이태섭, 허남훈, 장재식 의원과 유종근 전라북도 지사를 위원으로 선임했다. 권력 이양이 시작되고 있었고 IMF 협약의 이행은 김 당선자의 몫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국가 부도의 산불은 꺼지지 않고 있었다. 

 

  캉드쉬 총재는 2013년 국내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김대중 당선자가 12월 18일 대선 승리 직후 자신에게 보내온 서한의 내용을 공개했다. 김 당선자는 “이전에 약속했듯 IMF 구제금융 프로그램을 이행할 것이다. IMF가 제시하는 목표가 지난 30년간 내가 싸워왔던 목표와 일치한다”라고 썼다고 했다. 이어 캉드쉬는 “IMF가 제시했던 프로그램과 김 당선자가 구상하고 있던 정책은 강한 연관성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한다며 ‘IMF 개혁조치들은 김대중 대통령의 정책구상과 일치 한다’라고 부연 설명하기도 했다. 캉드쉬 총재는 김 당선자가 평소 ‘대중 경제론’을 주장하며 신자유주의적 시장 경제론에 대해 비판적이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김대중 당선자의 굴욕적인 항복 서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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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미국은 그의 이행 약속을 믿지 않았다. 미국 정부는 21일 립튼 재무부 차관과 주한 미국대사를 김대중 당선자에게 직접 보내 김 당선자의 구두 확약을 다시 받았다. 그것은 사실상 김 당선자의 무조건 항복 서약을 받은 것이었다. 김 당선자는 포괄적인 약속이 아니라 협의 사항별로, 예를 들면 노동 유연성 제고를 위한 노동 개혁을 약속대로 추진할지에 대해, 약속해야 했다. KBS(‘IMF와 트로이목마’)는 당시 상황을 취재한 폴 블루슈타인 전 워싱턴 포스트 기자의 말을 인용하며 립튼 차관이 김 당선자가 IMF 합의 사항을 이행할지에 대해 거듭 확인했다며 이는 마치 김대중 당선자의 머리에 총부리가 겨누어져 있는 것 같았다고 당시 상황을 증언했다고 보도했다. 김 당선자에게는 굴욕의 순간이었으나 감수해야 했다. 이는 그가 자초한 결과이기도 했다. 김 당선자에게는 IMF와 미국에 ‘무조건 항복 서약’을 하는 것 이외에 다른 선택 카드가 없었다. 미 재무부 로렌스 서머스 부장관은 “당시 김대중 당선자가 IMF 합의 이행에 대해 확고한 의지를 피력하면서 상황은 급반전되었다”라고 증언했다. 

 

‘IMF+(플러스)’추가 협상과 기적 같은 ‘크리스마스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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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부는 IMF의 첫 번째 긴급자금 지원이 이루어진 이후 한국의 외환 금융시장이 안정되지 못하고 자금들이 급속히 빠져나가면서 환율이 폭등하는 등 상황이 더욱 악화하는 것을 보며 한국의 외환위기사태의 구조적 심각성을 느끼고 더 강력한 개혁조치를 생각한 것 같다. 그리고 12월 13일 김영삼 대통령과 클린턴 대통령 간의 전화통화 이후 클린턴 대통령은 세계 11위의 경제 대국인 한국의 국가 부도 사태 방지를 위한 방안 찾기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당시 메들린 울부라이트 국무장관은 한국의 지정학적 목표라는 안보적 가치를 평가하며 부도 사태를 막아야 한다고 재무부 루빈 장관에게 역설했고, 루빈 장관을 비롯한 재무부 관리들은 한국의 지정학적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한국 경제를 바로 세워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개혁을 통한 위기극복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서머스 미 재무부 부장관의 증언에 따르면 11월 19일 강경식 부총리가 한국의 IMF행에 대해 캉드쉬 총재와 합의한 사실을 루빈 재무부 장관에게 알리고 미국의 협조를 구한 직후부터 한국 경제 상황을 심각하게 진단하고 부도 사태 방지를 위한 대책 수립에 나섰던 것 같다. 서머스 부장관은 인터뷰에서 ‘G7 국가 비상 회의를 소집했고, 금융 혼란을 우려한 앨런 그린스펀 미연방준비은행(FRB) 의장이 로버트 루빈 재무부 장관의 집무실로 찾아왔다’라고 했다. 그리고 “재무부 구내방송으로 ‘아시아팀은 루빈 장관실로 모이라’고 알리고 아시아 팀 전문가들이 모여 수습방안을 논의했다”라고 당시 미국 정부의 긴박했던 상황을 설명했다. 서머스 부장관은 당시 한국의 환란에 대해 미국은 “한국 정부의 거시 경제 정책 운용의 실패와 투명하지 못한 경제시스템 속에서 외환보유고 관리에서 치명적인 실수를 했다고 판단했다”라고 했다. 그는 “극도로 불투명한 상황 속에서 허점을 감추기 위해 무수한 서류(paper work)상 도구들이 동원됐고, 결국 현실에서 그 폐해가 한꺼번에 터지면서 수면 아래 잠복하고 있던 어마어마한 문제들이 세상에 ‘훤히’ 드러났을 때, 한국을 비롯한 세계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라고 당시를 회고했다. 

 

  서머스 부장관은 “당시 미국이 가장 우려했던 것은 강력한 정책 변화 없이 단순한 자금 지원을 통해서는 결코 한국 경제가 장기적으로 정상화될 수 없다. 만약 지원금을 투입했다면 몇 달간 ‘일시적 수혈’은 될 수 있었겠지만, 한국 경제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전혀 도움이 안 됐을 것이다. 당시 한국에 필요했던 것은 ‘단순한 지원’이 아니었다. 바닥부터 곪아 있던 경제 상황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무언가가 절실했다”라며 한국 정부가 추진해야 할 강력한 경제개혁조치들 (예를 들면 고금리와 긴축재정정책, 그리고 근본적인 구조개혁 정책 등)의 추진과 함께 채권은행의 만기연장과 IMF와 미국, 일본 등의 자금추가지원 등 한국의 환란을 잠재우기 위한 종합 패키지 처방전으로 ‘IMF 프로그램’이 만들어졌다고 했다. 

 

  그러나 12월 3일 한국과 IMF 간 협상이 타결되고 1차 자금 지원이 이루어졌으나 시장 상황이 오히려 악화하고 김대중 후보의 IMF 재협상이 등장하자 미국과 IMF는 대선 결과를 보기 위해 기다리게 되었고 자신들이 우려했던(?) 김대중 후보가 당선되자 김 당선자의 확약을 받은 후에야 본격적으로 자신들이 세웠던 추가조치 등을 가동하기 시작했던 것으로 보인다.

 

  12월 22일 김 당선자의 IMF와의 합의 사항에 대한 무조건 이행 약속 이후부터 IMF 자금의 신속한 조기 집행과 외채 만기연장을 위해 우리는 미국과 ‘IMF+(플러스)’라는 추가 협상을 서둘렀다. 우리는 IMF와 미국 등 해외 채권단은 의구심을 해소할 수 있는 구체적인 사전조치로 제일은행과 서울은행의 주식을 소각하고 부실종금사를 정리하고 외국인 투자주식의 종목당 한도를 12월 30일까지 55%까지 확대하고 1998년 말까지 완전히 폐지하기로 약속하는 등 IMF가 요구하는 추가 자본시장개방조건을 수용해야 했다. 국회도 12월 29일 한국은행법과 금융감독기구 설치법을 포함한 13개 금융개혁법을 통과시켰다. 

 

  립튼 미 재무부 차관이 김 당선자의 확약을 받고 ‘IMF+(플러스)’ 협상을 통해 한국 정부의 개혁 의지를 확인한 후 미국 재무부와 연방준비은행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미국, 일본, 유럽 등의 채권은행에 일제히 한국에서의 자금 회수를 즉각 중단할 것과 국가별 추가자금 조기 지원을 요청했다. 그들은 심지어 크리스마스 휴가 중인 주요은행 CEO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만기회수중지를 긴급으로 요청했다고 한다. 이러한 미국 정부의 신속한 노력으로 12월 24일부터 마침내 해외 투자자들의 자금 회수가 극적으로 중단되었고, IMF는 100억 달러의 조기 자금 지원을 발표했다. 2선 지원 지금 가운데 20억 달러는 IMF가 연말까지 지원하고 80억 달러는 13개국이 1998년 1월 초까지 지원하는 것으로 했다. 당시 협상에 참여했단 미국 관계자들은 이를 두고 ‘크리스마스의 기적’이라고 불렀다. 우리는 12월 24일 밤 국가 부도에서 벗어나는 기적 같은 ‘크리스마스의 선물’을 받았고 이날 이후 국내 외환 금융시장은 안정을 되찾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은 마침내 국가 부도라는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고통과 고난의 세상을 향한 행군의 시작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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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2-06 17:05:00 최종수정 2019-02-02 21:4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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