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망 3법과 한국형 경제안보, 도전과 과제는?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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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지난 1월 9일 국가자원안보특별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며, 2021년 ‘요소수 대란’ 이후 2년 넘게 끌어온 ‘공급망 3법(공급망 기본법, 소부장 특별법, 자원안보법)’의 입법이 모두 완료되었다.
공급망 3법은 국민 경제의 안정적 운용과 국민 생활에 필수불가별한 원료(자원), 소재, 부품, 장비 등을 각각 ‘경제안보 품목’, ‘공급망 안정 품목’, ‘핵심자원’으로 지정·규정하고, 이들을 정책 모니터링 및 관리 대상으로 구체화한 법령이다. 또한 이들의 공급망 안정화를 위해 비축·재고 확대, 수입선 다변화, 대체기술 개발, 국내 생산 및 해외자원개발 등의 정책 지원과 함께, 공급망 안정화 기금을 통해 재원을 조성·운영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이와 더불어 안정적인 공급망 정책 추진을 위해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를 중심으로 하는 운용 체계도 구축했다. 그러나 갈수록 엄혹해지고 있는 글로벌 경제안보 정세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현재 갖춰진 대응 체계를 부문별로 더욱 단단히 다질 필요가 있다. 특히, 효과적 정책 운용을 위한 선결 조건인 공급망 정보의 수집, 활용 및 처리의 세부 사항을 더욱 구체화할 필요가 있으며, 경제안보 관리 품목의 구체적 안정화 목표 설정을 통해 정책과 재원을 효과적으로 배치할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공급망 교란 상황에 대한 정책 개입 및 집행 기준을 구체화하여 대응 효율을 높일 필요도 있다. 다만, 공급망 정책은 우리의 종합적 경제안보전략의 틀 안에서 다뤄질 필요가 있다. 즉, 우리 경제안보가 지향하는 비전, 방향 및 목표에 맞춰 공급망 3법의 법령 및 대응 체계 운용에 대한 세부 지침을 보강하면서 앞으로 다가올 경제안보 시대에 대응할 필요가 있다.
<정책과제>
올해 초 대통령 국가안보실이 외교, 국방, 경제안보의 3차장 체제로 확대 개편되었다. 이는 경제안보가 더 이상 ‘경제’ 혹은 ‘안보’의 하위 어젠다가 아닌, ‘외교’, ‘국방’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국가안보의 3축 중 하나로 격상되었음을 의미한다. 공급망 3법 등 경제안보 관련 법령과 함께 이제 거버넌스 정비까지 일단락 지으면서 우리 경제안보는 ‘경제’와 ‘안보’ 사이에서 우리의 길을 찾기 위한 긴 여정의 출발 준비를 마쳤다.
비록 본고에서 공급망 3법을 다루었지만, 사실 공급망이 경제안보의 모든 것은 아니다. 경제의 안전보장이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경제안보는 포괄하는 범위가 상당히 넓고, 보는 관점에 따라 제각각이다. 누군가에겐 3nm 반도체 칩이 경제 안보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겐 요소수도 경제안보다. 미국에게는 EUV·DUV 노광 장비에 대한 대중국 수출 통제나 TSMC의 미국 내 생산이 경제안보이지만, 우리에게는 첨단 메모리반도체의 판로를 지키면서, 고순도 불산의 원료인 무수불산이나 형석을 중국으로부터 안전하게 들여오는 것도 경제안보다. 경제안보의 핵심이익(core interests)은 이렇듯 입장에 따라, 국가에 따라 모두 다르다.
작년 6월, EU는 유럽이 직면한 경제안보 환경과 EU 차원의 대응 방향을 담은 EU 경제안보전략(European Economic Security Strategy)을 수립하여 발표했다. 코로나 팬데믹,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로 인해 높은 경제안보 비용을 치르고 있는 EU는 동 전략을 기점으로 경제안보 위험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계획이다. 이제 우리도 우리만의 경제안보전략, 즉 ‘K-경제안보전략’이 필요하다. 그리고 공급망 문제는 우리 경제안보가 지향하는 비전과 목표의 틀 안에서 다뤄져야 한다.
공급망 3법에서 다루고 있는 핵심광물·에너지 및 소부장뿐만 아니라, 우리 경제안보는 국가 전략기술, 국가핵심기술, 국가첨단전략기술·산업, 수출통제, 전략물자관리, 해외투자심사 등 다양한 층위와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개별 법령에 따라 각자 고유의 기능을 수행하면서 우리 경제안보를 지탱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모두는 경제 안보적 관점에서 모두 연결되어 있으며 개별 전략에 상호 영향을 받는다. 이는 거시적 관점에서 우리 경제안보의 그랜드 플랜에 맞게 각 기능을 조율하고 정책을 배치하는 것이 필요함을 의미한다.
‘경제×안보’는 지금껏 우리가 다뤄보지 못한 정책의 영역이다. 그리고 전통적인 국방·안보와 달리 경제안보는 예민하다. 안보적 고삐를 조일 경우 당장 우리 산업· 기술 경쟁력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그렇다고 최근의 국제정세를 고려할 때 경제적 성과에 우리 역량을 집중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창의적인 발상과 담대한 추진이 필요하다. ‘창의’는 민간에서 잘할 수 있다.
반면, 과감하고 담대하게 결단할 수 있는 건 정부다. 이런 측면에서 경제안보 거버넌스의 국가안보실 체제격상은 과감하면서도 창의적인 거버넌스를 실효적 힘을 가지고 운용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이제는 민간의 지혜를 실질적으로 집약하면서 최고 수준의 의사결정을 과감하게 추진할 수 있는 새로운 경제안보 플랫폼을 만들어야 한다.
얼마 전 미국반도체협회(SIA)는 한국, 일본 등 동맹국 반도체 장비에 대한 대중국 수출 통제를 요구하는 건의서를 미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에 제출했다. 그간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제재 국면에서 여러 차례 증명되었던 SIA의 영향력을 고려할 때, 이는 대중국 반도체 제재 전선에 우리의 직접 참여를 요구하는 미국의 압박이 목전에 다다랐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비슷한 시간, 미국에 자동차 생산시설을 갖춘 대부분의 글로벌 완성차·배터리 기업들이 소속된 ‘자동차 혁신을 위한 연합(Alliance for Automotive Innovation)27)’은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보조금 대상에서 규정하고 있는 배터리 가격 내 핵심광물의 외국우려단체(FEOC) 예외 비중을 2%에서 5%로 완화해 달라는 건의서를 미국 정부에 제출했다.
우리 완성차·배터리 기업은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5%가 아닌 10%로 대폭 완화해 달라는 건의서도 별도로 제출했다. 중국이 칼을 쥐고 있는 핵심광물에 대한 디리스킹(Derisking)은 생각처럼 녹록지 않다. 우리에겐 특히 더 그렇다. 첨단기술을 둘러싸고 전개되고 있는 미·중 간의 전략경쟁 사이에서 우리 경제안보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은 이렇듯 냉혹하며 실재(實在)한다.
이제 우리 경제안보는 본격 시험대에 올랐다. 그리고 중국의 공급망 통제가 실제로 작동하고 있는 현재, 우리 경제안보의 가장 취약한 전선이 공급망인 것은 분명 하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공급망 3법의 입법 완비는 우리 경제안보 대응 체계의 근간(根幹)을 세웠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이제 할 일은 우리 경제안보가 지향하는 비전·방향에 맞춰 이 근간이 땅속 깊이 견고하게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법령 및 대응 체계 운용의 디테일을 보강하며 잘 다지는 것이다. 공급망 3법이 모든 공급망 문제를 해결하는 전가의 보도는 아니다. 그러나 문제 해결을 위한 출발점은 될 수 있다. 우리 경제안보의 길은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KIET>
* 저자
▲ 전현희 KIET 산업정책연구본부 연구원
▲ 이준 KIET 산업정책연구본부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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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자료는 산업연구원(KIET)이 발간한 [월간 KIET산업경제 2월호] ‘특집’에 실린 것으로 연구원의 동의를 얻어 게재합니다.<편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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