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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대란 일주일]④ 과도한 '전공의 의존' 개선해야…파업 대비 '백업'도 필요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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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4년02월26일 11시10분
  • 최종수정 2024년02월26일 11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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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에 의존한 병원 인력구조 탓에 집단행동 때마다 정부 '굴복'

전문가들 "전공의 비중 낮추고, 전문의 중심으로 개편해야"

파업 대비책도 필요…"의사업무 일부 대신하는 PA 간호사 제도화 검토해야"

 

의대 증원에 반대하며 전공의들이 무더기로 병원을 이탈하면서 의료대란이 현실화한 가운데, 이번에도 정부가 '백기투항'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중증·응급환자가 주로 찾는 대형병원이 전공의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기형적인 인력구조를 가진 탓에, 정부는 전공의들이 병원을 박차고 나올 때마다 번번이 굴복하는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도 이러한 사태가 반복된다면 우리나라는 의사 집단의 요구만이 일방적으로 관철되는 심각한 보건의료 시스템의 결함을 갖게 된다.

이에 전문가들은 대형병원의 전공의 의존을 낮춰 전문의 중심으로 병원 인력구조를 개편하고, 진료보조(PA·Physician Assistant) 간호사를 제도화해 파업 시 '백업' 인력을 만드는 등 구조적인 개선을 서둘러야 한다고 제언한다.

 

◇ 대형병원 의사 40%는 '전공의'…집단행동 때마다 '의료대란' 벌어져

 

보건복지부는 지난 22일까지 전체 전공의의 69.4%인 7천863명이 사직서 제출 후 근무지를 이탈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에 '빅5' 병원으로 불리는 서울 주요 상급종합병원들은 수술을 30∼50%까지 줄이고 암 환자 수술마저 연기하는 등 '의료대란'이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일은 처음이 아니다.

전공의들은 2000년 의약분업 시행 당시에도 집단휴진에 나서며 의료대란을 일으켰고, 2020년 정부가 의대 증원과 공공의대 설립을 추진했을 때도 집단행동을 벌였다.

환자들의 피해가 속출하고 의료 시스템이 붕괴 위기에 처하자 정부는 매번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정책을 철회하며 뒤로 물러서거나, 여러 '당근책'을 제시하며 전공의들을 달래야 했다.

전공의들이 이토록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된 배경에는 전공의에게 과도하게 의존하는 국내 의료기관의 기형적 인력구조가 있다.

전공의는 의사 면허를 받았지만, 특정 과목의 전문의가 되기 위해 수련병원에서 '일하는 동시에 교육받는' 인턴과 레지던트를 통칭하는 말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에 따르면 빅5 병원의 전공의는 2천745명으로, 전체 의사(7천42명)의 40%를 차지한다.

특히 서울대병원은 전공의가 전체의 46.2%에 달한다. 이어 세브란스병원 40.2%, 삼성서울병원 38.0%, 서울아산병원 34.5%, 서울성모병원 33.8% 순이다.

이처럼 대형병원들이 전공의에게 의존하는 이유는 전공의가 비교적 '값싼' 인력이기 때문이다.

대전협의 2022년 전공의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공의 월평균 임금은 397만9천원에 불과하다.

이는 주당 평균 77.7시간을 일하고 받는 대가로 최저임금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이러한 저렴한 인건비 때문에 대형 병원들은 전공의들을 수술 보조, 응급실 운영, 진료 보조, 당직근무 등 다양한 업무에 투입하며 활용해 왔다.

 

◇ "전공의 의존 줄이고, 전문의 위주로 개편해야"

 

전문가들은 전공의들에게 과도하게 의존하는 구조를 개선하려면 인턴, 레지던트 과정을 모두 마친 '전문의' 중심으로 병원 인력구조를 개편해야 한다고 말한다.

신영석 고려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전공의는 피교육자이자 근로자인데, 그동안 근로자 역할을 더 많이 해왔다"며 "이제는 이러한 구조를 바꿔 전문의 중심 체계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전문의를 더 고용하면 비용이 증가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덧붙였다.

과거 전공의법 시행으로 전공의 근무시간을 주당 80시간으로 제한하면서 부족한 일손을 채우기 위해 '입원전담 전문의' 제도를 도입했는데, 당시처럼 전문의를 추가 고용한다면 비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신 교수는 이를 위해서도 의대 증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간 누적된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 나가야 한다"며 "전문의 공급을 늘리기 위해서는 당연히 의사 수를 늘려야 하고, 의대 증원이 그 첫 단추"라고 강조했다.

정부 역시 병원이 전문의 중심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인력구조를 단계적으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보건복지부는 최근 발표한 '필수의료 패키지'에서 의료기관 신설 시 의사인력 확보 기준 여부를 판단할 때 전공의 1명을 0.5명으로 산정하는 등의 방법으로 전문의 고용을 유도하겠다고 했다.

전문의 고용을 확대하고 전공의 위임 업무를 축소하는 병원에는 '가산 수가'로 보상하고, 전문의에 대한 장기 계약과 육아휴직, 연구년 보장 등도 추진하기로 했다.

 

◇ 파업 대비 '백업' 시스템도 필요…"PA 간호사 제도화 논의해야"

 

거듭되는 전공의들의 집단행동과 이로 인한 환자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비대면 진료를 확대하고, 의사 업무를 일부 대신하는 PA 간호사 등 진료보조인력을 제도권으로 끌어들여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전공의 집단행동이 벌어지더라도 그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완충장치로서 '백업 시스템'을 만들어놔야 한다는 얘기다.

정부는 전공의 집단사직이 이어지자 지난 23일 한시적으로 비대면 진료를 전면 확대한다고 발표했다.

그간 비대면 진료는 의료취약지나 주말, 공휴일에만 예외적으로 초진 환자 진료가 가능했고, 원칙적으로는 의원급 의료기관과 재진 환자를 중심으로 허용됐다.

이번에 비대면 진료가 전면 확대되면서 당분간 의료취약지가 아닌 곳이나 초진이라도 평일에 비대면 진료를 받을 수 있게 됐다.

한 의료계 전문가는 "경증환자나 중증이 아닌 만성질환자들도 그동안 대형 병원을 많이 이용했다"며 "이들이 비대면으로 진료를 보고 처방을 받을 수 있다면 대형 병원의 부담을 많이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PA 간호사와 같은 진료보조인력을 양성화하는 등 보건의료 직역 간 '업무 분담'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PA 간호사는 수술, 검사, 응급상황 시 의사 보조 등의 업무를 하며, 실질적으로 의사의 의료행위 일부를 대신해 왔다.

전국에 1만 명 이상이 활동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법에 따라 제도화된 직역이 아닌 탓에 합법과 위법의 경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PA 간호사 문제는 지난해 5월 간호법 제정이 무산되자 간호사들이 '불법 의료행위'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정부는 전공의들의 집단행동에 대응하기 위해 PA 간호사를 활용하는 것을 검토하겠다고 밝혔으며, 간호사들이 법적 보호를 받으며 일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보호 체계도 마련하기로 했다.

신영석 교수는 "다른 나라 사례를 보면 과거에는 의사들이 하던 업무 영역이 상당 부분 다른 직종으로 넘어갔다"며 "우리나라도 현실적으로 업무를 분담한다면 의료 질 손실 없이 저비용으로 국민들에게 의료 서비스를 공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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