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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經 “시 주석, 毛沢東에 버금가는 ‘人民의 領袖’ 지위 확보”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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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9년08월30일 05시04분
  • 최종수정 2019년08월30일 05시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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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카자와(中沢克二) 편집위원 “『北戴河 회의』 서 정치적 大逆戰 펼쳐, 안정적 지도력 확보”
- “中 지도자들, 對 트럼프 ‘持久戰’ · 홍콩 사태에 직면, ‘단결’ 필요성에 일치”
- “시진핑 체제의 확립 여부는 ‘4 中全会’ 개최 여부에 따라 판가름 날 것”

 

ifs POST 대기자 박 상 기

 

중국에서는 매년 이맘 때쯤 전 현직 공산당 최고 지도자들이 중국 동부 허베이성(河北省) 베이다이허(北戴河) 휴양지에 집결하여 한 여름철에 맞춰서 휴양을 즐기기도 하고 이 때에 맞춰서 전 · 현직 지도자들이 한 데 모여 중국이 당면한 여러 가지 국가적 의제들에 대해 총체적인 논의를 하는 것이 오래된 관례이다. 


올 해도 전 · 현직 지도부는 베이다이허(北戴河)에 모였고 회의를 마친 지 10여일이 지났다. 여기서는 물론 당면한 주요 국가적 과제들을 논의했을 것이나, 아직까지 이렇다할 내용들이 발표되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최근 Nikkei가 동 紙 나카자와(中沢克二) 편집위원의 최근 중국 지도부 내의 동향과 관련한 논설을 게재했다. 요지는, 中 지도부가 美 中 무역전쟁 持久戰화 조짐 및 홍콩 소요 사태를 염두에 두고 일단 시진핑 주석 중심으로 단결할 것에 합의한 것으로 보인다는 관측이다.


그간 시진핑 주석의 권력이 非主流派의 상당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는 징후가 간간히 흘러나오던 차에, 비록 당분간의 미봉(彌縫) 전략이라고 해도 전 · 현직 중국 지도부가 시진핑 주석을 중심으로 단결하는 모습을 보였고, 이는 美 中 무역전쟁 및 홍콩 사태 수습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을 새로운 사태 발전인 것으로 관측된다. 아래에 이 논설 기사의 내용을 요약, 정리한다. 

 

■ “무역전쟁 및 홍콩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안정과 단결’이 필수”  
지금 중국 쪽에서는 “시진핑 국가 주석에게 美 트럼프 대통령이 끝없이 걸어오고 있는 무역전쟁, 그리고 홍콩에서 수그러들 줄 모르고 2개월 이상 진행되고 있는 反중국 · 反정부 시위 사태가 생각지도 못한 天佑神助의 도움이 됐다”는 소리가 들려온다. 트럼프 대통령에 맞선 무역전쟁 및 홍콩 사태에 대처해서 持久戰을 벌여야 하는 현 상황에서 ‘안정과 단결’ 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격심한 내부 권력 투쟁을 치르고 있는 시 주석의 권력 기반을 흔들지 않을 수 없는 美 中 무역전쟁 및 홍콩 소요 사태가 오히려 ‘천우(天佑)’ 라고 말하는 것이 선뜻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나, 현재 중국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실상을 자세히 살펴보면 어느 정도 납득하지 않을 수 없는 증거들이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지난 25일 자 중국 공산당 기관지 人民日報의 1면 톱 논설에 등장한 커다란 제목이 눈길을 끄는 것이다. “人民의 영수(領袖)는 인민을 사랑한다.” 이 記名의 논설문은 간쑤성(甘肅省)을 시찰한 시진핑 주석이 인민들에게 다가가는 영수(領袖)라고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허베이성(河北省)의 해변 휴양 리조트에 현직 지도자들과 원로 지도자들이 함께 모이는 베이다이허(北戴河) 회의가 끝난 지 10여일이 지난 절묘한 시기에 이런 논설이 등장한 것은 의미가 큰 것이다.

 

■ “2018년 ‘終身’ 주석의 길을 열 때 이미 ‘人民의 領袖’ 칭호 시도”  
과거에 “人民의 영수(領袖)” 라고 불렸던 사례는 사회주의 新 중국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마오쩌뚱(毛澤東) 뿐이었다. 70여년 전에 아직 공산당 정권이 수립되기 전에 황토 고원 지대에 있는 연안(延安)을 근거지로 삼고 있을 무렵에 마오쩌뚱(毛澤東)에 대한 경칭이 ‘인민의 領袖’ 였고, 그 후 신격화 운동의 기점이 되었다. 이 후 마오(毛) 주석에게는 더욱 격이 높은 ‘위대한 영수(領袖)’ 라는 경칭도 있었다.

 
마오(毛) 주석이 죽기 직전에 후계자로 지명했던 화꿔펑(華國鋒)은 ‘英明한 영수(領袖)’ 라고 불렸다. 그러나, 그는 마오(毛) 주석의 신격화를 대단히 싫어했던 덩샤오핑(鄧小平)에 의해 사실상 실각됐다. 지금 시진핑은 마오(毛) 주석에 버금가는 높은 칭호를 노리고 있고 이를 실현할 목표 시기는 2022년의 공산당 党 대회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포석은 이미 놓여지고 있다. 중국은 2018년 3월 헌법을 개정해서 “2期 · 10년까지” 라는 국가 주석에 대한 임기 제한을 철폐했다. 실은, 이렇게 ‘종신(終身)’ 주석의 길을 열어 놓을 당시부터 측근들은 시진핑을 마오쩌뚱(毛沢東)과 비견할 수준의 ‘인민의 영수(領袖)’라고 부르는 캠페인에 착수하고 있었다.


우선, 1980년대부터 시진핑과 가까운 측근 인사가 움직였다. 전국인민대표대회(全人代) 상무위원장 뤼쟌슈(栗戰書)였다. 그는 ‘終身 주석’ 개헌을 성취한 ‘全人代’ 폐막 연설에서 시 주석을 『인민의 영수(領袖)』 · 『新시대에 나라의 방향舵를 잡을 인물』 이라고 칭송했던 것이다. 이후 2018년 여름 동안에 중국의 미디어에는 ‘인민의 영수 시진핑’ 이라는 문자가 나돌기 시작했다. “황토 고원으로부터 돌아온 인민의 영수” 라는 내용의 비디오도 중국 전역에 널리 유포되기도 했다.


중국 역사를 바꾸어 놓았고, 다수의 희생자를 냈던 비참한 ‘문화대혁명(1966~76)’ 시대에, 아직 소년이었던 시진핑은 연안(延安) 근처에 있는 농촌에서 이른바 ‘하방(下方)’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그 당시의 地名인 량쟈허(梁家河)와 연계하여 이 시절을 기리는 형태의 학습 운동도 전개하려고 계획하고 있던 참이었다.

 

■ “개인 숭배 시도에 非主流 및 元老들로부터 격렬한 저항에 직면”  
그러나, 이러한 ‘개인 숭배’ 캠페인에는 커다란 허점이 잠재해 있었다. 지나치게 서둘렀던 나머지, 党 내의 원로들에게 설득력 있는 설명도 하지 않은 채, 합의도 얻지 못하고 추진했던 캠페인이 원로 지도자 그룹 및 非主流派로부터 격렬한 저항을 불러온 것이다. “새로운 형태의 개인 숭배 = 신격화가 아닌가?” 하는 비판이 터져 나왔다. 이것이 작년 여름에 열렸던 ‘베이다이허(北戴河) 회의’의 요체였다.


이러한 반발에는 정당한 근거가 있다. 개인 숭배를 명확하게 금지하고 있는 공산당 규약에 위반한다는 것이다. “시진핑 新시대 사상”을 집어넣은 2017년 공산당 대회의 규약 개정 당시에도 개인 숭배 금지 규정은 유지되고 있었다. 개혁 · 개방을 선도했던 덩샤오핑(鄧小平)은 마오쩌뚱(毛沢東)이 발동한 문화대혁명의 비극을 두 번 다시 일으키지 않도록 하기 위해 党 규약에서 개인 숭배를 禁했던 것이다.


이러한 엄정한 분위기 속에서는, 아무리 기세 좋게 나아가고 있는 主流의 시진핑派라고 해도 무리를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에 따라, 2018년 여름 량쟈허(梁家河)와 연계하는 형태의 학습 운동도 사실상 유보되었다. 중국 미디어가 “인민의 領袖, 시진핑” 슬로건을 띄우는 형태의 캠페인 행동도 없어지게 되었다.

 

■ “對 트럼프 ‘持久戰’ 및 홍콩 사태 대응에 강력한 ‘人民의 領袖’가 필요”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이번 여름, 정세는 급격히 변했다. 시진핑이 다시 한번 대대적으로 “인민의 領袖”로 불리기 시작한 것이다. 베이다이허(北戴河)의 大逆戰이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의 사변이다. 이런 슬로건이 인민일보 1면 톱에 등장한 것은 지난 베이다이허(北戴河) 회의에서 일정한 양해를 얻었다는 공식 선언인 셈이다. 그 다음 날 국영 중앙 TV에도 마찬가지의 평론이 방송되기 시작했다. 중국의 관련 소식통들 사이에서는 “(베이다이허(北戴河) 회의) 막후에서 다양한 논의가 있었다고 해도, 겉으로 나오는 이야기로는 그다지 다툼이 없었다”는 인식이 많다.


지금 예측할 수 없는 美 트럼프 대통령에 대항하여 對美 持久戰을 치러야 하고, 어쩌면 공산당 통치의 위기로 연결될 수도 있을 홍콩 문제에 맞서서 침착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마오쩌뚱(毛沢東)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인민의 領袖’가 필요한 것이다. 그것이 직전 베이다이허(北戴河) 회동에서 ‘암묵의 양해’를 이룬 배경으로 비쳐지는 것이다. 『인민을 사랑하고 인민으로부터 사랑을 받는 領袖, 시진핑』 인민일보 논설은 그런 이미지 만들기를 다시 시작한다는 신호탄이다.


한편, 앞으로 한 달 남짓 남은 10월 1일에는 베이징에서 新 중국 건국 70주년을 기념하는 大式典이 열릴 예정으로 있다. 시진핑은 최근 간쑤성(甘肅省)에서 공군 기지를 시찰할 때, “新 시대의 强軍 사상”을 호소했다. 미국과의 험난한 대치 속에서 국위를 나타내는 대대적인 군사 퍼레이드가 있을 것임을 시사하는 징조다.


그 때는 베이징 天安門 위에 시진핑과 함께 역대 최고 지도자들을 포함한 원로들이 나란히 선다. 원로 지도자들은 2015년 군사 퍼레이드 당시에도 天安門 위에 모습을 나타냈다. 건강 문제가 없는 한 이번에도 등장할 것이다. 前 국가 주석 장쩌민(江沢民), 동 후진타오(胡錦濤), 前 총리 주룽지(朱鎔基), 동 원쟈바오(溫家寶) 등, 고령의 원로들이 이번 베이다이허(北戴河) 회의에 참가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원로들의 의향은 확실히 시진핑 지도부에 전달됐을 것이 분명하다.

 

■ “건국 70년 기념 군사 퍼레이드를 앞두고 단결을 과시하려는 것”  
이들이 건국 70년 기념 식전에서 天安門 위에 오르는 이상, “국난(國難)”에 당면하여 싸우고 있는 시진핑 주석에 대해 일정한 예의를 다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이 대외적으로는 ‘한 덩어리가 되자’ 고 하는 공산당의 지금까지의 관례다. 이렇게 보면, 시진핑 주석에 대해서는 확실히 ‘천우(天佑)’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시진핑으로서는 지극히 평판이 나빴던 2018년 (주석職의 임기 제한 철폐) 헌법 개정이 지금에 와서야 드디어 명실 상부하게 승인되는 셈이라는 평가도 가능할 것이다.


반면, 덩샤오핑(鄧小平)이 구축해 놓은 정치적 유산은 잃어버리는 결과가 된다. 마오(毛)식의 독재를 봉인하기 위해서 党 규약에 개인 숭배 금지 조항을 설정하고, 헌법에 국가 주석 ‘2期 · 10년까지’ 라는 임기 제한을 설정했던 것이다. 이것이 文化大革命의 혼란을 끝냈고 高度 경제성장에 매진할 수 있는 전제가 됐던 것이다.


덩샤오핑(鄧小平)은 1989년 티엔안먼(天安門) 사건을 일으킨 것에 대한 책임을 지는 십자가를 짊어지면서도 풍요로운 중국의 기초를 공고히 다졌다. 덩샤오핑(鄧小平)의 지명으로 뒤를 이은 쟝쩌민(江沢民)과 후진타오(胡錦濤) 집권 기간을 포함하여 “덩샤오핑(鄧小平) 시대” 라고 볼 수도 있다. 이에 뒤 이은 “시진핑 新시대”의 기세가 덩샤오핑(鄧小平) 시대가 남겨준 좋은 유산들마저 사라지게 만들 것인가?

 

■ “금년 말까지 열려야 하는 '4 중전회' 개최 여부가 관심의 포인트”  
그렇다고 할 수는 있으나, 최근 인민일보 1면에 등장한 ‘인민의 영수(領袖), 시진핑’ 논설이 암시하는 ‘양해(諒解)’가, 위기 대응을 우선한 임시 방편의 단결인지, 아니면 진정으로 안정된 시진핑 新시대의 도래를 의미하는 것인지는 조금 시간이 흐른 다음에 관찰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단, 우선 주목할 점은 1년 가까이 연기되어 오고 있는 공산당 중앙위원회 4차 전체회의(‘4 中全会’)의 향방이다.


만일, 이번 여름 베이다이허(北戴河) 회의에서 실제로 그다지 심각한 대립이 없었다고 한다면 ‘4 중전회’를 개최할 전제 조건도 갖춘 것으로 볼 수가 있을 것이다. 여태까지 중장기적 경제 정책의 큰 방침을 논의하는 중요한 회의를 개최하지 않았던 것은 “党 내에 의견 타합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 이라는 견해가 많다.


중국 공산당 규정에 따르면 2019년 말까지는 개최해야 하는 ‘4 중전회’에서 결정하는 국내 및 대외 경제 정책의 큰 방침은 트럼프 정권과 벌이고 있는 무역 협상의 향방을 크게 좌우할 것이다. 시진핑 주석에 있어서는 실제로 非主流派 세력을 견제할 체제가 굳어진 것이라면, 어느 정도 재량을 가진 대담한 對美 협상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앞으로는 이점에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이다. <ifs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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