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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수 위기' 속 상속세 4조 감세…부자감세론 '巨野의 벽' 난제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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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4년07월25일 17시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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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시장 정상화·내수 부진 돌파구로 3년째 '감세'

2년 연속 세수결손 흐름, '재정 기반' 취약 우려도

 

정부가 자본시장 밸류업, 내수 진작 등 경제 활력 제고를 최우선 과제로 제시하며 대규모 감세 조치를 내놨다.

상속·증여세 세율을 조정하고 공제를 확대하는 등 20년 넘게 변하지 않은 상속·증여세 체계의 합리화도 시도했다.

하지만 '세수 펑크'가 계속되는 상황에도 3년째 감세 기조가 이어지면서 재정 기반이 취약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상속세 최고 세율 인하, 가업상속공제 확대 등 상당수 감세안이 대기업·고소득자에 혜택이 집중된 탓에 부자 감세 논란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국회의 세법심사 과정에서 거야(巨野)의 '벽'을 넘어야 하는 것은 정부에게 쉽지 않은 숙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 "상속세 감세→기업가치 제고→경제 역동성 구현"

 

정부가 25일 발표한 2024년 세법개정안의 상당 부분은 경제의 역동성과 민생 경제 회복에 초점이 맞춰졌다.

투자 확대를 위해 국가전략기술 투자세액공제를 3년 연장하고 중소기업 유예기간을 확대해 중소기업 지원 대상을 넓힌 것이 대표적이다.

가업상속공제를 확대해 기업의 상속세 부담을 대폭 완화하고 배당·자사주 소각 등 주주환원을 유도할 수 있는 세제도 신설했다.

상속세 부담을 던 기업들이 더 적극적으로 기업 가치를 키워 수익을 내고 이를 주주에게 환원함으로써 경제 '역동성'을 구현할 수 있다는 것이 정부의 구상이다.

최대 100만원의 결혼세액공제를 신설하고 자녀 세액공제를 1명당 10만원씩 상향하는 등 저출산 흐름에 대응하기 위한 세제 지원안도 내놨다.

과세표준 30억원 초과 구간의 상속·증여세 세율을 50%에서 40%로 인하하는 등 약 25년 만에 상속·증여세 체계도 정비했다.

상속세제가 그간 성장한 우리나라의 경제 규모를 반영하지 못한 탓에 '집 한 채'만 있는 중산층도 세금을 부담하게 됐다는 지적을 반영한 것이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올해 세법 개정으로 경제활력 제고를 통한 성장 잠재력 확충과 민생 안정을 적극 지원하는 한편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조세 제도를 구축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 경기 불확실성 짙은데…뚜렷한 세수확보 대책 부재

 

정부는 이번 세법 개정으로 향후 4조3천515억원의 세수 감소 효과를 예상했다. 비과세·감면 정비로 확보한 세수 규모 1조2천억원을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전체 세수감 중 상속세 완화에 따른 감세가 약 4조원으로 사실상 대부분을 차지했다. 이외 자녀 세액공제 확대로 약 6천억원, 결혼세액공제로 약 1천265억원의 세수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됐다.

연도별로 예상 세수 감소(순액법·전년비 기준)를 보면 2026년이 3조8천833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2025년(6천227억원), 2027년(3천888억원), 2029년 이후(3천323억원) 등 순이었다. 기준연도 기준으로 계산(누적법)한 세수 감소 규모는 5년간 18조4천억원 수준이다.

'감세 기조' 세법 개정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3년째 계속되고 있다. 2022년 발표된 세제 개편안의 세수 감소 효과는 13조1천억원, 지난해에는 4천719억원이었다. 누적법 기준으로 보면 올해 세법 개정안까지 세수감 규모는 81조원 수준에 이른다.

세수는 줄어들지만 당장 올해와 내년에 영향은 크지 않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특히 올해 수출 증가로 경기 회복세가 예상되는 만큼 향후 세수감도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정정훈 기재부 세제실장은 "81조원(누적법 기준 세수감 규모)은 우리가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라며 "(세법개정안은) 지속적인 성장과 균형을 위해서 꼭 필요한 정책"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중국의 내수 부진 장기화, 미국 대선 등 글로벌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안정적인 세수를 낙관할 만큼의 경기 회복세를 장담하기 어렵다는 반론도 있다.

한국의 주요 교역국인 중국은 최근 사실상 기준금리인 대출우대금리(LPR)까지 내렸지만 부동산 시장 침체 장기화와 내수 부진 우려는 여전한 상황이다.

트럼프의 미국우선주의·보호무역주의가 현실화하면 대미 무역흑자가 불어난 상황이 오히려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우려도 뒤따른다.

2년째 계속되고 있는 '세수 예측 실패'야 말로 경기 회복 전망에만 기대서는 안 되는 이유라는 지적도 있다.

지난해 56조원에 달하는 역대 최대 '세수 펑크'에 이어 올해도 10조원 수준의 세수 결손이 확실시되는 주된 이유 중 하나는 글로벌 경기의 불확실성에 따른 경기 예측 실패다. 경기 변동성이 커질수록 경기 전망은 쉽지 않고 그만큼 안정적인 재정 기반은 절실할 수밖에 없다.

최원석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비과세·감면 정비에서 정부 의지를 읽을 수는 있지만 단기적이고 미봉책에 불과하다"라며 "중장기적 관점에서 재정 지속가능성과 세입 기반을 확보하는 세제 개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과표 30억원 초과만 상속세율 '뚝'…과표 10억∼30억원은 '그대로'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끊이지 않은 '부자 감세' 논란도 더 커질 전망이다.

가업상속공제 확대와 최대 주주 보유주식 할증평가 폐지는 기업을 소유한 '오너'의 상속세 부담을 줄여주는 정책에 가깝다. 금융투자소득세 폐지는 주식·채권·펀드·파생상품 등 금융투자로 5천만원(주식) 이상의 소득을 올린 '큰손' 투자자에 유리하다.

상속·증여세 최고세율 인하로 혜택을 보는 계층은 과세표준이 30억원을 넘는 재산을 물려주는 재산가들이다. 정부는 최고세율 인하로 약 2천400명이 1조8천억원의 세 부담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는 "상속세 최고세율이 10% 내려가고 대주주 할증도 폐지되면서 결국은 부자들만 좋아진 것 같다"라며 "과표구간이 10억원에서 30억원 사이에 있는 사람들은 (세 부담에) 큰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연장된 국가전략기술 연구개발(R&D) 세액공제 등도 순이익을 내는 대기업이 주요 대상일 뿐 공제받을 세금조차 없는 적자기업과는 무관한 지원안이라는 분석도 있다. 지난해 적자를 신고한 법인은 37만9천개로 전체 법인의 36.7%를 차지했다.

'부자 감세' 논란은 정부가 국회 심의 과정에서 반드시 넘어야 할 벽이다.

특히 감세안 중 최대주주 보유주식 할증평가 폐지, 상속세율 인하는 야당의 반대가 만만치 않아 향후 국회 논의 과정에서 힘이 빠지거나 좌초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수년간 시행을 준비해 온 금투세와 가상자산 과세가 내년 시작을 앞두고 무산되거나 유예되면서 조세정책의 안정성이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투세와 가상자산 과세는 국민개세주의 원칙, 해외 사례 등을 근거로 필요성이 인정돼 2020년 세법 개정안에 담겨 국회에서 의결됐다.

이중 금투세는 2023년 시행 예정이었지만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 2년 유예된 데 이어 올해 아예 폐지되는 운명을 맞게 됐다.

가상자산 과세는 법안 통과 당시 2022년 1월이 과세 시점이었지만 대통령 선거를 코 앞에 둔 2021년 미뤄진 데 이어 올해 또 2027년까지 연기됐다.

국회를 거쳐 확정된 세제라고 해도 정권의 정치적 성향이나 여론에 따라 시행이 수차례 미뤄지거나 아예 폐지될 수 있다는 일부 시장 주체들의 희망이 그대로 현실화한 셈이다.

최원석 서울시립대 교수는 "(금투세 폐지·가상자산 과세 유예는) 조세정책 지속 가능성이나 예측 가능성 측면에서는 비판받을 만하다"라면서도 "정부는 또 시장의 여건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금투세를 폐지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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