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에서 바라본 세계

국가의 미래를 향한 첫 걸음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김상국 교수의 생활과 경제이야기<7>일본은 왜 희망 없는 후진국이 되었는가?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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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2년06월17일 17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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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라.”는 격언이 있다. 말은 쉽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더욱이 내 개인의 일이 아니라 정치나 나라와 같이 큰 일을 평가할 때는 더욱 그렇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본을 평가할 때 상당히 큰 관점의 차이를 볼 수 있다. 막연한 경외심을 갖는 사람도 있고, 역으로 일본의 만행과 최근 일본의 정치, 경제의 어려움을 두고 망해가는 나라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비교적 후자에 해당되는 사람이지만, 객관적 사실에 바탕을 두고 현재의 일본을 분석해 보자. 

 

제2차세계대전의 도발,1980년대 까지 일본의 발전은 정말 대단한 것이었다. 진주만 침공은 지나친 자만심에서 저지른 해프닝이었지만 청일전쟁, 노일전쟁에서의 승리, 70~80년대의 가전제품, 반도체 산업 등은 세계 제2위의 국가로서 일본은 당당한 국가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세계 제1의 투자자 중 한명인 ‘짐 로저스’로부터 “일본의 젊은이들이여! 내가 당신들에게 한마디 조언을 해준다면 희망 없는 일본에서 하루라도 빨리 떠나라는 말밖에 할 수 없다.” 라는 소리를 듣는 나라가 되었다. 불과 20~30년 만에 왜 일본이 이런 나라가 되었을까? 참으로 중요한 분석 대상이 아닐 수 없다.

 

결론을 먼저 말한다면, 급격한 발전을 가능하게 했던 일본인들의 『권위에 대한 맹목적인 복종심과 무저항 정신』이 지금 일본을 망하게 하는 근본 원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일본을 미국의 어느 저명한 사회학자는 ‘과거의 망령에 사로잡힌 지도층에게 그저 묵묵히 따라가는 좀비들의 국가’라는 말까지 듣게 되었다.

 

그렇다면 우선 큰 그림으로 일본의 현황을 살펴보자. 

 

1980년대 세계 10대 기업 중 일본 기업은 6개를 차지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제로다. 2021년 세계 100대 기업 중 일본 기업은 5개밖에 없다. 일본 대졸자의 실질 임금은 1990년대 이후 지금까지 지난 30년 동안 오르지 않고  있다. 일본 후생노동성 발표를 보면 일본 평균 연봉은 1989년 452.1만엔이었으나 2020년 433.1만엔이다. 지난 30년 동안 4.2% 오히려 줄어들었다. 인당 GDP는 일본은 40,146달러이고 우리나라는 31,496달러다. 지난 30년 동안 일본은 겨우 1.02배 증가하였으나 우리나라는 2.56배나 증가하였다. 더욱이 인당 구매력 평가지수(PPP)로 따지면 2020년부터 우리나라는 일본을 추월하였다. 즉 우리나라가 일본보다 더 잘 산다는 뜻이다. 

 

기업의 행태를 보자. 일본 시가총액 10대 기업 중 제조업이 도요타를 포함한 2개 회사이고, 나머지는 은행, 닌텐도(게임기), 전화회사, 유니클로(의류판매업) 등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IT 관련 기업이 6개나 된다. 세계 상위 100대 대학 중 우리나라는 6개이고 일본은 5개다. 일본의 반도체는 1988년도까지만 해도 전 세계 반도체 제품의 60%를 공급하였으나 지금은 10% 미만이다. 지금 반도체 부흥을 위해 대만 TSMC와의 합작회사에 무려 6조엔의 지원금을 준다는데, 일본에서 생산예정인 반도체는 20나노 제품이다. 우리는 5나노 3나노를 생산하고 있다. 그 유명했던 소니, 도시바, 히타찌, 산요는 파산했거나 중국기업에 인수 또는 업종전환을 하였다. 쏘니는 더 이상 가전업체가 아니다. 게임기 업체 또는 영화를 만드는 엔터테인먼트 회사다.

 

무엇보다 명확한 사실은 세계3대 신용평가기관들 모두가 우리나라를 일본보다 두단계 높게 평가한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는 영국 프랑스와 같은 등급이지만, 일본은 대만보다도 낮고 중국과 같은 등급이다. 너무나 큰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그러면 왜 일본이 이렇게 비참한 나라가 되었을까? 거기에는 크게 6가지 요인이 있다고 본다. 일본에 대한 분석은 곧바로 우리의 미래일 수도 있기 때문에 이런 분석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1985년 뉴욕 플라자합의를 ‘잃어버린 일본 30년’의 원인이라고 한다. 나도 그것이 일본 쇠퇴의 시작이라는데는 동의한다. 그러나 잃어버린 30년의 근본 원인은 아니라고 본다. 왜냐하면 같은 합의의 희생자인 독일은 다시 유럽의 맹주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나는 일본의 쇠락은 다른 요인들이 훨씬 더 크게 작용하였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일본인들의 권위에 대한 맹목적인 복종심이다.

 

나는 이것을 일본 쇠퇴의 가장 본질적인 이유라고 생각한다. 사실 일본을 부강하게 만들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일본인들의 맹목적인 복종심이었다. 그들은 이것을 ‘앞으로 가 정신’ 또는 ‘화(和)’라고 표현한다. 일본 개화 후 20세기까지 변화의 속도가 느리고, 다양하지 않던 시대에는 이러한 복종심은 엄청난 역량을 발휘하였다. 불평불만 없이 열심히 일하는 몇천만의 개미군단 앞에 누가 당할 수 있겠는가? 자유분방한 영혼을 가진 서구는 이런 좀비같은 개미군단 앞에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의 발전은 약속된 것이었다.

 

그러나 소비자의 니드가 다양해지고 자주 변하며 개인주의화 되는 현대 사회에서, 특히 『새로운 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나타나는 현대 사회에서 이런 자세로는 효과적인 대응이 불가능하다. 

 

소니가 트리니트론 TV 기술을 더욱 정교하게 발전시키려고 노력할 때 우리는 LCD, LED, OLED로 훌쩍 넘어가 버렸고, NTT가 3세대 통신망에 매달려 있을 때 우리는 4세대, 5세대로 넘어가 버렸다. 같은 경쟁 방법으로 그들과 경쟁한 것이 아니라 우리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고지를 향해 미리 달려가버린 것이다.

 

둘째는 혁신 보다는 현 상태의 개선(改善, 카이젠)을 훨씬 더 중시 여기는 일본인들의 자세다.

 

개선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나 원가절감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단계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즉 기술 발전 속도가 느리고 다양하지 않을 때 개선정신은 비교경쟁우위를 차지하는데 매우 중요한 요소다. 

 

내가 일본에서 본 인상 깊었던 대회가 하나있었다. 그 대회는 나무를 대패로 깎는데 누가 더 대패밥을 끊이지 않고 길고 고르게 깎아내느냐는 게임이었다. 어찌보면 장인정신의 결정체다. 그러나 이런 높은 손대패 기술과 전동대패로 순식간에 깎아버리는 효율성을 비교하면 경쟁의 대상이 될 수 없을 것이다. 

 

남들은 더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여 더 빨리 효율성을 찾아 나가는데, 일본은 자기가 오랫동안 하던 방식을 『더 잘하는데』 온갖 노력을 기울이는 나라다. 자동차가 전기차로 이전되는 명확한 현대 상황에서도 일본의 도요타는 전기차의 전면 도입 시기를 늦추려는 로비활동을 미국의회에 하였다고 한다. 정말 받아들이기 어려운 발상이고 행동이다.

 

셋째는 지나치게 가격우위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일본기업의 자세다.

 

’좋은 품질, 저렴한 가격‘은 두말할 나위 없이 중요한 경쟁력의 원천이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때로는 혁신적인 상품을 만들기 위해서 가격을 희생할 필요성도 있고, 새로운 비즈니스모델도 만들 필요가 있다. 

 

그러나 프라자합의에 의한 강한 엔저에 너무 힘든 경험을 한 일본은 새로운 상품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기 보다는 기존 제품의 가격을 낮추는데 너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자원 빈국인 일본에서 수입한 자재 가격은 지속적으로 오르는데 제품 가격상승은 어려웠다. 이것을 타개하는 방법은 두가지 밖에 없다. 하나는 생산성 향상이고, 두 번째는 임금동결이다. 그러나 일본의 생산성은 이미 거의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 ’마른 수건도 다시 짠다.‘는 그들의 경영은 이미 더 이상의 획기적인 생산성 향상을 어렵게 만들었다. 그러면 변동비를 줄여야 하고, 변동비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임금을 줄여야 했다. 

 

일본의 평균 임금은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1989년 452.1만엔에서 2020년 433.1만엔으로 오히려 4.2% 줄어 버렸다. 이러한 임금 감소는 더욱 가격에 민감한 고객을 만들었고, 이것은 기업들에게 원가절감의 필요성을 더욱 중요하게 만들었다. 결국 낮은 임금과 더 낮은 가격의 악순환은 일본 경제를 더욱 악화시킬 수밖에 없었다. 

 

넷째는 자민당의 일당독재와 아베노믹스의 실패다.

다른 경제분석가들은 이 요인을 잘 지적하지 않지만 나는 이것을 일본경제 붕괴의 두 번째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자민당은 1955년 창당 이후 거의 70년간을 아주 잠깐 기간을 제외하고는 일본을 통치해 왔다. 조금 지나친 말일지 모르지만 소련과 중국의 공산당과 일본의 자민당은 별 차이가 없는 일당독재의 체제다. 이러한 일당독재 체제의 명백한 특징은 “국민들이 중요하지 않다”는 점이다. 코로나가 한명 나왔다고 인구 1,200만의 상해시를 봉쇄하는 중국이나, 코로나 숫자 발표 감염자 수를 줄이기 위해 쿠루즈선에 탄 일본 승객들을 하선하지 못하게 하고 배 안에 가둬두는 일본이나 별 차이가 없다. 위안부 관련 대법원 판결 때문에 우리나라 반도체 소요 부품을 아무런 고민도 하지 않고 수출 금지시켜 일본 반도체 소부장기업들을 파산시켜버린 것도 아주 좋은 예이다. 

 

그러나 더 희한한 것은 이러한 기업의 사활이 걸린 터무니 없는 조치를 정부가 했음에도 아무런 불평도 없이 파산해가는 일본 기업들이다. 

오죽했으면 이번 동경 올림픽에서 덩치 큰 외국선수들에게 골판지 종이 침대를 제공하고(아베 형이 골판지 회사 사장임), 구태여 말썽 많은 후쿠시마산 농산물로 식단을 짜는 일본이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그런데도 일본의 자민당은 너무나 건재하다. 아베의 뒤를 이은 스가나 지금의 기시다도 똑 같은 아베파 사람들이다. 기가 찰 노릇이다. 아무리 정부에 순응하는 것이 일본인들이라고 해도 이것은 지나친 맹종이다. 우리나라 정보통신부 장관에 해당하는 장관이 나이 70이 넘고, 컴퓨터를 한 번도 사용해 본 적이 없으며, IT를 “이트”라고 읽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정보통신부 장관이 되는 일본이다. 여기에 무엇을 더 기대하겠는가?

 

다섯째는 일본 인구상의 문제다. 특히 노인 인구 비중의 증가와 젊은 세대들의 무기력화이다.

 

일본의 정부 부채가 많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2021년 일본 정부부채는 GDP의 256%다(미국 133%, 우리나라 53%). 그러나 이런 높은 부채가 정부지출에 얼마나 큰 압박요인 인지를 지적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일본 세출을 살펴보면 갑자기 큰 걱정이 된다. 정부 예산 중 국채 원리금을 갚는데 무려 ’22.3%‘나 소요되고, 사화복지비용이 33.6%나 된다. 합하면 55.9%다. 또 지방 교부세가 15.9%다. 지방교부세의 50% 정도가 인건비라고 생각했을 때, 일본 정부예산의 64%가 경직예산이다. 즉 일본 정부 예산이 100조엔 정도인데 정부가 사업을 위해 쓸 수 있는 가용예산은 겨우 36% 즉 1/3밖에 안된다는 얘기다. 

 

또한 이자율이 1%P 올라도 국채원리금 상환액이 3.7조엔 으로 정부예산의 약 4%나 차지하게 된다. 일본의 제로금리가 국제금리인 3%대로 오른다면 일본 정부예산의 37%가 국채원리금을 갚는데만 사용되는 황당한 일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일본 금리가 제로 금리로 갈 수밖에 없는 본질적 이유 중 하나이다. 

 

전체 예산의 36%밖에 안되는 가용예산으로 일본 정부는 나라를 운영할 수 없기 때문에 만성적인 예산부족국가가 될 수밖에 없고, 필요한 사업을 위해 일본은 매년 예산의 20% 이상의 국채를 더 발행할 수밖에 없다. 즉 일본은 끝없는 부채의 늪에 흠뻑 빠져있는 국가인 것이다. 

 

금융완화와 국채발행을 계속 주장한 아베노믹스는 이런 현상을 더욱 부채질하였지만 그의 치세는 아직도 전혀 변함이 없는 것 같다. 

 

여섯째는 일본 국민들의 세대 간 재산분포의 불균형과 젊은이들의 무기력함이다.

 

현재 일본 인구 중 65세 이상이 30% 정도다(우리나라는 약 15% 정도). 사회복지비용의 증가는 이미 수없이 지적되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일본 국민들의 세대 간 재산분포의 불균형 현상이다. 일본 국민들의 2020년 가구당 저축액은 1,791만엔이다. 많다. '야, 역시 일본이야.' 라고 속단할 수 있다. 그러나 꼭 그렇지는 않다. 일본 60대의 평균저축액은 2,384만엔이고 70세 이상이 2,259만엔이다. 거기에 비해 50대 이하는 평균 572만엔의 부채를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와는 전혀 다르다. 우리나라는 푸어 노인이라고 하는데, 일본은 리치 노인네들이다. 그런데 이 노인들은 부동산과 주식버블을 겪은 세대다. 쉽게 말해 투자를 하여 너무 큰 낭패를 경험한 세대다. 그들에게 투자는 선호의 대상이 아니라 기피의 대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축액은 많지만 투자로 연결되지 않는다. 일본 정부가 아무리 투자를 장려해도 그들은 정부 말을 듣지 않는다. 오히려 현금과 장롱을 더 선호한다. 그래서 경제발전을 위해 정부가 투자를 대신할 수밖에 없고, 정부는 더 많은 부채를 떠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희한한 것은 이 노인세대들은 죽어도 살아도 자민당을 지지한다는 것이다. 어찌 변화가 있을 수 있겠는가? 이들이 바로 극단적 우익그룹이고 혐한(嫌韓)그룹이다. 자민당의 권력지속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고마운 존재들이지만, 국가 장기 발전의 입장에서는 일본을 희망이 없게 만드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더 기(氣)가 막힌 것은 일본의 젊은 세대들이다. 이들은 30년의 길고 긴 잃어버린 시간 동안 한번도 잘 살아 본적이 없는 세대다. 오히려 점점 가난해지면서 산 세대다. 더욱이 기성세대의 막강한 파워에 눌려 지내며 살았다. 옛날에는 캥거루족 세대였지만 이제는 유토리세대가 나타났다고 한다. 이들은 부모 밑에 얹혀사는 무능력한 캥거루족을 넘어, 아예 세상사에 관심이 없는 세대다. 학교, 일, 직장은 물론이고 심지어 여자에 대한 관심도 별로 없다. 어찌보면 이들은 사무라이 시대의 오랜 강압에 억눌린 사회적 부담과 플라자합의 이후 장기간 경제 불황에 희생된 불쌍한 세대인 것이다. 짐 로저스의 말대로 일본을 빨리 떠나야 할지 모르겠다. 

 

결론은 다음과 같다. 

 

일본은 아직도 과거의 기득권 세력이 강하게 지배하는 나라다. 그리고 미래 세대도 점점 하강해 가는 기가 빠진 세대가 미래 세대인 나라다. 물론 우리 대한민국도 문제가 많다. 하지만 우리는 잘못을 빠르게 고쳐 나가는 나라이고, 자랑스런 젊은 세대들이 존재하는 나라다. 신중하게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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