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에서 바라본 세계

국가의 미래를 향한 첫 걸음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꽁꼼한’아빠의 면도기, 열배 오래 쓰는 법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2년06월03일 17시00분

작성자

메타정보

  • 1

본문

우리 자식들은 가끔 아빠를 놀릴 때 “아빠는 꽁꼼하잖아!”라고 말한다. ‘꽁꼼하다’는 말은 자주 쓰는 말이 아니기 때문에 설명하면 이런 뜻이다. 다른 사람은 아무 관심도 없고, 조금도 중요하지 않은 일인데 그것을 해결하려고 끈기있게  노력할 때 우리 고향에서 쓰는 말이다. 표준어 표기는 ‘꼼꼼하다’이지만…. 

 

하기야 내가 해결하려고 오랫동안 노력한 것 중에 ‘화장실에서 화장지를 효율적으로 쓰는 방법’과 ‘부엌에서 물비누를 적게 쓰고 설거지하는 방법’ 같은 문제들이 있으니, 자식들이 평하는 “꽁꼼하다”는 것이 결코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나의 꽁꼼한 특성이 또 한 번 발휘된 것이 바로 면도기를 오래 쓰는 문제였다. 여기서 면도기는 전기면도기가 아니라 칼면도기라는 것을 미리 밝힌다.

 

나는 옛날에 포항에 있는 어느 제강회사에서 상당기간 경영컨설팅을 한 적이 있었다. 그 회사에서 세계에서 4대 밖에 만들지 않은 ‘거대한’ 압연기를 구입하는데 동행의 필요성이 있어 유럽 여러 나라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여행 중 방문한 공장에 영국제강(BS, British Steel)이 들어있었다. 산업혁명의 원조 국가답게 해안가에 거의 2마일로 길게 늘어선 공장은 지금도 내 가슴 속에 깊은 인상을 남기고 있다. 공장 하나가 ‘직선’으로 거의 십리(十里)를 걸쳐 있으니, 좁은 우리나라에서 살던 나로서는 약간 경외감까지 들었었다. 

 

하여튼 그 공장 방문 시 들은 설명 하나가 나에게 면도기 수명에 대한 의문을 갖게 하였다. 고급 철강은 우선 사다리꼴의 잉고트로 만든다. 그 다음에 잉고트를 압연하여 원하는 강판을 만드는 것이 순서다. 그런데 사다리꼴 잉고트의 얇은 귀 부분은 빨리 식고, 가운데 몸통부분은 두껍기 때문에 천천히 식는다. 그런데 이 식는 속도에 따라 철의 결정 크기에 미세한 차이를 만든다.

 

그래서 BS는 잉고트를 밀어 철판을 만들고, 귀부분의 철판은 품질이 좋기 때문에 좀 더 비싼 값에 그 부분을 질레트에 판매한다는 설명이었다. 쉽게 말해 BS가 생산하는 철강 중에서 가장 질 좋은 최고급 철강을 질레트에 공급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설명을 듣자마자 나에게 새로운 의문이 생겼다. “아니 이렇게 질 좋은 철로 만드는 면도날이 한두 달도 못쓰고 새것으로 교환해야 한단 말인가? 면도기로 쇠를 자르는 것도 아니고, 기껏해야 얼굴에 난 부드러운 수염을 깎는것 아닌가?” 

생각은 생각을 낳는다고 한다. 

 

옛날 LP 레코드판을 써본 사람은 금방 이해할 것이다. 레코드 바늘은 보통  다이아몬드나 최소한 인조 사파이어를 쓴다. 그 이유는 플레이어 암의 무게는 ‘1 그람’ 정도로 매우 가볍지만, 레코드 홈에 닿는 침의 면적이 워낙 좁아 바늘 끝의 압력은 약 1톤 정도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압력을 견디기 위해 아주 단단한 다이아몬드나 사파이어를 쓰는 것이다. 

 

이 원리를 그대로 적용하면 부드러운 수염이지만 면도날과 수염이 닿는 면적은 매우 좁기 때문에 매우 큰 압력이 면도날에 가해진다는 뜻이 된다.

 

다음은 『충격량』이다. 우리가 똑 같은 힘으로 사람을 때려도 빨리 ‘탁’치는 것과, 천천히 치는 것은 매우 다르다. 즉 같은 힘(F, Force)일지라도 시간을 짧게 하면 충격량(I, Impulse)은 반비례로 커진다( I=F△t). 골치 아파할 필요 전혀 없다. 그런가 보다 하고 결론만 보면 된다.

 

끝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면도날에 낀 ‘비누 떼’다. 우리는 면도를 할 때 보통 비누 또는 면도기용 폼을 사용한다. 그리고 면도 후 대충 닦아 보관한다. 그러면 남아있는 비누기는 면도날에 굳어져 붙어있게 된다. 다음에 면도를 할 때 아무리 물을 묻혀도 굳어진 비누는 쉽게 녹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면도날 자체는 아직도 날카롭지만, 위에 달라붙어 있는 굳은 비누 때문에 둔하게 깎여질 수밖에 없고, 그래서 우리는 면도날을 새 면도날로 바꾸는 것이다.

 

그러면 해결책은 무엇인가? 매우 간단하다. 

 

첫째는 컵 하나를 준비하여 면도 후 면도기를 그 안에 담가 놓는 것이다. 

남아있던 비누기는 저절로 컵 속의 물에 녹아들어 면도날에 붙어있지 않게 된다. 그래서 날카로운 날로 다음에 다시 면도할 수 있다. 

 

또 혹자는 그런 소리를 할지 모른다 “그러면 녹이 슬지 않을까요?” 거의 녹슬지 않는다. 녹은 공기 중에 산소와 습기가 동시에 있을 때 생긴다. 물속에 잠겨진 면도날은 공기 중 산소와 접촉할 시간이 없다. 

 

다음은 면도기를 잡는 방법이다. 면도기를 힘차게 잡지 말고 손가락 두개만을 사용하여 ‘나긋나긋’하게 잡아야 한다. 그러면 닿는 순간의 속도가 줄어들어 충격량이 급격하게 줄어든다.

 

끝으로 ‘천천히 부드럽게’ 면도기를 사용하면 된다. 그래도 총 면도 시간에는 4,5초도 차이나지 않을 것이다. 두 손가락으로 면도기를 잡는 것과 동일한 이치로 충격량을 줄이기 위해서다. 

 

그러면 그 결과는? 

오래 쓴다. 매우 오래 쓴다. 

1년에 하나 또는 하나 반 정도?

‘꽁꼼한’ 아빠의 ‘꽁꼼한’ 버릇이 때로는 생활에 도움이 되기도 하는가 보다.

1
  • 기사입력 2022년06월03일 17시00분
  • 검색어 태그 1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