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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김상국의 생활과 경제이야기<4> 잡초야 미안해. 네가 하는 일을 내가 잘 몰랐어!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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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2년05월27일 17시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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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인가 “잡초들의 생존 철학”이란 글에서 우리가 별 뜻 없이 보는 잡초들이 얼마나 자기 생존을 위해 기발한 전략을 짜고 있는가를 설명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작은 텃밭을 가꾸는데도 잡초들과의 전쟁에 정말로 많은 노력이 든다고 푸념 삼아 썼었다. 일주일 정도 바쁘다는 핑계로 텃밭을 돌보지 않으면 잡초들이 얼마나 빠르게 채소들을 덮어 버리는지 사실 놀라울 정도다. 농촌 생활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 의견에 동의하리라고 본다. 오죽했으면 텃밭 농사 4년차밖에 안 되는 내가 잡초를 쉽게 제거하는 기구를 만들어 특허까지 냈을까!! 그런데 쓰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그러나 최근, 잡초에 대해 의외의 반전이 생겼다. 정말로 세상은 끝없이 배워야 하고, 지혜로운 어른들이 말씀하신 “존재하는 것은 모두 존재 가치가 있다.”는 말씀을 실감하게 되었다.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라고 생각한다. “옛날도 아주 머언 옛날 어느 왕국에 일곱 왕자와 한 막내 누이가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마녀가 나타나 일곱 왕자에게 마법을 걸어 백조로 만들어 버리고, 어린 막내 여동생 공주에게 열일곱 살 생일이 되기 전에 억센 ‘쐐기풀’로 옷을 만들어 일곱 왕자에게 주지 않으면, 오빠들은 영원히 사람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새로 살리라. 

그래서 너무너무 오빠들을 사랑하는 막내 공주는 쐐​기풀의 억센 줄기와 날카로운 가시에 손에 피가 넘쳐나면서도, 열일곱이 되기 바로 전날 쐐​기풀 옷을 만들어 생일날 날아온 백조들에게 쐐​기풀 옷을 던져주었다. 그러자 일곱 백조는 다시 왕자가 되어 막내 공주와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다.”는 이야기를 마음 조리며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이전 “잡초들의 생존 철학”이라는 글에서 나는 ‘새삼덩굴(아마도 서양 쐐​기풀)’에 대해서 상당히 나쁜 감정으로 글을 썼었다. 땅에서 막 나올 때는 그렇게 순둥이 같이 아련하지만 자라기 시작하면, 줄기는 손대지 못할 정도로 억새지고, 날카로운 가시까지 돋으며, 너무 빨리 자라 주위 온 식물에 뒤엉켜 무성하게 자라 손도 못되게 만든다고 매우 불만스런 글을 썼었다.

 

그런데 최근 어떤 식물학자가 새삼 덩굴에 대해 쓴 글을 보고 “아이쿠, 이를 어쩌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옛날부터 정확히 알지는 못했지만 식물들도 상호 의사소통을 하며 자기 스스로를 보호한다는 말을 들었었다. 즉 어느 나무에 곤충이 심하게 늘어나면 숲에 있는 식물들이 갑자기 곤충들이 싫어하는 냄새를 내뿜어 곤충들이 달아나게 하거나 또는 자라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무들이 어떻게 의사소통을 하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었는데, 최근 이런 소통 방법이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즉 나무들 간의 소통 도구는 바로 『새샘 덩굴』과  땅속에 아주 넓게 퍼져 있는 『포자(버섯 균류)』라는 것이다. 

 

곤충들이 침입하면 공격당한 식물은 여기저기 엉켜있는 새삼 덩굴에게 가까운 다른 식물들에게 위험신호를 전달하게 한다는 것이다. 땅속의 균류들은 새삼 덩굴과는 비교도 안 되게 숲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지하 네트워크로 연결하고 있다. 그래서 가까운 나무뿐만 아니라 숲 전체 식물들에게 위험신호를 보내고 대비책을 새우게 한다는 것이다. 즉 곤충들이 싫어하는 냄새를 품어내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건강에 좋다고 삼림욕을 하는 피톤치드도 사실은 식물들이 곤충 피해를 줄이기 위해 내뿜는 향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그 식물학자는 우리들에게 심한 어퍼컷 하나를 더 올렸다. 우리가 흔히 “잡초, 잡초”하는데 왜 그들이 잡초냐는 것이다. 사람보다 훨씬 더 먼저 이 세상에 태어났고, 자기 생존을 위해 더 없이 열심히 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인간들이 뒤늦게 나타나서 자기들에게 필요한 식물들을 키운다면서 훨씬 더 오래 전부터 살았었고, 훨씬 더 숲의 건강을 위해 일을 많이 하며, 훨씬 더 홍수와 산사태를 막는데 그들(잡초) 만큼 공헌하는 식물이 없는데, 쓸데없고 귀찮은 잡초라고 하니 얼마나 억울하겠냐는 것이다. 그들은 절대로 잡초가 아니라 순초이고 익초라는 것이다.

 

듣고 보니 또 정말 그럴싸한 말이다.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지? 그래도 할 수 없지 채소를 키우기 위해서는 뽑아야지.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마음 변화는 있을 것 같다. 옛날에는 ‘미움’이 가득차서 마구마구 뽑아냈다면 이제는 조금 조심조심하며 “그래 잡초야 미안하다. 그러나 어떻겠니. 나도 먹고 살아야지.” 늑대 눈물인지 악어 눈물인지는 모르지만 조금은 인자로운 마음(?)을 가지고 풀을 뽑을 것 같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분명한 제안을 하고 싶다. 우리는 빠른 해충 제거를 위해 농약을 비행기로 살포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것은 반드시 피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공중 살포된 농약의 대부분은 (90% 이상이라는 학자도 있다.) 해충을 죽이는데 쓰이지 않고, 땅속으로 흡수되어 연약하기 짝이 없는 포자 균류를 말살시킨다는 것이다. 그리고 균류가 사라진 숲에는 몇 종류 강한 나무들만 살아남고 숲의 다양성은 찾아 볼 수 없다고 한다. 

 

나는 용인에 살고 있다. 용인 일부 숲을 보면 소나무와 참나무류 그리고 그 외 몇 종도 안 되는 나무들만 보인다. 그런데 어느 날 강화도 서편 숲을 가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거기에는 우리가 어렸을 때 보던 할미꽃부터 수많은 야생화와 이름 모를 나무 그리고 새소리로 가득 찼었다.

 

그때는 이유를 몰랐었다. 그러나 지금은 알 것 같다. 

 

『숲을 사랑하자.』

 

농약을 최소한으로 쓰고, 특히 농약의 비행기 살포를 자제하자.

우리는 미래 우리 자손들의 자연을 현재 빌려 쓰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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