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에서 바라본 세계

국가의 미래를 향한 첫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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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루먼의 겸손을 배워라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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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2년05월26일 10시30분

작성자

  • 이상돈
  • 중앙대학교 명예교수, 20대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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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대통령이 윤 대통령에게 해리 트루먼(Harry S. Truman 1884~1972. 12 .26)이 집무실 책상에 올려놓아서 화제가 된 후 트루먼 기념품으로 팔리고 있는 ‘The Buck Stops Here' 명패를 선물했다. 원자폭탄 투하 등 어려운 결정을 해야 했던 트루먼 대통령에게 2차 대전이 끝난 후 고향 친구가 라고 쓰인 책상 팻말을 트루먼에게 보냈다. 트루먼은 집무실 책상 위에 그걸 놓아서 누구든지 볼 수 있게 됐다. 팻말의 뒷 쪽은 라고 쓰여 있었다.

 

포커를 할 때 돌리는 패(Buck)를 다음 사람에게 돌리지(passing) 말고 멈추어서 해결(stop)을 하라는 의미인데, 트루먼은 대통령이 최종적으로 결정을 해야 하며, 다른 데 미룰 수 없다는 말을 종종했다. 그래서 ’The Buck Stops Here‘라는 구절은 대통령의 책임을 강조하는 뜻으로 쓰이게 됐다. 

 

그렇다고 트루먼은 결코 자기 멋대로 결정을 하지는 않았다. 자신의 학력과 경력이 부족함을 잘 알았던 트루먼은 조지 마셜, 딘 애치슨, 오마 브래들리 같은 당대의 거물을 국무장관, 국방장관, 합참의장으로 기용했으며 그들의 의견을 존중했다. 트루먼은 자기보다 뛰어난 이런 사람들과 같이 일하는 것을 행운으로 생각했다. 트루먼은 소탈하고 소박한 사람이었다. 조지 마셜 국무장관이 유럽 부흥을 위한 원조계획을 ‘트루먼 플랜’이라고 부르자고 하자 트루먼은 마셜에게 “당신의 아이디어이니까 당신 이름을 붙여야 한다”고 고집을 해서 ‘마셜 플랜’이 되고 말았다. 

 

애치슨 국무장관이 유럽에서 국제회의를 참석하고 귀국하자 대통령인 트루먼이 워싱턴 공항으로 마중을 나갔다. 대통령 임기 마지막 날 저녁 애치슨 국무장관은 자신의 워싱턴 자택에서 트루먼 송별모임을 열었다. 미주리 시골 출신으로 대학을 나오지 못한 대통령 해리 트루먼과 명문 그로턴 고교, 예일대, 그리고 하버드 로스쿨을 나온 동부 엘리트 딘 애치슨 국무장관이 이끌었던 한 시대가 끝난 것이다. 

 

1차 대전에 포병장교로 참전하고 고향 미주리 인디펜덴스에 돌아온 트루먼은 군대 친구와 함께 셔츠와 넥타이를 파는 스토어를 캔저스 시티에 열고 베스 여사와 결혼을 했다. 사업에 돈을 몽땅 넣은 트루먼은 베스의 친정 집에 친정 식구들과 같이 살았다. 처음에는 그럭저럭 버텼지만 장사가 안돼서 결국 빚을 지고 가게는 문을 닫고 말았는데, 갈 데가 없어진 트루먼은 처갓집에 계속 눌러 살았다. 

 

그 지역의 민주당 세력가들의 도움으로 트루먼은 카운티 판사로 선출됐고 계속 연임을 했다. 행정심판소 같은 기관의 심판관을 지낸 트루먼은 1934년에 상원의원에 당선됐고 1940년에 재선에도 성공했다. 1944년 대선을 앞두고 당시 부통령이던 헨리 월러스를 위험한 사회주의자로 생각한 민주당 보수파는 부통령 후보로 해리 트루먼을 밀어서 트루먼은 부통령이 됐다. 부통령이 된 후 3개월 만에 루스벨트가 사망하자 트루먼은 대통령이 됐다. 

 

상원의원이 된 후 워싱턴에서 집을 빌려 살았던 트루먼은 대통령으로 있을 때에도 고향 미주리 인디펜덴스에 있는 처가 집을 자주 찾았다. 대통령 임기가 끝나자 트루먼 부부는 인디펜덴스의 처가 집을 구매하고 그 곳에 정착했다. 고향으로 돌아 온 트루먼은 크라이슬러 자동차를 구입해서 부인과 둘이서 운전을 하면서 2,500 마일을 여행했다. 트루먼은 휘발유도 직접 넣고 맥도널드도 들르고 친구 집도 방문했는데, 전직 대통령 부부를 거리에서 만난 미국인들은 무척 반가워했다. (경호원은 물론이고 경찰의 에스코트도 전혀 없었다.)   

 

트루먼이 대통령을 마치고 나왔을 적에는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가 전혀 없었다. 대통령 연금이 생기기 전이라서 트루먼은 경력이 짧은 육군 연금이 수입의 전부였다. 트루먼 부부는 매월 나오는 육군 연금 112 달러(2020년 가격으로 1,000 달러)가 수입의 전부였다. 트루먼은 자신한테 오는 많은 편지에 일일이 답장을 하느냐고 우편요금도 많이 나가서 생활이 궁핍했다.

 

자서전 출판 계약으로 간신히 숨통이 터졌는데, 이런 소문이 워싱턴까지 나서 의회는 1958년에 전직 대통령법(Former Presidents Act)을 제정했다. 이 법은 전직 대통령에게 각료급 급여에 해당하는 연금을 주고 대통령이 사망하면 배우자에게 연간 2만 달러까지 연금을 줄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이 법률은 이미 퇴임한 대통령에게는 적용되지 않아서 트루먼 부부는 혜택을 볼 수 없었다. 

 

트루먼이 81세가 되던 1965년 7월, 존슨 대통령은 미주리 인디펜덴스에서 트루먼이 참석한 가운데 의회를 통과한 메디케어법(The Medicare Act)에 서명을 했다. 65세 이상 나이 많은 사람들에게 정부가 의료보장을 해주는 이 법은 트루먼이 대통령을 하면서 주장했던 것인데, 존슨 행정부 들어서 비로소 의회를 통과했다. 트루먼 부부는 노년에 의료비가 많이 들어갔는데, 이 법률이 이듬해에 발효함에 따라 의료비 걱정을 덜게 됐다. 트루먼은 1972년 12월, 88세 나이로 사망했다. 부인 베스 여사는 10년을 더 살고 1982년 97세 나이로 사망했다. 

 

베스 여사는 부부의 보금자리였던 자택을 미국 국립공원청에 유언으로 기부했고, 국립공원청은 트루먼 하우스와 부근을 역사 지점(Historic Site)으로 지정해서 관리해 오고 있다. 트루먼이야말로 진정으로 'People's President'였다고 할 만하다. 

(전직 대통령 예우에 있어서 연금은 우리나라가 미국 보다 훨씬 많다. 본인 연금도 그렇지만 미국은 배우자의 경우 연간 2만 달러가 전부인데 비해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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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1) 한국 전쟁 당시 애치슨 국무장관, 트루먼, 마셜 국방장관 (2) 퇴임 후 자동차 여행 중인 트루먼 (3) 트루먼 하우스, 미주리 인디펜덴스 (4) 트루먼 부부의 은퇴 생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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