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에서 바라본 세계

국가의 미래를 향한 첫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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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경제는 좋다는데 서민경제는 왜 이리 나쁜가?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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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2년02월24일 16시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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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서민경제는 정말 나쁘다. 더욱이 우한폐렴 이후 우리 서민경제는 더더욱 좋지 않다. 우울하기 짝이 없다고 말하고 싶다. 좋든 싫든 국가경제를 생각하며 사는 사람으로서 닫혀진 상점문을 볼 때 미안한 마음이 정말 크다.

 

그런데 나라경제를 나타내는 수치들은 정말 좋다. 4,000억달러가 넘는 세계 8위의 외환보유고, 600억 달러가 넘는 월 수출, 4%나 되는 OECD 최고의 경제 성장률, 영국, 불란서와 같거나 더 높은 대외신용 평가 등등

 

그러나 우리 서민경제는 그와는 영다르다. 왜 그럴까? 많은 사람들의 질문이지만 속 시원한 답변은 없는듯하다. 혹자는 그렇게 말할지 모른다. 부익부 빈익빈 현상 때문이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결과일 뿐이지 원인이 아니다. 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일어났는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올바른 대책을 새우기 위한 첫번째 조치는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는 것이다.

 

내 옛날 경험 하나를 소개하겠다. 서울에서 항상 막히는 길 중 하나는 아마 한남대교에서 반포를 지나 고속도로로 빠져나가는 길일 것이다. 어느 땐가 상당히 유명한 분과 차를 동승하였다. 역시 그날도 그 부분에서 길이 막혔다. 지금은 아니지만 그 당시에 길이 막히면 커피와 뻥튀기를 파는 사람이 나타나 정지해 있는 운전자들에게 장사를 했었다. 그런데 그때 동승한 그분이 “저 놈들이 나타나면 꼭 길이 막힌단 말이야.” 라는 것이 아닌가? 나는 깜짝 놀랐다. 그들이 나타났기 때문에 길이 막혔는가? 아니면 길이 막혔기 때문에 그들이 나타났는가? 1997년 외환위기 때의 상황도 비슷하였다. 왜 IMF 위기가 왔는가? ‘그것은 외환이 없었기 때문이다.’라고 상당수 전문가들이 말했다. 그러나 외환이 없었던 것은 결과이고, 풍부했던 외환이 왜 갑자기 바닥났느냐가 진정한 원인인 것이다. 결과를 원인과 혼돈하였기 때문에 당시 총리는 ‘우리나라는 대외채권이 더 많기 때문에 외환위기는 오지 않는다.’라고 말했던 것이다.

 

약간은 긴 설명이 되겠지만 차분히 분석해 보겠다. 2차세계대전은 그 의미가 매우 다른 전쟁이다. 유사 이래 1차세계대전까지 모든 전쟁은 ‘땅 따먹기’ 전쟁이었다. 이긴 나라는 진 나라의 땅을 가져가거나, 최소한 어마어마한 전쟁배상금 또는 공물을 바치게하였다. 그러나 2차세계대전 이후는 땅따먹기 전쟁이 아니라 “이념전쟁”이 되었다. 즉 미국을 대표로하는 자유자본주의와 소련을 대표로 하는 공산주의의 대결이었다. 그러므로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 전쟁이 일어나든 그것은 미국과 소련을 대신하는 대리전쟁이었다. 그런데 전쟁을 하면 이겨야 한다. 지는 전쟁을 하려고 시작하는 사람은 없다. 잠깐 싸이드적인 얘기를 하나 하겠다. 얼마 전 ‘6.25가 남침인가? 북침인가?가 중요한 논쟁거리인적이 있었다. 이것은 정말 질문 같지도 않은 질문이다. 우리 남한이 북침을 하여 소련과 중공이 뒷배를 봐주는 북한을 이길 수 있었을까? 탱크도 없고 전투기도 없는 남한이 수백 대의 탱크와 100여대가 넘는 미그기를 가진 북한을 침공하여 이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우리 주위에는 가끔 이런 허무맹랑한 논쟁을 하는 경우가 가끔 있는듯하다.

 

본론으로 돌아오자. 미국과 소련은 서로 전쟁에서 이겨야 했고, 이기기 위해서는 효과적인 승리 전략을 짜야했다. 미국의 승리 전략은 매우 적확(的確)했다. 왜 제3세계 국가들에게 공산주의가 확대되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먹고 살것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오늘 당장 내 새끼들에게 먹일 끼니가 없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찾아와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당신이 먹고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지 않았는가? 아니다. 열심히 하였다. 그런데 왜 당신이 못 사는가? 그것은 바로 우리를 착취하여 놀고먹는 저 자본가 계급 때문이다. 우리가 힘을 합쳐 공산주의 혁명을 일으켜 모두가 잘사는 나라를 만들어 보자.”라고 했을 때 여러분의 가슴은 흥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대다수의 일반 대중에게 공산주의는 거창한 이념이 아니라 배가 고파 못 살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은 간단명료한 방법을 택했다. 가난한 개도국을 잘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새로운 방법들을 고안하였다. 국가 간 분쟁해결을 위해서는 국제연맹(국제연합)을 만들고, 경제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빌려주기 위해서는 세계은행(WB)도 만들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국가가 파산이 되면 긴급자금을 수혈해주는 국제통화기금(IMF)도 만든 것이다. 그러나 이 중에서도 압권은 GATT의 탄생이다. 즉 아무리 개도국에서 물건을 만들더라도 그것을 사줄 나라가 없으면 꽝이다. 그리고 2차세계 대전 후 피폐해진 유럽 선진국들을 “빠르게” 회복하기 위해서도 국가간의 자유로운 무역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그래서 GATT는 매우 빠른 시간 내에 결성되었고, 선진국 간에는 관세를 낮춰 자유로운 무역을 장려하였으며, 개도국들은 그들 내수 시장의 보호를 위해 높은 관세를 용인하거나 오히려 장려해 주었다. 그리고 선진국가들 간에도 큰 차이가 있는 농업은 제외하고 공산품 위주로 자유무역을 장려하였다.

 

공산품 중에서도 논란이 많은 공산품들은 협정의 대상에서 제외하거나 약정 기한이 없는 상태에서 추후 다시 논의하기로 하였다. 더욱이 중요한 점은 선진 회원국들 간에 “약속을 지키자.”는 신사협정을 맺었다. 즉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누가, 언제까지, 결정을 내리고, 그것을 따르지 않으면 이러이러한 벌칙을 준다는 규정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서구 선진국가들은 이 GATT의 필요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별다른 이의 없이 매우 성공적으로 진행되었다. 그 결과 GATT는 서방세계와 개도국들의 경제발전에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이다. 그 때 가장 수혜를 본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와 대만을 포함한 아시아의 4마리 용이었다. 선진국들의 우호적인 분위기와 우리의 우수한 국민자질, 훌륭한 지도자, 더 없이 열심인 공무원 등 우리나라는 네마리 용 중에서도 최고의 혜택을 본 나라다. GATT의 대단한 성공으로 자본주의는 큰 발전을 하였으나, 역으로 개인의 창의를 무시한 공산주의는 피폐해졌고, 결국 소련의 붕괴로 나타났다. 소련의 붕괴는 공산주의에 대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확연한 승리였다.

 

그러나 세상이 이렇게 변하자 자유민주주의 선봉인 미국의 마음이 변하기 시작했다.

 

첫째; 소련이 경제적인 이유로 붕괴되었으니 공산주의를 통해 자기 나라는 잘 살게 하겠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잃게 되었다. 정말 일부 소수의 나라에서 아직도 공산주의를 말하고 있지만, 엄격히 말하면 그 나라는 공산주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자기 왕조를 꾸민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것이다. 즉 소련의 붕괴는 GATT 체제의 가장 중요한 목적인 공산주의 확산 방지라는 목적을 사라지게 하였던 것이다.

 

둘째는 미국 농업의 과잉생산이다. 전쟁의 피해를 보지 않은 유일한 국가인 미국은 전후 전 세계를 먹여 살려야만 했다. 당연히 농업생산은 급격히 증가하였다. 그러나 세계 각국의 농업이 제자리를 찾음으로써 미국은 농업 과잉생산이 큰 문제가 되었다. 당연히 미국 농민들의 고통은 매우 심각하게 되었다.

 

셋째는 미국 GDP의 절대적인 위치의 변화이다. 2차 세계 대전 후 한동안 미국은 전 세계 GDP의 거의 50%를 차지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25% 정도로 쪼그라들었다. 이것은 미국 입장에서 반드시 고쳐야만 할 중차대한 일이다.

 

즉, 소련의 해체 이후 유일한 초수퍼국가로 남게된 미국으로서는 이제 누구의 눈치(구 소련)를 볼 필요가 없이 세계경제 질서를 자기 입맛에 맞게 재편할 필요성이 생긴 것이다. 그런데 미국의 GDP를 축소시킨 겁 없는 두 나라가 있었으니 바로 일본과 독일이었다. 나는 이때 미국에서 유학을 했었기 때문에 미국 지식인들이 얼마나 일본을 두려워하고 손 볼려고 하는지를 뚜렷이 볼 수 있었다. 그래서 1985년 9월 독일과 일본을 조용히 플라자호텔로 불러 순식간에 환율을 올리도록 하였다. 수출상품 가격을 두배 가까이 한순간에 올림으로써 두 나라를 그 자리에서 견제해 버렸다.

 

우리는 세계 기축통화로서의 달러 위력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독일은 그런대로 견뎌냈지만, 마른 수건도 다시 짠다는 식으로 제조업의 효율성을 극도로 올려버린 일본은 더 이상 짜낼 것이 없었다. 또 새로운 산업으로의 이전도 느린 일본은 잃어버린 30년이 되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이 앞으로도 왜 어려울 수밖에 없는가는 별도로 논의해 보겠다.) 여기에 최근 중국이 자가발전(自家發電)식으로 G2라고 떠들어댔으니 미국 입장에서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트럼프의 ’Great America Again!!“의 배경이 바로 이것이다. 미국을 약간 힘들게 하는 다른 4마리 용은 우리나라와 대만, 싱가포르다. 그러나 이 나라들은 미국 입장에서 꼭 겨냥하면서 까지 혼 낼 필요는 없는 나라들이다. 지정학적 이유가 크다. 중국과 북한, 소련을 막기 위해서는 우리 남한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중국의 태평양과 남지나해 진출을 막기 위해서는 대만과 싱가포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나라들은 미국 경제를 보완하는 수준이지 위협하는 수준은 아니다. 그래서 미국은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우리나라에 비교적 우호적인 태도를 유지할 것으로 본다.

 

그럼 이제 미국 입장에서 세계 경제의 ”큰 판“을 다시 읽어 보도록 하자. 소련의 멸망으로 이제 공산주의 확산의 위험은 없어졌다. 그런데 자국 경제는 이제 과거만큼 압도적(50%⇨25%)이지 않다. 더욱이 미국 농민들의 과잉생산에 의한 농산물의 하락은 심각한 수준이다. 이제 개도국에게도 무상으로 줄 수 없다. 팔아먹어야 한다. 사지 않으면 강매라도 해야 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보호해 주었던 나라들도(중진국, 개도국 모두 포함) 이제는 더 이상 보호해 줄 필요가 없을 뿐만 아니라 미국상품을 팔아야 할 시장이 되어 주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중진국, 개도국들은 과거 GATT와 같은 선진국가들 간의 신사협정은 절대로 지킬 나라들이 아니다. 지킬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 즉 지킬 것을 강요해야만 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러한 필요성에서 미국이 세계시장의 판도를 새롭게 짜낸 것이 바로 우루과이라운드(UR)다. 지금까지의 분석을 잘 살펴보면 우루과이라운드가 어떤 특성을 가질 수밖에 없는가를 뚜렷이 들여다볼 수 있다.

 

첫째; 이제는 선진국, 중진국, 개도국할 것 없이 모든 나라가 협정의 대상이다. 미국의 시장이 되어야 한다.

 

둘째; 개도국을 포함한 미국의 수출을 막았던 다른 나라들의 높은 관세는 철저히 낮추어야 한다.

 

셋째; 개방의 대상도 공산품이 아닌 우리가 돈을 주고 사고 파는 모든 상품들이 대상이다. 공산품, 특허, 의료, 지적재산권, 판권, 소프트웨어 등이 모두 포함된다.

 

넷째; 농산물은 이제 원조의 대상이 아니다. 팔아야 할 상품이다. 돈 주고 사가야 하고, 안 사가면 강매하겠다.

 

다섯째; 협정을 준수하지 않는 나라들은 반드시 준수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WTO(UR의 주관 기관)에 어느 나라가 제소하면 WTO는 사전에 정해진 규칙에 따라 언제까지 반드시 결론을 ‘내려야만 하고’ 당사국들은 벌칙을 당하지 않으려면 반드시 지켜야 한다.

 

여섯째; 그러나 우리 미국은 빠져나갈 구멍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안보의 이유 또는 미국 내 기업에게 ‘미국이 판단할 때’ 위협이 된다거나 불공정하다고 생각되면 언제든지 미국은 징벌적 관세 또는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우루과이 라운드의 핵심이다. 우루과이 라운드를 하나의 문장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전 세계의 모든 나라가, 우리가 돈을 주고 사고파는 모든 상품에 대해서, 관세 7%를 제외하고는, 자유무역을 방해하는 모든 제약을 없애야 한다.』, 그리고 『만약 어느 나라가 UR에 가입하지 않으면 그 나라가 UR에 가입한 나라들과 무역을 할 때 ‘그때마다’ 새로운 협약을 해야 한다.』

 

이것이 우루과이라운드다. 그런데 우리는 당시 GDP의 2.1% 정도만을 차지했던 쌀이나 농수산물로 UR을 판단하고 다른 대비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쌀도 중요하지만, 우루과이라운드는 그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협정이다.

 

그러면 이제 UR이 우리 경제에 어떤 급격한 효과를 가져왔는가를 살펴보자. 1997년 우리나라 평균관세는 약 45%였다. 그러나 명목상으로는 그랬지만 실질적으로는 그 보다 훨씬 높았고, 자유무역을 방해하는 여러요인들 쿼타제, 판매점 수의 제한, 유통시장의 불개방 그리고 금상첨화인 ‘수입선 다변화 정책’ 등 많은 자유무역을 방해하는 요인들이 있었다. 나는 ‘수입선다변화정책’을 창안해낸 공무원에게 우리나라 최고의 훈장과 자손 십대까지도 먹고살 수 있는 상금을 주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어찌됐든 1997년 7월 1일 우루과이라운드가 적용되었다. 즉 십수년을 끌었던 UR이 드디어 전 세계적으로 적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다음 수치는 내가 직접 8월 말 현대백화점에서 체크한 수치다. 당시 27인치 TV가 가장 큰 TV였다. 6월 말까지 120만원에 팔리던 27인치 tv가 8월 말에는 물경 36만원으로 1/3 이하로 초급락하였다. 여러분이 tv를 만들어 파는 가전업체라고 가정해 보자. 쏘니 tv가 당시 250만원이었기 때문에 120만원에 팔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내년에는 250만원 쏘니가 있는 한 140만원을 받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왜냐하면 UR은 쌀이나 농수산물의 문제이지 가전업체인 나하고는 아무런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7월 1일 UR이 적용된 후 불과 몇 달만에 250만원 하던 쏘니가 70만원이 되었다. 쏘니보다 두배나 비싼 국산 tv를 120만원에 누가 사겠는가? 그래서 36만원으로 급락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것이 UR의 충격적인 효과다. UR은 쌀시장을 개방시키자는 것이 아니라 7% 관세만을 내고 전 세계를 하나의 시장으로 묶어 자유무역화 하자는 협정인 것이다.

 

그럼 이제 기업의 입장으로 되돌아 가보자. 120만원 했던 tv가 불과 몇 달만에 36만원이 되었다. 기업의 자금 사정이 어떻게 되겠는가? 어려운 정도가 아니다. 정말로 심각하게 되었다. 그런데 내가 빚이 많다. 그것도 싼 이자를 쓰는 맛에 외국의 달러 표시 단기채(대충 3개월 물)를 많이 썻다. 7월에 3월을 더하면 10월이 된다. 그래서 10월달이 되면서 외환보유고가 급격하게 줄게 되었고 불과 2개월 후인 12월달에 IMF 구제금융을 신청하게 된 것이다.

 

거기에 항상 뒷통수를 치는 것이 일상인 일본은 다른 나라보다 빠르게 우리나로부터 외환을 회수해 갔다. 이때 만약 소로스 같은 대규모 투자가가 환투기를 했으면 우리나라는 어떻게 되었을까? 정말 아찔하다. 그래서 부채가 많았던 한보, 기아, 삼미특수강, 대우 등이 곧바로 부도가 난 것이다. 과거 ‘율산’과 ‘제세’ 구룹이 망한 것과 1997년 기업들이 망한 것은 상당히 다른 이유다.

 

1997년 정월, 산업은행 연찬회에서 1997년 경제전망을 하는 강의에서 나는 “올 년말 주식값은 4~500백 정도가 될 것입니다. 그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라고 말했었다. 당시 인기가 있었던 ‘심야토론’에서도 이런 발언을 했었다. 그러나 나는 청중들부터 크게 환영받는 발언을 했었던 것 같지는 않다. 그럼 나만 이런 예측을 했을까? 아니다. 한국은행도 거의 같은 발표를 했었다. 역시 한국은행이다.

 

그럼 이제 국가경제는 좋은데 왜 서민경제는 나쁜가를 말해 보겠다. UR을 소극적으로 말하면 우리시장이 열린 것이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말하면 그들의 시장 즉 세계의 시장도 열린 것이다. 내가 팔릴만한 상품이 있다면 과거에는 자유무역을 방해하는 많은 요인들 때문에 수출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상품만 좋다면 얼마든지 전 세계를 대상으로 수출할 수 있다. 우리나라 반도체, 전자제품, 자동차, 밧테리, 선박 등이 전 세계 1등 2등이 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생산한 모든 상품이 최고의 상품인가? 아니다. 그렇지 못한 제품도 수두룩하다. 오히려 기업의 수나 사람 수로는 훨씬 더 많을 것이다. 그런 경쟁력이 부족한 제품들은 우리나라 시장에서도 팔릴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이제는 우리나라 시장에서도 다른 나라 상품들이 아주 쉽게 팔리기 때문이다. 즉 팔릴 수 있는 물건은 전 세계적으로 팔리고, 그렇지 못한 상품은 국내시장에서 조차도 팔릴 수 없게 되었다. 더 팔리는 상품은 더 팔리고, 안 팔리는 제품은 더 안 팔리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부익부 빈익빈(富益富 貧益貧)현상의 진정한 원인이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앞으로 더욱 가속화되고 더 광범위화 될 것이다.

 

서민들이 어려운 것은 정부 잘못도 있겠지만 훨씬 더 큰 이유는 이러한 시장 작동원리의 변화로 경쟁력 있는 상품은 더 잘 팔리게 되고, 그러하지 않은 상품은 국내에서 조차도 팔리지 않게 된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이러한 시장원리의 근본 변화를 정확히 이해하면 기업들과 정부 시책에는 큰 변화가 있을 수밖에 없다. 기업들은 정부 탓을 줄여야 한다. 기업의 경쟁력 제고는 정부의 역할이 아니라 그 기업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앞으로도 끊임없이 기업을 보살펴야 한다. 그러나 지원의 목적이 죽어가는 기업들의 숨을 살려주는 것이 아니라(단기적으로는 그럴 수도 있다.),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주어져야 한다. 경쟁력 없는 기업을 연명해주는 것은 절대 국가정책이 되어서는 안된다. 경쟁력이 있는 기업들이 빠르게 시장에 진입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정책과 예산을 펼쳐야 한다.

 

다음 대통령에게 한가지 바램이 있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지 차기 대통령은 기업의 “경쟁” 분위기를 진작시키고, 공무원들을 대통령의 수족으로 생각하지 말고 전문 관료로서 활동할 수 있게 놓아주기를 바란다. 나의 학교 동기들 중에서도 최고 그룹의 사람들이 공무원이 되었다. 그들의 전문가적 의견을 존중하고, 그들이 그들의 판단대로 행동할 수 있도록 어느 정도 놓아주는 그런 대통령이 되었으면 좋겠다. 가장 무서운 것은 잘못된 아집과 카리스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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