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에서 바라본 세계

국가의 미래를 향한 첫 걸음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자기검열의 장막을 걷어라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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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6년06월10일 20시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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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NS에 글을 써서 올리려다 멈칫한다. 아주 잠깐이지만 글을 보고 누군가 나를 해코지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인터넷 기사에 댓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 소위 말하는 ‘신상털이’를 당하지 않을까 걱정이 든다. 결국 글을 지우고 인터넷 창을 닫는다. 하고 싶은 말은 있지만 마음속에 담아두고 꺼내지 않는다.

 

 이것은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는 ‘자기검열’의 한 모습이다. 내가 내뱉은 한 마디의 말, 어딘가에 적고 잊어버린 한 줄의 글이 언제 다시 부메랑처럼 돌아와 나를 공격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하고 싶은 말을 꾹 눌러 담는 것이다.

 

 검열에는 박정희 정권 시기의 ‘막걸리 보안법’이나 1950년대 미국의 ‘매카시즘’과 같은 극단적 검열들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술자리에서 했던 험담이 어느새 그 당사자의 귀에 들어가 있는 경우, 정말 친한 친구들 사이에서 종교얘기를 하다가 큰 싸움을 하게 되는 경우, 선거철에 지지하는 후보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다른 정치성향을 가진 지인과 거리가 멀어지는 경우 등을 피하거나 막기 위해서 우리는 말을 가려서하고, 조심해서한다. 그 ‘조심’이 바로 은연중에 발현되는 자기검열이다.

 

 중요한 것은 검열 자체가 아니라, ‘무엇이 우리를 검열하게 만드나’이다.

 

 ‘자기검열’이란 결국 두려움에서 나오는 행동이다. 친구와 멀어지는 것이 두려워 종교 이야기를 피하고, 아버지와 싸우는 것을 피하고자 정치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 두려움을 일으키는 것이 자기 자신에게서 나오는 내부적 요인인지, 다른 무언가로부터 받는 외부적 요인인지를 구분하는 것은 무척이나 중요하다.

 

 2008년에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미네르바 사건’은 대중들이 인터넷에 올리는 글이 어느 정도까지의 영향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재판부의 무죄 판결과 검찰의 항소 취하로 끝이 났지만, 공권력이 개인의 발언권을 어떻게 제약할 수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개인의 발언에 대해 공권력이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는데, 올 초에는 국정원과 경찰이 통신사를 통해 야당 국회의원이나 그 주변인, 기자들과 시민사회 인사들을 대상으로 개인정보를 수집한 것이 드러나, 대중들이 휴대폰 통신사에 통신자료 제공 내역을 요청하는 것이 유행처럼 퍼지는 웃지 못 할 해프닝이 발생하기도 했다. 

 

 다양한 사건들과 독재정권시기의 역사적 경험을 겪으며 우리 사회에는 어느 정도의 자기검열이 필요하다는 암묵적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우리를 자기검열 하도록 만드는 두려움은 외부에서 발생한 것이었다. 그 두려움은 내 속마음을 누군가가 알았을 때 그 누군가가 나에게 위해를 가할 수도 있겠구나, 라는 막연한 걱정과도 같다.

 

 사람들을 통제하거나, 선호하는 견해들만이 세상에 남아있게 하려는 의도 따위는 전혀 없었을지도 모른다. 자기검열 조차도 의도한 현상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의도나 당사자들의 생각과는 별개로, 대중의 자기검열이 이미 우리 사회의 한 가지 현상으로 존재하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리고 그것이 두려움의 형태를 취한 채, 보편적인 대중들로 하여금 모든 종류의 발언을 주저하게끔 만드는 것은 결코 옳지 않다.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인간이 사회적 동물로서 취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행위이다. 언어를 통해서 각자의 차이를 알고, 그것을 들어보면서 서로 맞추어 가는 것은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검열은 ‘상대방이 아마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라는 전제를 설정하기 때문에 토론과 대화의 가능성을 열어놓지 않는다. 이제 스스로에 대한 검열을 그만 두어야 한다. 우리의 언어에 자유의 날개를 달아주어야 한다.

 

 단정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고 이야기해야 한다. 무분별한 비난과 원색적 모욕들을 허용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에 대한 책임까지도 본인들이 오롯이 짊어지는 자유를 갖자는 이야기이다. 다른 이들의 생각과 시선을 고려하느라 자신의 솔직한 견해를 두꺼운 장막으로 가리는 것은 그만두어야 한다. 검열은 두려움에 의해 자기 자신에게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합의와 공감대를 통해 집단지성으로서 존재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한국 현대사의 위대한 자유주의자 김수영은 그의 시 <눈>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1956년에 이 시를 쓰던 김수영의 마음과, 2016년을 살아가는 우리의 마음은 어떻게 다를까.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

눈더러 보라고 마음 놓고 마음 놓고 

기침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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