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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 논쟁, 조선시대 당파싸움인가?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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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6년05월20일 18시23분
  • 최종수정 2016년11월21일 03시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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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5.18 민주화 운동에 헌신하신 민주열사들의 명복을 빕니다. 열사들의 투쟁이 없었다면, 우리 손으로 직접 지도자를 뽑는 ‘민주주의’도 산업화와 민주화를 가장 단기간에 이루어낸 ‘신화적 국가’도, 무엇보다 지금 이렇게 자유로이 글을 쓸 수 있는 ‘기회’조차 없었을 것입니다. 소중한 민주주의를 선물해 주신데 대한 감사의 묵념을 올립니다. 

 

 최근 이해할 수 없는 논쟁거리 하나가 연일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바로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합창’할 것이냐 ‘제창’할 것이냐를 놓고 대통령과 여야 3당이 논쟁을 벌인 사건이다.

 이 노래는 1980년대 말부터 민주화운동 집회를 시작할 때 민주 열사들에게 바치는 묵념과 함께 불리는, 한국 민주화운동을 대표하는 노래다. 1997년에 김대중 정부가 5월 18일을 기념일로 지정하면서 매번 5·18 본 행사에서 ‘제창’하는 노래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출범 2년째인 2009년~2010년까지 ‘식전 행사’에서 ‘합창단’이 부르는 노래로 급이 낮춰졌다. 2011년 야당과 시민 사회 등의 반발로 본 행사에서 부르게 됐지만, 모든 사람이 부르는 ‘제창’이 아닌 ‘원하는 사람’만 합창단에 따라 부르는 방식이었다.

 

 이러한 방식이 쭉 이어져 오다가, 지난 5월 13일 청와대에서 열린 여야 3당 원내지도부와 회동에서 야당이 제창 허용을 요구했다. 박 대통령은 "국론분열이 생기지 않는 좋은 방안을 찾아보라고 지시 하겠다."라고 답변하며 긍정적인 결론이 날 듯 했지만, 보훈처는 끝내 제창 불가 입장을 내놓으며 갈등이 시작됐다. (박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되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에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가 3당 원내대표에게 보훈처장에 대한 해임촉구 결의안 추진을 제안하고, 이어 더민주 우상호 원내대표가 "(임을 위한 행진곡이 제창되지 않는다면) 20대 국회에서 해임촉구 결의안을 채택하는 방향으로 가자고 의견을 모았다"라며 맞장구를 치면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논란’은 정치권 최대 갈등 이슈로 떠올랐다. 

 

 정말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도대체 이게 무엇이기에 최대 논쟁거리로 떠올라 블랙홀처럼 모든 국가 현안을 빨아들이고, 국민의 지엄한 명령으로 만들어진 ‘협치’의 정국조차 흔들리게 만드는 것일까. 양비론을 좋아하지 않지만, 이 문제는 대통령과 세 정당 모두에 잘못이 있다.

 

 먼저 박근혜 대통령, 도대체 협치를 하겠다는 것인가 말겠다는 것인가. 본인의 과오로 집권여당이 심판을 받고 여소야대 정국이 만들어졌다면, 먼저 야당의 요구를 수용하며 어르고 달래야 하는 것 아닌가? 5.18 행사 참석에는 일정 상 불참할 수 있다고 하지만, 지난 정권 (전두환 전 대통령)에 의해 상처받은 광주 선열들을 위해 국무총리가 한 마음 한 뜻으로 ‘제창’해주는 것이 뭐가 그렇게 어려운 문제인가. 대체 ‘국민 대통합’의 구호는 어디로 갔는가. 

 

 새누리당, 어차피 함께 제창할 것이면서 왜 대통령에게 당당하게 요구하지 못하나? 적당한 선에서 “우리도 협치를 향해 노력하고 있습니다.”라는 스탠스만 취하고 뒤로 빠지려는 것인가? 참으로 비겁하다.

 국민의당과 더불어민주당, 시기적으로 적절히 이슈화한 것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뜻대로 안 된다고 해서 대통령과 완전히 선을 그어버리며 협치의 가능성을 배제시켜버리려는 행동은 뭐하자는 것인가, 본인 정당들 지지층 결집시키라고 3당 정국을 만들어주었나?

 

 정말 화가 나는 것은, 이 사건을 접하는 과정에서 조선시대의 ‘예송논쟁 (禮訟論爭)’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조선은 상복을 3년 입느냐 1년 입느냐로 한참을 싸운 예송 논쟁을 시작으로 견제와 균형을 바탕으로 백성들의 안위를 살피는 ‘토론정치’가 아닌, 오직 권력을 차지해 정국을 주도하려는 소모적인 ‘명분싸움’에 빠져들며 결국 쇠락과 멸망의 길로 들어섰다. 

 

 물론 예송논쟁은 왕권과 신권의 비교우위를 결정하는, 조선 정치제도의 근간이 달린 복잡한 문제였음을 모르는 건 아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논란 역시 대한민국 근현대사에서의 ‘민주화’ 정신을 논한다는 점에서, 한편으로는 매우 중요한 문제일 수 있다.

 

 그런데 도대체 그런 명분과 주도권 싸움이 뭐가 그리 중요하다는 말인가.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거나 합창하거나, 도대체 그것으로 인해 뭐가 달라진다는 말인가. 소모적인 갈등은 빠르게 합의를 하고, 제발 민생에 집중하셨으면 좋겠다. 

 

 위기에 봉착한 경제를 위해 구조조정은 반드시 필요한데, 그것으로 인한 대량실업 사태는 어떻게 할 것인지. 사상 최대를 기록한 청년 실업은 어떻게 할 것인지, 강남역 살인사건으로 인해 일파만파 퍼지는 극심한 사회적 갈등은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 

 이 나라에 산적해있는 문제는 한 두 개가 아니다. 이런 형식적이고 소모적인 문제로 초장부터 치고받고 싸우면 도대체 무얼 할 수 있겠는가. 

 

 왕과 신하간의 갈등을 조정하고 조선의 태평성대를 일궈낸 세종대왕이 그립다. 제발 당대의 건전한 토론과 실용 정치를, 아니 무엇보다 ‘백성을 향한 정치’를 계승하길 바란다. 

 

 협잡 (挾雜)을 하지 말고, 협치 (協治)를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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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 2016년11월21일 03시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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