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에서 바라본 세계
국가의 미래를 향한 첫 걸음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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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에 내가 무슨 죄를 지어서 이러고 있는지 모르겠다.”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어떤 사장의 푸념이다. 급여 일이 다가 오면 골이 지끈지끈 아파오고, 죽고 싶은 생각까지 든다고 했다. 그만두고 싶어도 누적된 부채를 몽땅 떠 안을 수 없어 못 그만 둔단다. 부족하나마 매출을 일으켜 돌아오는 빚(이자포함)을 갚아야 하고, 궁극적으로 청산할 때 까지는 한 가닥 희망을 보고 굴리는 것이다. 정신병원을 다닌다는 경영자도 여럿 만났다.
이재용 회장은 어떤 심리상태로 기업을 이끌까 생각해 본다. 선대로부터 승계 받은 기업을 유지시켜야 하는 의무감, 또 자신의 성취감, 지키고 싶은 명예심 등이 아닐까 싶다. 한국의 대표 기업을 이끌고 있는 자신의 처지에서 존경심은 관두고 정치권, 노동단체, 시민단체 등에서 받는 능멸적인 시선을 생각하면 뭘 위해 이 짓을 할 까 싶을 듯 하다. 4세 기업 승계는 안 한다고 거듭 천명하는 것을 보면 뭔지 모르는 회한이 묻어나기도 한다.
사실 대기업 뿐 만 아니라 우리 환경에서 기업을 영위하는 사람들은 복합적인 심리적 갈등을 겪을 듯 하다. 야당 대표가 이재용회장을 만나서 ‘기업이 잘 돼야 나라가 잘되고 삼성이 잘 살아야 삼성에 투자한 사람들도 잘 산다’고 했다. 그러나 정작 기업이 원하는 상속세완화, 52시간근무제 유연화는 말만 하다 말고, 중대재해처벌법에 더해 애매한 이사의 충실의무 조항을 반영한 상법과 노랑봉투법 등을 일방적으로 통과시키고 있다. 기업에 얼마나 압박이 가해지는지 가늠하지도 못하면서 말로는 기업이 잘 돼야 한다고 한다. 정말 삼성과 삼성에 투자한 사람들이 잘 되기를 바라는지 믿음이 가지 않는다.
새로 출발하는 벤처기업이나 창업기업이 힘든 건 말할 것도 없다. 혁신 창업 기업이 눈에 안 띌 뿐 아니라 그러다 보니 초기 투자도 안 이루어지고 있다. CB Insight를 보니 작년에 전세계에 138개 기업이 유니콘기업으로 등극했는데 미국이 76개로 58%를 차지하고 있고 심지어 우즈베키스탄이나 나이지리아도 1개씩 포함되었는데 한국 기업은 하나도 없다.
잘 나가던 중견 기업들도 수십 년 이끌어 온 기업을 처분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한샘, 쓰리세븐, 락앤락 등이 기업을 처분해 버렸다. 그 뿐 아니라 기업의 환경이 나빠지고 기업가들의 의지가 식어가면서 각 분야에 생태계가 무너지고 있어 심각하다. 비계(飛階)같은 건설 부자재를 제작해 임대하고 있는 회사의 얘기를 들어 보니 국내 3대 합판회사 중 2군데가 생산을 중단해 국내에서 사업을 지속하기 힘들다 한다. 이 회사도 베트남으로 생산공장을 옮길 계획을 하고 있다. 한 때는 동명목재를 필두로 세계 최대 합판 생산국이었는데 한군데만 국내 생산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 만 해도 수십 개의 합판기업이 있다는데, 목재 수급도 어렵고, 인건비는 높고, 건설 경기는 나빠지니 견딜 수가 없다고 한다. 어렵더라도 기업가들이 의지를 가지고 기업체를 끌고 가야 하는데 최근의 기업을 둘러싼 환경에 그럴만한 의미를 못 느끼는 경영자들이 늘고 있다.
기업을 대하는 정치권이나 정부에서 우리의 위상이 어떤지 좀 살펴 뒷받침할 대책을 세워야 한다. 급변하는 세계 기업의 흐름 속에서 아직도 기업을 더 속박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수십 년 쌓아온 글로벌에서의 우리의 위상이 하루 아침에 주저앉고 말 것이다.
몇 가지 지표들을 더 살펴보자. 보스톤컨설팅그룹에서 발표한 ‘2023년 세계 50대 혁신 기업’에는 전년보다 한 단계 떨어져 7위에 올라 있는 삼성을 제외하면 한 기업도 없다. 또 슈퍼데이타센터를 세우겠다고 호들갑이지만 Cloudscene이라는 데이터센타 전문 조사기관에 의하면 전세계 11,800 개 데이터센터 중 5,380개가 미국에 있고 영국, 독일, 중국에 각 500개 수준인데 한국은 기타 국가에 포함되어 명함도 못 내밀고 있다.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OECD평균이 67.5달러인데 한국은 50.1달러로 39국가 중 34위에 불과하다. 또 세계 35대 기업의 매출은 $10.7T 인데 그나마 삼성이 $0.2T를 차지하며 끼어있는 정도이다. 삼성이 그나마 우리의 대표기업이지만 최근 어려움을 겪고 있고, 글로벌에서는 매출, 이익, 시가총액 등에서 그야말로 조족지혈이다.
세금을 많이 낼 수 있는 기업을 북돋우고 더 활발히 자유롭게 활동하게 해야 한다. 그들 기업과 그 직원들을 초부자라며 징벌적으로 뜯어낼 생각을 하지 말고 그들이 기꺼이 세금을 많이 내게 해야 국가가 역할을 할 수 있다. 정치권은 기업이 잘 돼야 한다고 말만 하지 말고 한국이 정작 기업하기 좋은 나라인지 살펴보라. 기업가들의 도전적인 기업가정신에 병이 들면 우리나라의 희망은 사라진다. 한 번 무너지면 다시 세우기 어려워진다. 대기업, 중견 기업도 어렵고, 중소상인도 어렵고, 글로벌 유니콘기업에도 명함을 못 내밀면 어디서 희망을 찾을 것인가.
<ifsPOST>
- 기사입력 2025년03월27일 16시50분
- 최종수정 2025년03월23일 10시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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