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에서 바라본 세계

국가의 미래를 향한 첫 걸음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김상국 교수의 생활과 경제이야기 <114> 집단지성과 선거, 그리고 민주주의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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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5년02월16일 10시00분
  • 최종수정 2025년02월16일 09시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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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이라는 말을 참 좋아한다. 어려운 얘기가 아니고, 매우 단순한 말이다. “한 사람의 생각보다는 두 사람이 낫고, 두 사람 생각 보다는 열 사람의 생각이 더 낫다.”는 말이다. 나는 바로 이런 집단지성과 『토론문화』가 민주주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며칠 전 나는 ‘현 대통령제도의 문제점과 개선점’을 논의하는 작은 모임에 참석하였다. 참석 토론자들의 주장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역시 집단지성이 위대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배운 자리였다.

 

1. 철인정치와 민주주의, 독재정치는 어떤 차이일까?


(1) 철인정치

 

플라톤은 『철인정치』를 주장하였다. 현명한 철학자가 우두머리가 되어 올바른 결정을 하고, 다른 사람들은 그의 결정을 수용하는 정치체제다. 당연히 가장 이상적인 정치체제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상정치는 플라톤 시대에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아테네 시민들은 소크라테스를 ‘젊은이들을 나쁜 길로 빠트리는 사람’이라고 매도하며 사약을 내렸다. 당시 가장 인기있는 직업 중 하나는 철학이 아니라 궤변론(詭辯論,Sophist)을 가르치는 학당이었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살았던 아테네에서도 철인정치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니, 그 이후 시대에야 철인정치는더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끊임없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없는 ‘철인정치’를 말하고 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그만큼 우리가 진정으로 살기 좋은 정치체재를 갈망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현실적으로 가능한 그런 체제​는 무엇일까? 

 

나는 이상정치를 찾으려는 관점에서 민주주의와 독재체제​는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두 체제​ 모두, 사람들을 더 잘 살게하기 위해 만들어진 정치체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두 체제​는 너무 큰 차이가 있다. 그러면  ‘그런 차이를 만들게 된 이유’가 궁금해 진다. 나는 비교적 명확한 답이 거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욕심이고, 집단지성과 견제의 부족 현상이다.


(2) 독재자들의 선정(善政)과 그들이 변화하는 모습


‘히틀러’를 보자. 지금 그는 인류사에서 가장 나쁜 사람으로 분류되어 있다. 그러나 히틀러 취임 당시 영상을 보면 히틀러는 전혀 독재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독일 국민들의 어려움을 해결해 줄 ‘구원자’였다. 독일 국민들은 환호하는 정도를 뛰어 넘어 눈물 흘리며, 히틀러와 나찌당, 제3공화국을 환영하였다.

 

‘모택동’을 보자. 그는 장개석을 몰아내고 대장정을 통해 공산주의 국가를 설립함으로서, 중국 국민들이 더 없는 절대복종을 자진해서 하는 영웅적 존재가 되었다. 하지만 그는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을 통해 최소 수억명을 죽이거나 굶어 죽게하였다. 그러나 그의 사진은 지금도 천안문광장에 걸려있고, 중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다.

 

명(明)나라를 세운 ‘주원장’을 보자. 그는 원(元)나라 치하의 극심한 부정부패와 인민들의 고통을 보고, 걸식을 하며 사람들을 모아 명나라를 세웠다. 그리고 그는 너무 열심히 선정(善政)으로 나라를 보살폈다. 너무 열심히 국정을 살핀 나머지 그는 건강까지 해치게 되었다. 그러자 신하들이 그에게 조금 쉬기를 간언하였다. 그러나 그의 대답은 “내가 이렇게 하지 않으면, 백성들이 어찌 편하게 살 수 있단 말이요.”였다. 그러나 지금 그는 폭군 중의 하나로 남아있다.

 

그러면 당연히 다음 질문은 “왜 그들이 그렇게 되었을까?”이다. “왜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나는 ‘인간적인 욕심’ ‘집단지성’ 그리고 ‘견제의 부족’이라고 생각한다.

 

2. 민주주의의 탄생과 문제점

 

지금 우리는 민주주의 체제​에 살고 있다. 사람에 따라서는 아니라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것 자체가 민주주의 체제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중국과 나찌 그리고 북한을 생각해 보라. 그러면 그들도 곧바로 말이 주춤해 질 것이다.

 

민주의는 완벽한가? 당연히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지속적』으로 실현 가능한 정치체재로는 가장 ‘최선’의 체제​, 또는 ‘차선’의 체제​다. 

 

(1) 독재자들 초기의 애민적 모습 

 

히틀러와 모택동 그리고 주원장을 통해 다시 생각해 보자. 이 세사람뿐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독재자들도 초창기에는 모두 백성 또는 국민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총통, 비서장, 황제의 직위에 올라 자기 마음데로 권력을 휘두를 수 있게 되자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초창기 그들은 헌신적이었다. 히틀러는 독일경제를 부흥시켜 100만 %가 넘는 인플레이션을 잡았고, 국민들에게 먹을 빵을 제공하였다. 모택동은 지주들이 독점하였던 토지를 몰수하여 인민들에게 무상으로 나누어 주었다. 주원장은 부패한 탐관오리를 무관용 원칙으로 벌을 주고, 그들이 불법 축재한 재산을 원 주인에게 돌려주었다.

 

어찌 대환영을 받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들의 지지는 하늘을 찔렀었다. 그러나 그들이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바로 ‘개인욕심의 등장’이다. ‘편안함을 추구하고 싶은 마음’이다. 나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나를 추종하는 세력들에게 남 다른 혜택을 주어야 한다. 그리고 많은 자원(돈, 토지 등)도 필요하다. 또한 내 자손들에게 내가 쟁취한 권력과 부를 전해주고 싶다. 그래서 처음마음(初心)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2) 독재자들의 변화하는 모습(견제의 부족)

 

초심이 사라지면 당연히 ‘반대자’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런 자들의 말은 듣기 싫다. 보기도 싫다. 나의 말을 잘 따르는 자는 예쁘게 보이지만, 귀에 거슬리는 소리(간언, 諫言)를 하는 자는 보기 싫다. 초심이 살아있을 때는 『나의 자제력』에 의해 그 소리를 듣고, 따랐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싫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런 시기에 꼭 등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에게는 더 없는 충신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간신(奸臣, 姦臣)이 바로 그들이다. 게다가 그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말을 듣기 좋게, 공교롭게 하는데 매우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들에게 끌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견제가 부족한 상태’에서의 황제, 총통, 비서장은 너무 자연스럽게 ‘폭군(暴君)’으로 변모하는 것이다. 

 

또한 폭군으로 변한 황제는 자기의 추종세력들에게 특별한 혜택을 더 주어야 한다. 그것을 받은 사람들은 ‘당연한 자기권리’라고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부정부패’라고 한다. 그래서 절대권력과 장기 집권세력은 반드시 썩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권력이 장기화 될수록 거기에 붙어 사는 사람들의 숫자가 늘게 되고, 때로는 하나의 굳건한 세력이 되기도 한다.

 

(3) 현대판 간신들

 

이번 계엄령에 대해서도 많은 찬반이 있다. 개인의 의견이라고 치부해 버리기에는 왠지 께름직한 생각이 든다. 각자 판단할 일이지만, 이 경우는 그런 일이 아니지 않는가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현대판 간신』도 있다고 생각한다. 자기가 좋아하지 않으면 상대방을 무조건 ‘폄하하거나, 공산주의자라고 몰아세우는 사람들’이다. 자기는 안다고 생각할수도 있겠지만, 자기 주장의 정당성을 생각해 보지 않는 사람들이다. 

 

당연히 나의 주장이 국가의 먼 장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모른다. 

 

그저 내 마음에 안든다는 감성적 이유에서 무조건적 폄하, 빨갱이, 공산주의자라고 상대방을 너무 쉽게 매도한다. 안타깝다. 그들은 크게 두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는 그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무조건 무시하거나 빨갱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둘째, 나름대로 자기 글한 두 페이지라도 쓰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런 주장을 하는 기사, 유튜브를 여기저기 전달하는 사람들이다. 본인은 아마 자기가 애국하는 사람이라고 진정으로 생각하는듯도 하다.

 

나는 중립적인 사람이다. 최소한 어느 주장에 휩쓸리지 않고 사안별로 옳고 그름을 따져 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그러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해 본다. 

 

(4) 독재자들의 변화하는 모습들 (집단지성의 부족)

 

또 하나 독재자들의 공통적 특성은 상식에 어긋나는 결정을 너무 쉽게 한다는 것이다. 모택동의 참새잡기, 동네별 철강생산(용광로)지시, 그리고 자기나라 5천년 역사를 없애버리는 문화대혁명 등이 전형적인 예다. 

 

참새가 곡식을 먹는다는 것만 생각하고 전국적인 참새잡기 운동을 벌렸다. 그러자 병충해가 너무 극심해져서, 6천만명에서 1억명이 굶어 죽었다. 결국 러시아로부터 참새를 긴급 수입하여, 몇 년간에 걸쳐 근근히 참새 수를 회복하였다. 

 

국가가 부강하기 위해서는 철강 생산을 증가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며 각 동네마다 소형 용광로를 짓게하였다. 철광산이 없는 거의 대부분의 지역들은 집에서 쓰는 농기구, 숟가락까지 공출하여 쇠를 만들었다. 즉 철강을 생산한 것이 아니라 기존의 쇠를 녹여 형태만을 바꾼 것이다. 

 

철강 생산이야말로 대표적인 거대 자본과 시설이 필요한 사업이다. 우리나라와 같이 세계 6위의 철강 생산국도 겨우 두세개의 철강회사 밖에 없다. 

 

결국 독재자들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해 줄 견제 세력의 부족과, 더 나은 아이디어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집단지성의 부족이 이런 일들을 벌어지게 하는 것이다.  

 

3. 선거제도의 진정한 가치. 견제와 집단지성을 강제하는 시스템

 

그러면 민주주의의 장점을 말해 보기로 하자. 해답은 이미 앞에서 언급한 내용을 거꾸로 말하면 된다. 

 

민주주의 제도 장점 중의 꽃은 바로 선거제도다. 

 

그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하겠다. 앞 글에서 독재자의 가장 큰 문제점은 ① 절대권력에 대한 견제의 부족과 ②집단지성의 부족이라고 강조하였다.

 

(1) 선거제도의 현대적 의미 (황제를 바꾸는 것)

 

4년 내지 5년 마다 정기적으로 행하는 선거는 바로 ‘황제를 바꾸고, 총통을 바꾸고, 비서장을 바꾸는 제도적 강제 행위’다. 즉 절대권력자가 탄생하지 못하도록 막는 제도적 장치다. 처음에 그 사람이 잘 할 것이라고 생각하여 뽑았다. 그래서  잘 하면 한번 더하게 해주고, 기대치에 부족하면 한번에 끝내도록 강제하는 제도가 바로 선거다. 

 

그래서 선거는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투표에 반드시 참여하여야 한다. 그리고 선거에 참여하지 않으면서 정치문제를 논하는 것은 이상할 수도 있는 것이다. 

 

(2) 선거제도의 현대적 의미(집단지성을 얻게하는 것)

 

또 하나 선거의 중요한 의미는 집단지성을 ‘강제적’으로 실현하게 하는 작업이다. 선거에 선출되는 사람의 가장 큰 목적은 ‘다음 선거에 당선되는 것’이다. 그런 이유에서 그들은 반 강제적일지라도 ‘국민들이 무엇을 원하는가?’를 살펴봐야 한다. 그리고 그런 아이디어와 실현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여러 사람들이 모여 좋은 생각을 마련해야 한다. 더 좋은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야 한다. 

 

바로 이것이 집단지성이 강제로 발휘될 수 있는 기회가 생겨지는 것이다. 


(3) 정당 공천제도의 문제점

 

그러나 현실은 그럴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가 더 많다.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말”이 있다. 현 시점에 더욱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왜 그럴까? 여기에는 민의보다 앞서는 『더 중요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정당 공천제도’다. 우리나라처럼 지역색이 강하고, 공산주의자라고 매도하는 분위기가 강한 나라에서는 민의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 ‘공천을 얻는 것’이다. 그래서 이 공천을 받기 위한 온갖 해괴한 현상을 우리가 보는 것이다.

 

① 금전 수수 ② 충성맹세 ③ 과잉 충성행위가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버젓한 명문대학을 나온 여자 국회의원이 공사판에서 쓰는 ‘빠루’들고 나타나 행패를 부리는 ‘빠루여인’이 탄생하는 것이다.

 

나타나는 문제점 만을 보지말고, 그런 현상을 나타나게 하는 근본원인을 분석하는 행위가 대단히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4. 결론, 개선점의 제안

 

앞서 자세한 설명을 하였기에 결론 장에서는 주요내용을 열거만 하겠다. 나름대로 중요도 순으로 열거하려고 노력하였다는 것을 미리 말하겠다. 

 

(1) 정당 공천제의 폐지

   ; 쉽지 않을 것이다. 왜냐면 여기서 당의 권력과 수입이 생기기 때문이다.

 

(2) 예비선거제도(Preliminary Election)의 도입

; 더 현실적이다. 일단 후보자를 지역 주민이 뽑고, 그 사람이 추후 정당을 선택하게 하는 것이다. 지역정서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할 때 가장 실현 가능성이 높다.

 

(3) 국회의원 당선 가능 횟수의 제한

; 또 하나 현 국회의원 제도 문제점 중 하나는 국회의원직이 직업화 되고, 그것이 부패의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그것을 막기위해서는 국회의원이 되는 횟수를 한정하는 것이다. 대통령보다는 많게 3회 내지 4회가 좋을 것 같다. 그런데 이 횟수는 ‘연속’횟수가 아니라 ‘평생’횟수다. 

 

(4) 국회의원이 지역구에 붙이는 현수막을 선거 전 몇 달로 제한할 것

; 작지만 중요한 지적이다. 얼마 전까지도 그랬다. 그러나 갑자기 변하였다. 제한해야하는 이유는 ① 신인(新人)의 등장을 촉진하고, 무엇보다 ② ‘공짜로 주겠다’는 공약, ‘헛공약’을 막기 위함이다.

 

(5-1) 여론조작행위를 매우 엄격하게 처벌할 것

; 민주주의는 대의정치다. 즉 국민의 뜻을 대신하는 사람을 선거를 통해 뽑는 것이다. 그러므로 민의(民意)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현실은 이것과 너무 동떨어져 있다.

 

가. 우선 응답율이 아주 높아야 3%. 대부분 정치관련 조사는 0.4% 정도다. 천명에서 4명이 대답하는 여론조사가 무슨 민의를 대표하겠는가?

나. 그것도 응답자 모수(모집단)를 얼마든지 조사자가 선별할 수 있다. 무작위 추출이 아니다.

다. 그리고 대통령의 지지율이 조사기관 마다 너무 다르고, 그것도 불과 몇 달만에 몇십 %가 바뀐다. 그런 여론조사가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는지 정말 의심스럽다.

 

(5-2) 여론조사의 개선책

; 신뢰도 95% 같은 조작이 가능한 숫자만을 발표하지 말고, ①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모집단 수 몇%를 추출대상으로 삼았고, ② 응답자를 어떤 기준에 의해 선별하였으며, ③ 응답율은 몇%였다.” 라고 자세히, 그리고 분명히 밝히는 것이다. 전문가는 반드시 이 수치를 유심히 볼 것이다.

 

(6) 국민들 교육

; 그러나 국민들의 의식수준을 높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①선거 참여의 중요성 ② 소수 의견 발표의 중요성 ③ ‘권한 위에 잠자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무책임한 일인가?’ 등에 대한 교육이다.

 

(7) 대학 입시과목에 역사교육의 삽입

; 선거제도를 분석하면서 대학입시에 역사교과목을 추가하라는 주장을 하는 나도 참 한심스럽다. 그러나 그것이 현실인 것을 어찌하겠는가? 단재 신채호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역사를 잊은 민족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8) 도덕과목의 중고등학교 부활

가. 나는 우리나라가 비약적 발전을 할 수 있었던 여러 요인 중에 한글과 국민들의 근면성과 도덕성 그리고 우수성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엄청난 자원 중에서 가장 손상을 받은 부분이 바로 도덕성과 근면성이다. 그 중에서도 올바른 행위를 『가치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도덕성의 홰손이다. 지금은 그저 경제적인 것, 그리고 ‘나에게 유리하면 그것이 선(善)’이라는 생각이 너무 팽배한 것 같다. 특히 젊은 이들에게 그런 성향이 더 많은 듯하다.

 

나. 이것의 해결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시간을 두고 해결하여야 한다. 그러면 조금은 더 쉬운 일이 될수도 있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중고등학교에서 도덕교육의 부활이다.

 

다. 그리고 가르치는 내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도덕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등의 강의는 필요없다. 그저 다음 것들을 가르치면 좋겠다. ① 명심보감(매우 중요)맹자(공자) ③ 사마천 사기(史記) 중에서 교훈적인 내용을 가르치는 것이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가장 적은 노력으로 가장 확실한 효과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9) 방송 내용의 자그마한 변화 

; 언제나 주장하지만 언론과 방송, TV 드라마는 생각 이상으로 중요하다. 나는 조금 이상하게 느낄지 모르지만 우리나라 인기 드라마에서 제발 도덕을 깨어 버리는 내용의 방송을 자제해 주면 좋겠다. 재미있으면서도 당연한 도덕율이 통용되는 내용을 방송했으면 더욱 좋겠다. 싸우고 거짓말하고 분쟁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어느 방송인이 말하였다. 우리나라 드라마의 80% 정도가 비도덕적 내용, 의미 없이 싸우는 것 그리고 치정극이라고 한다. 

 

나는 우리민족과 나라에 대해 무한한 신뢰와 무궁한 발전을 믿는 사람이다. 때로는 잘못도 있고, 때로는 흐트러질 때도 있지만 결국 제자리로 돌아오고, 반만년 동안 나라를 지켜온 이 세상에 유래 없는 민족이다.

 

그리고 그것을 그렇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우리민족의 우수성과 근면성이다. 나는 모든 정치, 경제, 문화, 정부정책 등을 평가할 때 이 기준에 따라 평가한다. 

 

즉 우리민족의 우수성과 근면성을 더하는가? 감소하는가?에 따라 평가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동일 사항에 대해서도 상당히 다른 판단을 내릴 때가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볼 때 나의 견해가 맞을 때가 더 많은 듯하기도 하다. 이것이 나의 최종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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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5년02월16일 10시00분
  • 최종수정 2025년02월16일 09시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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