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에서 바라본 세계

국가의 미래를 향한 첫 걸음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민주화로 포장된 운동권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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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4년03월27일 16시17분
  • 최종수정 2024년03월27일 18시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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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몇 개 단과대학이 교문도 없는 상태로 관악캠퍼스로 이전하기 전까지는 서울대학교 단과 대학들은 시내에 흩어져 있었다. 내 대학 1년 가을 학기가 막 시작된 1972년 10월17일은 공릉동 공대(현 과학기술대학)에서 전교 종합체육대회가 계획되어 있던 날이었다.

 

상봉동 독약품 사거리에서 내리니 경찰차가 길을 막고 막무가내로 귀가할 것을 명령(?)다. 묵동지역의 배 과수원과 논밭으로 이리 뛰고 저리 뛰다 저녁 늦게 귀가했다. 그 날 저녁 국가긴급권을 발동하며 국회를 해산하고 정치활동을 금지하는 동시에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동시에 유신헌법이 선포되었다. 

 

그 날부터 대학원을 마치고 군에 입대하기까지 유신 반대시위, 휴교, 레포트 대체 학점 취득이 반복되는 내 대학생활은 엉망이었다. 틈나는 대로 함석헌 선생 등의 강연을 들으러 다니기도 하였는데 시위를 주도하거나 단과대학 대표들은 잡혀가 곤욕을 치르고 군에 강제 입영되기도 했다. 2년 후인 1974년에는 소위 민청학련 사건으로 이철, 유인태 등이 사형 선고되었으며, 변호사를 법정 모독했다며 법정 구속시키는 극도의 무도함이 자행되었다.

 

3.15부정선거로 촉발된 4.19혁명을 이끈 선배 세대, 80년 서울의 봄 이후 신군부의 등장부터 87년 직선제 개헌이 이루어지기까지의 후배세대 모두가 대민국의 민주화를 위해 젊음을 불살랐다. 30여년 간의 민주화 운동은 특정 세력뿐 아니라 대부분의 학생과 일반 시민의 참여로 가능했다. 

 

민주화 운동권이라고 총칭(總稱)되고 있지만 사실 80년대 말부터의 운동은 민주화 운동과 대별(大別) 되어야 다. 3.15 부정선거부터 시작된 30여년에 걸친 민주화 운동은 민주라는 보편적 가치와 민주공화국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좌우 없이 모두가 나선 것이다.

그에 반해 80년대 말부터의 운동은 친북·종북·반미 세력에 의 통일 운동, 노동세력의 운동, 이슈가 생길 때마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반정부 시위 등으로 특정 세력의 이념, 주장, 이익을 내세우기 위 것이었다.

 

활동의 내용과 방법을 따지지 않고 운동권이라고 해서 우월시해서는 안 된다. 민주화가 절실했고 수많은 시민과 학생들이 희생했기에 우리 사회가 운동권에 대하여 광범위하게 관대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 돌아 봐야 다.

 

무단 방북, 북 정권과 연결된 활동, 미 문화원을 포함 외교 시설의 점거 또는 방화, FTA반대, 미국산소고기 수입반대,사드반대, 천성산 터널 반대 등등의 모든 운동을 민주화로 포장해 미화해서는 안 된다. 그러다 보니 친북활동을 사람들이 민주화된 사회에서 평범하게 학생으로서 학업에 열중하여 성공 사람들을 향해 자신들이 거리에서 활동할 때 넌 뭐 했냐는 식의 도발도 서슴지 않고 있다. 

87년 체제가 등장하기 전까지 30여년의 운동은 단순히 주동자나 일부 세력만이 아니라 평범 시민과 학생까지 참여 대중 운동인 것이 핵심이다. 사형 선고까지 받았던 주동자들 조차도 평범 상식을 바탕으로 피아의 구분이 없이 포용적인 걸 볼 수 있다. 좌우의 이념에 바탕을 둔 운동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80년대 말 학생 운동이 종북·친북 성향으로 변질되면서 단순히 반민주에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좌우 이념 대립이 시작되었다. 여기에 노동계, 반정부 시민단체까지 가세하며 운동권의 순수성이 훼손되었다 할 수 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기존 정치권이 세력 확장 경쟁을 하며 이들 운동권을 젊은 피로 수혈하면서 운동권의 위상이 바뀌기 시작하였다. 80년대 이후 전국의 학생회장 출신들 수십 명이 현재 3선,4선 국회의원을 거치며 우리 사회의 기득권 세력으로 변질되었다. 

 

이들에게 운동권이라는 포장은 훈장이 되었으며, 문제는 이들이 민주화 세력으로서의 순수성은 간데없고, 기득권 세력이 되어 국민 위에 군림하며 국민을 갈라치기 하고 안하무인에 내로남불을 서슴지 않는다는 것이다. 잘 못을 저질러도 인정하지 않는 뻔뻔함을 보면 마치 수십 년 전 민주화운동 시대에 폭력을 정당화하고 용인 받던 관습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운동권이라는 포장을 벗겨 개개인의 됨됨이를 낱낱이 파악해야 다. 최근 선거 국면에서 SNS와 네트워크의 활성화로 과거의 행적들이 밝혀지는 것은 다행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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