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에서 바라본 세계

국가의 미래를 향한 첫 걸음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김상국 교수의 생활과 경제 이야기 <83> 나의 영어 스트레스 탈출기, 자식들의 영어교육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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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4년01월23일 13시47분
  • 최종수정 2024년01월23일 13시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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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자기가 불리기를 좋아하는 호칭이 있을 것이다. 나도 “김 교수님, 김 선생님, 김 사님, 김 회장님” 때로는 처음 만난 사람이 나를 잘 모를 때는 “김 사장님”이라고도 부른다. 이런 여러 호칭 중에서 가장 나에게 편한 호칭은 ‘김 교수님’이다. 그런데 이 호칭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다. 그것은 김씨 성이 너무 흔해서인지, 모임에서 “김 교수님” 하면 서너 명이 쳐다볼 때가 있다. 우리나라 인구 중 21.5% 정도가 김 씨라니 당연히 그럴만하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지나가지만, 단일민족인 우리나라만의 재미있고 독특한 표현이 있다. 우리는 국민을 표현할 때 『백성』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백성의 한자는 '百姓'이다. 말 그대로 100가지의 성이다. 그러면 왜 백가지 성이 국민이 될까?

 

2015년 통계청 자료를 보면, 성씨 숫자는 김,이,,최,정,강 순이고, 100번째 성씨는 편(片) 씨다. 재미 삼아 상위 1백개 성씨를 직접 더해 보았다.전체인구의 99.10%였다. 즉 상위 100개 성을 더하면 국민의 99%를 포함하는 것이다. 백성(百姓)이라는 표현은 너무나 정확한 표현인 것을 알 수 있다. 참고 삼아 상위 세 성받이 김, 이, 을 더하면 44.2%이고, 상위 10개 성을 합하면 63.9%, 상위 20개 성은 77.8%다. 

 

국민을 백성이라고 한 우리 선조들의 표현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영어에서의 국민은 ‘Population’이다. 이 말의 어원은 라틴어의 ‘사람’을 뜻하는 populus의 복수라고 한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단순히‘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참 멋없다. 우리말의 ‘백가지 성’과 비교하면 ‘사람들’은, 정말 멋도 없고 맛도 없다. 그리고 또 하나 미국에서 상위 100가지 성을 모두 합하여도, 아마 전체 인구의 1%도 채 안될 것이다. 

 

백가지 성씨의 합이 99%가 넘는 우리와 1%도 안되는 미국을 비교하면 우리나라가 단일민족이라는 것을 너무 쉽게 알 수 있다. 물론 역사적으로 많은 혈통이 섞였을 것이고, 문화적으로도 주위 국가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었다. 하지만 남북한 8천만 동포가 같은 말, 같은 문자, 같은 문화, 같은 도덕을 공유한다는 것은 정말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일이다. 그러다 보니 앞에서 말한 것처럼 “김 교수님” 하면 최소 서너 명이 뒤를 돌아보는 일이 너무 자연스럽게 발생하는가 보다.

  

1. 영어에 대한 나의 스트레스 경험기

 

내가 교수이다 보니 때로는 사람들이 엉뚱한 질문을 할 때가 있다. “교수님은 영어를 잘하시니까 좋겠어요. 어떻게 하면 영어를 잘할 수 있나요?” 솔직히 매우 난감하다. 내가 영어를 잘하는 사람도 아니고, 또 영어를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는가를 아는 사람은 더욱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질문이 나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네, 저 영어 잘해요. 그런데 여러분 영어가 초등학교 3학년이라면, 저는 4학년쯤 됩니다.”라고 대답한다. 그러면 어떤 사람들은 ‘김 교수가 괜히 겸손 떠는가 보다.’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정말 내 영어는 신통치 않다. 그 대신 내가 일반 사람들과 확실히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틀린 영어 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라는 것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틀린 영어 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나도 처음에는 내 발음이 이상할까 봐, 틀린 단어를 선택할까 봐, 적절한 단어를 모르거나 또는 생각이 나지 않아 당황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백번, 천 번도 넘었다. 이 말은 과장이 아니다. 정말 그랬다. 

 

그러면 이제 나의 스트레스 극복 과정과 특히 나의 심리적 『자기 합리화』 과정을 설명해 보겠다. 나의 부끄러운 옛 얘기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여러분들을 “영어 스트레스로부터 탈출”시키는데 도움이 되기 위함이다. 

 

내 말이 맞는다고 생각하시면 따라 하시고, 동의하지 않으시면 않으신 대로 계시면 된다.

 

요즈음 TV나 유튜브를 보면 영어 관련 교육이 매우 많다. 솔직히 너무 많다. 어떤 경우에는 점잖게 보이는 사람이 나와 약간 거만스럽게 “영어는 지금처럼 하시면 절대 안 됩니다.”라고 얘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예쁜 여자분이 나와 “저는 유학도 가지 않았지만 이렇게 영어를 잘한다.”하며 유창하게 영어를 말하기도 한다. 내가 봐도 그 여자분의 영어는 훌륭한 것 같다. 그러나 나의 희망이 영어 뉴스 프로그램의 아나운서가 되기를 희망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냥 부러워하는 정도로 그치고, 여러분은 다른 쪽에서 자신감을 가지시기 바란다.

 

왜 그런가를 나름대로 적어 보겠다. 


첫째; 영어는『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영어를 유창하게 하면 좋다. 그러나 영어를 유창하게 해서 통역관이 되겠는가? 아니면 영어 아나운서가 되겠는가? 물론 그런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 사람은 외국여행을 가서, 또는 회의장에 참석하여 그들의 말을 잘 이해하고 적절한 질문과 대화를 하기 위해서다. 

 

많은 영어 관련 전문가들이 말하기를 영어는 ‘듣기’가 가장 어렵다고 한다. 나는 미국에서 교수 생활을 3년 정도 하였다. 그러나 솔직히 끝까지 되지 않은 것은 나에게도 ‘듣기’였다. 듣기가 자유로운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학생들의 질문을 알아듣지 못했을 때 정말 부끄러웠다. 얼굴이 빨개지고, 말도 더듬거렸다. 또 그것이 반복되자 나 스스로에게도 화가 나고, 무언가 돌파구를 마련해야 했다. 그래서 한참 동안 생각했다. 나는 여기서 나의 심리적 변환 과정을 적어 보겠다. 다른 아무 뜻도 없다. 다만 여러분에게 심리적으로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나는 그때 이렇게 생각하였다.

 

첫째; 내가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가? 아니면 나의 전공과목을 가르치는가? 당연히 답은 ‘전공을 가르치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학생들보다 전공에 대해서는 확실히 더 잘 알고 있다. 

 

둘째; 나는 영어는 잘 못한다. 그러나 우리말을 내가 잘 못하는가? 아니다. 잘한다. 그러면 됐지. 뭐 외국인이 영어 못하는 것이 무슨 죄(罪)란 말인가? “내가 왜 나에게 필요 없는 스트레스를 준단 말인가? 당당하자.” 이렇게 마음을 먹으니 한결 내 마음이 편해졌다. 

 

그래서 그다음부터는 좀 덜 부끄러워하는 마음으로 “한번 더 질문해 주실래요?” 그래도 못 알아듣겠으면 “천천히 말해 주시겠습니까?”라고 당당히 요구했다. 그러면 학생들도 반복해서, 또는 천천히 질문해 주었다. 내가 보기에 학생들의 저항은 별로 없었다. 미국에서도 학기 말에 학생들이 교수를 평가한다. 나의 평점은 ‘탑 10%’였다. 100여 명이 넘는 교수 중에서 노란둥이가 그런 평가를 받은 것은 내가 영어를 잘해서는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 이유가 틀린 영어 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전공분야에서는 확실한 지식으로 설명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스운 얘기 하나를 더하겠다. 내가 영어 때문에 걱정하니까, 안사람이 ‘내가 가르치는 수업을 들어보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참관하였다. 그날 밤 우리 집에서는 때아닌 웃음 잔치가 벌어졌다. “당신 강의의 10%는 우리말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래서, 애 또, 확실한 것은 등등...” 얼마나 웃었던지 지금도 그 기억이 생생하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해외여행 가는 경우를 한번 생각해 보자. 여러분이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일까? “① 얼마입니까? 비싸다. 싸다. ② 어디로 가느냐” 또는 ③어느 곳에 가서는 그 역사를 듣는 것 정도가 아닐까 싶다. ①과②는 쉽다. “하우 마취, 투 익스펜시브, 디스카운트 플리스” 정도로만 얘기해도 잘 통한다. 그러나 ③은 어렵다. 하지만 조금 어렵지 않게 하는 방법이 있다. 최소한 내일 갈 곳 정도는 여행가이드 책을 보고 조금 공부를 해놓는 것이다. 그러면 어느 정도 잘 들린다. 아무런 사전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영어 설명을 듣고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가성비 나쁜 영어 강습에 열중하지 말고, 집에서 그 지역 관련 책을 먼저 조금 읽고 가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다. 이미 많은 분이 경험하셨고, 또 동의하시리라 믿는다. 

 

나는 예전에 우리나라 TV 여행 프로그램을 보고, 실망한 적이 있었다. 여행에 어울리지 않는 하늘하늘한 화려한 옷을 입고, 유적지가 많은 장소에 가서 하는 말이 겨우 “오 예쁘다. 오 멋있다.” 주위 사람들에게 묻는 질문도 “어느나라에서 오셨어요? 오신 지 며칠이나 됐어요?” 그게 질문의 전부다. 내가 이런 사람들의 여행비를 대기 위해 ‘시청료’를 내는 것인지 상당히 못마땅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많이 개선되었다. 그러나 사진작가보다는 그 지역의 문화나 역사 전문가(설령 통역이 필요할지라도, 그 지역 언어를 하면 더욱 좋고)를 초청하여 설명하게 하고, 방안에서 TV 보는 것만으로도 그곳에 대해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으면 좋겠다. 

  

2. 정말 우리가 영어를 유창하게 잘할 수 있을까?

 

아마 이 질문에 대해서는 많은 의견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학을 졸업한 성인이 영어를 다시 공부하여 유창한 영어를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한번 강조한다. 영어는 목적이 아니다. 영어는 수단이다. 즉 내가 얻고자 하는 것, ① 여행지에 관한 지식 ② 협상하러 갔으면 협상 목적 달성을 위한 논의 ③ 공부하러 갔으면 공부하는 것에 매진하는 것이다. 들리지 않은 영어를 그때부터 다시 공부하여 유창하게 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가성비 나쁜 영어 공부보다 훨씬 더 효과적인 방법이 있다. 그것은 재차 강조하지만 내가 얻고자 하는 것에 대해 공부를 미리 조금 하는 것이다. 즉 내가 목적으로 하는 바에 대해 잘 알고, 또 잘 준비하면, 영어도 훨씬 더 『자알~~』 들린다. 농담이 아니다. 영어도 내가 알고 있는 것만큼 들린다. 내가 모르는 주제를 영어로 얘기할 때 내 귀에 들어오겠는가? 중학교 때부터 공부한 영어를 다시 몇 달 공부한다고 해서 영어가 들리겠는가?

 

중요한 국제회의에 참석해 보면 우리나라에서 간 많은 사람들이 그저 듣기만 하고, 어색한 미소만 짓다가 오는 경우를 자주 목격할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오바바 대통령의 취임식 연설 때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상당히 친(親)한적인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명백한 말로 “여기 한국에서 온 관계자가 있으면 질문해 보시라.”고 지적까지 하며 질문 시간을 주었다. 그러나 아무런 질문이 없었다. 그러자 오바마는 재차 “아무도 한국에서 오신 분은 없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래도 질문은 없었다. 

 

3. 영어에 대해서 좀 더 솔직하고, 틀린 영어 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오해 없기를 바란다. 나도 영어를 본토 발음으로 멋지고 정확하게 말하고 싶다. 틀린 영어 하는 것을 절대 자랑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러지 못하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영어를 잘하는 분들께 이런 글을 드리는 것이 아니다. 나처럼 영어를 잘 못하고, 조금은 주눅들어 있는 분들에게 드리는 말이다.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성인이 되어, 중학교 때부터 배운 영어를 몇 달 정도 더 공부하여 잘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면 어떻해야 하는가? 입 닫고 가만히 있어야 할까? 그것은 있을 수 없다. 우리는 목적을 가지고 회의에 참석하고, 공부하러 가는 것이며, 해외여행을 가는 것이다. 내가 영어를 모른다고 하여 가만히 있다면, 그것은 목적 자체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는 안 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부족해도 거기에는 길이 있다. 

 

(1) 틀린 영어 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에게 영어는 외국어다. 여러분의 모국어는 한국어다. 여러분이 우리말을 잘 못하면 그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거의 없다. 즉 여러분은 정상인이다. 그런 정상인인 내가 외국어인 영어를 조금 못한다는 것이 무슨 큰 죄일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영어를 잘 못하는 것은 죄가 아니지만, 내가 영어를 잘 못한다는 두려움 때문에, 내가 외국에 간 근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죄(罪)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할까? 다른 것이 아니다. 바로 용기다. 

 

못 알아듣겠으면, 다시 한번 더 말해 달라고 부탁하자. 좀 더 천천히 얘기해달라고 부탁하자. 그리고 여러분은 ① 한 어조로 천천히, 그러나 ② 분명한 어조로 ③ 여러분의 뜻을 밝히면 된다. 대학교나 회의장은 영어 테스트 장소가 아니다. 공부하는 곳이고, 국익을 논하는 자리다. 수단인 영어를 못한다고 해서,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면 그것은 옳지 않다. 즉 ④ 조금 어색하고 다른 영어일지라도 자신감을 가지고 말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쉽지 않다. 여기에 두 가지 것이 추가로 더 필요하다.

 

(2) 단어 공부를 게을리하면 안 된다.

 

내가 틀린 어법을 쓸 수는 있다. 그러나 적절한 단어를 모르거나, 틀린 단어를 말한다면 그것은 큰 낭패다. 그러나 이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매우 똑똑하기 때문이다. 단어를 공부하는 책도 많다. 그리고 한 가지 ‘반가운 사실’은 배워야 할 단어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일상 대화나 영화 등에서는 많은 단어가 속사포처럼 튀어나온다. 듣기도 어렵고, 이해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전문적인 자리일수록 사용되는 단어는 많지 않다.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3) 미리 공부하고, 상대방 질문에 대해 대비해라. 

 

문화를 설명할 때 “아는 그것만큼 보인다.”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이것은 영어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지금 논의하는 분야에 대해, 그리고 토론 사항에 대해 내가 잘 알고 있으면 영어는 놀라울 정도로 잘 들린다. 그러면 된다. 『영어로 듣지 말고, 전문지식으로 들어라.』 그러면 들린다. 나도 그래서 10%나 우리말이 섞인 엉터리 영어로 교수 생활을 할 수 있었다. 

 

(4) 또 천천히 말하라.

 

나는 우리나라에서 운전을 배우지 못하고, 미국에서 배웠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부자들만 자가용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에게 운전을 가르쳐 준 친구가 재미있는 조언을 하였다. “운전하다가 두려우면 천천히 운전해라. 그러면 대부분의 운전 미숙에서 오는 사고는 피할 수 있다.” 얼마나 고마운 조언이었던지...

 

첫 학기 수업 때 일이다. 내가 아무리 단단히 준비해도 두려웠다. 두려우면 단어도 생각이 안나고, 말도 엉키기 시작한다. 그러면 더욱 당황스러워진다. 그러나 그때 문득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두려우면 천천히 해라.” 그래서 그렇게 했다. 말도 조금 더 잘 나왔고 자신감도 생겼다. 그러나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다음 학기에는 훨씬 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매우 천천히 말했다고 생각했는데 학생들은 그저 약간 느리게 말하는 정도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의외의 반응은 ‘조금 천천히 말하는 내가 더 신뢰할 만한 사람’으로 보였다는 것이다. 즉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느리게 말한 것도 아니었고, 또 의외로 신뢰감도 주었다는 것이다. 당황스러웠던『내 스스로가』 그렇게 느려 터지게 강의했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결론은 요약하면 비교적 간단하다. ① 주제에 대해 미리 조금 공부하고 단어 공부를 열심히 하며틀린 영어 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며천천히 말하라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영어에 대한 스트레스가 많이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한다.

  

4. 자식들 또는 손자들의 영어교육을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나라 부모들은 자녀교육에 열심이다. 지나칠 정도로 열심이다. 아마 그런 교육 열풍 중에 『조기 영어교육』이 들어 있는 것 같다. 우리 아파트 내에도 어린이 영어(Kid’s English)라고 쓰여진 학원차가 들락거리는 것을 보면서 느낀 일이 있어 말해 보겠다.

 

나는 영어교육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단순히 나의 경험과 생각을 말할 뿐이다. 그러나 나 개인적인 특수 경험을 일반화하는 것은 아니고, 상당한 숙고를 한 다음의 말이니 참고로 들어 주면 좋겠다.

 

미국 기숙사에는 많은 한국 유학생들이 있었다. 그리고 자녀도 한두 명은 모두 있었다. 초등학생 또는 유치원 나이 아이들의 대부분이었다. 자식 영어교육에 대한 유학생들의 생각은 크게 세 부류였다. 하나는 빠르게 영어를 배우게 하기 위해 영어만을 쓰게 하는 집, 두 번째는 우리말만을 쓰게 하는 집, 세 번째는 영어교육에 대해 특별한 생각이 없는 집이었다.

 

나도 당시에 아이들이 두 명 있었기 때문에 영어교육을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었다. 그러나 뾰족한 아이디어가 없었다. 그런데 마침 나의 지도교수가 유대인이었다. 학교에서는 사제지간이었지만, 나이가 서로 같아 집에도 자주 놀러 가고 스스럼 없이 지내는 사이였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를 그에게 묻기로 하였다.

 

자식의 교육문제였기 때문에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우리 기숙사에는 자식 영어교육에 대해 세 부류가 있다. 그러나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유대인은 오랜 외국생활로 이 문제에 관한 연구가 있을 것 같다. 조언을 구하고 싶다.” 나의 솔직한 질문에 대한 그의 대답은 너무 의외였다. 

 

조금 전에 얘기했듯이 그와 나는 나이가 같아서 상당히 친하게 이름을 부르며 지냈었다. 그러던 그가 나의 이 질문을 듣자, 아주 굳은 표정으로 정색하며, “Your question is OUT of question.”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즉 나의 질문은 “질문으로서의 (가치가 없는) 질문 밖의 질문이다.”는 것이었다.

그의 다음 대답은 유대인답게 매우 분명하고 명쾌했다. 여기에 그것을 그대로 소개하겠다. 많은 부모들에게 참고가 되기를 바란다.

 

가. 어린이들은 13세 또는 14세가 될 때까지 6개의 언어를 모국어(Mother tongue)로 배울 수 있다. 미국 학력으로 따지면 중1 또는 중2 정도까지다.

나. 모국어와 외국어는 이렇게 구분한다. 다른 나라 말을 들을 때 그 언어를 그대로 인식하면 모국어이고, 그것을 무의식중에라도 자기 나라말로 번역해서 들으면 그것은 외국어다. 즉 영어를 듣고 그대로 인식하면 모국어이고, 그것을 우리말로 해석해서 들으면 외국어라는 뜻이다.

다. 그리고 모국어를 6개까지 배울 때, 모국어에 대한 확실한 인식이 있으면, 언어중추가 잘 발달하여, 다른 나라 언어도 빠르게 모국어가 될 수 있다. 즉 “우리말을‘먼저’잘하면, 외국어도‘따라서’잘 할 수 있다.”는 뜻이다.

라. 다음도 매우 중요하다. “KIM, 당신이 영어를 한국말처럼 잘합니까?” 물론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아니오”였다. “그럼 이 다음에 자식들에게 어떻게 당신의 경험과 지혜를 전달할 수 있겠습니까?” “틀린 영어로 떠듬거리며 하는 아버지 말을 자식들이 마음 깊게 새겨듣겠습니까? 아니면 저것은 틀린 영어인데 하며 듣겠습니까?” 

 

정말 정신이‘번쩍’드는 지적이었다.

 

이 대화가 있은 후 나는 집안에서는 영어를 전혀 쓰지 못하게 하였다. 그리고 우리나라 동화책들을 가져와 우리말 책을 가능한 많이 읽게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밖에서 아이들이 섞여 놀고 있는데, 유난히 깨끗하고 맑은 영어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내밀고 보니 우리 딸이었다. 나는 그때 지도교수에게 정말 큰 감사의 마음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5. 우리나라에서 자식 또는 손자들의 영어교육을 어떻게 해야 할까?

 

이것은 정말 잘 모르겠다. 그러나 나라면 내 손주를 이렇게 했으면 한다.

 

가. 초등학교 3학년 이전 영어 조기 교육은 시키지 않겠다.

나. 그 후에도 하지 않으면 좋겠지만, 사회적 필요 때문에 한다면, 영어 노래나 영어 학습 테이프를 집에서 자연스럽게 틀어 놓고, 듣고 따라 부르게 하겠다.

다. 그러나 『절대로』 남이 있는 자리에서 “우리 애는 영어를 잘해요.” 또는 “영어를 너무 좋아해요.”라는 말은 하지 않겠다.

 

내가 이렇게 하는 근본 목적은 ‘영어를 자연스러운 하나의 행위로 만들지 절대로 특별한 교육으로 만들지 않겠다.’는 것이다. 설령 4학년 이상이 되어 영어학원을 다니게 하더라도, 그저 미술학원 다니는 것처럼 평범한 사실로 만들지 영어 공부를 절대 특별한 무엇으로 만들지는 않겠다. 이 모든 것의 기본 생각은 다음과 같다. 

 

1) 나의 조국에 대한 주체성(아이덴티티)를 확실하게 해주고, 

2) 우리 말을 먼저 잘하게 함으로써, 다른 외국어도 잘하게 만들며,

3) 자기의 정체성을 가지고, 국제적인 감각을 갖게 하기 위해서다.

 

나는 우리나라 미국 교포들의 자제가 “바나나 미국인”이 되는 것을 많이 보았다. 즉 겉은 아시아인 황색인인데, 마음속으로는 자신이 백인이라고 생각하는 어정쩡한 사람들이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주체감(아이덴티티)이 없기 때문에 여기에서도 저기에서도 대접 받지 못하고, 끼지도 못하는 심리적 떠돌이 존재들이다. 

 

그러나 역(逆)으로 주체성도 있고, 우리 말도 잘하는 아이들은 가정에서도, 우리 사회에서도, 백인들 사회에서도 자신이 있고 ‘활발’하게 활동하는 것을 봐왔다. 여기서 ‘활발’하다는 것은 성격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 의사 표현을 분명히 할 줄 알고, 자기의 목표를 분명히 세워 추구해 나가는 것을 말한다.

 

지금 내가 이 글에서 하는 말은 특별히 신기한 얘기가 아니다. 외국에 사는 수많은 국적의 외국인들 특히 서양인들은 그렇게 살고 있다. 영국인, 프랑스인, 독일인, 중국인들 모두 몇 세대가 지나도 그들은 그들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언어도 자기 언어를 그대로 사용한다. 물론 영어도 잘한다. 

 

그러나 우리의 2세대, 3세대, 4세대들은 어떠한가? 바나나 미국인이 되는 것이 너무 가엽다. 우리의 이민역사가 짧아서인지 모르겠다. 하루빨리 외국에서 자녀 교육에 대한 올바른 방법론이 좀 더 빠르게 정착되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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