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에서 바라본 세계

국가의 미래를 향한 첫 걸음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김상국 교수의 생활과 경제이야기<36> 30여년 간 반복되는 지켜지지 않은 약속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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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3년01월17일 11시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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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언(金言)이라는 말이 있다. 누가 봐도 좋은 ‘금쪽같은 말씀’이라는 뜻이다. 또 좌우명(모토, Motto)이라는 말도 있다. 내가 행동하는 데 있어 ‘항상 참고하고자 하는 귀중한 말씀’이라는 뜻일 것이다. 

 

나에게도 이런 말이 두 가지가 있다,

 

나는 대학교 교수로 정년을 하였지만, 젊은 시절 상당 기간 회사를 다녔었다. 그 회사의 사훈(社訓)이 “어제를 반성하고, 내일을 창조하자.”였다. 참 좋은 말이라고 그때도 지금도 생각하고 있다. 

 

또한 목계(木鷄)라는 말도 있다. 말 그대로 『나무로 만든 닭』이라는 뜻이다. 목계는 장자의 달생편(達生篇)에 나온다고 한다.

 

주나라의 성왕이 투계를 좋아했는데 어느 날 좋은 투계 한 마리를 구했다.  그래서 가장 유명한 투계 조련사인 기성자를 불러 뛰어난 투계로 키우라고 하였다. 

 

열흘이 지나서 왕이 물었다. "닭이 싸우기에 충분한가?"

기성자는 답하였다. "아직 멀었습니다. 닭이 강하긴 하나 교만하여, 아직 자신이 최고인 줄 알고 있습니다."

 

다시 열흘 뒤에 왕이 물었다. “이제 닭이 싸우기에 충분한가?”

기성자는 답하였다. “아직 멀었습니다. 교만함은 버렸으나 상대방의 소리와 그림자에 너무 쉽게 반응합니다.”

 

다시 열흘 뒤에 왕이 물었다. “이제 닭이 싸우기에 충분한가?”

기성자는 답하였다. “아직도 멀었습니다. 조급함은 버렸으나 상대방을 노려보는 눈초리가 너무 공격적입니다.”

 

열흘 뒤에 다시 왕이 물었습니다. “이제 닭이 싸우기에 충분한가?”

기성자는 답하였다. “예. 이제 다 되었습니다. 상대방이 아무리 소리치고 위협해도 아무 반응이 없이, 마치 나무로 조각한 닭(木鷄)과 같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고 한다. 

 

이 목계 일화가 내 마음에 와닿는 이유는 사실 내 개인의 큰 결점 때문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쉽게 흥분하는 편이었다. 곧잘 화를 내고, 쉽게 남을 평가하며 때로는 나무라기도 자주 하는 편이었다.

 

물론 내가 그럴만한 사람이어서 그랬다면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사람이 전혀 아니었다. 나 또한 별 볼 일 없는 그저 그런 사람 중에 하나이면서 남을 쉽게 평가하고 나무랐을 뿐이다. 

 

어느 날 우연히 이 목계의 이야기를 읽고 느끼는 바가 컸었다. 그러나 그 일화를 기억하면서도, 역시 화를 내고 후회하기를 지금도 반복하고 있다. 고백하자면 이 목계 이야기는 삼성 이병철 회장에 관한 글을 읽으면서 발견한 것이다. 사실을 확인해 볼 수는 없었지만 이 회장님의 책상 옆에는 이 목계가 있었다고 한다.

 

나에게 있어 나를 지배하는 두 가지 논리가 있다. 하나는 ‘매일매일 조금씩 더 나아지자는 일일우일신(日日又日新)’이고, 다른 하나는 ‘평정심을 잃지 말자.’는 목계의 가르침이다.

 

벌써 30년 넘게 지속된 내 결심이다. 그런데 아직도 까마득하다. 그래도 ‘일일우일신(日日又日新)’은 조금씩 나아지는 형국이다. 그러나 목계지덕(木鷄之德)은 아직도 언감생심이다.

 

나는 사람이 위대한 점은 ‘사람이 결점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기의 결점을 알고 조금씩 조금씩 그것을 고쳐 나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어 실천한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핸드폰의 메모 기능에 정말 고마워한다. 조금 과장한다면 핸드폰 회사가 나를 위해 메모 기능을 만든 것 같다는 터무니없는 착각에 빠질 정도다. 

 

내 메모리 기능에는 폴더가 수십 개이고, 각 폴더에는 파일이 7,80개 정도 되는 것도 많다. 내 메모장에 있는 내용은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

 

부족한 나에게 있어서 유일한 장점이 있다면, 그것은 ‘메모하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과의 대화 중에 또는 TV를 보다가, 책을 읽다가 때로는 그냥 멍때리는 생각 중에 기록해 두어야 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면, 미루지 않고 곧바로 기록으로 남긴다. 옛날에는 그것이 노트로 십여권이었지만, 지금은 핸드폰이라는 너무 좋은 문명의 이기로 대체되었다.

 

나의 ‘일일우일신(日日又日新)’의 노력은 이 메모장에 기대는 바가 너무 크다. 시간이 조금 여유가 있을 때 그 메모장을 읽어 보면 새록새록 그때 일이 생각나고, 반성하는 바가 크다. 단 몇 분일지라도 ‘일일우일신(日日又日新)’할 수 있어 기쁘기도 하고 때로는 행복하기 조차한다.

 

그러나 안 되는 것은 목계지덕(木鷄之德)이다. 옛날 보다는 많이 줄었지만 아직도 자주 감정의 요동이 크다. 물론 여기에는 나만의 이유가 있기는 하다. 

 

예를 하나 들어 보겠다. 몇일 전 일이다. 파란불에서 건널목을 운전하는데, 어떤 젊은이가 천천히 걸어 횡단하는 것이다. 깜짝 놀라 무의식중에 ‘빵’하는데 그 젊은이는 보행자 빨간신호등을 힐끗 보고도 계속해서 태연하게 천천히 걸어가는 것이다.

 

나는 화가 났다. 나의 단점인지, 또는 장점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작은 것에서 그 다음에 전개될 큰 미래를 빨리 짐작하는 경향이 있다. 당시에 나의 생각은 이런 것이었다. ‘가장 기본적인 교통신호조차 지키지 않은 저런 사람이 다음 세대로 우리나라를 발전시켜야 하고, 또 자식을 낳아 기른다면 도대체 어떻게 자식을 키우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물론 아내의 말대로 다른 사람들은 나처럼 생각하지 않고, 교통신호를 어기는  정도로 생각하는데 왜 당신은 그렇게 앞서서 생각하느냐는 것일 수도 있다. 물론 아내의 생각이 맞다고 보지만, 그럼에도 나에게 앞서가는 생각이 먼저 드는 것을 어쩔 수 없다. 

 

특히 경제학을 전공하고, 미래에는 개인이든 국가든 『경쟁력』이 없으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나에게 그 젊은이의 어느 면에서는 뻔뻔하게 『생각 없이』 천천히 걷는 모습이, 단순한 교통법규를 위반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미래 경쟁력의 상실로 보이는 것이다. 

 

지나치게 앞서 나가는 것이 나의 잘못일지 모르겠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나는 지나친 생각을 하는 것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아마 그럴 것이다. 

 

그러나 나의 이런 생각에 목계는 뭐라고 답할지 궁금하다.

“흥분하지 마세요.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는 것이 아니잖아요!” 아니면 “왜 그런 쓸데없는 상상을 하세요?” “그건 남의 일이잖아요.”, “예나 지금이나 세상에는 저런 사람들이 많이 있었어요.”...

 

아니면 목계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요. 그것은 맞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안타까운 일이지요. 그러나 할 수 없잖아요. 어쩌겠어요.” 이렇게 생각하면 목계지덕도 나에게 조금은 쉽게 다가올지 모르겠다.

 

이런저런 이유로 30여 년간 목계지덕(木鷄之德)은 나에게 잘 지켜지지 않았다.  2023년 올해도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그 어느 해 보다 내 마음은 점점 더 평화로워지는 것 같다. 

나이 든다는 것이 아마 이런 것인가 보다.

 

<ifs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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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3년01월17일 11시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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