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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협의 박물관 이야기<8> 베르그루엔 미술관 (베를린)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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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0년12월13일 09시00분

작성자

  • 최협
  • 전남대학교 인류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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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의 아름다운 샤를로텐부르크(Charlottenburg)궁 길 건너편에는 아담한 규모의 <베르그루엔 미술관>(Museum Berggruen National Gallerie)이 있다. 이 자그마한 미술관이 <국립>미술관이다. <베르그루엔 미술관>이 국립미술관의 대접을 받는 이유는 그만큼 귀중한 소장품을 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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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그루엔 미술관>에 가면 유럽의 대형미술관들 못지않게 많은 Picasso, Klee, Matisse, Giacometti의 작품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러한 작품들이 베를린에 오게 된 경위가 나의 관심을 끌었다. 이 모든 작품은 베를린에서 태어난 유대인 Heinz Berggruen이 기증한 것으로, 그는 나치의 탄압이 시작되자 1936년 미국으로 망명했던 피해자였다. 그는 전쟁이 끝난 후 파리에 정착하여 살면서 소유하게 된 작품들을 1996년에, 그가 태어난 베를린으로 다시 돌아와, 국가에 기증하였고, 독일 정부는 국립미술관을 만들어 베르구루엔의 선한 기부에 응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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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서 그림들을 감상하는 동안 내내 무언가 실마리가 쉽게 풀리지 않는 상념이 뇌리를 감돌았다.

그가 태어난 땅의 나치 정권은 6백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했는데, 그러한 악몽을 피해 떠났던 고향 땅을 저주하는 대신, 오히려 다시 찾아와 아름다운 그림 기부의 손길을 내민 행위는 무엇일까?

역사적 승자의 권력과 힘을 등에 업고 목청 높여 소리쳐 꾸짖는 대신, 개인의 조용한 행위 하나로 전달되는 강렬한 메시지가 느껴진다. 그날, 호젓한 미술관의 뜨락을 거닐며 느껴졌던 따스함이 꿈처럼 기억 속에 남아있다!

천년이 훌쩍 넘도록 오랜 기간 세계 각지에 흩어져 힘들게 살아온 유대인의 정체성에는 확실히 시공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단단하고 강인한 그 무엇이 심층에 자리 잡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짐작건대 유대교라는 정신세계가 그들을 지탱시켜주었을 터이다.

사실 우리 인류는 유대인에게 배운 바가 크다. 마르크스, 프로이트, 사르트르, 카를 포퍼, 촘스키 등등, 나에게도 영향을 끼친, 금방 떠오르는 익숙한 이름들이 모두 유대인이다. 세계에 퍼져 사는 유대인은 고작 1,400만 명인데, 역대 노벨상 수상자는 25%를 차지한다. 미국 인구의 1.5%가 유대인인데, 미국 GDP20%가 유대인 몫이라 하니, 그들은 차별받는 소수집단이면서, 동시에 실질적인 지배집단이기도 하다. 그래서 약한 자가 강한 자이다!

 

(Heinz Berggruen의 아들 Nicolas Berggruen은 독일, 미국 이중 국적의 <집 없는 억만장자>로 알려진 사업가인데 그의 재산 대부분을 기부해온 자선가이기도하다. 부친이 이름을 남긴 베르그루엔 미술박물관에도 후원이사회를 맡아 대를 이어 지원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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