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에서 바라본 세계

국가의 미래를 향한 첫 걸음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김진해의 주유천하> 열 장의 이야기와 다섯 편의 시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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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0년11월28일 17시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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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진해
  • 경성대학교 예술종합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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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에 비해 이름이 덜 알려진 소설가가 있다. 김언수. 그의 <물개여관>이란 소설을 읽는다. 소설은 부산 남항 뒷골목의 암흑세계를 그리고 있다. 외항선을 타러나가기 전 선원들은 몸을 푼다. 짧으면 6개월 길면 3년의 항해를 앞두고 그들은 내장 모두를 술로 채우고 비운다. 머리가 하얗게 될 때까지 마시고 토한다. 미리 받은 선수금을 아낌없이 써버린다. 마치 더러운 휴지를 버리기라도 하는 양. 그래서 이곳은 항상 흥청거린다. 

저녁이면 홍등 사이로 야화(夜花)들의 웃음이 사내들의 육담(肉談)과 함께 질펀하다. 욕망과 폭력과 슬픔이 묘하게 뒤엉켜있는 동네다. 이 소설은 외항선원들의 하룻밤 숙소 <물개여관>을 중심으로 스토리를 전개한다. 속도가 빠르고 묘사가 현실적이라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하다. 

 

<물개여관>의 소설을 읽는 행운은 부산현대미술관을 방문한 대가다. 부산비엔날레 도록에 그림과 함께 소설이 실려 있었다. 탄생한지 3년 남짓한 이 미술관이 서울사람들에게도 꽤나 알려진 모양이다. 오로지 전시를 보러 부산을 오는 이들도 있다고 하니 성공한 셈이다. 뭐니 뭐니 해도 미술관의 성패는 어떤 작품을 보여주느냐에 달려 있는데 개관 당시 하루 1만 명의 관람객을 모으며 꽤 주목을 끈 곳이다. 

요즘 현대미술은 개념이다. 그러니 추상적이고 모호하다. 해석도 작가의 의도를 얼마나 정확히 읽느냐가 아니라 내가 어떻게 해석하는 지가 중요하다. 도슨트의 해설을 듣고 작가가 “그렇게도 해석이 가능 하겠군요” 라고 할 정도니 말이다. 다른 현대 예술이 그렇듯이 미술은 감상자의 몫이 점점 더 커지는 것 같다.

 

‘열 장의 이야기와 다섯 편의 시’. 이 명칭이 2020 부산비엔날레의 전시제목이다. 덴마크 전시감독 야곱 파브리시우스가 무소르그스키의 10개의 피아노곡과 5개의 간주곡으로 구성된 모음곡 ‘전람회의 그림’에 착안하여 붙인 것이다. 그래서 이번 비엔날레는 언어의 상상력에 미술의 형상화가 결합된 전시다. 전시는 부산이라는 로컬리티를 근간으로 하지만 작가들의 이미지는 세계로 뻗어있다. 

외국작가가 참여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상상력은 시공간을 넘어 존재하기 때문이다. 회화가 때로는 사진의 장르를 차용하고 영화의 다큐멘터리를 응용하고 설치영상을 선보인다. 미술의 실험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장르 뿐 만이 아니라 공간 사용도 미술관이 영화관인지 사진 전시장인지 건축 모델하우스인지 분간이 안긴다. 한마디로 경계가 없고 끝도 없다. 종횡무진이다.

 

이정도면 일반 시민도 한 번 쯤 미술관을 찾고 싶지 않을 까 싶다. 참, 심지어 19금 동영상도 상영되고 있다. 이 부산현대미술관의 외양은 식물이 뒤덮고 있다. 건물 벽에 다양한 식물을 식재(植栽)하여 입체 정원 하나가 탄생했다. 정원을 예술의 한 분야로 정착시킨 세계적인 식물학자 패트릭 블랑이 부산의 식물생태계를 조사하여 175종의 토착식물을 이용해 4만4천여 포트를 심어 표현했단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철따라 변하는 식물의 색깔로 건물의 색상과 표피가 달라진다. 건물 자체가 작품인 셈이다. 

이런 수직정원은 미술관, 박물관 뿐 만이 아니라 호텔 건물에도 설치되어 있다. 일본 후쿠오카에서 내 눈길을 사로잡은 적이 있는 숙소였다.

 

부산여행은 해운대, 자갈치, 태종대 구경이 전부가 아니다. 흰여울 마을의 부서지는 파도를 바라보면 카페에서 커피 한 잔 마시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여행 코스에 미술관이 필수로 들어와야 한다. 뉴욕에 가면 뉴욕현대미술관(모마)과 구겐하임미술관을 방문하는 것이 필수고, 파리에 가면 루브르 박물관과 오르세 미술관, 로댕 미술관 등을 관람하는 것이 필수인 것처럼. 색다른 체험과 경이로움의 발견이 여행이듯이 먹거리 즐길 거리와 함께 미술관 순례가 필수가 되는 시대가 왔으면 한다. 그래야 문화대국이란 소리를 듣지. BTS와 K뷰티와 K드라마가 전부가 아니다. 우리의 미술도 그 정도로 가야한다. 역시 미술관은 전시기획이 중요하다. 그래서 예술감독과 미술관장이 중요하다. 관료 행정가나 낙하산이 아닌 미술전문가가 수장이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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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해(金鎭亥)는 누구?

1993년 영화 '49일의 남자'로 데뷔한 영화감독이자 현재 경성대학교 연극영화학과 교수로 예술종합대학장을 맡고 있다. 연세대학교와 뉴욕테크대학원 (MA)을 졸업하고, 미주 중앙일보 기자·오로라픽쳐스 대표이사·홍익대학교 조형대학 우대겸임교수 등을 거쳤다. ‘디지털 시네마’ ‘시나리오의 이해’ ‘메가폰을 잡아라’ '문화는 정치다'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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